소설리스트

귀환자의 삼시세끼-86화 (86/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86화>

* * *

[이름 ‘이호성’]

[레벨 ‘871’]

[호칭 / 다이아몬드 클랜의 클랜장]

[속성 / 금속]

[신수 / 없음]

[펫 / 없음]

[HP 3247]

[MP 1221]

이호성은 운전을 하면서 자신의 상태 창을 확인했다.

레벨이 871이라는 말도 안 되는 숫자로 올라 있었다.

폭업이라고 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무지막지한 레벨 업이었다.

흡사 하루아침에 주식이 오른 것처럼, 너무 많은 숫자가 올라 체감상 자신의 레벨을 실감하기가 힘들 정도다.

게다가 무엇보다……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다시금 자각하게 된다.

강민성과 함께하는 길에, 레벨의 숫자 같은 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고.

강해져 봤자 평범한 뒷골목 헌터들보다 죽을 가능성이 더 높은 게 현실이니까.

이호성은 조만간 병원에 가서 정신 치료를 한번 받아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끼익!

차가 민성의 집 앞에서 멈춰 섰다.

“헌터님. 도착했습니다.”

“이호성.”

“네. 헌터님.”

이호성이 뒤로 돌아보며 대답하자 민성이 카드를 내밀었다.

“씻고 있을 테니까 먹을 것 좀 구해 와.”

“……지금이요?”

“그럼 굶어?”

민성의 번쩍이는 눈을 보고 이호성은 급히 눈을 내리깔았다.

이호성은 민성이 차에서 내려 집 안으로 들어가는 걸 보며, 담배를 물었다.

그리고 근심 가득한 얼굴로 바깥을 응시했다.

“하…… 쉬고 싶다. X발.”

이호성은 금세 다 피운 담배꽁초를 버린 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음식을 찾아 나서기 위해 차를 출발시켰다.

* * *

쿵쿵!

문을 두드려 봤지만 굳게 잠긴 문은 미동도 하지 않았고, 안쪽에서는 전혀 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이호성은 땅이 꺼져라 한숨 쉬며 다시 차에 탔다.

쌔가 빠지도록 돌아다녀 봤지만, 맛집은커녕 일반적인 식당도 대부분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상태였다.

이런 식으로 음식을 구하기에는 힘들 것 같았다.

이호성은 휴대폰으로 인터넷 창을 열었다.

근처의 식당을 찾아보고 하나하나 전화를 해서 포장이 가능한지를 물어보기로 한 것이다.

약 40여 통이 넘었을 때가 돼서야 비로소 한 군데의 가게와 전화 연결이 될 수 있었다.

- 여보세요?

지쳐서 늘어져 있던 이호성은 통화가 연결되자 벌떡 척추를 세웠다.

“네. 혹시 지금 영업 중이신가요?”

- 아니요. 아직 영업은 안 하는데…….

이호성의 얼굴에 실망감이 역력하게 서렸다.

“아…….”

- 그래도 포장 정도는 해 드릴 수 있는데. 오실 수 있으시겠어요? 워낙 흉흉한 시기라 위험해서.

이호성이 반색하며 입가에 웃음기를 띠었다.

“그럼요. 괜찮습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이호성은 시계를 보고 말을 이었다.

“한 20분. 20분 정도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갑니다.”

- 네, 그럼 조심히 오세요.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거의 불가능한 미션이 아닐까 싶었는데, 이렇게 계속 두드리니 문이 열리긴 열리는구나.

식사 배달만 마치면 쉴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이호성은 희희낙락한 얼굴로 가게를 찾아 나섰다.

* * *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할 때면, 살아 있다는 것이 이토록 행복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마계에서는 눈을 뜰 때마다 지옥이었지만, 현세로 돌아온 지금은 아주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서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좋다는 말은 괜히 있는 말이 아니라고 민성은 생각했다.

개운하게 샤워를 마친 뒤, 머신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만들어 소파에서 앉았다.

커피를 마시자 카페인이 전신에 퍼지는 게 생생히 느껴진다.

하지만 갈증은 가셨으나 배고픔은 여전했다.

이호성이 오기를 기다리며 민성은 TV를 틀었다.

TV에서는 중앙 헌터 기관이 미궁을 클리어했다는 소식이 전파를 타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몬스터의 습격에 대한 후유증이 남아 시민들의 걱정이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는 소식을 기자가 전했다.

채널을 돌려 봐도 온통 미궁을 클리어했다는 뉴스뿐이었다.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뉴스는 민성에게 흥미가 될 수 없었다.

채널을 돌리던 중 뉴스가 아닌 프로그램이 나타났다.

민성은 채널을 돌리는 걸 멈추고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이는 세계에서 인정받는 최고의 요리사들끼리 짧은 시간 안에 요리를 만들어 미식가에게 점수를 받는, 대결 프로그램이었다.

단 15분 안에 음식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긴박감이 굉장했다.

음식을 만들어 나가는 모습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할 정도로 대단했다.

미식가가 요리사들이 만든 음식을 먹을 때는 식욕까지 당기니 민성은 TV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 * *

이호성은 민성의 집 앞에서 차를 세우고 조수석에 놓여 있는 비닐봉지를 보며 미소 지었다.

완전 럭키다.

혹시나 음식을 찾지 못해 얻어터지는 건 아닌가 불안했었는데, 이런 위기 상황에 진짜 득템을 했다.

분명 만족하겠지.

민성이 좋아할 거란 사실에 기분이 들떴다가, 문득 드는 생각에 다시 우울해졌다.

왜 이런 걸로 내가 좋아해야 하는 거야…….

젠장, 빨리 전담 요리사를 구해 주든가 해야 내가 편해질…….

그래.

그러면 되잖아!?

이호성은 활짝 웃었다.

강민성이라는 무간지옥으로부터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다.

이호성은 자신이 너무 기특해서 스스로 자신의 얼굴을 문지르고 어깨를 토닥였다.

“그래. 바로 그거야.”

이호성은 큭큭 웃으며 잔뜩 들뜬 채로 차에서 내렸다.

* * *

요리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 이호성이 도착했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민성이 소파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네. 운이 좋았습니다.”

“너도 먹고 가.”

의외의 제안에 이호성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사이 민성은 주방으로 이동했다.

민성이 식탁에 앉았을 때, 이호성이 비닐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비닐을 풀자, 드디어 고대하고 고대했던 음식이 민성의 눈앞에 그 황홀한 자태를 드러냈다.

이호성이 포장해 온 음식은 바로 ‘족발’이었다.

메인 음식 족발이 먼저 식탁에 놓이고, 그 뒤를 이어 젓갈과 쌈장, 그리고 야채들이 줄줄이 비닐 속에서 나왔다.

배에서 어서 음식을 달라고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민성은 아랫배를 문지르며 심호흡을 했다.

급하게 먹으면 좋지 않다.

아무리 오래 기다렸다고 할지라도, 여유 있게 즐겨 주겠다고 민성은 마음먹었다.

“손을 씻어야겠어.”

이호성이 포장된 것을 까고 있는 동안, 민성은 싱크대로 가서 손을 깨끗하게 씻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사이 이호성은 먹을 준비를 모두 마쳐 놓았다.

민성이 자리에 앉자 소주 한 병을 까서 잔을 채워 준 뒤, 이호성도 앞에 앉았다.

“도시에 퍼진 몬스터도 잡고, 미국 애들도 쫓아내고, 미궁도 클리어하고…… 진짜 하루에 참 많은 일을 해내셨네요.”

이호성이 가식 없이, 진심이 섞인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너도 고생했다. 내일 아침 밝는 대로 아이템 정리하고 내 계좌로 돈 보내. 한 푼이라도 장난치면 알지?”

“예예, 암요. 알다마다요. 제 목을 자르시겠죠.”

소주잔이 부딪치면서 쨍- 하고 맑은 소리가 났다.

민성은 이호성과 함께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소주잔을 내려놓았을 때, 이호성이 나무젓가락을 뜯어서 건네주었다.

민성은 나무젓가락을 들고 식탁 위에 놓인 족발을 내려다보았다.

반짝거리는 족발의 껍질은 보는 것만으로도 목에 기름칠을 하는 것만 같은 느낌을 전해다 주었다.

거기에 도톰하면서도 부드러워 보이는 속살이 보인다.

몬스터를 잡으면서 얼마나 기다리고 고대했던 순간인가?

이호성도 숨을 죽이고 민성이 첫 젓가락질을 하기를 기다렸다.

고요한 실내에서 민성이 족발을 향해 젓가락을 내밀었다.

살점 하나를 집어 간장에 찍은 뒤, 입에 쏙 넣었다.

우물우물-♪

“……!”

첫 입으로 족발을 씹는 순간 눈을 크게 치켜뜰 수밖에 없었다.

민성은 잠시 넋이 나간 얼굴로 족발을 내려다보았다.

“어떻게 이렇게 부드러울 수가 있지?”

푹 삶아진 족발은 말도 안 되게 부드러웠다.

특히나 껍질 부분은 쫀득쫀득한 것이 마치 한없이 부드러운 찹쌀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운이 좋게도 유명한 맛집에서 포장해 올 수 있었습니다.”

이호성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미소 지으며 말했다.

민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맛집이라 할 만한 곳이다.

족발이 이토록 맛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정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족발에 이런 큰 감명을 받을 줄이야.

민성은 헛웃음을 흘리며 깻잎 한 장을 손에 들었다.

“안 먹고 뭐 해?”

민성이 깻입에 족발과 젓갈, 그리고 마늘을 올리며 이상하다는 듯이 이호성을 보았다.

그러자 이호성은 빙그레 웃으며 민성을 보았다.

“저는 헌터님이 드시는 것만 봐도 배가 부릅니다.”

“그렇게 웃지 마라. 밥맛 떨어지니까.”

“네. 그런데 저…… 헌터님.”

“왜?”

민성이 입안에 족발 쌈을 물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입으로 되물었다.

“제가 생각을 해 봤는데요. 최근 들어서 테러도 심하고 규칙을 무시한 몬스터들의 침공도 잦아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앞으로도 식당 문이 이렇게 닫히는 날이 올 수도 있으니, 개인 전담 요리사를 하나 고용하시는 게 어떨까요?”

민성은 맛있는 족발을 우물우물 씹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네. 아니, 훌륭한 판단이다.”

이호성은 이렇듯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 줄 때가 있다.

“그렇죠? 그럼 제가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예. 헌터님. 그리고 저는 먼저 들어가 봐도 될까요? 좀 씻어야 하기도 하고…….”

“그럼 요리사는 점심쯤에 데리고 와.”

“오늘요?”

“그래.”

이호성은 퀭한 얼굴로 손목시계를 보았다.

“헌터님, 지금 새벽 5시인데요? 요리사를 오늘 오후 1시까지 구해 오라고요?”

“그래. 싫어?”

민성이 이호성을 빤히 보았다.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민성을 보며 이호성은 창백한 얼굴로 웃었다.

“싫을 리가요. 헌터님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면 맨발로라도 뛸 생각입니다.”

“가 봐.”

“네.”

민성은 쌉쌀하면서도 부드럽고 푸근한 느낌의 족발 쌈을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호성은 천천히 일어나 인사를 올렸다.

“그럼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건성으로 손을 흔들어 보인 민성은 다시금 족발을 먹는 데에 집중했다.

그냥 족발만 먹는 것도 맛있지만, 최상의 맛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역시 쌈이다.

상추 위에 깻잎을 포개고 그 위로 족발과 새우 젓갈, 그리고 간장에 절여진 양파와 생마늘. 마지막으로 매운 고추를 올려 쌈을 만든 뒤, 소주 한 잔을 하고 입안으로 쌈을 밀어 넣었다.

우물우물!

민성은 눈을 질끈 감았다.

최고다, 정말.

쌈 안에서 강렬한 새우 젓갈의 맛과 쌉쌀한 마늘 맛, 그리고 매운 고추 맛이 마치 불꽃놀이처럼 족발의 맛을 폭발시킨다.

환상적이야.

민성은 적막한 거실에서 편안하게 족발을 음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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