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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84화 (84/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84화>

* * *

소마인은 민성이 유리관 수조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는 모습을 먼 곳에서 훔쳐보면서, 가늘고 기다란 검은 손을 자신의 심장 부근에 가져다 댔다.

쿵쾅! 쿵쾅! 쿵쾅!

지금껏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긴장과 공포가 대혼란이 되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검은 학살자는 죽었다.

분명 그렇게 들었다.

죽었다고.

그런데 어떻게 죽어 버린 이가 지금 이곳 던전 안에서 살아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소마인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정말 저 인간이 검은 학살자라면 단순히 정면 승부로는 절대로 승산이 없었다.

‘헤켈 던전이 사라졌다는 신호가 올라온 것도 저놈에게 당해서인가?’

그가 정말 검은 학살자라면, 헤켈이 그랬듯 자신도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흔적을 남겨야 했다.

검은 학살자가 살아 있다는 흔적을 남겨, 동족에게 이 사실을 전파해야만 했다.

소마인은 날개를 퍼덕이며 이동해, 블랙홀처럼 떠 있는 아공간 앞에 도착했다.

석판에 검은 학살자에 대한 글을 손톱으로 긁어서 새긴 뒤, 그것을 아공간에 던져 넣었다.

그러곤 검은 학살자가 있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검은 학살자는 던전 안에 혼자 들어오지 않았다.

함께 들어온 인간이 있었다.

소마인은 그 인간을 납치해 고문하면서 검은 학살자에 대한 정보를 끌어내기로 했다.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는 거라면, 반드시 가치 있는 죽음을 맞이하여 마계에 영광을 받치고 싶었다.

퍼덕!

소마인이 피처럼 붉은 눈을 빛내며 눈부신 속도로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 * *

민성은 거대한 유리관 수조를 오리하르콘 단검으로 툭툭 쳐 보았다.

상당량의 마기를 발출시켰음에도 불구하고 흠집조차 생기지 않은 특이한 구조였다.

유리관 수조의 이곳저곳을 살펴보았지만 딱히 눈에 띄는 장치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유리관 수조를 면밀히 살피고 있는 가운데, 바람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내 민성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바닥이 갈라지며 흙이 사방으로 튀었다.

지독한 황사처럼 흙먼지가 주변에 번졌다.

시간이 지나, 바람을 타고 흙먼지가 사라졌을 때.

이호성 역시 사라져 있었다.

* * *

깊은 동굴 속.

이호성은 천천히 눈을 떴다.

뭐지?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분명 민성의 뒤에서 유리관 수조를 같이 보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뭔가가 자신을 낚아채는 듯한 느낌을 받음과 동시에 의식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눈을 뜬 지금, 곳곳에 흐르는 용암과 함께 보이는 것은- 민성이 소마인이라고 불렀던 몬스터였다.

납치당한 건가?

그 짧은 사이에?

심장이 하얗게 얼어붙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고,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듯 추위가 몸을 에워 쌓다.

소마인은 이호성을 빨간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호성이 느끼기에 소마인은 지금껏 만나 온 그 어떠한 몬스터보다 위험한 포스를 풍겼다.

존재 그 자체가 공포가 되어 온몸을 찍어 누르는 듯했다.

그 순간, 소마인이 목에 차고 있던 목걸이가 일순 섬광과도 같은 새파란 빛을 뿜어냈다.

이호성은 눈을 질끈 감으며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등이 벽에 막혀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었다.

밝게 번쩍이던 빛은 금세 사라졌다.

이호성은 조심스럽게 눈꺼풀을 들어 소마인을 다시 보았다.

소마인이 천천히 자신에게로 다가와 시선을 맞추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이호성은 소마인의 빨간 눈을 코앞에서 보고 있으니 정신이 아득해지고 긴장감으로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것만 같았다.

“이름을 말하라.”

“이, 이, 이호성.”

이호성은 시키는 대로 대답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가는 당장 목숨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런 와중에도 이호성은 소마인이 어떻게 한국어를 하는지 신기했다.

저 목걸이 때문인가?

그러고 보면 그의 말은 귀로 들리는 게 아니라 속에서 울리는 것처럼 들렸고, 소마인의 목걸이에서는 계속해서 빛이 나고 있었다.

“검은 학살자에 대해 아는 걸 모두 말해.”

소마인이 말했다.

꿀꺽-

굵은 침이 목을 넘어갔다.

“검은 학살자?”

이호성이 되물었다.

“그래. 너와 함께 있던 인간을 말하는 것이다.”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왜 소마인이 자신을 납치해 이런 동굴 속으로 끌고 들어온 것인지.

“꾀를 부린다면 네놈의 피부를 산 채로 모두 벗겨 낼 것이다.”

“허억, 허억. 헉!”

이호성은 전신을 떨면서 거칠게 호흡했다.

……빌어먹을.

500레벨이 넘어 오러를 사용하는 헌터가 되어 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결국 강민성과 함께하면 이런 괴물 같은 놈들에게 협박이나 당하는 신세를 면하지 못하지 않는가?

두렵다.

너무 무서워서 기절할 것만 같았지만, 정신은 외려 또렷했다.

죽음이 코앞에 있어서인지 몸이 공중에 붕 뜨는 듯했다.

“처음부터 순순히 복종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소마인이 나지막하게 울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스르륵!

소마인의 손에서 시커먼 손톱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는 한 자루의 검에 비견될 만큼 길게 자랐으며 그 어떠한 무기보다도 날카로워 보였다.

휘익!

소마인의 긴 손톱이 이호성의 가슴을 할퀴었다.

서걱!

다섯 줄기의 상처가 벌어지며 피가 쏟아졌다.

“헉!”

이호성은 새파란 얼굴로 턱을 치켜들며 숨을 들이켰다.

뜨거운 고통이 솟구쳤다.

“아아아아아아아악!”

이호성이 비명을 내질렀다.

가슴에서 물컥물컥 흘러내리는 피가 아랫배와 바지를 적셨다.

“컥!”

출혈이 시작되자 빈혈처럼 눈앞이 핑 돌았다.

소마인이 충격에 놀란 이호성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 쥐었다.

“이번엔 네 얼굴 가죽을 천천히 벗겨 낼 것이다. 아직도 말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느냐?”

바드득!

어금니를 깨물었다.

이호성은 자신의 얼굴을 움켜쥐고 있는 소마인을 노려보았다.

“알려 주고 싶어도 알려 줄 게 없어, 이 몬스터 새끼야. 그게 내 한이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이호성은 소마인이 원하는 정보를 주고 싶어도 줄 만한 게 없었다.

하나 만약 ‘밀고’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정보가 있었다면, 그것이 강민성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정보였다면, 자신은 살기 위해 그 정보를 소마인에게 불었을까?

이호성은 쓴웃음을 지었다.

알 수 없는 일이지.

꽈드득!

이호성의 얼굴을 쥐고 있던 소마인의 손에 힘이 붙기 시작했다.

쿠드득!

얼굴이 터질 것만 같은 통증이 뇌를 자극했다.

“크으윽!”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고 있는 이호성을 보며 소마인은 눈살을 구겼다.

“쉽게 죽일 거라고 기대하지 마라.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여 갈 것이다. 혹여나 천천히 죽어 가는 와중에 생각이 나거든 말해 보거라. 살려 줄 수도 있으니.”

소마인의 손톱이 이내 정수리 부근부터 시작해 천천히 얼굴 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머리가 찢어지고, 소마인의 손톱이 이마 쪽으로 내려왔을 때.

이호성은 고통으로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웃음을 흘렸다.

극심한 스트레스는 공포를 넘어서는 법이다.

그리고 그 공포의 끝에는 희망이 걸려 있었다.

바로 강민성이라는 희망.

“소마인도 별거 없네.”

이호성의 말에 소마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뭐라고?”

“너희 같은 몬스터들은 욕심인 건지 멍청해서인지, 시간을 너무 끈단 말이야.”

“…….”

“일부러 비명을 세게 질렀어, 이 똥 멍청이야. 3분 지났다.”

머리에서 흐르는 피로 얼룩진 얼굴을 한 이호성이 소마인을 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소마인이 황급히 자리를 옮기기 위해 이호성의 목을 움켜잡고 일어나려 할 때.

쇄애애애애애애액!

바람을 찢는 파공음이 동굴 안에 울려 퍼졌다.

퍼어어억!

오리하르콘 단검이 소마인의 배 속을 뚫고 나와 허공에 떠올랐다.

민성의 오리하르콘 단검에는 마기가 실려 있었다.

마인은 굉장한 회복력을 가지고 있지만, 민성의 마기에 의해 당한 상처는 회복되지 않고 외려 주변으로 번져 나갔다.

“허억……!”

소마인이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다가 철퍽 무릎을 꿇었다.

용암이 어슴푸레하게 비추고 있는 어두운 동굴 속에서 발자국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그리고 이내 민성이 소마인의 등 뒤에 섰다.

민성이 차가운 눈으로 소마인을 내려다보았다.

“다른 건 별로 안 궁금한데, 저 어항같이 생긴 수조는 대체 왜 안 깨지는 거냐?”

민성이 건조하게 마른 눈으로 소마인을 보며 물었다.

“저걸 깨야 던전이 클리어가 되는 건가?”

소마인은 무릎을 꿇은 채 기형적으로 목을 돌려 민성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학살자. 네놈이 어찌 살아서 이 인간계에 다시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마계에서 죽임을 당했듯이 이곳 인간계에서도 네놈은 다시 한 번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소마인이 고통이 스며든 얼굴로 웃음 지으며 말했다.

그에 느릿하게 무릎을 굽혀 앉은 민성이 소마인을 바로 코앞에서 직시하며 미소를 띠었다.

“내가 검은 학살자라는 걸 알고도 이렇게 여유롭다는 건, 네가 그때의 나를 만나 보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소마인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콱!

민성이 소마인의 목을 틀어잡았다.

소마인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죽여라. 난 죽음도, 소멸도 두렵지…….”

순간 민성의 손끝에서 시작된 새하얀 기운이 소마인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소마인은 이내 격렬한 고통으로 미친 듯이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소마인의 동공이 위로 올라가고, 소마인의 입에서는 거품이 흘러나왔다.

거대한 공포가 소마인의 뇌를 망가트려 나갔다.

민성의 힘에 의해 소마인의 의식 안에서 환상과 망상이 어우러졌다.

“아아…… 아아아아! 아아아!”

거대한 고통으로 소마인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저 저항할 수 없는 공포에 정신이 갈기갈기 찢어질 뿐이었다.

고통스러운 신음이 이어지는 가운데, 소마인의 검은 피부가 벗겨지면서 피부 곳곳이 마치 불에 타는 것처럼 빨갛게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소마인은 마치 인간처럼 눈물을 흘렸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했나?”

민성이 엷은 웃음을 흘렸다.

“죽음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닌 거야.”

소마인에게 가하던 민성의 힘이 더욱 강대해졌다.

소마인은 경련을 일으키듯 몸을 떨었다.

온몸을 마치 난도질하는 것만 같은 고통이 치솟았다.

소마인 정도 되니 물리적 고통 정도는 참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포라는 건 인내와 같은 것으로 저항하거나 면역될 수 있는 체계가 아니었다.

소마인의 머릿속에서 보이는 것은 지옥이다.

내면 안에 존재하는 가장 큰 두려움을 극대화시키는 것.

“그, 그그, 그만. 검은 학살자여, 제발 멈추어…….”

“클리어 조건은?”

민성이 흘려보내던 힘을 약하게 조절하며 물었다.

소마인이 민성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말할 수 없다. 결정체 안에 있는 것은 나의 어머니다. 나를 죽여다오.”

“네가 지키고 싶어 하는 그 유리관 수조도 결국은 깨지겠지. 네 어미에게 네가 겪는 지금의 고통을 느끼게 하고 싶나?”

소마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내가 누군지 알고 있다면, 죽음을 은혜롭다고 여겨야 할 것이다.”

소마인이 검은 피를 물컥 물컥 토해 내며 온몸을 떨면서 파들거리는 입술을 열었다.

“약속을 지켜 주는 건가…….”

“귀찮은 건 질색이다.”

소마인이 눈이 반쯤 감긴 채로 정보를 실토했다.

“던전 안에 동서남북으로 4개의 장치가 있다. 그 장치를 해제하면 결정체가 개방될 것이다. 약속을…….”

“그만 가라.”

민성의 손에서 강렬한 빛이 동굴 안을 환하게 비추었다.

그 순간, 소마인의 온몸이 그 자리에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참담한 비명을 내지른 소마인이 순식간에 액체처럼 변하며, 새빨간 피로 녹아 바닥을 적셨다.

죽음을 넘어선 완전한 소멸이었다.

그 자리에 아이템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아이템은 모두 전설 등급이었다.

민성은 손에 묻은 피를 휘둘러 털어 내며 천천히 일어섰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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