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68화>
* * *
차 안에서 머리털을 쥐어뜯은 이호성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그림자 길드 본관을 바라보았다.
처음엔 정말 좋았다.
예전에 감히 쳐다보기도 힘들었던 곳이 바로 그림자 길드다.
불알 친구였던 오경태에게 멸시를 당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번에 그림자 길드를 찾아가자 그들은 자신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 주었다.
VIP란 이런 걸까? 라는 느낌을 태어나 처음으로 받아 봤다.
자신을 최고급 룸으로 모시고, 눈부시게 섹시한 미녀들이 디저트와 차를 내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
인격을 존중해 주는 그들의 태도에서 이호성은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 마인이라든가 마인의 탑에 대해서는 현재 전혀 정보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림자 길드는 그렇게 딱 잘라 아는 바가 없다고 얘기했다.
그림자 길드가 모르는 정보는 국내에서 무슨 짓을 해도 알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은 국내 최고의 정보 집단이니까.
그들이 모르는 걸 대체 무슨 수로 알아 온단 말인가?
가뜩이나 미운털이 박힌 상황에, 아무것도 건져 오지 못한다면 강민성은…….
또 지옥의 ‘대기’라고 말하거나, 맛집 추천 외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판단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곧, 쩔과 한없이 거리가 멀어지게 될 것이라는 결과로 산출된다.
이호성은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었다.
어떻게든 성과를 보여야 할 텐데…….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머리를 굴려 봤지만 좀처럼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세요?”
- 아! 안녕하십니까. 혹시 이호성 씨 본인 맞으십니까?
“그런데요?”
- KBA 방송국의…….
이호성은 전화를 끊고 해당 번호를 곧바로 스팸 처리 했다.
X발.
또 방송 출연 권유 전화다.
요즘 들어서 언론사나 방송국에서 수시로 연락이 오고 있다.
똑똑!
인상을 쓰던 중, 누군가 창문을 두드렸다.
이호성은 창문을 내려 창문 밖의 인물을 보았다.
젊은 남자가 빙긋 웃고 있었다.
“방금 전화드렸던 KBA 방송국의…….”
이호성은 입에 담배를 물고 차에서 내렸다.
“작작 좀 합시다! 내가 전화 끊었잖아. 그럼 좀 알아들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저 그것이…… 팬들이 이호성 씨를 너무 궁금해하기도 하고, 뵙고 싶어 하고 있어서.”
“내가 연예인입니까? 나 헌터야. 몬스터 잡는 헌터라고!”
“하하, 잘 알죠. 요즘은 연예인보다 헌터가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광고를 촬영하는 헌터들도 제법 있고요.”
“난 그런 딴따라 아니니까-”
이호성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어? 이호성이다!”
“오, 이호성!”
“우와!”
이호성을 알아보고 주변에서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에이 씨.”
이호성은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차에 타서 액셀을 밟았다.
시민들이 아쉬운 얼굴로 멀어지는 이호성의 차량을 바라보았다.
코너를 돌아 대교로 진입한 이호성은 이마를 벅벅 문질렀다.
“아,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는데…….”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던 이호성은 눈을 크게 떴다.
앞차 후방 범퍼 쪽에 해골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이호성의 얼굴이 밝아졌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바가지가 에이스를 들고 있잖아!”
이호성이 희망을 찾을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괜히 쓸데없는 고생을 했어.”
그리고 민성의 집을 향해 풀 액셀을 밟으며 앞차를 추월했다.
* * *
“헌터님, 다녀왔습니다.”
이호성이 거실로 들어오며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어떻게 됐어?”
민성이 TV 홈쇼핑에서 전복을 팔고 있는 걸 보며 물었다.
“그림자 길드에서는 마인이나 마인의 탑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고 합니다. 외려 저한테 그것에 대해 물을 정도였으니까 말 다했죠.”
민성은 기대도 안 했다는 얼굴로 채널을 돌렸다.
“저 헌터님.”
“왜.”
“제가 오는 길에 생각해 낸 건데, 바가지에게 에이스를 불러내게 해서 물어보는 건 어떨까요? 사실 저번에 에이스에게 폭탄 위치만 물었지, 마인이나 마인의 탑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았잖아요. 폭탄 위치도 말했으니 분명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이호성이 자신 있게 말했다.
민성은 잠시 고민하다가 안방 쪽을 돌아보았다.
“바가지.”
민성의 부름에, 안방 문이 열리면서 걸레를 든 바가지가 뒤뚱거리며 나왔다.
“부르셨어요, 주인님?”
“정원으로 나가서 에이스 좀 꺼내 봐.”
그에 바가지가 걸레를 접어서 한쪽에 둔 뒤, 마당 쪽으로 탁탁 뛰어갔다.
“뭐 해? 가서 확인하고 와.”
“네!”
이호성이 바가지를 바로 뒤쫓았다.
테라스 밖으로 연결된 정원으로 나간 이호성은 바가지를 응시했다.
흑마법 주문을 외우는 바가지의 손끝에서 검은 연기가 뭉실뭉실 흘러나왔고, 이내 하나의 형체를 이루었다.
마치 유령처럼 보이는 언데드, 에이스였다.
에이스는 마치 좀비처럼 ‘그극! 그극!’ 듣기 거북한 소리를 냈다.
눈빛은 초점이 없어 그저 바가지의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인형처럼 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호성은 에이스를 보자마자 몸을 잔뜩 움츠렸다.
놈에게 당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호성은 일정 거리를 두고 좀비처럼 서 있는 에이스를 빤히 보았다.
“야, 바가지. 마인이랑 마인의 탑에 대해서 좀 물어봐.”
이호성의 말에 바가지가 소파에 앉아 있는 민성을 돌아보았다.
민성이 고개를 끄덕여 주자, 바가지가 에이스의 정강이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에이스가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바가지를 내려다보았다.
“마인이랑 마인의 탑에 대해 알고 있는 걸 말하라.”
바가지의 눈에서 검은 연기가 스르륵 흘러나와 에이스의 몸을 휘감았다.
바가지에게 종속된 언데드, 에이스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극! 그그극! 그그그극!”
“……!?”
기괴한 음성을 연이어 내는 에이스의 몸 위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내 에이스가 풀썩 무릎을 꿇더니 잔디 위로 엎어졌다.
푸시시식!
순식간에 밀랍처럼 변해 버린 에이스는 바람에 의해 코스모스처럼 흩어졌다.
본래 에이스가 있던 곳을 바가지가 허망한 눈길로 바라보았고, 이호성은 당황한 얼굴로 바가지와 민성을 번갈아 보았다.
민성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듯 짧은 한숨을 내쉬며 방으로 들어갔다.
“저, 저기. 이게 왜 갑자기 사라지는 거야?”
이호성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물었다.
“너 때문이야!”
“뭐? 이게 왜 나 때문…….”
바가지가 풀쩍 뛰어올라 아침에 물었던 허벅지를 다시 한 번 깨물었다.
콰득!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민성의 집 정원에서 이호성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기다랗게 울려 퍼졌다.
* * *
투투투투투투투!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헬리콥터가 호텔 옥상으로 서서히 착륙했다.
마침 옥상 문이 열리면서 로브의 사내가 나타났다.
헬리콥터의 프로펠러가 일으키는 바람에 의해 로브가 거세게 펄럭였다.
이내 헬리콥터에서 치렁치렁한 긴 머리에 근육질의 체구를 지닌 사내 한 명이 내려 로브의 사내에게로 걸어갔다.
사내를 내려 준 헬리콥터는 다시 상공으로 천천히 떠올랐다.
로브의 사내.
그의 검은 시선이 자신에게로 다가오고 있는 젠 브레드를 두 눈에 담았다.
* * *
호텔 지하 1층에 위치한 바(Bar)에 두 남자가 들어섰다.
로브의 사내와 헬리콥터를 타고 온 젠 브레드였다.
두 사내가 바탑 앞에 앉자, 바텐더가 그들에게 짧은 목례로 인사했다.
미리 예약을 해 놓았기 때문에 따로 주문할 것 없이 바텐더는 곧장 준비해 놓은 술을 가져왔다.
젠 브레드가 커다란 손으로 로열 살루트를 잔에 한가득 따른 뒤 로브의 사내에게 살짝 들어 보였다.
로브의 사내는 생각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젠 브레드는 더 권하지 않고 그대로 술잔을 들었다.
꿀꺽- 꿀꺽-
얼음도 넣지 않고 위스키를 물 먹듯이 원 샷 하고 있는 젠 브레드를 바텐더가 깜짝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때, 로브의 사내가 수표로 된 팁을 건네며 턱짓하자, 바텐더는 놀란 표정을 황급히 감추며 자리를 피해 주었다.
젠 브레드가 빈 잔을 내려놓으면서 말문을 열었다.
“에이스가 죽었다고 들었는데. 고작 한국의 기타 능력자에게 당한 건가?”
대답이 없는 로브의 사내를 보며 그가 피식 웃었다.
“쓰레기다운 최후로군.”
이를 흘려들으며 로브의 사내는 가방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젠 브레드는 술잔을 연거푸 마시다 로브의 사내가 내민 서류를 확인했다.
서류에는 ‘강민성’의 신상과 앞으로의 ‘미궁’ 스케줄이 나와 있었다.
“신탁…….”
젠 브레드가 서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이 남자인가? 내가 만나야 할 자가.”
로브의 사내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열쇠는?”
로브의 사내가 템 창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 바탑 위에 툭 놓았다.
닫힌 미궁을 열 수 있는 열쇠.
바로 미궁의 열쇠였다.
젠 브레드가 그 ‘미궁의 열쇠’를 깊게 바라보다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남의 얘기를 엿듣는 쥐새끼들이 있군.”
“정보기관이다. 잔챙이들이니 신경 쓸 필요 없어.”
“신탁의 약속은 지켜지는 거겠지?”
젠 브레드의 물음에, 천천히 일어서던 로브의 사내가 우뚝 멈추어 서서 그를 응시했다.
“의심하는 건가?”
“그럴 리가. 단지 너무 설레서 현실감이 없을 뿐이야.”
술잔을 어루만지는 젠 브레드의 눈이 흥분으로 물들었다.
로브의 사내는 잠시 이를 지켜보다가 자리를 떠났다.
바를 나가는 로브의 사내를 곁눈질로 돌아보며, 젠 브레드가 피식 웃었다.
그러곤 병을 들어 빈 잔을 다시 채웠다.
그가 술잔을 기울이는 자리 주변으로, 젠 브레드의 검은 기운이 피아노 음률과 함께 고요히 섞여 들었다.
* * *
바가지에게 물린 이빨 자국에 연고를 바르고 있던 이호성은 문자 메시지 알림을 듣고 옆에 놓은 휴대폰을 보았다.
또 방송국이나 언론사 쪽인가 싶었지만, 메시지 내용을 보는 순간 손에 들고 있던 연고를 내던질 수밖에 없었다.
“누구야, 이거……?”
이호성이 굳은 눈으로 메시지를 내려다보았다.
[마인. 그리고 마인의 탑에 대해 알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