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75화>
잠시 후,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묵직한 발자국 소리가 났다.
레벨이 없는 몬스터 수십 마리가 마치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데스나이트와 비슷한 외형이었지만, 차이점은 분명 존재했다.
말을 타고 있지 않은 그들은 화려한 황금빛 갑주를 입고, 황금빛이 나는 검을 들고 있었다.
가까워지자 놈들의 이름이 보였다.
[헬 나이트]
레벨 없이 이름만 남아 있는 것에 신기해하는 민성과 대조적으로, 이호성과 바가지는 헬 나이트가 가까워질수록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헬 나이트의 황금빛 검에서 줄줄이 뿜어져 나오는 황금빛 오러가 공포의 최대치를 전달했기 때문이다.
본능적인 공포에 이호성과 바가지가 민성의 등 뒤로 몸을 숨겼다.
지금까지 미로 속에서 만났던 몬스터들도 무자비할 정도로 강하게 느껴졌지만, 지금 만난 이 헬 나이트들은 차원이 다른 포스를 갖고 있었다.
민성은 수십 마리의 헬 나이트들을 보며 엷게 웃었다.
“진짜 있는 거구나, 마인들이.”
이호성은 이 상황에 웃고 있는 민성을 의아한 듯 바라보았다.
“……그게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만난 적이 있어. 저놈들.”
민성이 흐느적거리며 걸어오는 헬 나이트들을 응시하면서 말했다.
“어디서요?”
“지옥.”
“네? ……지옥이요?”
“거기선 나를 보면 도망치기 바빴는데, 이렇게 과감한 걸 보면 거기서 내려온 놈들은 아닌가 보네.”
이호성은 민성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 어리둥절한 얼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
철컥! 철컥! 철컥!
시끄러운 갑주 소리를 내며 걷던 헬 나이트들이 일렬로 서서 일제히 멈춰 섰다.
걷는 자세는 엉성했지만, 일렬로 줄 세워진 모습은 잘 훈련된 군인을 보는 듯했다.
이내 헬 나이트들의 전신에 황금빛 오러가 맺혀 들었다.
전투를 준비하는 것처럼 보였다.
민성은 그런 헬 나이트들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오랜만이야, 정말.”
민성이 오리하르콘 단검을 쥐고서 놈들을 향해 홀로 걸어갔다.
일렬로 서 있던 헬 나이트가 일제히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황금빛 오러의 줄기가 민성을 향해 마치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 * *
젠 브레드는 미로의 벽에 커다랗게 뚫려 있는 구멍을 보며 놀란 얼굴이 되었다.
“이걸 부쉈다고?”
미궁 속에 존재하는 미로의 벽은 특수하다.
단순한 돌이 아니라, 마석의 힘이 흘러 견고한 마법의 틀로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벽을 뚫어서 미로를 탈출하다니.
상상도 못 했던 방식이었다.
단순히 무식한 방법이라고 치부하기엔, 놈의 무위가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는 사실이 머릿속에 깊게 각인될 수밖에 없었다.
젠 브레드가 뚫려 있는 벽을 통과하며 낮게 웃었다.
철컥철컥 무거운 소리를 내는 묵빛의 쇠사슬을 팔에 더 강하게 휘감으며 진한 미소를 지었다.
“신탁을 이루리라.”
젠 브레드가 웃음을 흘리며 미로 속을 느긋하게 걸어갔다.
* * *
지축이 울리고 공기가 뒤틀렸다.
황금빛의 검기가 민성을 향해 집중 포격되었고, 민성은 그런 헬 나이트의 공격을 단 한 수로 쳐 내며 역공으로 수세를 잡아 나갔다.
민성에게 불리하다거나 위험해 보이는 느낌 같은 건 거의 없을 정도로, 민성은 헬 나이트들을 여유롭게 하나하나 쓰러트렸다.
약점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엄청난 무위였다.
그러한 민성의 모습은 이호성의 눈에 절대 인간처럼 보이지 않았다.
분명 신이나 악마 중에 하나일 거라고 이호성은 생각했다.
자신의 입으로도 말하지 않았던가? 헬 나이트를 지옥에서 보았노라고.
콰아아아아아아앙!
“크윽!”
민성과 헬 나이트의 전투에 의한 파장 때문에 이호성은 입 밖으로 피를 한 움큼 뿜었다.
몸이 흔들리고, 눈앞이 흐릿해졌으며, 머릿속이 핑 돌았다.
단순히 오러의 격돌만으로도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지는 듯한 충격감에, 속이 울렁거리고 서 있는 것조차 고문일 지경이었다.
바가지도 감히 민성과 헬 나이트의 싸움 속에 끼어들지 못하고 몸만 부르르 떨고 있었다.
이호성은 바가지를 품에 들어 뒤로 더 물러나 미로 벽 속으로 몸을 숨겼다.
만약 헬 나이트가 민성을 지나 이쪽으로 오는 순간 끝장이었다.
이호성은 벽 너머에서 민성과 헬 나이트의 전투를 지켜보았다.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민성을 믿고 이 엄청난 전투가 끝나길 기다리는 것만이 유일했다.
* * *
민성의 오리하르콘 단검에서 흘러나온 오러가 벼락과도 같이 헬 나이트의 심장을 관통했다.
“……어어어억.”
헬 나이트는 마치 쇠를 긁는 듯한 소리를 내며 죽어 갔다.
민성은 마지막 헬 나이트의 사체가 파괴되어 아이템을 떨어트리는 것을 보다가, 고개를 살짝 모로 꺾었다.
헬 나이트를 하나씩 죽일 때마다 놈들의 탁한 영혼이 자신에게 빨려 들어오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 의문에 대한 답은 미궁 속 시스템이 알려 주었다.
[수준에 준하는 몬스터를 최초로 처치하였습니다.]
[불지옥급 난이도 이상의 몬스터를 처치할 경우, 영혼을 흡수할 수 있습니다.]
[흡수된 영혼은 플레이어의 에너지로 전환됩니다.]
민성은 시스템 음성의 도움으로 의문을 해결하고서 고개를 주억였다.
헬 나이트급의 영혼이 에너지로 전환된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헬 나이트는 마계에서 최하급에 지나지 않는 몬스터지만, 앞으로 마계 놈들을 죽일 때마다 영혼을 갈취할 수 있다는 것은 꽤 매력적이었다.
민성은 이호성과 바가지가 있는 곳을 돌아보았다.
“와서 아이템 주워.”
민성이 말했다.
민성의 위치와 이호성과 바가지가 있는 곳은 꽤 거리가 있었지만, 민성의 목소리는 명확한 공명을 일으키며 정확하게 이호성과 바가지의 귀로 전달되었다.
이호성은 곧장 민성이 있는 곳으로 와서 모내기를 하듯 열심히 아이템을 주웠다.
바가지는 무서웠던 듯 여전히 오들오들 떨면서 민성의 주머니 안으로 폴짝 뛰어 들어갔다.
민성이 어두운 전방 쪽을 바라보았다.
“이제 보스 몹 하나 남은 건가?”
그동안 미궁을 클리어해 온 경험에 의하면, 이제 슬슬 보스 몹이 나타날 만한 시점이 된 것 같았다.
“……그냥 빨리 나갔으면 좋겠네요.”
이호성이 아이템을 모두 마저 챙기고서 진심이 담긴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바로 그때-
미로 속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이호성은 화들짝 놀라며 미로 쪽을 돌아보았지만, 그곳에서 나타난 건 몬스터가 아니라 인간이었다.
머리 색깔과 눈 색깔을 보니 아시안이 아니다.
보디빌더와도 같은 근육질의 외국인은 팔에 묵빛 쇠사슬을 휘감고 있었다.
“……헌터?”
이호성이 중얼거렸다.
민성 역시 미로 속에서 나타난 남자, 젠 브레드를 보았다.
젠 브레드는 마치 사자 같은 눈으로 민성을 보며 엷게 웃었다.
“드디어 신탁의 제물을 만났구나.”
그의 음성에서는 거대한 기개가 서려 있었다.
단순한 말 한마디에 주변의 오러 흐름이 흔들리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호성은 젠 브레드를 보며 굵은 침을 꿀꺽 삼켰고, 바가지는 민성의 주머니 안으로 다시금 들어갔다.
“뭐냐, 넌?”
민성이 젠 브레드를 향해 묻자, 그가 손목에 찬 시계를 내려다보며 엷게 웃었다.
“이 시계, 정말 신기하군. 음성을 지원한다더니, 의사소통이 잘되는군.”
“야. 너 뭐냐고?”
공격적인 민성의 말에 젠 브레드가 고개를 들어 웃음 지었다.
“신탁을 받들러 왔다, 강민성.”
젠 브레드가 민성의 이름을 언급했다.
“신탁?”
민성이 되물었다.
“너를 죽여 재물로 삼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뜻을 이룰 것이다. 나를 퇴출시킨 AH 조직 역시, 너와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신탁의 재물은 곧 나의 뜻이 되리니.”
젠 브레드는 도취된 표정을 지었다.
그에 민성이 눈살을 찌푸리며 이호성을 돌아보았다.
“그 조직이 뭔데?”
이호성은 놀란 눈으로 젠 브레드를 보다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AH, 아메리카 헌터 마스터의 직속 중앙 정보국입니다. 그렇다는 건 저자가 세계적인 수준의 헌터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조, 조심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민성이 젠 브레드를 향해 오리하르콘 단검을 까딱였다.
“조심은 개뿔. 야, 와 봐.”
“자신감이 과한 녀석이로군. 고작 아시안 헌터 주제에.”
“난 과해도 돼.”
“네놈을 제거하여 영광을 이룰 것이다.”
민성은 젠 브레드를 보며 픽 웃었다.
젠 브레드의 팔에 휘감긴 쇠사슬이 우웅-! 소리를 내며 울었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오러의 힘이 젠 브레드의 주변으로 소용돌이쳤다.
오러의 힘을 점점 더 강하게 끌어 올리며 젠 브레드가 입을 열었다.
“너와 내가 지금 이렇게 만난 사이, 서울에 던전 게이트가 열릴 것이다. 신탁에 의해 변형된 던전 게이트에서 고등급의 몬스터가 쏟아져 나올 것이야. 그것은 현재 한국의 힘으로는 부담스러운 전력이 될 테지. 네놈은 여기서 죽게 될 거고, 네 고국은 지도상에서 서서히 사라져 갈 것이다!”
민성은 바닥을 보며 짧게 한숨 쉬었다.
“삼시 세끼 먹는데 왜 이렇게 방해하는 놈들이 많은 건지…….”
민성이 오리하르콘 단검에 마기를 흘려보내며 젠 브레드에게 걸어갔다.
“고작 아시안에 불과한 네놈이 감히 나를 상대로…….”
“말 많네, 진짜.”
민성이 무정한 눈으로 젠 브레드를 보며, 그에게 오리하르콘 단검을 던졌다.
쐐애애애애애애액!
이기어검술.
신검합일의 경지가 민성의 손끝에서 펼쳐졌다.
오리하르콘 단검은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 젠 브레드의 방어벽을 부시며 단숨에 그의 어깨까지 관통했다.
그리고 마치 부메랑처럼 민성의 손으로 되돌아왔다.
거대한 무의 극의가 담긴 이기어검술은 감히 젠 브레드가 피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컥!”
마치 불에 타오르는 듯하던 젠 브레드의 붉은 눈이 흐릿해지며, 그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오러의 형체 또한 사그라져 갔다.
어깨에 검이 관통된 채로 비틀거리던 젠 브레드가 철퍽 무릎을 꿇었다.
그의 얼굴은 하얗게 식어 있었고, 눈빛은 초췌했으며, 온몸의 피부는 마치 죽어 가듯이 시커멓게 물들기 시작했다.
강민성의 공격 대미지는 상상을 초월했다.
“쿨럭!”
젠 브레드가 묵직한 피를 토해 냈다.
그의 입 아래로 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민성이 뚜벅뚜벅 걸어가 무릎을 꿇고 있는 젠 브레드의 앞에 섰다.
“네가 말한 그 신탁이라는 거, 마인이 보낸 메시지를 말하는 건가?”
“……어떻게 이렇게 강할 수가 있는 거지? 변방 나라의 헌터인 네놈이…… 어째서…….”
젠 브레드가 죽어 가는 얼굴로 말했다.
“질문에 대답해. 그 신탁이라는 걸 준 게 마인이냐고.”
“설령 내가 여기서 죽는다고 할지라도, 그분들의 뜻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다. 그리고 그때 네놈의 숨통을 반드시…….”
푹!
오리하르콘 단검이 젠 브레드의 목을 뚫었다.
젠 브레드가 축 늘어지며 바닥에 엎어졌다.
민성은 이호성에게로 몸을 돌렸다.
“시간을 지체했어. 놈의 말이 사실이라면 몬스터가 전 도시로 퍼지고 있을 거다. 빨리 보스 몹을 처리하고 미궁을 나가야 한다. 움직일 수 있나?”
이호성이 지친 얼굴로 애써 눈에 힘을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가자. 그럼.”
민성이 폐허의 땅을 걸으며 미궁의 보스를 찾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