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74화>
늘 자신만만하고 여유 있던 바가지였지만, 그것은 자신의 주인인 강민성이 옆에 있을 때만이 가능한 것.
바가지가 전신을 파들파들 떨었다.
고작해야 1,800레벨로 이 미궁 속에서 강민성 없이 살아남기란 절대적으로 불가능했다.
이호성 또한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차가운 손으로 뜨거워진 이마를 붙잡았을 때, 바가지가 이호성의 다리를 손으로 콕콕 찔렀다.
이호성은 바가지를 내려다보았다가, 바가지가 보고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두 마리의 데스나이트가 죽음의 사신과도 같은 모습으로 말을 타고 다가오고 있었다.
바가지가 검은 안광을 뿌리며 흑마법 영창을 준비했다.
바가지가 흑마법을 사용하기 직전, 이호성은 바가지를 들어 옆구리에 끼고서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헌터니이이이이이이이이임-!”
이호성이 전력 질주로 달리며 민성을 불렀다.
그런 이호성 뒤로 두 마리의 데스나이트 몬스터가 말을 타고 뒤쫓아왔다.
이호성은 미로의 코너를 돌며 숨도 쉬지 않고 달렸다.
레벨이 오르면서 스킬이 강화되었다.
‘윈드 워크’와 ‘헤이스트’ 스킬을 통해 이동 속도를 최대로 끌어올렸다.
그는 미로가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며 피할 공간을 찾기 위해 눈알을 굴렸다.
그사이 두 마리의 데스나이트는 순식간에 등 뒤쪽 부근에 다다랐다.
이호성과 거리를 가깝게 좁힌 데스나이트 하나가 묵빛의 검을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었다.
그에 바가지가 흑마법을 사용했다.
바닥에 검은 연기가 깔리면서 데스나이트가 타고 있는 말의 다리를 붙잡았다.
“히이이이잉!”
“키히히이이잉!”
두 마리의 해골 말은 다리가 속박되자 불쾌한 듯 몸부림쳤다.
시간을 벌게 된 순간 바가지가 손가락으로 45도 방향을 가리켰다.
“저기!”
이호성은 바가지가 가리킨 방향을 보았다.
두 개의 벽이 약간의 틈을 두고 하나로 합쳐지고 있었다.
닫히고 있는 틈 사이를 빠져나가는 것만이 유일한 탈출구!
고민은 길지 않았다.
피할 수 있는 길이 하나라면 갈 수밖에 없다.
이호성은 바가지가 알려 준 쪽으로 급격히 방향을 틀어 달렸다.
해골 말이 발에 묶이자, 데스 나이트가 이호성과 바가지를 향해 검을 휘둘러 검기를 뿌렸다.
시커먼 검기가 이호성의 등으로 날아갔다.
죽음이 목전으로 치달은 상황.
검기가 날아가고 있는 사이, 이호성은 목숨을 걸고 닫히고 있는 미로의 아주 좁은 틈 안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서컹!
검기가 미로의 벽에 의해 그 힘을 잃고 흩어졌다.
두 마리의 데스나이트가 닫혀 버린 미로의 벽을 아쉬운 듯 보다가, 해골 말의 다리를 묶고 있는 연기를 걷어 내고서 천천히 말머리를 돌렸다.
* * *
“헉! 헉! 허억! 허억!”
미로 틈 사이로 빠져 간신히 살아남은 이호성은 바가지를 품에 안고서 격한 숨을 몰아쉬었다.
까닥하면 데스나이트의 검이 아니라 미로의 벽과 벽 사이에서 짓뭉개져 죽을 뻔했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왔다.
“X발, 죽을 뻔했어. 또 죽을 뻔했다고. 하아, 하아!”
이호성의 품에 안겨 있는 바가지가 이호성의 팔을 톡톡 쳤다.
순간 이호성은 불안감이 솟구쳤다.
거칠어진 호흡이 겨우 진정되었을 때, 이호성의 눈앞으로 몬스터가 나타났다.
이호성의 얼굴에 죽음의 그늘이 내려앉았다.
몬스터 ‘드레이크’.
갈색빛의 털을 가진 용 한 마리가 거대한 날개를 펄떡이며 저공비행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이거 실화냐.”
이호성은 표정이 사라진 얼굴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도망칠 길도 없다.
유일한 탈출구는 자신에게로 저공비행하며 날아오고 있는 드레이크의 방향뿐이었다.
놈을 지나가지 않으면 도망칠 수도 없는 막다른 상황.
이호성은 거의 혼이 나갈 것만 같았다.
“이렇게 죽는 건가……. 젠장, 아직 데스나이트의 검도 못 써 봤는데.”
드레이크가 거대한 아가리를 벌렸다.
드래곤의 하위 호환 몬스터 ‘드레이크’.
드래곤처럼 불을 뿜거나 마법을 쓰지는 못하지만, 그 무엇도 자르지 못하는 것이 없다는 최강의 이빨을 가졌다.
그 이빨이 이호성을 삼키기 위해 벌어졌다.
시커먼 드레이크의 입 속을 보며 이호성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죽음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키에에에에에에엑!”
귀청을 찢는 울음소리.
드레이크가 아가리 속으로 이호성을 삼키기 직전.
이호성과 바가지가 등지고 있던 미로의 벽이 부서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그곳에서 민성이 나타났다.
민성의 오리하르콘 단검에 맺힌 마기가, 뱀처럼 찢어지듯 벌어진 드레이크의 아가리를 향해 날아갔다.
번쩍!
새하얀 빛의 선이 가로로 그어졌다.
서걱!
퍼어어어어어억!
이내 드레이크의 몸이 폭발하듯 조각나며 사방으로 드레이크의 사체가 흩어졌다.
이호성은 초점이 반쯤 흔들리는 눈으로 자신 앞에 등을 보이고 있는 사내, 강민성을 보았다.
강민성이 이호성을 돌아보았다.
“위험 리스크가 있더라도 안전거리를 지켜라. 이제 시작이다.”
민성이 늘 그렇듯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자 이호성은 하얗게 식은 얼굴로 일어났다.
다리가 너무 후들거려서 걷는 것조차 일일 지경이다.
불지옥 난이도의 미궁은 차라리 죽고 싶을 정도로 무섭고 힘들었다.
바가지가 탁탁 뛰어가 민성의 주머니 안으로 뛰어 들어가 안락한 표정으로 꼼지락거렸다.
이호성도 가능하다면 민성의 주머니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민성이 드레이크가 폭발하면서 남긴 아이템을 가리켰다.
“예, 헌터님.”
이호성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아이템을 챙겨 템 창에 넣었다.
강민성을 다시 만나 안도한 마음과 함께, 이제 시작이라는 민성의 말이 명치 안으로 지독한 공포를 밀어 넣고 있었다.
* * *
젠 브레드는 감탄한 시선으로 디지털 워치를 보았다.
강민성은 현재 엄청난 속도로 미궁을 클리어해 나가고 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다.
이대로라면 불지옥 난이도임에도 불구하고 몇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젠 브레드는 흥분한 눈으로 디지털 워치를 보며 자신의 오른팔에 휘감겨 있는 쇠사슬을 쓰다듬었다.
쇠사슬이 마치 우는 것처럼 부르르 몸을 떨었다.
젠 브레드는 로브의 사내에게 받았던 미궁의 열쇠를 꺼내, 미궁의 게이트 라인에 섰다.
본래라면 젠 브레드의 미궁 입장을 거부해야만 하지만, 미궁의 열쇠 덕에 미궁에 입장할 것인지 묻는 메시지가 떴다.
젠 브레드는 여유롭게 허공에 떠오른 승인 글자를 터치했다.
젠 브레드의 손에 들려 있던 미궁의 열쇠가 마치 먼지처럼 변하면서 서서히 허공에 흩어졌다.
[미궁의 입장을 허락합니다.]
젠 브레드의 몸이 공중으로 부양되어 게이트 안으로 진입을 시작했다.
* * *
불지옥 난이도의 미궁이라고 해도 몬스터들의 방어력과 체력만 높을 뿐, 공격력은 형편없었다.
민성에게 그런 몬스터를 처리하는 건 무척이나 쉬운 일이었다.
하나 그런 민성과 달리, 이호성과 바가지는 한순간의 방심이나 실수가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생각에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미궁 속에서 여유로운 건 오직 민성뿐이었다.
“어두워졌네요.”
이호성이 미로 안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호성의 말대로 날이 어두워졌다.
어두워진 만큼 몬스터의 공격은 날카로워진다.
물론 그건 이호성과 바가지에게만 해당되는 얘기.
민성은 어둠 속에서도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굳이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미로의 변형이다.
미로의 형태는 시시각각 규칙 없이 계속해서 변하고 있었다.
몬스터를 잡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지만, 미로를 탈출하지 못해 계속 시간을 잡아먹는 것은 민성에게 꽤 스트레스를 유발할 만한 일이었다.
“바가지. 이리 와 봐.”
민성의 명령에 바가지가 뒤뚱거리며 뛰어가 자신의 주인인 민성을 올려다보았다.
“탈출구가 어느 쪽 방향인지 한번 찾아봐.”
“제가요?”
민성이 바가지를 잡아서 허공으로 야구공을 던지듯 투척했다.
쐐애애애애액!
바가지가 엄청난 속도로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이호성은 입과 눈을 떡 벌리며 날아오르고 있는 바가지를 보았다.
엄청난 높이로 솟구쳐 올라간 바가지가 목을 돌려 탈출구 방향을 확인한 뒤, 다시 중력에 의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민성이 떨어지는 바가지를 손으로 탁 낚아챘다.
“봤어?”
“……보긴 봤는데. 으음, 확실하지가 않아요, 주인님.”
민성이 다시 바가지를 던졌다.
두 번째로 솟구쳐 올라가자 바가지는 마치 놀이기구라도 타는 양 재밌다는 듯 칵칵 웃으며 탈출구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번엔?”
“찾았어요, 주인님!”
민성이 손에서 바가지를 놓아주었다.
바닥에 착지한 바가지가 손으로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저기. 북쪽 방향이에요.”
민성은 바가지가 가리킨 방향을 보며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그…… 헌터님? 미로가 계속 변하고 있어서, 탈출 방향보단 미로가 움직이는 규칙부터 찾아야 할 것 같은데요?”
하나 민성은 이호성의 말을 무시하고 벽을 향해 걸어갔다.
오른손에 쥐고 있던 오리하르콘 단검을 왼손으로 넘긴 민성이 주먹을 활시위처럼 당겨 벽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콰카카캉!
굉음이 터지며 벽이 뻥 뚫렸다.
“그냥 뚫고 간다.”
민성이 주먹으로 뚫어 버린 구멍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이호성은 바가지와 함께 그런 민성을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 * *
젠 브레드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목을 뚜두둑 꺾었다.
디지털 워치를 보자 강민성은 눈부시게 빠른 속도로 미궁을 탈출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탈출할 수 있는 거지?”
자신은 로브의 사내로부터 미궁의 미로에 대한 정보를 이미 입수했다.
때문에 미로를 탈출하는 건 별달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지만, 강민성은 다르다.
원래였다면 지금쯤 미로 초반에서 헤매고 있어야 하는 것이 맞을 텐데.
“신기한 놈이로군.”
젠 브레드는 엷게 웃음을 흘리며 미궁의 미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콰아아아앙!
마지막 미로의 벽이 뚫렸다.
민성은 주먹에 묻은 돌가루를 털어 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미로를 탈출하자 마치 폐허와도 같은 죽은 땅이 나타났다.
그 땅은 넓고, 어두웠으며, 음험했다.
“와…… 이 미로를 주먹으로 뚫고 나올 줄이야.”
이호성이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바가지와 함께 민성이 뚫은 길로 나왔다.
“어? 뭐야, 여긴? 끝이 아니었나?”
이호성이 놀란 눈으로 폐허의 땅을 보며 혼잣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