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69화>
이호성은 곧장 메시지의 발신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깐의 신호음 뒤로, 전화가 연결되었다.
“당신, 누구야? 이 문자는 뭐지?”
- 메시지 내용 그대로다. 보내 주는 주소로 찾아와. 그럼 단서를 찾을 수 있게 될 거다.
달칵!
전화가 끊어지자마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가 말했던 대로 메시지에는 주소가 나와 있었다.
- 전화기가 꺼져 있어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으나, 자동 응답 소리만이 들려왔다.
이호성은 휴대폰을 빤히 보다가 서둘러 민성의 방에 가서 노크를 한 후, 문을 열었다.
“헌터님!”
이호성이 자신이 준 맛집 리스트를 보고 있는 민성을 불렀다.
“왜?”
“연락이 왔습니다. 마인. 그리고 마인의 탑에 대해 알고 싶으냐는 문자가 왔어요.”
“누가?”
“누군지는 밝히지 않았어요. 여기 메시지에 보낸 주소로 오면 단서를 찾게 될 거라고 했습니다.”
민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맛집 리스트로 시선을 돌렸다.
“갔다 와.”
“……네? 저 혼자요?”
이호성은 식은땀 한 줄기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러다 봉변이라도 당하면 중요한 단서가 날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날아갈 단서면, 연락이 오지도 않았겠지.”
그는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겠네요. 알겠습니다. 식사하시게요?”
“고민 중이다. 파스타와 한식 중에.”
“찌개 드셨으니까 점심으로는 파스타도 괜찮을 것 같네요.”
“동감이다. 가게는 어디가 좋을까?”
“음. 파스타와 피자, 그리고 감바스가 나오는 괜찮은 브런치 가게가 하나 있습니다.”
달짝지근한 파스타와 피자.
생각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였다.
“그런데 감바스가 뭐지?”
“감바스란, 정확히 말하자면 감바스 알 아히요- 라는 스페인 지중해 음식입니다. 스페인 술집에서 흔히 먹기 시작한 안주 요리인데, 올리브유를 베이스로 한 마늘 맛의 새우 요리입니다.”
민성은 이호성의 설명에도 조금 아리송했다.
올리브유를 베이스로 한 새우 음식이라니.
민성의 기억에는 전혀 없는 음식이다.
가서 먹어 보면 알게 되겠지.
* * *
민성이 집에서 나와 브런치를 먹기 위해 도착한 곳은 가로수 길이었다.
민성은 이호성의 차에서 가로수 길의 풍경을 보며 새로운 느낌이 가슴속에 가득 차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그만큼 가로수 길은 경험한 적 없는 새로운 느낌의 공간이었다.
왜 이곳이 유명해졌는지 민성은 가로수 길에 도착함으로써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은행나무가 길게 늘어선 곳에 있는 예쁜 카페와 옷 가게들을 보자, 마른 땅이나 다름없던 감정에 신세대의 감각이 비처럼 쏟아졌다.
“오늘 브런치 식사를 하게 될 가게는 이곳입니다.”
이호성이 한곳을 가리켰다.
[엔틱 비스트로]
목재 인테리어의 가게 입구는 따뜻한 느낌을 갖고 있었다.
“그럼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이호성의 인사를 받으며 차에서 내린 뒤, 민성은 짧은 도로를 가로질러 가게로 향했다.
딸랑-♪
문을 열자 귀여운 종소리가 났다.
나무로 된 내부와 게시판이 눈에 들어왔다.
옥상은 루프 탑으로 되어 있는 모양이다.
날씨가 좋은 만큼 옥상에서 먹는 것도 좋겠군.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깜찍한 외모의 여직원이 민성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뛰어와 물었다.
“한 명.”
민성의 말에 여직원은 미소를 지으며 목례로 인사했다.
“먼저 주문하시고 편한 자리에 앉으시면 돼요.”
민성은 이호성이 추천한 대로 파스타와 피자, 그리고 감바스를 시키기로 했다.
“베이컨 까르보나라 하나, 마르게리따 피자 하나, 감바스 하나.”
“아, 그럼 세트로 하시면 되겠네요. 하프 세트와 올 세트가 있는데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하프 세트라면 1인분을 말하는 건가?”
“네, 맞아요.”
“그럼 하프 세트로.”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세트로 주문하셔서 음료를 서비스로 드리는데 어떤 걸로 드릴까요?”
“자몽 에이드.”
여직원이 방긋 미소 지었다.
“네. 착석하시면 음식 가져다 드릴게요.”
민성은 고개를 끄덕이곤 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갔다.
루프 탑 옥상은 가로수 길의 전경이 잘 보여 운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알루미늄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는 곳에 다리를 꼬고 앉자, 제법 선선한 바람이 느껴졌다.
루프 탑 옥상에서 거리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던 중, 여직원이 음식을 가지고 왔다.
파스타와 감바스다.
“피자는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곧 나올 거예요.”
민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여직원이 미소를 남기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사이 민성은 오른손에 포크를, 왼손에는 스푼을 들었다.
베이컨 까르보나라.
베이컨과 치즈, 그리고 달걀을 이용해 만든 크림소스 베이스의 한국형 파스타다.
엷은 노란빛을 머금은 까르보나라가 민성의 눈에는 마치 황금의 빛깔처럼 보였다.
100년이 지난 삶을 살았어도 까르보나라의 단맛은 분명 기억 속에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다.
‘할머니와 먹어 본 적이 있어.’
민성은 파스타가 소스와 잘 섞이도록 포크로 섞은 뒤, 스푼에 대고 돌돌 말았다.
크림소스와 베이컨을 품은 까르보나라가 민성의 입에 들어갔다.
호롭!
달콤한 맛이 혀끝을 스치고 풍부한 치즈향이 코끝을 때린다.
맛있어.
소스와 면이 분리되지 않고 잘 어우러져 있다.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맛을 선사하는 베이컨이 포만도를 올려 주고, 소스를 머금은 면은 묵직하게 입안에서 씹히면서 식도를 넘어갔다.
민성은 까르보나라를 삼키며 이호성이 설명했던 감바스를 보았다.
감바스 알 아히요.
새우와 마늘, 올리브 오일을 주 재료로 하여 만든 스페인의 전채 요리다.
올리브유를 베이스로 한 마늘 소스에 듬뿍 젖어 있는 칵테일 새우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민성은 포크로 그 찬란한 칵테일 새우를 찍어 먹었다.
마늘 소스를 머금은 새우의 기름진 맛은 절대 거북하지 않았다.
외려 상상 이상으로 깔끔하게 맛있었다.
새우를 음미한 민성은 투명한 마늘 소스에 젖어 있는 빵을 보고 잠시 고민하다가 먹어 보았다.
바- 삭!
촉촉하고 부드러워진 바게트 빵이 입에 들어온다.
그리고 젖지 않은 그 끝은 살짝 단단하다.
와…….
민성은 진심으로 깜짝 놀랐다.
빵을 이런 식으로도 먹을 수 있다는 게 조금 충격적이었고, 마늘 소스에 젖은 빵이 이토록 맛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러고 보니 이 감바스.
애초에 빵이랑 같이 먹는 거였어.
민성은 마치 범인을 찾아낸 탐정 같은 얼굴로, 빵 위에 새우와 마늘을 올려 먹었다.
와삭!
끝부분은 바삭하지만, 마늘 소스에 젖어 있는 안쪽은 놀라우리만큼 부드럽다.
이 감바스라는 요리!
너무 맛있다.
민성이 감탄한 눈으로 감바스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 때마침 피자가 나왔다.
“피자 나왔습니다.”
마르게리따 피자 밑에는 촛불이 있었다.
계속 따뜻할 수 있게 촛불이 피자를 덥혀 주고 있는 것이다.
민성은 피자를 보며 미소 지었다.
피자는 역시 손으로 먹어야 제 맛이지.
피자 한 조각을 손에 들자, 손에 밀가루가 묻어난다.
피자의 따뜻한 느낌이 손으로 온전히 전달됐다.
민성은 입을 크게 벌려 피자를 한입 깨물었다.
치즈가 길게 늘어난다.
입술을 오므려 치즈를 잡아먹고, 얼음이 둥둥 떠 있는 자몽 에이드 잔을 들어 빨대로 쭉 빨아 당겼다.
따뜻한 토마토와 치즈의 맛이 심플하게 균형을 맞추고 있는 마르게리따 피자는 정말 맛있었다.
그뿐 아니라 주변의 분위기도 맛을 살리는 데 한몫을 했다.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루프 탑은 브런치를 하기에 최적의 환경이었다.
민성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파스타와 감바스, 그리고 피자의 맛을 느긋하게 음미했다.
그러면서 민성의 마음은 확고해졌다.
만약 워프 게이트가 상용화된다면 적극적으로 해외에서 음식을 먹어 봐야겠다.
한국에서도 세계의 여러 음식을 먹을 수 있지만, 본토의 음식을 본토에서 먹는 게 최고일 테니까.
민성은 휴대폰을 꺼내 워프 게이트를 검색해 보았다.
마침 워프 게이트에 대한 새로운 기사가 나와 있었다.
국내 워프 게이트 상용화 결정.
D-DAY 15일.
생각보다 시일이 빠르다.
시간이 꽤 걸릴 줄 알았는데 2주 후에 오픈이라…….
1회 이용료는 김지유가 말했던 대로 1억 2천.
1회 이용에 막대한 금액이 들어가는 만큼, 고객에게는 단순히 워프 게이트뿐만이 아니라 부가적으로 엄청난 VIP 혜택이 포함되어 있었다.
- 와…… 한번 타는데 1억이 넘어. 미쳤다…….
- 저런 거 이용하는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 헌터들 or 성공한 사업가 or 정치인들이겠죠ㅋㅋ
- 나도 타 보고 싶다.
- 진짜 부자들만 탈 수 있는 거네. 딴 세상 이야기 같다.
- 일반 서민들은 평생 못 탈 듯.
- 이제 막 나온 거라 그렇지. 나중에 되면 가격이 꽤 떨어질 걸요?
└ 1억 2천에서 떨어져 봤자…….
- 이용료 상식적으로 말이 되나?
- 이걸 누가 타…….
- 진짜 중요한 일 아니면 아무리 돈 많은 사람들이라도 쉽게 타진 않을 듯.
댓글을 읽어 보던 민성은 기사 하단부에 나타나 있는 워프 게이트 공식 홈페이지 주소를 터치했다.
홈페이지로 들어가자 워프 게이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나타나 있었다.
민성은 워프 게이트 사용과 VIP 혜택 사항을 읽으며 한가롭게 자몽 에이드를 마셨다.
* * *
이호성은 차에서 내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메시지에 나와 있는 주소지로 찾아왔더니, 공장 부지였다.
수많은 공장들이 늘어서 있는 대형 공장 부지.
우선은 ‘B-97’이라는 번호가 적혀져 있는 공장 건물을 찾아 나섰다.
해가 밝은 낮이라 망정이지, 밤이었으면 땀 꽤나 흘렸을 것이다.
이 넓고 수많은 공장 주변에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긴장감에 가슴이 콩닥거렸다.
잔뜩 주변을 경계하며 걷던 이호성의 눈에 B-97이라고 새겨져 있는 공장이 들어왔다.
“여기구나.”
이호성은 휴대폰과 공장을 번갈아보다가, 마른침을 삼키며 공장 문을 열어젖혔다.
안으로 들어가자 200평 정도로 보이는 텅 빈 공장 내부가 보였다.
그리고 그곳 중앙에는 오래된 의자 위에 노트북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