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73화>
그 분위기와 냉기에 몸이 더 경직된 듯했다.
그때, 바가지가 펄쩍 뛰어서 이호성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헉!”
이호성이 화들짝 놀라며 앞으로 꼴사납게 엎어졌다.
“뭐, 뭐 하는 거야, 이 자식아!”
바가지가 칵칵거리며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젠장.”
얼굴을 구기며 일어나는데, 갑작스레 커다란 그림자가 몸을 덮쳤다.
이호성이 굳은 얼굴을 들었고, 민성 역시 그가 보고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그곳엔 이 미로 던전 안에서 처음 만난 몬스터가 있었다.
[데스나이트]
5미터는 될 법한 키에 은빛의 갑옷을 입은 데스나이트는 해골 말을 타고 있었다.
데스나이트의 손에 들린 묵빛 검에서는 검은 기운이 넘실거렸다.
넋이 나간 이호성과 달리, 민성은 데스나이트를 보며 피식 웃었다.
“꼭 커다란 바가지 같네.”
민성의 말에 바가지도 칵칵 웃었다.
웃고 있는 둘과 다르게 이호성은 굵은 침을 꿀꺽 삼켰다.
“어, 어떻게 몬스터가 레벨이 없을 수가 있죠?”
이호성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잖아?”
민성이 무정한 눈으로 데스나이트를 보며 걸어갔다.
* * *
바가지도 민성을 뒤따라 데스나이트를 공격할 준비를 했다.
그 사이에서 이호성은 괴로운 얼굴로 이를 지켜보았다.
민성도 바가지도 몬스터를 잡기 위해 놈을 향해 나아가고 있건만, 그에 반해 이 자리에서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스스로가 너무도 무력하게 느껴졌다.
이호성은 머리를 휘저었다.
이제 와서 자존심 같은 걸 들먹여 봐야 더 초라해질 뿐이다.
강해지기 위해선 이 던전을 죽지 않고 살아 나가야 한다.
이호성은 몬스터에게 시선을 떼지 않으며 상황에 집중했다.
* * *
민성이 앞서서 데스나이트를 향해 걸어가자, 데스나이트가 안장 위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그리고 목을 뚜둑 꺾더니 곧장 민성에게 달려들었다.
데스나이트의 검은 안광이 바가지처럼 시커멓게 일렁였다.
데스나이트의 검과 민성의 오리하르콘 단검이 맞부딪쳤다.
콰아아아아앙!
강력한 파장.
새하얀 뇌력과 데스나이트의 검은 기운이 섞여 들면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바닥이 울렸다.
그 거대한 충격에 의해 이호성은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마치 신이 악마와 싸우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민성과 데스나이트의 격돌은 이호성에게 완전히 다른 세계처럼 보였다.
“제법인데, 큰 바가지. 어린 마인 정도 되려나?”
민성이 검을 맞댄 채로 말했다.
바가지는 밑에서 흑마법을 영창했다.
검은 칼날이 데스나이트에게 날아갔지만, 바가지의 공격은 데스나이트의 신체에 아주 미세한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바가지가 당황한 듯 깜짝 놀라며 데스나이트를 보았을 때, 데스나이트가 뒤로 빠르게 물러나며 검을 휘둘렀다.
콰광!
일직선의 사선과도 같은 검은 검기가 민성을 향했다.
쐐애애애애액!
민성은 오리하르콘 단검을 밑에서 위로 끌어 올리며 이를 쳐 냈다.
콰지지지직!
데스나이트의 검은 검기가 깨지면서 검기의 파장이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그 파장의 효과는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호성에게까지 미쳤다.
“크윽!”
방패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어깨와 허벅지의 살이 찢어지고 입안의 살까지 터져 입 밖으로 피가 훅 번졌다.
이호성은 단순히 그 파장만으로 이런 대미지를 입는 다는 사실에 경악하며 뒷걸음질 쳤다.
이호성의 등이 미로의 벽에 닿았다.
미로의 벽에 엉겨 붙어 있던 나무줄기가 이호성의 몸을 휘감기 위해 천천히 움직였다.
이호성은 자신을 잡아먹을 듯이 움직이는 나무줄기를 발견하곤 헉! 소리를 내며 물러났다.
그러자 나무줄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호성이 거친 숨소리를 내며 다시 민성을 보았다.
민성이 데스나이트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 * *
째깍째깍.
젠 브레드는 미궁 앞에서, 시간이 흐르고 있는 디지털 워치를 보며 검지로 톡톡 두드렸다.
디지털 워치는 단순히 음성 지원 능력만을 있는 게 아니라, 미궁 안에서의 진행 상황에 대해서도 알려 주고 있었다.
미궁 클리어를 시작한 지 이제 겨우 초반에 불과하다.
젠 브레드는 자신의 무기인 쇠사슬을 오른팔에 휘감았다.
무광의 묵빛 쇠사슬에서 새파란 오러가 춤을 추듯 요동쳤다.
당장이라도 미쳐 날뛰고 싶어 하는 듯 오러는 통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번쩍거렸다.
그에 아랑곳없이 젠 브레드는 눈을 감고 긴 숨을 뱉었다.
초조함이 가슴속에서 촛불처럼 흔들렸다.
눈을 떠서 위를 올려다보자 하늘에서는 아주 느리지만 서서히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 * *
불지옥 난이도의 몬스터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아보기 위해 몇 수를 주고받아 봤지만, 해당 미궁의 데스나이트는 어린 소마인보다도 못한 수준의 잡몹에 불과했다.
끝을 내자.
퍼어어억!
민성의 오리하르콘 단검이 미스릴보다 단단해 보이던 데스나이트의 해골 머리를 깨부쉈다.
머리가 부서지자 데스나이트는 전신의 뼛조각이 후두둑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이내, 데스나이트의 시체가 폭발하며 아이템을 드롭했다.
[데스나이트의 검(전설)]
[최고급 마석 5개]
[블랙 미스릴 20개]
몬스터 데스나이트가 죽고 나서 드롭한 아이템은 총 3개였다.
최고급 마석 5개를 주워 바가지에게 던져 주자, 바가지는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는 최고급 마석을 마치 저글링을 하듯 입으로 다 씹어 먹었다.
와작, 와작, 와자자작!
순식간에 최고급 마석 5개를 먹어치운 바가지의 몸에서 황금빛이 났다.
바가지가 순식간에 1,800레벨을 넘어섰다.
데스나이트를 잡음으로써 얻은 파티 경험치와 최고급 마석을 먹어 이룬 폭렙이었다.
민성은 이호성을 보았다.
300초반에 불과했던 이호성 역시 350레벨로 급성장을 이루었다.
“이호성.”
민성이 이호성에게 아이템을 던졌다.
데스나이트의 검이 휘리릭 허공을 돌며 바닥에 푹 박혀 들었다.
이호성은 멍한 눈으로 자신의 발치 아래에 떨어진 데스나이트의 검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이내 떨리는 손으로 검을 뽑았다.
[데스나이트의 검]
등급 : 전설
공격력(작은/큰 몬스터) : 21 / 24
한 손/양손 : 한 손
옵션 : 민첩+18, 힘+8, 추가 타격치+20
재질 : 철
인챈트 : +0부터 실패할 가능성이 있음
손상 여부 : 손상
매매 : 가능
레벨 제한 : 500 이상부터.
특성 : 일정 확률로 ‘헬 파이어’ 발동
이호성이 넋이 나간 얼굴로 민성이 던져 준 검을 보았다.
그사이 민성은 블랙 미스릴을 템 창에 넣고서 주변을 살폈다.
* * *
이호성은 손에 쥐고 있는 검을 보며 머릿속이 햐앟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이, 이것을 제게 주시는 겁니까?”
“쓰라고 준 거잖아.”
이호성은 다시 자신의 손에 들린 ‘데스나이트의 검’을 내려다보았다.
“헌터님. 이것은 받을 수 없습니다. 100억, 200억…… 아니,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엄청난 무기예요, 이건. 제까짓 놈이 감히 쓸 수 없는…….”
민성이 짜증이 배어든 눈으로 이호성을 보았다.
“그딴 거 굳이 없어도 되니까 주는 거다.”
“가, 감사합니다. 헌터님.”
이호성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 자신의 손에 들어온 ‘데스나이트의 검’을 보았다.
그리고 벅차오르는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민성에게 받은 데이스나이트의 검을 템 창 안에 넣었다.
“왜 안 껴?”
“아직 레벨이 안 됩니다.”
“얼마나?”
“500레벨 이상만이 쓸 수 있는 검입니다.”
민성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곧 쓰겠네.”
“……예?”
민성은 이호성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멍하니 민성의 등을 보던 이호성이 뒤늦게 정신을 바짝 차리고 뒤따랐다.
바가지가 이호성의 옆에서 함께 걸으면서 살벌한 안광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 시선에 이호성은 움찔 어깨를 떨었다.
“왜 그래, 넌 또?”
이호성이 묻자 바가지는 바닥을 발로 팍 찼다.
흙이 얕게 튀었다.
“좋겠다?”
바가지의 말에 이호성은 어이가 없는 듯 웃었다.
“야. 넌 최고급 마석을 5개나 먹고, 1,800레벨이나 됐으면서 뭐가 부러워.”
“흥!”
바가지가 콧방귀를 뀌던 그때, 미궁이 변화를 시작했다.
이호성과 바가지가 놀란 듯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 * *
그그그그그극!
돌이 돌을 긁는 소리가 났다.
그것이 변화의 시작이었다.
미궁 속, 미로의 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벽은 마치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면서 변화를 이어 갔다.
열려 있던 통로가 막히고, 막혀 있던 통로가 열리며 미로의 방향이 틀어졌다.
그와 동시에 몬스터가 줄줄이 튀어나왔다.
역시나 레벨이 없다.
이호성은 극도로 긴장한 상태로 온몸에 힘을 주었다.
쿠르르!
미궁의 변화가 멈추었을 때, 몬스터 수마리가 동시에 나타났다.
몬스터는 제각각이었다.
상체는 여성체 인간이나 하체는 뱀으로 되어 있는 몬스터 ‘라미야’.
온몸이 시커먼 돌로 되어 있는 ‘다크 골렘’.
불에 활활 타고 있는 개과의 외양을 가진 ‘파이어 켈베로스’.
등에 검은 날개가 달려 있는 몬스터 ‘야비스’까지.
마치 지옥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마물들이 전방에서 민성을 향해 동시에 달려들었다.
이호성이 멍한 얼굴로 이를 지켜보았고, 민성의 검에서 엄청난 오러의 전력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바가지도 그 엄청난 힘에 놀라 이호성의 옆에 바짝 붙어 섰다.
민성은 오러의 힘이 집결되고 있는 오리하르콘 단검을 역수로 잡아 바닥에 박아 넣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바닥이 깨지면서 새하얀 오러가 대지를 타고 흘러나가 몬스터들을 휘감았다.
콰지지지지직!
4마리의 몬스터가 마치 감전된 것처럼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격동하는 오러의 힘에 라미야는 팔 하나와 머리가 폭발하면서 즉사.
다크 골렘의 단단한 다리는 부서졌으며, 파이어 켈벨로스는 불길이 약해지며 피를 토해 냈고, 야비스는 날개 두 개가 찢겨져 나가며 바닥을 굴렀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세 마리의 몬스터들을 향해 민성이 두 눈을 섬광처럼 번쩍이며 달려 나갔다.
그때 또다시 미궁이 변화를 시작했다.
* * *
지진이 난 것처럼 바닥이 심하게 울렁이며 꿈틀거렸다.
이호성과 바가지가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사이-
그그극!
미궁의 벽이 빠르게 움직였다.
민성이 오리하르콘 단검으로 몬스터 야비스의 목을 찢던 그때, 민성의 뒤에서 미궁의 벽이 빠른 속도로 닫혔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닫힌 미궁의 벽.
이호성과 바가지는 서로 닫혀 버린 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잠시 넋 놓고 있는 동안. 미궁의 벽이 민성을 사이에 두고 나타났다.
민성은 벽 너머에 있었다.
“……헌터님과 분리되어 버리고 말았어.”
이호성이 절망이 내려앉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바가지 역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