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70화>
이호성은 긴장된 숨을 내쉬며 노트북을 응시했다.
“저건가? 마인…… 그리고 마인의 탑에 대한 단서가?”
이호성은 뺨을 긁적이며 공장 안에 뭐가 위험한 건 없는지 살핀 후, 노트북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노트북을 열자마자 알 수 없는 프로그래밍 언어와 숫자가 초록 바탕 위로 쏟아졌다.
그에 깜짝 놀라 흠칫 어깨를 떨었다가 눈매를 좁히며 화면을 집중해서 보았다.
잠시 후, 프로그래밍 언어와 숫자가 사라지고서 화면이 지지직거리더니 이내 하나의 영상이 나타났다.
이호성은 화면이 너무 어두워서 뭐가 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화면보다 소리가 먼저 청각을 자극해 왔다.
느리면서도 기다란 호흡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렸다.
괴기스러운 호흡 소리였고, 이호성은 그것만으로도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걸 느꼈다.
“뭐야, 이게……?”
화면이 너무 어두운 탓에 잘 보이지가 않아 조금 더 가까이 보려고 하는 와중, 화면이 바뀌었다.
바닥에 움푹 파인 발자국이 보였다.
인간의 발자국이라고 하기엔 어색하다.
400밀리 정도는 될 법한 크기의 발자국.
그리고 다시 화면이 바뀌었다.
던전 속 동굴처럼 보이는 벽에, 손톱으로 긁은 자국과 함께 이상한 외계 문양 같은 것이 있었다.
다시 화면이 바뀌었다.
마치 불에 그을린 듯 시커먼 땅이 보였다.
그 땅 위로 거대한 검은 탑이 솟아 있었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높디높은 탑이.
그 장면을 끝으로 화면이 지지직! 하고 노이즈 현상을 일으키며 꺼졌다.
바로 그 순간―
철컹!
공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이호성은 깜짝 놀라며 뒤를 팩 돌아보았다.
로브를 입고 있는 사내가 공장 문 앞에 서 있었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는 데다 로브가 커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호성은 그런 로브의 사내를 보며 심장이 빠르게 고동치는 걸 느꼈다.
“누구야?”
이호성이 커진 눈으로 잔뜩 긴장한 채 물었다.
잠깐의 고요한 정적이 흐르고, 이내 그 침묵이 깨졌다.
“미궁에 가면 마인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인의 탑에 대한 단서 역시.”
로브의 사내가 낮은 소리로 말하자 이호성이 손가락으로 노트북을 가리켰다.
“방금 화면에서 본 그게 마인의 흔적이고 단서라고?”
“그래.”
“마인은 뭐고, 마인의 탑은 뭐지?”
“미궁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머지않아 마인의 탑이 열리게 될 거야. 내가 알려 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로브의 사내가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렸다.
끼이이익! 철컹!
문이 닫혔다.
고요한 공장 내부 안.
이호성은 참았던 숨을 크게 내쉬었다.
“아, 겁나 쫄았네. 무슨 공포 영화도 아니고, 뭘 알려 줘도 이딴 식으로 알려 줘? 그리고 알려 주려면 정확하게 알려 주든가. 젠장.”
그렇게 중얼거리던 이호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떠올려 보면 로브의 사내는 헌터 네임이 없었다.
설마…… 기타 능력자급이라는 건가?
아니다, 국내의 기타 능력자는 중앙 기관의 김지유밖에 없었다.
그러면 일반인인데 괜히 쫄은 건가?
별의별 생각을 다 하던 이호성은 고개를 휘휘 젓고선 노트북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탁탁!
키보드를 두드려 보고 전원도 켜 봤지만 노트북은 반응하지 않았다.
응? 그새 배터리가 다 된 건가?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퍼어어엉!
“으악!”
노트북이 터졌다.
이호성이 기겁하며 뒷걸음질 치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시커멓게 그을린 노트북을 보며 이호성은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깜짝이야……. 아, 놀래라, 진짜.”
이호성은 로브의 사내가 사라진 방향을 돌아보고는 서늘해진 가슴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 * *
“그게 다야?”
민성이 물음에 이호성이 고개를 주억였다.
“네. 하지만 그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 뭔가를 더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이호성이 당시를 떠올리는 듯 시선을 위로 올리며 말했다.
민성은 그런 이호성을 한심하다는 듯 보았다.
“그걸 그냥 보내?”
이호성이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좀 무서워서요. 노트북도 그렇고, 뭔가 분위기가 좀 으스스해서…….”
민성의 시선에 이호성이 면목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됐어. 그만 가 봐.”
민성이 TV에서 먹방 프로그램을 보며 손을 내저었다.
“저녁 안 드세요?”
“먹어야지.”
“메뉴는 이미 결정하셨나 보네요.”
“그래.”
“어디로 가십니까? 제가 모실게요.”
“집 근처야. 오늘은 그만 들어가라.”
“아, 네! 그럼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호성은 민성이 다시 잡기라도 할까 달아나듯 빠져나갔다.
민성은 TV를 보다가 시계를 확인했다.
6시 5분 전.
슬슬 저녁을 위해 외출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었다.
* * *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서자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비가 오는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 쏟아지는 비라니. 갑작스럽다.
민성은 시끄럽게 바닥을 때리는 비를 보면서 큰 우산 하나를 챙겼다.
저녁은 본래 간단히 비빔밥 정도로 끝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비가 마구 떨어지고 있는 걸 보니 비빔밥을 먹기에는 날씨와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저녁 메뉴를 바꾸기로 결정했다.
뭐가 좋을까?
민성은 비를 보다가 전화기를 꺼내 이호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두 번도 울리기 전에 이호성이 전화를 받았다.
- 네. 헌터님.
“비 온다.”
- 네?
“비 온다고.”
- ……그런데요?
“메뉴를 바꿔야겠어. 비 오는 날 먹기 좋은 저녁으로 추천해 봐.”
- 음…… 잠시만요.
몇 초가 지나고 이호성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 짬뽕 한 그릇 어떠세요?
민성은 엷게 미소 지었다.
“위치는?”
- 제가 다시 헌터님께 갈게요.
“됐어. 오늘은 혼자 움직이고 싶다.”
- 아, 그러면 잠시만요.
잠시 후 이호성이 멈췄던 말을 이었다.
- 헌터님. 메시지로 주소 보냈어요. 유명한 곳이라 셈셈 빌딩 옆 짬뽕집이라고만 해도 알 거예요. 혹시 모르면 주소 말씀하시고요.
* * *
이호성의 설명대로 민성은 택시 운전기사에게 셈셈 빌딩 옆 짬뽕집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운전기사는 ‘아아, 오늘 같은 날은 짬뽕이지. 암, 그렇고말고.’라고 말하며 차를 출발시켰다.
민성은 빗물이 뚝뚝 묻어나는 창밖을 보며 어서 짬뽕집에 도착하기를 고대했다.
약 15분 정도가 지나, 민성은 목적지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요금을 치르고 택시에서 내리자 중국집 간판이 보였다.
[신(辛) 짬뽕]
매울 신자를 쓰고 있는 신 짬뽕이라는 곳은 단순한 중국집이 아니라 짬뽕 전문점인 듯했다.
짬뽕을 간판 이름으로 걸고 있는 걸 보니, 먹기 전부터 벌써 음식에 대한 신뢰가 가는 것만 같다.
매울 신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 만큼 상당히 매운 짬뽕일 것 같아 벌써부터 두피에 땀이 차오르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매운 음식은 먹지 않았다.
얼큰한 매운맛이 어떨지 민성은 기대를 안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 안은 와글와글했다.
짬뽕집 안에는 저녁을 먹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다행히 중앙에 자리 하나가 비어 있다.
민성은 빈자리에 앉으며 동시에 벨을 눌렀다.
“신 짬뽕 하나.”
주문을 마쳤을 때, 가게 안으로 사람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아마 몇 분만 늦었어도 꽤 긴 줄을 기다려야 했을 거다.
운이 좋았어.
장사가 잘되는 집답게, 저녁 시간이 되자 손님들은 대기표까지 받아 가며 줄을 섰다.
가장 먼저 대기표를 뽑았던 두 명이 민성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왔다.
빈자리가 없기 때문에 민성 혼자 앉은 자리에 두 명의 손님이 앉았다.
처음 보는 타인과 테이블을 같이 쓰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내키지는 않지만 가게의 운영 방식인 만큼 받아들일 수밖에.
민성은 그들을 보지 않고 조용히 컵에 물을 따랐다.
물을 마시며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기를 잠시, 종업원이 음식을 갖고 왔다.
“짬뽕 나왔습니다.”
종업원은 짬뽕 그릇을 민성 앞에 놓아 주었다.
단무지와 양파, 춘장도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민성은 짬뽕을 내려다보았다.
새빨간 국물 위로 해산물과 야채, 그리고 파와 청양 고추가 올려져 있다.
비가 쫙쫙 쏟아지는 날 먹는 저녁의 짬뽕.
민성은 엷게 웃음 지으며 기다란 나무젓가락을 들어 면을 휘휘 저었다.
면을 휘젓자 짬뽕은 뜨거운 김을 올려 보냈다.
민성은 얼굴에 뜨거운 김을 적시며 면을 들어 입에 넣었다.
“후루루룩!”
두껍고 부드러운 면발이 입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면을 씹음과 동시에 매운 맛이 삭 퍼졌다.
두피가 뜨끈해질 정도로 매운 맛.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나칠 정도로 자극적이진 않다.
충분히 즐길 수 있을 만큼의 매운맛이 몸에 열을 발산하도록 만들어 주고 있다.
민성은 오동통하게 씹히는 면발을 즐기며 그릇을 들어 국물도 호롭 마셨다.
해산물의 냄새가 진하게 난다.
민성은 뜨거운 입김을 뿜으면서 쭈꾸미를 먹었다.
탱글탱글한 식감이다.
스스로의 건강함을 쭈꾸미가 가감 없이 자랑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번엔 짬뽕 속에 잠겨 있는 오징어다.
민둥민둥한 오징어는 깊게 씹혔다.
입안에서는 여전히 매운맛이 마치 불을 피우듯 살아 있었다.
오징어를 씹으면서 면발을 흡입했다.
짬뽕의 두꺼운 면발은 밀가루가 많이 안 들어간 것인지 편안한 포만감을 조금씩 쌓아 갔다.
면에 스며들어 있는 짬뽕 국물의 매콤한 간이 식사에 더 열중하게 만들고, 속도감을 이끌어 냈다.
후루루룩! 꿀꺽꿀꺽.
면을 먹고 국물을 먹으면 매콤함은 두 배.
민성은 왼손으로 홍합 껍데기를 잡고 홍합을 하나하나 빼낸 다음, 두 개씩 집어 먹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곧바로 면을 먹고. 국물에 깊이 잠겨 있는 야채들을 큼지막하게 건져 먹었다.
입안에 야채가 아삭아삭하게 씹힌다.
머릿속이 마치 고속도로처럼 뻥 뚫리는 것만 같이 시원했다.
“후우.”
민성은 짬뽕을 내려다보며 한 차례 호흡을 골랐다.
어느덧 남은 것은 국물뿐이었다.
이 매콤한 국물을 한 번에 꿀떡꿀떡 먹으면 완벽한 마무리가 될 것 같았다.
좋아.
가 보자.
민성이 그릇을 잡아 남은 짬뽕 국물을 마저 마시려는 그때-
“어, 어어?”
“어?”
“어어-!?”
“꺄악!”
짬뽕집 홀 내에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