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79화>
* * *
“마, 맙소사. 몬스터의 수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대체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본부실의 부하가 대형 모니터를 보며 충격을 먹은 듯이 말했다.
지도에 붉은색으로 표시된 것은 모두 몬스터였다.
도시를 한번 휩쓴 몬스터들은 밤이 깊어지자 산속이나 인적이 드문 곳으로 대피했다.
그것은 현대 문물의 기술력으로 파악이 가능했으나, 헌터의 수가 부족한 데다 몬스터의 등급이 높아 고전 중이었다.
한데 지도의 대부분을 채운 붉은색이, 지금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고 있었다.
“미국 헌터들이 강하긴 정말 강한 모양입니다!”
부하의 말에 중앙 헌터 기관의 총군주 김지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국 헌터들이 아니야.’
시간상으로 볼 때, 미국 헌터들은 이제 막 사냥을 시작하기 위해 이동 중일 테니까.
‘강민성이다!’
그녀는 강민성이 몬스터들을 잡고 있는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렇지 않다면, 이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몬스터가 줄어들고 있는 건 납득이 안 된다.
김지유는 모니터를 보며 미소를 짓다가 다시 표정을 굳히며 부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미국 특수 팀은 언제 도착해?”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확인하겠습니다.”
미국의 특수 팀은 도시에 퍼져 있는 몬스터가 아니라 미궁 탐사를 위한 조사단이었다.
그들이 도착하는 대로 김지유는 그들과 함께 미궁 클리어에 착수할 예정이었다.
김지유가 팔짱을 끼며 대답을 기다렸다.
“30분. 30분이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부하의 말에 김지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슬슬 자신도 전례가 없던 새로운 미궁으로 출발해야 할 때였다.
“특수 상황 벌어지면 바로 콜해.”
“충!”
몸을 돌리는 김지유에게 부하가 벌떡 일어서서 경례했다.
* * *
전투가 시작됐다.
산에서 칼과 창이 움직이며 몬스터를 베어 내고, 몬스터는 헌터들을 공격했다.
피가 사방으로 난무했다.
다만 몬스터에 의해 당하는 건 오직 다이아몬드 클랜원들뿐이었다.
이호성은 어금니를 빠드득 갈았다.
미국 헌터들은 다이아몬드 클랜원들이 몬스터에게 당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다.
위기에 처한 클랜원들을 구하러 다닌 건 오직 이호성뿐이었다.
미국 헌터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에만 집중했다.
바로 몬스터를 죽이는 일.
그 이외에, 다이아몬드 클랜원들이 다치거나 죽는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아아아악!”
몬스터가 다이아몬드 클랜원의 옆구리를 입으로 으적으적 씹어 먹었다.
이호성은 미친 듯이 뛰어가 데스나이트의 검으로 몬스터의 목을 쳐 냈다.
그가 죽인 몬스터를 마지막으로 1차 상황은 거의 종결되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미국 헌터들은 다치거나 죽은 다이아몬드 클랜원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자신의 장비만 점검하고 있었다.
“X새끼들……!”
검을 쥔 손이 벌벌 떨렸다.
몬스터가 아니라 미국 헌터 놈들에 대한 분노로 전신이 떨렸다.
“……참으셔야 합니다.”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조민욱이 이호성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이호성은 다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몬스터에게 당한 클랜원 한 명이 이내 더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
급속도로 싸늘하게 식어 가는 자신의 클랜원을 보며 이호성의 표정이 사라졌다.
그는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조민욱을 신경질적으로 뿌리쳤다.
“따라와서 통역해.”
이호성이 무표정한 얼굴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팀장 칼리스에게 빠르게 걸어갔다.
조민욱은 그런 이호성을 보며 손으로 눈가를 덮어 한숨 쉬었다가, 이내 이호성의 등 뒤에 섰다.
칼리스는 장비를 점검하다가, 자신에게 다가온 이호성을 이상하다는 듯이 보았다.
“진짜 너무하는 거 아니냐, 너희들?”
이호성의 말에 조민욱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빨리 통역해.”
이호성이 조민욱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의 기세에 조민욱은 어쩔 수 없이 칼리스에게 통역을 했다.
그러자 칼리스가 황당하다는 듯 코웃음을 흘렸다.
“우리가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지?”
이호성은 당장 데스나이트의 검을 칼리스의 목에 박아 넣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람이 다치고 죽어 가고 있잖아. 손쉽게 몬스터들을 잡을 수 있는 실력이 있는데, 왜 방관만 하는 거냐고! 여기가 이 정도면 다른 팀의 피해는 안 봐도 비디오겠네. 너희 미국 헌터들만 아니면 죽든 말든 상관없다 이거야?”
그에 칼리스는 이호성을 딱하다는 듯이 보았다.
“왜 우리가 너희 같은 아랫것들까지 챙겨야 하지? 우리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패망 위기를 구원해 주기 위해 왔을 뿐이다. 너 같은 떨거지들 하나하나 돌봐 주러 온 게 아니란 뜻이야.”
칼리스가 비웃음을 던지며 말을 이었다.
“함부로 입 놀릴 생각하지 말고 고마움이라는 걸 가져 봐라. 우리가 아니었다면 이미 반절 이상 저 몬스터들의 밥이 되었을 주제에.”
“너희들은 힘이 있잖아. 같은 헌터끼리 좀 도와주면 덧나냐!?”
“우린 세계 최고의 헌터들이고, 그런 우리와 너희 같은 잡종들을 비교하면 안 되지.”
“…….”
“주제도 모른 채 날뛰지 말고, 조용히 우리 미국 헌터의 존재에 배려와 감사를 느껴라. 한국의 피라미.”
이호성은 너무 황당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도와줄 수 있잖아. 충분히…….”
“너희들은 고기 방패일 뿐이야. 그리고 자꾸 헛소리로 시간을 잡아먹는군. 참아 주는 데도 한계가 있다. 군말 없이 통제에 따라라.”
몸을 돌리려는 칼리스에게 이호성이 눈을 부릅떴다.
조민욱은 그가 사고를 칠 것 같은 불안감에 달려들어 붙잡았다.
“야, 이 개새끼야! 사람이 죽었어. 네놈들 눈앞에서 사람이 죽었다고! 사람이 죽어 나자빠지는데 무슨 배려와 감사야, 이 개만도 못한 새끼야!”
“크, 클랜장님.”
조민욱이 창백한 얼굴로 이호성의 허리를 꽉 잡았다.
“이거 놔. 야, 이 시X놈들아. 이런 식으로 나올 거면 애초에 너희들 통제 받지도 않았어. 뭐? 고기 방패? 이 몬스터 자식 같은 양키 놈들이…… 야, 통역해, 통역하라고!”
조민욱은 침을 꿀꺽 삼키며 그의 명령을 거부했다.
통역을 했다간 끝장이다.
그런데 그때, 미국 헌터 중 하나가 칼리스에게 말을 전했다.
한국말을 알아듣는 놈인 듯했고, 그의 말에 의해 칼리스의 눈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하하, 이런 쓰레기 같은 게 뭐라고? 어처구니가 없군. 통제를 따르지 않는 이는 죽여도 좋다는 상부의 명을 받았다. 다이아몬드 클랜의 클랜장 이호성. 지금 당장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박아 사죄하라. 그럼 목숨은 살려 주지.”
칼리스가 당장 죽일 듯이 냉엄한 시선으로 이호성을 보며 말했다.
하나 이호성의 이성은 이미 날아가 있었다.
“그래, 죽여 봐! 한번 죽여 봐, 이 개…….”
조민욱이 이호성을 확 밀어젖힌 뒤, 칼리스 앞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이호성이 충격을 먹은 눈으로 조민욱을 보자, 조민욱이 얼굴을 들어 칼리스를 올려다보았다.
“죄송합니다! 동료가 다치고 죽어서 잠시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없을 뿐입니다. 미국 헌터 기관의 도움은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고, 당신들의 배려에…….”
“야, 조민욱!”
조민욱이 상기된 얼굴로 몸을 틀어 이호성을 보았다.
“지금 사과하지 않으면 우리 다 죽습니다! 클랜장이면 클랜장답게 굴어요!”
조민욱의 일침에 이호성은 입을 쩍 벌렸다.
가슴에 차가운 칼 하나가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그건 조민욱에 대한 배신감이 아니라, 순수한 상처로 벌어지는 아픔이었다.
조민욱이 다시 머리를 박고 사죄했다.
칼리스는 큭 하고 웃으며 이호성을 응시했다.
“나는 네 사과를 받고 싶은 게 아니야. 이호성, 네 사과를 받겠다. 와서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머리를 조아려라. 그럼 방금 전의 무례는 용서해 주지. 마지막 배려다.”
이호성의 멍한 눈이 부상을 당한 클랜원, 그리고 이미 죽어 버린 클랜원, 마지막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남은 클랜원들을 향했다.
그들은 모두, 자존심이 상해도 목숨은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 * *
이호성의 예상은 적중했다.
다른 수색 팀의 경우도 상황은 같았다.
몬스터 사냥 중에 다치거나 죽는 건 한국의 헌터들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헌터들은 모두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방관 중이었다.
미국 헌터들은 힐러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상자들을 치유해 주지 않고, 곧장 다시 이동을 준비했다.
심지어 한국 헌터들이 부상당한 헌터들을 병원으로 데려가려고 하자, 그 인원을 단 한 명으로 제한시켰다.
나머지는 다시 사냥을 계속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당연히 한국 헌터들은 반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반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미국 헌터가 없으면 사냥이 더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중앙 기관의 명령 또한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이다.
최악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 * *
민성은 산에서 챙긴 자연산 표고버섯을 씹어 먹으며 도로를 걸었다.
본래 활동하던 곳에서 더 이상 몬스터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다른 지점 포인트로 빠르게 이동해 온 것이다.
이제부터는 헤켈을 잡았을 때처럼 존재감을 죽이고 은신한 상태로 움직여야 할 듯싶었다.
동료 몬스터의 수가 줄어듦에 따라 놈들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몬스터들이 도망 다니고 있으니 조금 귀찮아지긴 하겠지만, 어차피 자신 혼자만 몬스터를 잡는 것도 아니고, 다른 헌터들도 애쓰고 있으니 아마 오래 걸리지 않아 정리가 될 것이다.
그런데, 어느새 표고버섯이 바닥을 보였다.
조금 더 챙겨 둘 걸 그랬나?
민성은 아쉬움을 접고 손을 탈탈 털었다.
빨리 몬스터들을 모두 없앤 다음,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싶었다.
고생한 만큼 밥맛은 훨씬 달짝지근할 것이 틀림없다.
시민들이 다시 안정을 찾으면 무엇을 먹는 게 좋을까? 하고 상상하던 그때, 바가지가 주머니에서 둥그런 해골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주인님. 저쪽 좀 보세요.”
바가지가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민성은 바가지가 가리키는 방향 쪽으로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그곳엔 부상당한 헌터들이 부축을 받아 산에서 줄줄이 내려오고 있었다.
그들 모두 이호성이 클랜장으로 있는 다이아몬드 클랜 소속이었다.
민성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들이 내려왔던 산을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