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71화>
민성이 그릇을 내려놓고 미간을 구기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혼비백산하며 일어나 어쩔 줄을 모르는 채 발을 동동 굴리고 있었다.
와장창!
사냥개를 닮은 몬스터.
‘헬 하운드’라는 명칭을 네임에 걸고 있는 몬스터들이 유리창을 깨며 짬뽕집 안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민성은 짜증이 배어든 눈으로 젓가락을 테이블에 탁 놓으며 일어섰다.
“크와아아앙!”
헬 하운드가 거친 소리를 내며 시민들의 팔과 다리, 그리고 목을 물어뜯었다.
사방으로 피가 비산했다.
민성은 구겨진 얼굴로 원형 젓가락 통에 들어 있던 젓가락 뭉치를 헬 하운드들을 향해 그대로 던졌다.
평범한 나무젓가락에 푸른 오러가 맺히자, 젓가락은 마치 유도탄처럼 사방으로 번져 나가며 헬 하운드의 목과 몸통을 관통했다.
“쿼엉!”
헬 하운드가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쓰러져 버둥거렸다.
민성은 끊임없이 가게 안으로 밀려드는 헬 하운드를 보며 템 창 안에서 오리하르콘 단검을 빼내 들었다.
콰드득!
민성이 쥔 오리하르콘 단검에서 이명처럼 들리는 마기의 음성이 퍼졌다.
그러자 시민들을 공격하고 있던 헬 하운드들의 몸이 일제히 굳어지면서 눈에 띄게 둔해졌다.
민성의 오리하르콘 단검이 궤적을 그렸다.
번쩍!
섬광과도 같은 빛에서 뇌력의 힘이 뻗어져 나갔다.
콰르르르릉!
오리하르콘 단검에서 새하얀 전력이 뻗어 나가 헬 하운드의 몸을 찢어발겼다.
뒤이어 긴 행렬로 달려드는 헬 하운드를 향해 민성이 오리하르콘 단검을 내질렀다.
콰르르르르르르르르릉!
오리하르콘 단검 끝에서 마치 거미줄과도 같은 빛의 줄기가 쏘아져 나갔다.
그 빛의 줄기가 20여 마리에 달하는 헬 하운드를 마치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만들었다.
단 몇 초 만에 수십의 헬 하운드가 사체가 되어 바닥에 쌓였다.
마치 폐허처럼 변해 버린 가게 내부에서 오롯이 서 있던 민성은 주변을 훑어보았다.
살아남은 사람은 가게 내부 손님들 중 대기 손님까지 합쳐서 겨우 3분의 1에 불과했다.
그 짧은 사이에 꽤 많은 사람이 죽었다.
벽에 붙어 웅크린 채 울고 있는 사람들이 두려움을 가득 담은 눈으로 민성을 보며 바들바들 떨었다.
민성은 그런 이들의 시선을 마주 보다가 짬뽕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릇을 들어 원 샷으로 국물을 단숨에 비웠다.
식었음에도 매운맛이 담긴 국물이 칼칼하게 목을 넘어갔다.
민성은 빈 그릇을 탁! 내려놓고서 지갑을 꺼낸 뒤 카운터 쪽으로 이동했다.
짬뽕집 직원은 눈물이 잔뜩 번진 얼굴로 얼어붙어 있었다.
민성은 그녀를 보다가 만 원짜리 한 장을 계산대 쪽에 두고서, 울음소리를 뒤로하고 가게 밖으로 걸어 나갔다.
어느새 어두워진 거리에는 쏟아지는 빗속에서 헬 하운드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민성의 눈이 차갑게 식었고, 이내 민성의 신형이 연기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광견병에 걸린 것처럼 침을 흘려 대며 거리에서 날뛰던 헬 하운드가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예리한 빛에 의해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민성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지 약 1분여의 시간.
그 시간이 흐르고 나자, 거리를 시끄럽게 울려 대던 헬 하운드의 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비릿한 헬 하운드의 피 냄새가 가득한 거리.
민성은 피 묻은 단검을 시체의 옷에 대충 닦은 뒤, 템 창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무거운 빗줄기를 맞으며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민성이 떠난 자리에는 바닥을 때리는 빗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 * *
민성은 헬 하운드의 피가 묻은 옷을 쓰레기통에 던져 놓고 샤워를 했다.
몸에 묻은 몬스터의 피 냄새를 말끔히 지우고 난 뒤, 편한 옷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뉴스에서는 민성의 예상대로 던전 밖으로 나온 몬스터들에 대해 집중 보도 중이었다.
미치광이 마석 폭탄 테러범 에이스에 의해 많은 헌터가 죽었다.
그로 인해 헌터 부족 현상은 직접적으로 시민을 위협하는 현실이 되었다.
길거리에 ‘헬 하운드’가 미쳐 날뛰는 꼴을 보니 민성도 실감이 났다.
그동안 헌터들이 갑질만 해 대는 멍청이라고 욕하던 시민들도 이제는 헌터들을 의존하기 시작할 것이다.
민성은 그 뉴스를 잠시 보다가 TV를 끄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알람을 맞춰 놓고 이호성에게 문자 한 통을 보내 놓은 뒤, 민성은 어둠 속에서 눈을 감았다.
* * *
바게트 빵을 뜯어 먹으며 미궁 관련 서류를 보고 있던 이호성은 메시지 알람 소리에 휴대폰을 들었다.
[내일 아침 미궁 출발.]
바게트를 물고 있던 입에 힘이 빠지자, 빵이 아래로 툭 떨어져 내렸다.
미궁에 간다.
오오, 예스!
이호성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팍 던지며 제자리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하지만 그 충동적인 춤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미궁은 놀러 가는 곳이 아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도 죽을 확률이 높은 곳이 바로 미궁이다.
침착하자.
뒤늦게 긴장감이 끓어올랐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고, 온몸의 피가 맹렬히 회전하는 것만 같은 뜨거움이 전신을 휘감았다.
이호성은 숨을 고르며 집어 던졌던 서류 종이들을 하나하나 다시 주웠다.
300레벨의 헌터가 되었다고는 하나, 미궁은 여전히 자신에게 하나의 높은 벽이나 다름없는 세계.
이호성은 진지한 자세로 미궁에 대한 정보가 기입되어 있는 서류를 읽어 나갔다.
좀처럼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집중하기 위해 애썼다.
“후우…….”
째깍째깍.
여느 때와 달리, 시간의 속도가 다르게 느껴졌다.
* * *
아침이 밝았다.
민성은 움직이기 편한 추리닝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저택 앞에 이호성의 차가 있었고, 이호성은 본네트에 기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엇? 헌터님, 나오셨습니까.”
이호성이 담배를 급히 끄면서 인사했다.
“아침 먹고 바로 미궁으로 출발한다.”
민성이 그렇게 말하고 차 뒷좌석에 올라탔다.
이호성은 운전석에 올라 안전벨트를 매면서 민성을 돌아보았다.
“저기 헌터님. 그런데 갑자기 미궁은 왜 가시는 겁니까? 자금은 충분히 여유가 있지 않으십니까?”
“요즘 헌터가 없어서 던전 밖으로 몬스터가 튀어나오고 있잖아.”
“……그런데요?”
민성은 왜 이해를 못 하냐는 듯 채근하는 시선으로 이호성을 보았다.
이호성은 뒤늦게 그 이유를 깨달았다.
“아…… 몬스터가 튀어나오면 맛집이 위험하니까 헌터님 식사에 문제가 생기는 거군요.”
“아침 추천 메뉴는?”
“어제 연락 받았을 때부터 고민해 봤는데요.”
이호성이 차량 시동을 걸면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미궁에 들어가야 하니까 든든히 먹어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오늘 아침의 추천 메뉴는 바로 이것입니다.”
이호성이 휴대폰으로 캡쳐해 놓은 블로그 사진을 보여 주자, 민성이 이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콩나물 해장국?”
민성의 말에 그가 빙긋 미소 지었다.
“콩나물 해장국이 어떻게 든든할 수 있는 거지?”
“콩나물 해장국에 해물 파전, 그리고 막걸리. 이렇게 먹고 출발하면 칼 잡을 힘이 탄탄해질 겁니다.”
민성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호성이다.
단순히 콩나물 해장국일 뿐이었다면 성의가 없는 메뉴 추천으로 간주하고 바가지를 던져 버릴 참이었지만, 해물 파전과 막걸리라는 추가 메뉴는 반전의 포인트가 있었다.
만족도를 100% 채우는 득점 포인트다.
“출발.”
민성이 휴대폰을 보기 위해 살짝 앞으로 당겼던 몸을 시트에 묻으며 말했다.
“옙. 출발합니다요.”
민성을 태운 이호성의 커다란 미국 차가 콩나물 해장국집으로 향했다.
* * *
몬스터가 던전 밖으로 튀어나오는 판국이라 장사를 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해장국집은 열려 있었다.
“헌터님. 저도 밥 먹어도 될까요?”
이호성이 눈치를 보며 물었다.
“먹고 싶으면 다른 테이블 가서 먹어라.”
“감사합니다.”
“어서 오세요.”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50대는 되어 보이는 중년의 여 종업원이 테이블을 닦으며 인사했다.
이른 아침.
오전 7시라 그런지 해장국집은 휑했다.
민성이 자리에 앉고 이호성이 떨어진 곳에 앉자, 종업원은 그런 둘을 이상하다는 듯이 번갈아 보았다.
“일행 아니에요?”
종업원이 주방과 가까운 이호성에게 먼저 물통과 컵을 가져다주며 묻자, 이호성이 멋쩍은 얼굴로 답했다.
“헌터님이 겸상을 별로 안 좋아하셔서요.”
“주문은 어떻게?”
“콩나물 해장국 2그릇. 그리고 해물 파전 하나 해서 절반씩 나눠 주시고. 막걸리 한 통씩.”
종업원이 참 별나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헌터라는 사실에 조용히 입을 다물고 민성에게도 물을 가져다주었다.
그사이 민성은 맑고 투명한 물을 마시며 창밖을 보았다.
이제는 현세에 적응했다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맑고 투명한 물을 마시는 것도 자연스럽다.
언제 마계에서 그런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민성은 아득해진 옛 시절을 잠시 회상하며 창밖의 날씨를 살폈다.
쏟아지던 비는 온데간데없고, 하늘엔 밝은 태양이 떠올라 있었다.
맑게 갠 날씨를 보고 있자 어느덧 음식이 도착했다.
뚝배기 안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콩나물 해장국과 막걸리 한 통이 먼저 테이블에 놓였다.
음식을 보자마자 배 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이른 아침인데도 배꼽시계는 요란하군.
민성은 수저를 꺼내 식사를 준비했다.
밥뚜껑을 열자 까만 흑미밥이 보였다.
여긴 흑미를 주는군.
흑미밥은 철분 함유량이 많아 빈혈과 변비에 도움을 준다.
요즘 시간이 날 때마다 음식에 대한 정보를 보고 있기 때문에 이것저것 상식이 늘었다.
귀환 후 처음 먹는 흑미.
민성은 수저로 흑미를 떠서 먹었다.
꼬들꼬들하지만 한 지 얼마 안 된 밥이라 그런지 부드러움을 갖고 있었다.
다음으로 콩나물 해장국의 국물을 먹었다.
고춧가루가 마치 스노우 볼처럼 떠다니고 있는 국물은 시원했고 깊었으며 청량했다.
아침으로 먹기에 정말 제격인 음식이다.
아삭아삭한 김치를 먹으면서 콩나물 해장국 안에 있는 콩나물을 건져 흑미 위로 올렸다.
콩나물이 올라간 밥을 먹으며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먹었다.
입안에 들어 있는 흑미와 콩나물이 깊은 국물에 적셔지면서, 몬스터를 쓸어 담을 수 있을 만한 체력의 바탕이 생성되는 것만 같았다.
맛있어.
민성은 밥그릇을 들어 밥을 콩나물 해장국 안으로 투하시켰다.
밥을 국물에 말아 숟가락으로 휘젓고 있을 때, 해물 파전이 나타났다.
정확히 절반.
반달처럼 생긴 해물 파전을 보니 까맣게 잊고 있었던 막걸리가 생각났다.
민성이 막거리 병을 들고 흔들자 이호성이 뛰어왔다.
“헌터님. 막걸리를 드실 때는 병을 살짝 45도로 기울여서 입구 쪽 주둥이를 꽉 눌러 주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