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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76화 (76/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76화>

* * *

이호성은 민성과 함께 폐허의 땅을 걸으며 기침했다.

방패를 들고 디펜스에만 집중하면서 체력 회복 물약까지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충격의 파장이 워낙 큰 탓에 몸에 대미지가 남아 있었다.

걸을 때마다 전신이 근육통을 호소했다.

쩔 받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네.

몸이 성할 날이 없다, 아주.

하지만 고생하는 것에 비해 얻는 결과물은 압도적이었다.

꿈에서조차 이룰 수 없을 것만 같던 영역에 다다르고 있다.

강민성이라는 남자에 의해 경험치를 미친 듯이 쌓아 간 덕이다.

이호성은 앞서 걸어가는 민성의 뒷모습을 보며 소리 없이 실소를 흘렸다.

강민성이 서둘러 보스를 처치하고 던전 밖에서 미쳐 날뛰고 있을 몬스터들을 처리하려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맛집을 보호하기 위해서.

인류가 아닌 맛집 보호를 위해서라니…….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유야 어떻든 강민성은 인류의 구원자였다.

맛집을 지키기 위해 테러범 에이스를 처리하고, 월드급 헌터인 젠 브레드마저 죽인 그다.

과연 맛집만을 찾아다닌다고 해서 강민성을 영웅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가장 원초적인 본능과 규칙을 지켜 나가는 강민성이 있기에,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역사와 운명을 이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호성은 스탯 창을 열었다.

현재 자신은 불지옥 난이도의 미궁 클리어를 막바지에 두게 되면서 420레벨을 이루었다.

이로써 500레벨을 향하게 된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200레벨을 이루었을 때만 해도 세상을 전부 다 가진 것 같았는데, 어느새 500레벨을 바라보고 있으니 200레벨을 이루었을 때의 기억은 희미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이호성은 생각했다.

중요한 건 레벨이 아니라고.

강민성과 함께 걸어가는 길, 그 자체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인생을 던지는 것.

그 찬란하고 화려한 역사를 함께하는 데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

강해질 것이다.

강해지고 또 강해져서, 과거의 자신을 잊고 한계를 넘어서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강민성과 함께라면.

감히 꿈조차 꾸지 못했던 절대의 영역에…….

퍽!

민성이 이호성의 항문을 걷어찼다.

“억!”

이호성이 엉덩이를 붙잡으며 부들부들 떨었다.

“정신 안 차려?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뭘 넋 놓고 걷고 있어?”

“죄, 죄송합니다.”

이호성은 엉덩이를 문지르며 얼굴을 찌푸렸다.

X새끼가. 꼭 때려도.

민성의 살벌한 눈빛에 이호성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치명적인 통증을 불러일으키는 엉덩이를 빠르게 문질렀다.

* * *

휠체어에 앉은 남자는 모니터에 나타나 있는 수많은 화면들을 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때마침 문이 열리고 로브의 사내가 모니터실 안으로 들어왔다.

“어떻게 됐어?”

“젠 브레드가 죽었다.”

로브의 사내의 물음에, 휠체어 남자가 어두운 얼굴로 답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수준이 제법이네.”

“그 정도가 아니야.”

로브의 사내가 의아한 시선으로 휠체어 남자를 보자, 그가 침음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단 한 수. 젠 브레드가 단 한 수에 당했다.”

표정 변화가 거의 없던 로브의 사내는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디지털 워치는 미궁에서 구한 물질로 만든 특수 아이템으로, 이를 통해 젠 브레드와 강민성의 대화 내용을 엿들을 수 있었다.

“게다가 강민성이라는 헌터. 마인에 대해 알고 있었어.”

로브의 사내는 동요가 확연히 나타난 얼굴로 모니터를 보았다.

“놈이 어떻게……?”

“거기까진 확인된 바가 없어. 문제는 강민성이라는 헌터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강하다는 것이다.”

국내 헌터들이 강민성에게 당했다는 것은 별달리 흥미를 끌 만한 것이 못 됐다.

하지만 AH 소속 헌터였던 젠 브레드가 단 한 수에 죽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더군다나 마인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니?

휠체어 남자가 모니터를 보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어차피 우린 시키는 대로 하는 것에 불과해. 진행에 차질은 없을 거다.”

그 말에 로브의 사내도 동의한다는 듯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젠 브레드를 한국에 보낸 건 강민성 때문일까?”

로브의 사내가 물었다.

“거슬릴 수도 있겠지.”

휠체어 남자는 복잡한 심정으로 한쪽 모니터에 나타나 있는 강민성의 자료를 보며 답했다. 그러다 시선을 돌려 로브의 사내를 보았다.

“우리는 강민성과 부딪칠 필요가 없어. 그의 힘에 자극받지 마라. 네가 뜻을 이루기 위해 나를 데리고 지금까지 온 거야.”

휠체어 남자가 감정이 꾹꾹 담긴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잊을 리가 없잖아.”

로브의 사내는 먼눈으로 허공을 보았다.

어두운 모니터실 안.

적막과 함께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았다.

* * *

민성은 미간을 구긴 채로 앞머리를 꽉 쓸어 올렸다.

젠 브레드가 처음 나타났을 때만 해도 별달리 위기감을 느끼지 못했건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작금의 사태는 스트레스를 유발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된 거야, 이게?”

민성이 구겨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왜 보스 몹이 안 보이는 거냐고.”

민성은 난감한 심정으로 혀를 찼다.

아무리 던전 안을 돌아다녀도 보스 몹은커녕 일반 몬스터조차 보이지 않았다.

“맵 자체가 굉장히 넓은 모양입니다. 조금 더 찾아보죠.”

이호성이 안타까이 말했다.

젠 브레드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쯤 서울은 쑥대밭으로 변해 가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에이스로 인해 많은 헌터들이 다치고 죽었다.

그것도 일반 헌터가 아닌 중앙 기관의 헌터들이.

그것은 곧 국력의 쇠락이고, 그런 환경에서 벌어진 몬스터의 습격은 꽤 치명적일 것이다.

얼른 보스 몹을 잡고 서울을 덮고 있는 몬스터들을 지워 버릴 생각이었는데, 이렇듯 보스 몬스터가 코빼기도 보이지 않으니 답답할 수밖에.

마치 길을 잃은 채 사막 속을 헤매는 것 같았다.

30분 정도를 더 할애해 주변을 찾아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스 몬스터의 방’이라든가 ‘새로운 입구’는 작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걷고 또 걸어도 폐허의 땅만이 계속해서 이어질 뿐이었다.

민성이 주머니 안에 있는 바가지를 내보냈다.

바가지는 바닥으로 착지해 이호성 옆에 서서 민성을 올려다보았다.

“안 되겠다. 둘이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몇 바퀴 돌아보고 올 테니까.”

“……예?”

순간 이호성의 얼굴이 샛노래졌고, 바가지도 화들짝 놀라서 몸을 떨었다.

“저, 저랑 바가지랑 여기서 기다리라고요?”

이호성이 물었다.

“이렇게 느리게 움직였다간 한세월이야. 이러다 맛집 다 터지겠어.”

“저희 둘만 있으면 위험할 텐데요……?”

“몬스터 안 나오고 있잖아?”

“……그렇긴 하지만…….”

이호성이 불안함이 가득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릴 때였다.

타아아아앙!

민성이 지면을 박차고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민성이 떠나고 난 자리.

휘이이이잉-

그곳에 차갑고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이호성은 괜히 코를 긁적이며 바가지를 내려다보았다.

바가지도 주인이 곁을 떠나자 적응이 되지 않는지 앙상한 뼈를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이호성은 주변을 훑었으나 폐허의 땅이 워낙 컴컴해서 잘 보이지가 않았다.

그 어둠이 더 두려움을 증폭시켰다.

어둠 속에서 무지막지한 몬스터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망상이 자꾸만 눈앞에 그려졌다.

이호성은 코를 훌쩍이며 바가지를 들어 품에 꼭 안았다.

“조금만 기다려 보자. 헌터님 곧 오실 거야.”

희망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지만, 바가지는 여전히 민성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며 오들오들 떨 뿐이었다.

* * *

전신은 단단한 붉은 비늘로 덮여 있고, 이마에 달린 하나의 뿔에서는 검은 연기가 풀풀 날렸다.

등에 달린 붉은 날개도 그렇고, 누가 보더라도 악마의 형상을 보는 듯한 생김새를 가진 미궁의 보스 몬스터, ‘헤켈’.

그는 입 밖으로 연기를 푸슉 푸슉 뿜어내며 괴로운 신음을 흘렸다.

“저 자식이 왜 여기 있는 거지? 대체 왜!?”

혼란에 잠긴 헤켈의 시선은 갈 길을 잃어 초점을 잡지 못하고 방황했다.

조금 전, 미궁 던전에 한 인간이 들어왔다.

처음엔 그저 별 볼 일 없는 인간이겠거니 싶었지만, 엄청난 속도로 몬스터를 잡아 대는 놈의 기운에 헤켈은 조심스레 접근해 보았다.

그리고 은밀히 접근한 끝에 놈의 용모를 보고야 말았다.

헤켈은 그에 대해 알고 있었다.

마계 내에서 ‘검은 학살자’라 불리던 인간.

바로 그놈이다.

오래된 기억이지만 그의 기억 속에 분명히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마계에서 자신이 모시는 마인은 물론, 수많은 마인들을 학살했던 절대 포식자였다.

결코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인간.

그게 바로 저놈, ‘검은 학살자’인 것이다.

그런데 분명 마계에서 죽은 걸로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여기 미궁 속에 있을 수 있는 거지?

혼란스러움에 정신이 하나도 없던 헤켈은 인간의 기척이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 같자, 서둘러 놈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도망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 미궁은 넓었고, 미궁의 지리를 훤히 아는 헤켈로서는 강민성에게 발각당하지 않고 도망칠 수 있었다.

이렇게 계속 도망 다니다 보면, 제아무리 검은 학살자라고 해도 영양분 섭취 부족으로 심각한 상태에 빠져들 것이 틀림없었다.

그럼 그때, 저놈을 처치하는 것이다.

계획을 세운 헤켈은 검은 학살자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날갯짓에 힘을 더했다.

거대한 헤켈의 몸이 덩치와 걸맞지 않게, 민첩하게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 * *

민성이 미궁 던전 안에서 보스 몬스터 ‘헤켈’을 찾고 있는 사이.

서울에는 셀 수도 없을 만큼 엄청난 수의 몬스터들이 마치 둑을 뚫은 물처럼 던전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던전 입구 쪽 최전방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는 중앙 기관 헌터들은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몬스터들을 전면으로 상대했다.

하나 몬스터의 워낙 숫자가 많은 탓에 헌터들이 미궁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을 족족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놓치는 수가 상당했다.

발이 빠르거나 은신 능력을 가진 몬스터, 혹은 지능이 발달된 몬스터들은 전면 전투를 하지 않고 외부로 달아났고, 몬스터의 영역은 더욱더 넓게 분포됐다.

그런 만큼 피해는 끝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들이 거리에 있는 시민들을 덮쳤고, 가게는 몬스터들이 점령했으며, 도로의 차가 뒤집어지고 대교의 다리가 무너졌다.

거대한 재앙이나 가까울 정도로 피해는 시간이 흐를수록 빠르게 가속화됐다.

* * *

민성은 신경질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미궁 속을 이 잡듯이 뒤지고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보스 몹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마기를 퍼트려 놈의 존재를 감지하려고도 해 봤지만 그것 역시 쉽지 않았다.

놈은 마치 작정하고 숨은 것처럼 보였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민성은 방법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같은 식으로 놈을 찾아봐야 시간만 낭비하는 셈이 될 듯했다.

효과적인 낚시 방법이 뭐가 있을까?

민성은 이호성과 바가지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면서 골몰히 머리를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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