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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82화 (82/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82화>

“사람의 목숨을 고작 파리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는 당신들에게 우리나라를 맡길 수는 없습니다. 당신들의 지원은 거절하겠습니다.”

“하!”

조나단은 기가 찬다는 듯이 짧은 웃음을 터트렸다.

“주제 파악을 못 하는군! 현재 한국의 헌터는 그 수가 적어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에 힘들다는 보고를 받았다.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현재의 위기를 타계하겠다는 거지? 만약 이번 미궁 사태를 막지 못해 그 위험의 경계가 타국까지 번진다면- 그에 대한 책임은?”

“대한민국 헌터의 총책임을 맡은 내가 그 책임을…….”

“아시아의 변방 나라 책임자 주제에! 그게 지금 너 같은 계집애가 할 수 있는 발언이라고 생각하나?”

김지유가 차가운 눈으로 조나단을 쏘아보았다.

“그렇게 따지면 당신이 결정짓거나 논할 수 있는 문제는 더더욱 아니지. 고작 미국 헌터 마스터의 명령으로 내려온 주제에. 본인의 위치를 자각하고 조용히 고국으로 돌아가서 보고나 올려. 당신이 외교를 논할 자격은 없으니.”

조나단이 당장 공격할 태세로 김지유에게 가까이 걸어갔다.

즉각 반응하려는 중앙 기관 헌터들의 움직임을 김지유가 차분히 손을 올려 만류시켰다.

“지원이나 받는 입장에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기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곧 네 이마가 땅에 닿는 꼴을 내가 보게 될 거다.”

김지유는 그를 필요 이상으로 자극한 것 같아 스스로가 답답했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김지유는 그를 무시하곤 중앙 기관 병사들에게 미궁 탐사 진입 중지를 명령했다.

그 모습에 조나단이 비웃음을 흘렸다.

“한국의 패망을 미리 축하하지.”

조나단은 그 말을 끝으로 몸을 팩 돌렸다.

한국에 지원 온 미국 헌터들이 모두 발길을 돌렸다.

그들이 떠나는 모습에 중앙 기관의 헌터들은 복잡한 심정으로 김지유를 보았다.

단순히 자존심으로 이런 중차대한 사안을 결정짓는 김지유가 아니라는 건, 고위급 헌터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미국과 척을 질 수도 있는 김지유의 지금과 같은 과감한 태도는 다소 예상 밖이었기에, 중앙 기관의 헌터들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계속 던전 밖으로 유출되고 있는 몬스터는 왜 지금 보이지 않는 거지?”

미국 헌터들이 차량을 타고 떠나는 사이, 김지유가 조사단장에게 물었다.

“5시간 간격으로 약 2시간의 휴식기를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조사단장이 손목에 찬 시계를 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의 패턴으로 볼 때, 약 30분 정도 후면 다시 몬스터가 나오기 시작할 겁니다.”

김지유는 미궁 던전 주변에 대기하고 있는 중앙 기관 헌터들의 수를 확인했다.

다시 한 번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면, 이번엔 상황이 더 힘들어질 것이 틀림없다.

중앙 기관의 헌터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지쳐 가고 있었다.

30분 후, 미궁 던전 밖으로 다시 몬스터가 나오기 전에 강민성이 이곳에 도착하는 게 최선이었다.

‘이게 정말 잘한 결정일까……?’

미국 헌터들을 보낸 가장 큰 이유.

그것은 바로 강민성이다.

그를 믿었기 때문.

하지만 그를 믿은 것이 잘한 결정인지에 대한 확신은 서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의 결정으로 인해 최악의 상황으로 일이 틀어지는 건 아닐지 걱정스러운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김지유는 크게 한숨 쉬고서 조사단장을 돌아보았다.

“중앙 기관 헌터의 총 병력을 미궁 앞으로 집결시키도록 해. 단 한 마리도 밖으로 유출시켜서는 안 돼.”

“충!”

조사단장이 경례를 올려붙인 후, 빠르게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움직였다.

김지유는 거대한 미궁 던전을 초조한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 * *

아직 몬스터가 도심 속에 남아 있긴 했지만, 중앙 기관 본부에서 온 연락에 의하면 이제 그 수가 얼마 되지 않아 중앙 기관에서 충분히 처리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산에서 내려와 도로가로 나오자 차량 한 대가 보였다.

이호성의 차였다.

이호성은 차 보닛에 기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는 산에서 내려온 민성을 보고는 급하게 담배를 끄고 꾸벅 인사했다.

“미궁으로 모시겠습니다.”

민성은 차 뒷문을 열고 있는 이호성을 빤히 보았다.

시퍼렇게 멍이 든 얼굴에다 입술은 터져 있다.

몸은 얼굴보다 더 엉망진창일 것이다.

“미궁으로 갈래, 병원으로 갈래?”

민성이 무표정하게 이호성을 응시하며 물었다.

“미궁으로 갑니다.”

“못 따라오면 버릴 거다.”

이호성이 민성을 향해 엷게 미소 지었다.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민성은 조용히 뒷좌석에 올라탔다.

이호성이 운전석에 오르고 차가 출발했다.

* * *

한적한 도로를 달리는 동안, 민성과 이호성이 타고 있는 차량 안은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

차량 안으로 밀려드는 풍절음만이 들렸다.

그사이 민성은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고 있는 풍경을 보았다.

그렇게 고요한 침묵이 흐르기를 잠시.

이호성이 입을 열었다.

“헌터님.”

“왜?”

“헌터님 말씀대로 제가 주제 파악을 못 했던 것 같습니다. 능력도 없는 주제에, 제멋대로 클랜원들을 끌고 세상을 구해 보겠답시고 나섰으니.”

“…….”

“늘 헌터님에게 배우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고, 늘 동경하고 있습니다.”

“시끄럽다.”

“하하, 혹시 모르실까 봐요. 헌터님이 제게 얼마나 큰 가르침을 주고 있고, 올바른 길을 알려 주고 있는 것인지.”

이호성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헌터님을 보면요. 항상 제 자신이 정말 추하고도 추한 삶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건 단순히 제가 뒷골목 파락호 생활을 하다가 헌터님처럼 강한 분을 만나게 돼서 그런 게 아니라…….”

이호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겁하지 않게, 정면으로 부딪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올바른 것인지 알게 된 거랄까? 제가 헌터님처럼 강했어도, 헌터님처럼 자유롭게 살 수 있었을까요?”

이호성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헌터님이 말씀하신대로, 앞으로 책임질 만한 힘을 갖기 전까진 나서지 않겠습니다. 헌터님의 명령에 최우선으로 목숨을 걸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반드시 성장해서 헌터님에게 은혜를…….”

민성이 길게 숨을 내쉬며 바가지를 꺼내 던졌다.

바가지가 본능적으로 명령을 캐치해 내고 이호성의 허벅지를 깨물었다.

“아아아아아아악!”

바가지가 할 일을 마치고 다시 민성의 주머니로 돌아와 주머니 안으로 들어갔다.

민성은 조용히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이호성은 허벅지를 문지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X새끼…….

* * *

미궁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김지유가 민성에게 다가왔다.

“수고하셨어요. 보고 들었습니다. 도심에 퍼진 대부분의 몬스터를 정리하셨다고.”

김지유는 진심으로 감탄한 눈으로 민성을 보며 말했다.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미국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던 일을, 민성 혼자서 해냈다.

그것도 말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내에.

민성의 행동이 미국과의 전면적인 갈등을 불러왔다고는 해도, 대한민국은 민성의 존재를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강민성은 월드 헌터인 미국의 헌터 팀장마저 병원으로 보내 버렸다.

무력의 수준이 가늠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남자.

그런 남자이기에 그가 미국을 배제하고 미궁을 처리하겠다고 했을 때, 그의 말을 신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국제적인 외교 문제는 다소 골치가 아파지겠지만, 민성이 있었기에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자주성을 지킬 수 있었다.

그것이 좋은 선택일지 나쁜 선택일지는 알 수 없는 도박수라고는 해도, 강민성의 존재 자체는 인정받아야만 하며 존중해야 한다.

그는 타국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만큼의 강력한 헌터니까.

“이제 5분 후면 다시 몬스터가 나오기 시작할 거예요. 그럼 몬스터부터 처리하고 그다음에 미궁 클리어를…….”

민성이 미간을 구기며 미궁을 응시했다.

“그런 잔반 처리까지 나한테 맡길 거면 헌터 기관은 왜 있는 거지? 무능함에도 정도라는 게 있다. 최소한의 책임감 정도는 가져야 하는 거 아닌가?”

민성의 말에 김지유는 부끄러워졌다.

그의 말대로 총군주인 자신은 어쩌면 모든 일을 강민성에게 떠넘기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김지유는 쓴웃음을 지으며 민성을 보았다.

“고마워요. 힘을 보태 줘서.”

“난 그저 살 만한 세상에서 밥 먹고 싶은 것뿐이야.”

민성이 그 말을 끝으로 미궁을 향해 걸어갔다.

그 뒤를 이호성이 절뚝거리며 따랐다.

김지유는 미궁을 향해 걸어가는 민성의 뒷모습을 먼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번에 나타나게 된 새로운 미궁의 사건은 한낱 해프닝이 아닌, 거대한 운명과 역사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김지유는 생각했다.

마인, 그리고 마인의 탑.

그 재앙의 문이 열리기 전에 시작된 작은 파문에 불과한 일.

그와 함께 헤쳐 나갈 것이다.

세상을 위협하는 악으로부터.

김지유는 조사단장을 불렀다.

“미궁 클리어가 시작되면 던전 밖으로의 몬스터 유출이 줄어들 거야. 단 한 마리도 놓쳐선 안 된다. 모두 긴장을 놓지 말라고 전해.”

“충!”

조사단장이 전달 내용을 전하러 가자, 김지유는 템 창에서 레이피어를 꺼냈다.

미궁을 보는 김지유의 눈이 파랗게 일렁였다.

몬스터 유출까지 남은 시간 1분.

민성과 이호성이 미궁 게이트를 통해 진입한 이후, 김지유의 레이피어에서 푸른 오러가 출렁였다.

파악된 대로, 예정 시간이 되자 미궁에서 몬스터가 나오기 시작했다.

푸른 오러를 머금은 레이피어가 마치 귀신처럼 잔상을 남기며 몬스터를 향해 날개를 단 듯 날아갔다.

* * *

쿠궁!

어둠과 함께 귓가를 묵직하게 울리는 이펙트 음향이 들리고, 이내 어둠 속에서 불꽃과도 같은 글씨가 새겨졌다.

[미궁 던전에 입장하였습니다.]

[던전을 클리어하기 전까지 미궁은 탈출할 수 없습니다.]

[미궁 난이도]

[고행]

[난이도가 최고 난이도를 넘어섰습니다.]

[한계 돌파]

[난이도가 상승한 만큼 특별한 보상 획득이 가능해집니다.]

[생존을 기원합니다.]

이호성은 대기실이 나타나기도 전에 전신에 식은땀이 가득해지는 걸 느꼈다.

……난이도가 고행이라고?

이호성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흠뻑 적신 땀을 훔쳐 내며 침을 꿀떡 삼켰다.

고행이라니, 듣도 보도 못한 난이도다.

신규 미궁이라서 불가능 난이도를 점프하고 건너 뛴 건가?

심장이 쿵쾅거리는 걸 넘어, 마치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썰렁했다.

어둠이 개이고 빛이 나타나면서 예의 대기실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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