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65화>
* * *
중앙 헌터 기관의 본부장은 헛웃음을 흘렸다.
“뭐? 중앙 기관의 스카웃을 거절해?”
부하가 고개를 숙였다.
“네. 따로 모시는 주군이 있다고 거절을 표명했습니다. 그렇게 전달하면 총군주님께서도 이해하실 거라고…….”
“하하…… 나 참, 어이가 없네.”
본부장은 느슨하게 풀어 두었던 넥타이를 꽉 조이며 일어났다.
“어디서 별거지 같은 새끼가. 폭탄 하나 처리했다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본부장이 신경질적으로 혀를 차며 본부장실 문을 발로 차며 나왔다.
자꾸만 헛웃음이 나왔다.
이호성을 스카웃하려고 한 이유는 하나다.
에이스 사건을 해결한 점이 여론에 있어서 긍정적인 작용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잠재 가능성이나 전력 증가에 기대를 거는 건 십 원어치도 없다.
그저 여론 몰이용인 장난감일 뿐.
그런데 고작 300짜리 주제에 감히 중앙 기관을 걷어차?
“그리고 뭐? 총군주께서도 이해하실 겁니다? 이 기생충 같은 새끼가 감히 누구를 입에 담고.”
본부장은 스트레스가 치솟아 올라 우뚝 멈춰 서서 머리를 뒤로 쭈욱 젖혔다.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스트레칭을 하고 심호흡을 한 후에야, 그는 최고층으로 올라갔다.
비서가 본부장을 보고 인터폰을 연결했다.
들어오라는 지시가 떨어지자 비서가 문을 열어 주었다.
본부장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다리를 모으고 서서 경례를 올려붙였다.
“충.”
중앙 기관의 기타 능력자인 김지유는 중앙 헌터 기관의 관리에 직접적으로 나서게 되면서 정식으로 총군주의 직위를 가지게 됐다.
그에 따라 총군주 김지유를 대하는 태도는 더욱 엄격해졌다.
“앉아요.”
김지유가 자리를 가리켰으나 본부장은 고개를 저었다.
“서 있는 게 편합니다.”
“그래서. 무슨 일로?”
그녀가 안경을 벗으며 물었다.
“중앙 기관에 대한 시민들의 여론이 계속 악화되고 있습니다. 간부 회의에서 이미지 타격을 줄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다이아몬드 클랜의 클랜장 이호성을 스카웃하자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제안을 했는데…… 거절하더군요.”
본부장이 여전히 불쾌감이 남은 얼굴로 말했다.
김지유는 그런 본부장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겠죠.”
그에 본부장은 놀란 눈으로 김지유를 응시했다.
“이호성이 말하기를, 모시고 있다는 사람이 하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합니다. 중앙 기관을 배제하면서까지 누군가를 주군으로 둔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이호성과 연관된 자를…….”
“본부장.”
“네. 총군주님.”
김지유의 날카로운 눈빛에 본부장이 허리를 바짝 세웠다.
“여론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진정이 될 겁니다. 몬스터의 습격은 계속될 거고, 시민들의 불안은 자연히 중앙 기관에서 해결해 줄 테니까.”
“하지만 총군주님은 이상하지 않으십니까? 이호성이 중앙 기관을 배재한다는 것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죠.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지방 기관의 기타 능력자 공석 자리입니다.”
“이호성이 총군주님을 입에 담았습니다. 혹, 이호성 위에 있는 자가 총군주님과…….”
“본부장.”
김지유의 보석 같은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지금 뭐 하자는 거죠?”
본부장이 급히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죄송합니다.”
“지방 기관의 기타 능력자들 자리가 공석이 되면서, 지방의 사건 사고가 계속해서 심화되고 있어요. 대체 인원은 없는 상황이고. 이에 대한 대안은 회의를 통해 해결이 된 건가요?”
“그게…….”
본부장이 얼굴에 곤혹스러움을 가득 담았다.
“쓸데없는 일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중요한 안건에 대한 해결이 급선무일 것 같은데. 실망감이 자꾸 커지네요.”
“시정하겠습니다.”
“당장 간부 회의부터 소집 준비하세요.”
“충.”
본부장이 경례를 올린 후, 물러가려고 할 때였다.
“그리고.”
“네. 총군주님.”
“이호성과 관련된 것에 대해서는 관심을 지우세요.”
김지유의 시선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냉각되었다.
“명령입니다.”
본부장은 무겁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한 후, 룸을 나갔다.
그가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 * *
커다란 공장 앞.
사방이 컴컴한 가운데, 로브의 사내가 쇠문을 열었다.
그그극!
두꺼운 문이 열리면서 공장 안의 풍경이 서서히 들어찼다.
까아아앙! 까아아앙! 까앙!
대장장이들이 밝은 등 아래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무기를 고치거나 만들고 있는 풍경이 보였다.
로브의 사내는 저벅저벅 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갔다.
업무에 열중하고 있는 대장장이들을 지나, 안쪽 깊숙한 곳에 위치한 방 앞에 선 그는 문고리를 잡았다.
철컥!
문이 열리자, 중년인이 로브의 사내를 보고 노트북에서 손을 뗐다.
“아, 오랜만이야?”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대장간의 주인이 환하게 웃으며 그를 반겼다.
로브의 사내는 템 창에서 자신의 무기인 박도를 꺼내 던졌다.
박도가 테이블 위에 쿵! 하고 무거운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대장간 주인은 박도를 자세히 보며 허허 웃었다.
“많이 상했네? 어디 가서 드래곤이라도 잡고 온 거야?”
“흰소리 말고, 얼마나 걸려?”
로브의 사내가 물었다.
“으음, 어디 보자. 한 일주일은 걸리겠는데?”
“사흘.”
대장간 주인의 얼굴이 폭삭 늙었다.
“아아, 왜 이래 진짜. 우리 바쁜 거 알면서. 3일은 도저히 무리라고.”
“나흘까지. 그 이상은 안 돼.”
대장간 주인이 뭐라 하려다 로브 사내의 눈빛을 보고 땅이 꺼질 듯이 한숨을 쉬었다.
“아, 알았다, 알았어. 잠도 못 자고 죽어나겠구만. 그나저나 무기는 왜 안 바꾸는 거야? 요즘 이 박도보다 훨씬 좋은 것들이 널렸는데. 전부터 궁금했다고.”
로브의 사내는 과거를 회상하는 눈으로 박도를 보다가 몸을 돌렸다.
“나흘이다.”
로브의 사내가 나가고, 대장간 주인은 머쓱한 얼굴로 입술을 씰룩였다.
* * *
로브의 사내가 최고급 슈퍼카인 페라리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자, 차가 강렬한 배기음을 토해 내며 출발했다.
공장 부지를 빠져나오는 중에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버튼 하나를 누르자, 차량 우측 유리창에 휠체어에 앉은 사내가 나타났다.
- 대장간에 다녀오는 길이야?
“어.”
로브 사내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 만나서 얘기할까. 아니면 여기서?
“지금 해.”
- 강민성이 아니라 이호성이 언론에 떠 버렸어. 예상과는 조금 다르게.
“별로 문제는 없을 텐데.”
- 그렇긴 하지. 그리고 곧 젠 브레드라는 헌터가 한국에 도착할 거야.
“젠 브레드라면, 아메리칸 마스터 직속 기관에서 퇴출된 그놈인가?”
- 맞아. ‘강민성’이라는 계획에 없던 녀석이 나타난 탓인지 시기가 좀 당겨진 것 같아.
“놈의 목적은 복귀?”
- 아니. 놈은 한국의 지배를 선택했다. 점층적으로 세력을 넓혀 나갈 생각이겠지. 그게 신탁을 받든 조건이었다. 곧 만날 수 있을 거야.
로브의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버튼을 터치해 통화를 종료했다.
* * *
침대에서 내려왔다.
마계에서의 습관은 거의 떨어져 나갔다.
아무리 깊은 수면에 빠지고 싶어도 몸의 리듬이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아 늘 정신은 거의 반쯤 깨어 있다시피 했지만, 그래도 지금은 경계 없이 잠들 수 있었다.
평화로운 세상이 그의 경계를 지운 것이다.
하지만 최근, 마음 한편에 걸리는 그늘이 생겼다.
에이스가 말했던 대로 만약 마인이 실존한다면…….
살점 하나 남지 않도록…… 박멸시켜 줄 생각이다.
* * *
평범한 이튿날의 일상이 시작됐다.
하루 일과의 패턴 중 그 시작점은 커피다.
모닝커피는 머리를 깨끗하게 비워 준다.
미미하지만 확실히 각성 효과가 있었다.
신체 외부와 내부의 면역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건 꽤 중요한 재주다.
민성은 커피를 마시며 마당으로 나갔다.
맴- 맴!
매미 소리가 울렸다.
신기하다.
보통 시끄러운 소리는 소음이 되기 마련이지만 자연의 소리는 시끄럽지가 않다.
외려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만 같다.
짹- 짹!
기분 좋은 새소리도 함께 들으며 민성은 테이블 앞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옆으로 시선을 돌리자, 햇빛을 피해 그늘진 잔디밭 위에서 몸 이곳저곳을 긁으며 자고 있는 이호성이 보였다.
민성은 야외에서 하룻밤을 보낸 이호성을 보면서 생각했다.
오늘 아침은 뭘 먹지……?
맛집도 중요한 요소이지만, 무엇을 먹을지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이호성은 심지어 메뉴 추천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메뉴와 이호성의 인적 자원 가치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배가 고파졌다.
민성은 배를 문지르다가 고개를 들어 이호성을 보았다.
이제 막 해가 떠오르고 있는 이른 시간이다.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다.
민성은 다 마신 커피잔을 내려놓고 천천히 일어섰다.
집안일이야 리치 인형인 바가지가 늘 하고 있어서 깨끗하지만, 정원은 처음 구입한 이후로 관리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나무와 잔디가 조금은 말라 있었다.
정원에 자동 분수 시스템은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확실히 부족해 보였다.
‘밥 먹으러 가기 전에 물이나 조금 줘야겠군.’
수도꼭지를 틀고 연결된 호수를 들어 나무와 잔디에 물을 주고 다녔다.
그러기를 잠시, 이호성이 손등으로 눈을 문지르며 일어났다.
“헌터님, 뭐 하세요?”
그가 모기에 물린 목을 북북 긁으며 반쯤 감긴 눈으로 물었다.
“오늘 아침 메뉴 좀 추천해 봐.”
민성이 정원에 물을 주면서 말하자, 이호성은 퉁퉁 부은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민성을 보았다.
“저기 헌터님.”
이호성이 짧게 한숨 쉬며 말을 이었다.
“아니, 근데 이게 사람 새X가 할 짓입니까? 진짜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제가 무슨 동네 강아지도 아니고. 마당 잔디밭에서 자다 일어나고. 이게 무슨…….”
“그럼 나가.”
이호성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헌터님, 그게 아니고요.”
“그게 아니면 아침 먹을 준비해.”
민성이 호스를 던졌다.
“이거 정리하고. 아침 메뉴는?”
이호성은 체념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순두부찌개.”
“콜.”
민성이 그대로 집 안으로 돌아가자, 이호성은 조용히 일어나 호스를 정리하고 민성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