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78화>
빨리 몬스터를 처치하고 가게 회전을 정상화시키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지금부터 나는 혼자 움직인다.”
“그럼 저는요?”
이호성이 불안한 듯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반문했다.
“알아서 움직여. 되도록 빨리 몬스터를 처리하고, 안정화시키도록 해. 그리고 중간중간 나한테 알릴 만한 게 있으면 곧장 전화로 보고하고.”
“알겠습니다.”
“먼저 간다.”
민성이 몇 걸음 옮긴 뒤.
타아아아아아아앙!
총기 발포 소리와도 같은 소음을 내며 자리를 떠났다.
이호성은 민성이 지면을 박찬 흔적을 내려다보았다.
반경 2미터 정도의 아스팔트 바닥이 엉망으로 깨져 있었다.
이호성은 이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다이아몬드 클랜의 클랜장
Lv500 이호성
다이아몬드 클랜에서 클랜장 이호성의 오른팔을 맡고 있는 조민욱은 이호성을 보고서 멍한 얼굴이 되었다.
“클랜장님. ……레벨이?”
두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런 그의 반응에 이호성은 멋쩍게 웃었다.
“그렇게 됐어.”
“대체 어떻게 이렇게 빨리 폭업을 할 수 있게 되신 겁니까?”
“극비다.”
이호성이 더 이상 거론하기 싫다는 듯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조민욱은 궁금함이 많은 얼굴이었지만 차마 더 이상 묻지 못했다.
“애들은 오고 있어?”
“예. 곧 모두 이쪽으로 도착할 겁니다.”
이호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까운 벤치로 가서 앉은 뒤, 긴 한숨을 내뱉었다.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자 조민욱이 뛰어와서 불을 붙여 주었다.
이호성은 담배 연기를 뿜으며 허공을 보았다.
500레벨을 이루었다.
미궁에서 강민성이 보스 몬스터 ‘헤켈’을 잡음으로써 성장할 수 있었던 레벨이다.
이제 ‘데스나이트의 검’이라는 엄청난 무기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전에 폭업을 경험했던 때와는 사뭇 그 기분이 달랐다.
용감한 척 허세를 떨며 헤켈을 자극했을 때의 순간은 마치 트라우마처럼 이호성의 뇌리에 남아 있었다.
강해진다는 건 이런 순간을 넘어야만 하는 건가?
헤켈을 마주했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호성은 몸이 가늘게 떨렸다.
레벨이 지금처럼 아무리 높아졌다고 한들, ‘헤켈’ 같은 몬스터에게 자신은 그저 입김 한 번에 날아갈 코스모스 수준에 불과했다.
앞으로 강민성과 함께라면 더 공포스러운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마인이라든가, 마인의 탑에 의해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강민성이 주시할 정도라면 분명 자신의 오줌을 지리게 만들 정도로 대단한 녀석들일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리스크가 큰 만큼, 리턴 역시 크다.
어느새 500레벨.
이제 중앙 기관조차 진짜 헌터로 인정할 만큼 강한 힘을 지니게 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공포와 성장.
그 양립되는 공간 속에서, 이호성은 스스로가 앞으로 만나게 될 난관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섰다.
“후우…….”
복잡한 심정으로 담배 연기를 길게 뿜었을 때, 클랜원들이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클랜원들은 이호성을 보자마자 조민욱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헉! 5, 500레벨!?”
“와…… 대박이다, 진짜.”
감탄하는 그들의 반응은 가볍게 무시하고, 클랜원들이 다 모이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잠시 후, 다이아몬드 클랜의 클랜원들이 모두 집결했다.
그에 이호성은 새삼 놀람을 금치 못했다.
뉴스를 통해 자신의 인지도가 올라감에 따라 다이아몬드 클랜 역시 급성장을 이루었다.
대부분의 저레벨 헌터들이 다이아몬드 클랜으로 흡수된 것이다.
때문에 레벨은 낮아도 이렇게 모여 있으니 꽤 든든한 군대처럼 보였다.
이호성은 자신의 클랜원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현재의 국가 위기 상황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알 거라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뭘 해야 할지 역시 알고들 있을 거야. 우린 시민들에게 돈을 받았다. 상납금. 그건 시민을 지키기 위해 받은 돈이야.”
이호성이 무거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돈을 받았으면 돈값을 해야지. 목숨을 걸어라. 지금이 바로 우리가 시민들에게 우리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다.”
템 창에서 ‘데스나이트의 검’을 꺼내 들었다.
이호성은 손에 묵직하게 잡히는 검을 내려다보았다.
묵빛의 검에서 검은 기운이 넘실거렸다.
처음 느껴 보는 감각이다.
마치 각성 단계를 경험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전율을 전해 준다.
비단 이호성만이 감탄한 게 아니다.
클랜원들이 오묘한 색감의 기운을 풍겨 내는 데스나이트의 검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이호성은 숨을 고르며 검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잘 들어. 어설프게 눈치만 살피면서 혹여나 전투에 이탈하려는 자가 내 눈에 보일 시-”
그가 차가운 눈으로 클랜원들을 훑었다.
“-그 자리에서 베어 버릴 것이다.”
장내에 긴장감이 내려앉았다.
“각오가 섰으면 따라와.”
도시를 점령하고 있는 몬스터들을 잡기 위해, 이호성이 선두에 서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 이호성을 따라 다이아몬드 클랜이 물결처럼 움직였다.
* * *
꼬르륵……!
달리고 있는 와중에 배가 고프다는 신호가 연거푸 쉬지 않고 왔다.
민성은 스트레스가 솟구쳐 올랐다.
의외로 몬스터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지능이 뛰어난 몬스터들은 한차례 공습으로 도시를 휩쓸고 종적을 감추었다.
밤을 이용해 산에서 몸을 숨기고 있거나, 바닷속으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몬스터의 습격에 의한 여파가 컸던 것인지, 거리는 적막했으며 가게의 불은 모두 꺼져 있었다.
“오늘 안에 다 쓸어 담아 주마.”
민성은 예민함이 잔뜩 물든 얼굴로 산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 * *
몬스터를 잡기 위해 본격적으로 수색 작업을 펼치기 시작했을 때, 비상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이는 다이아몬드 클랜의 헌터들에게도 모두 전달되었다.
사방에서 휴대폰 메시지 알림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이호성 역시 다른 클랜원들처럼 메시지를 확인했다.
메시지 내용은 미국 기관에서 나온 헌터들을 만나게 된다면 통제에 따르라는 중앙 헌터 기관의 연락이었다.
“도와주는 건 고마운데 어째 좀 씁쓸하네.”
이호성이 픽 웃으며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때, 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조금은 어수선했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도심으로 뛰어나온 건 고등급의 몬스터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지 않다간, 눈 깜짝할 사이에 저승으로 직행하게 되리라.
그 사실을 모두 잘 알고 있는 만큼, 헌터들은 각자 자신의 무기를 꽉 쥐고 전투를 준비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다이아몬드 클랜의 앞에 나타난 것은 몬스터가 아니었다.
형형색색의 머리칼과 눈 색깔을 가진 외국인들.
배지를 보자마자 이호성을 비롯한 다이아몬드 클랜의 헌터들은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미국 중앙 헌터 기관.
국내 중앙 헌터 기관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클래스의 헌터들이었다.
그들이 현재 국내의 위기 상황을 타계하는 데 도움을 주기로 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도착할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놀라 있는 이호성과 클랜원들을 보며, 현재 미국의 제1지원 팀 팀장 ‘칼리스’가 비웃음에 가까운 웃음을 흘렸다.
“비린내 나는 피라미들이로군.”
칼리스의 말에 이호성은 코를 훌쩍이며 조민욱을 불렀다.
조민욱은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대학교인 한국 대학교를 졸업했다.
그것도 영문학과.
통역으로 쓰기엔 제격이었다.
“뭐라고 말한 거야?”
조민욱이 씁쓸한 얼굴로 이호성의 시선을 피했다.
“비아냥거리네요.”
“뭐라고 했는데?”
조민욱이 허허 웃었다.
“그냥 뭐, 비린내 나는 피라미들이래요.”
이호성은 팀장 칼리스를 보며 픽 웃었다.
“X발, 멍청하게 생긴 게 갑질 겁나게 해 대네.”
이호성의 태도에 조민욱이 깜짝 놀랐다.
“클랜장님, 말씀을 조심하셔야…….”
“쟤네들 어차피 한국말 모르잖아?”
이호성이 큭큭 웃으며 말했다.
그때, 칼리스가 이호성에게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의 표정은 마치 분노한 짐승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이호성은 놀라서 하얗게 변한 얼굴로 칼리스를 보았다.
칼리스는 레벨이 없었다.
한국 기준으로 기타 능력자에 달하는 남자.
한데 그런 엄청난 힘을 자랑하는 헌터의 심기를 거스르고 말았다.
칼리스가 이호성의 가슴 부근을 주먹으로 살짝 내리쳤다.
분명 살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호성은 마치 차에 치인 것처럼 날아갔다.
클랜원들은 놀란 얼굴로 그를 잡아 부축했다.
“이리 와.”
칼리스가 마치 강아지를 부르듯 손가락을 밑에서 까딱였다.
“쿨럭!”
이호성이 입 밖으로 피를 튀기며, 클랜원들의 부축을 받고 일어났다.
어지러워서 머리가 핑핑 돌고 눈앞이 흐려졌다.
“빨리 뛰어와.”
칼리스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이호성은 피 섞인 침을 바닥에 툭 뱉어 내고, 칼리스에게 걸어갔다.
한국 욕을 알아들을 줄이야, 젠장.
그런데 이상하게 별로 무섭지가 않다.
미궁 속에서 헤켈이라는 말도 안 되는 몬스터를 만나 봐서 그런 것인지, 미국 기관의 헌터가 한국 헌터를 쉽게 죽이지 않을 거라는 확신 때문인진 몰라도 두려움은 별로 없었다.
아니면 이게 바로 ‘강민성 효과’인가?
그런 생각이 들자 이호성의 피 묻은 이빨 사이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에 칼리스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지켜보고 있던 클랜원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고문이었다.
이호성 때문에 덩달아 미국 헌터들에게 당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심각할 정도로 살벌하게 흐르는 공기에 몸을 덜덜 떠는 헌터들도 있었다.
그때, 조민욱이 뛰어와 이호성의 어깨를 잡아 살짝 뒤로 빼며 앞으로 나섰다.
“오해하신 겁니다. 당신에게 욕을 한 게 아니라, 몬스터를 빨리 잡고 싶은 마음에 한 말입니다.”
조민욱이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
오해라는 말에 칼리스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칼리스는 차가운 눈빛으로 이호성을 보았다.
“그래도 여전히 마음에 안 들어. 조심시켜라.”
조민욱은 눈치를 살피며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곤 이호성을 뒤로 조심히 끌었다.
“지금부터 이 구역을 수색할 생각이다. 우리 헌터 하나가 너희 클랜원들을 20명씩 데리고 갈 거야. 통제에 따르도록.”
피 묻은 입가를 닦으며 이호성은 짧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 너와 너. 내가 데리고 간다.”
칼리스가 비릿하게 웃으며 이호성과 조민욱을 가리켰다.
조민욱은 이호성의 눈치를 살폈고, 이호성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미국 헌터들이 다이아몬드 클랜의 헌터들을 데리고 이동을 시작했다.
미국 헌터들은 기세등등하게 앞장섰고, 다이아몬드 클랜의 헌터들은 다소 기죽은 채, 그런 그들을 뒤따랐다.
* * *
퍼어어어억!
민성의 주먹에 의해 변형 홉 고블린의 머리가 터졌다.
오리하르콘 단검 아래로 진득한 피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시야 확보가 어려울 정도로 컴컴한 산속.
그곳에 비릿한 피 냄새가 진동했다.
경사가 진 산에 비스듬히 서 있는 민성의 주변으로는 수많은 몬스터의 사체가 널려 있었다.
민성은 이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번에 던전 밖으로 튀어나온 몬스터들은 잡아도 아이템을 주지 않았다.
남는 건 사체뿐.
죽여도 나오는 건 없고, 게다가 처리하는 몬스터가 늘어날수록 주변 반경으로 몬스터가 점점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몬스터들이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하고, 미궁의 보스 몬스터 ‘헤켈’처럼 피하고 있는 것이다.
걸음을 옮겨 보자 역시나 도망친 흔적들이 곳곳에 나타나 있었다.
민성은 달빛에 반사된 눈을 번쩍이며, 속도를 끌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