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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64화 (64/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64화>

“헌터님, 방금 뭐라고……? 절 믿으셨다고요?”

민성이 소주가 차 있는 잔을 들어 마시고 탁 내려놓았다.

“너라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

이호성은 당혹감과 감동이 섞인 눈으로 민성을 보았다.

“가, 감사합니다.”

예상외의 답변이었기 때문이다.

“다 먹었으면 가자.”

민성이 드르륵 의자를 밀며 일어났다.

카드를 꺼내려 하자 이호성이 민성을 앞질렀다.

“헌터님. 오늘은 제가 계산하겠습니다. 모처럼 헌터님이랑 함께한 자리니까요.”

이호성이 카운터를 보고 있는 주인에게 재빨리 카드를 내밀었다.

“우리 서울시를 지켜 준 영웅인데, 오늘은 돈을 받지 않겠습니다. 맛있게 드셨어요?”

주인이 친절한 웃음을 얼굴에 걸며 말했다.

이호성은 민성의 눈치를 살피며 식은땀을 흘렸다.

“저기, 사실 그…… 서울을 구한 게 저만 잘해서 그런 게 아니고요. 실은…….”

“가자.”

민성이 가게 문을 열고 먼저 나갔다.

이호성은 민성이 나간 방향을 보다가 주인에게 가볍게 목례했다.

“잘 먹었습니다. 정말 맛있었어요. 제가 모시는 분도 만족하신 것 같고요.”

“뉴스에서는 헌터님이 클랜장이라고 하던데. 헌터님이 모시는 분이라면 엄청 높으신 분이겠네요? 저분은 어떤 분이십니까?”

주인의 물음에 이호성은 생각에 잠겼다.

강민성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던 그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인류의 미래.”

“……네?”

어리둥절한 주인을 향해 이호성이 빙긋 웃었다.

“그럼 수고하세요.”

주인은 이호성이 나간 후,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 * *

민성을 뒷좌석에 태우고, 민성의 집으로 가는 길.

이호성은 백미러를 통해 민성을 흘긋 보았다.

“헌터님.”

“왜?”

민성이 창밖을 보며 대답했다.

“아까 화장실 갔을 때 잠깐 휴대폰을 봤는데요. 지금 실시간 검색어 1위가 워프 게이트라고 합니다.”

“워프 게이트?”

“네. 쉽게 얘기하자면 공간 이동을 가능하게 해 주는 기계랄까요. 예컨대 한국에서 저희가 독일로 갈 때 비행시간이 엄청 길지 않았습니까? 워프 시스템이 정식으로 상용화되면 한국에서 독일로 가는 것이 1분도 걸리지 않게 되는 겁니다.”

“상용화 시기는?”

“아직 정확한 시기에 대해서는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라고 합니다.”

“밥 먹기 쉬워지겠네.”

“네. 이제 편하게 해외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금액이 굉장히 부담스러워서 그게 조금 문제이긴 하거든요.”

“얼만데?”

“1회 사용료로 8만 달러. 우리나라 한화로 약 8,700만 원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근데 그건 해외고, 우리나라에 워프 시스템이 들어오면 뭐 세금 때문에라도 한 1억 정도는 가뿐히 하겠죠?”

“돈이야 벌면 되는 거니까.”

민성이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쉽게 말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왕복으로 2억이다. 시간을 아낄 수 있는 만큼 금액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엄청난 금액을 무슨 고속 열차를 타는 것처럼 말하다니…….

역시 스케일이 달라.

이호성은 속에서 기대감이 불쑥불쑥 솟아올랐다.

강민성이 워프 게이트를 이용하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

돈을 벌기 위해선? 당연히 던전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던전이 돈 나오는 유일한 구멍이니까.

던전에 가게 되면? 쩔은 자동이다.

더군다나 에이스를 죽이면서 300레벨이 넘게 됐으니 미궁 입장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미궁에 입장하게 되면 경험치 획득은 그야말로 폭발적!

감히 꿈도 꾸지 못했던 경지의 레벨을 달성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호성은 히죽히죽 웃었다.

꼽사리만 낄 수 있다면 강민성의 사냥 속도에 의해 그야말로 최상의 결과를…….

“이호성.”

“네? 헌터님!”

“너 지금 워프 게이트 때문에 내가 던전 가면 쩔 받을 생각하고 있지?”

민성이 창밖을 보며 낮은 톤으로 말했다.

심장에 차가운 창 하나가 꽂히는 것만 같다.

이호성은 심장이 빠르게 뛰고 식은땀이 목덜미를 축축이 적시는 걸 느꼈다.

“헌터님! 절대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그런 불손한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까지의 헌터님 은혜만 해도 하해와 같은…….”

“네 얼굴에 다 쓰여 있어.”

이호성이 손바닥으로 축축해진 얼굴을 조용히 문질렀다.

“대기.”

민성이 24시간 대기를 의미하는 명령어를 이호성에게 입력했다.

이호성은 억지웃음을 안면에 띠었다.

“영광스러운 마음으로 대기하겠습니다.”

클랜도 운영해야 되고, 레벨 업도 해야 되고, 무장의 검이 깨진 탓에 무기도 구해야 하는데…….

“인간이라는 게 그래. 몸이 편해지면 마음도 편해지고 싶고. 마음이 편해지면 더 나은 환경을 원하게 되고. 그 환경을 얻게 되면 그다음엔…… 거치적거리는 걸 치우고 싶어지는 거지.”

이호성은 심장이 콩닥거리는 걸 넘어, 마석 폭탄을 달아 놓은 듯 미친 듯이 뛰었다.

“허, 허, 허, 허 헌터님. 절대 아닙니다. 제가 무슨 수로 헌터님을. 게다가 저 많이 변했습니다. 진심이에요. 지금은 헌터님을 주군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의 충심을 곡해하지 말아 주…….”

백미러를 통해 민성이 웃는 게 보였다.

악마가 웃는 것처럼 보였다.

이호성의 배 속이 서늘해졌다.

옛말에 잘될 때일수록 겸손하고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

괜한 말이 아니었어.

잠시 망각했다.

자신이 누구를 받들고 있는지.

강민성은 강민성이다.

“주, 주제가 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끼익!

강민성의 저택 앞에 이호성의 차가 멈춰 섰다.

“차에서 자지 마라. 차랑 같이 폭발하기 싫으면.”

민성이 그렇게 말하며 차에서 내렸다.

이호성은 잠시 멍한 얼굴로 허공을 보다가 해쓱해진 얼굴로 차에서 내려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편히 쉬십시오, 헌터님!”

민성은 쳐다보지도 않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이호성은 머리를 들었다.

그러곤 지친 얼굴로 민성의 저택을 응시했다.

그래. 틀린 말은 아니다.

레벨도 오르고 하니까 머리가 굵어진 건 인정한다.

그래도 말이야.

내가 만약에 2천 레벨이 넘는다고 해도 당신 뒤통수를 칠 수 있을까? 응? 내가 아무리 머리 검은 짐승이라고 해도 말이야.

감히 당신을 칠 생각을 하겠느냐고.

당신이 누군데?

이호성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X발. 역시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다.

앞으로는 그냥 존X 가만히 있어야겠어.

휴.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지. 괜한 말은 해 가지고.

그보다 차에 가서 쉬면서 대기할 수도 없고 X됐네.

애애애애애앵.

이호성은 귓가에 날아다니는 소리에 손바닥으로 모기를 후려쳤다.

왜애애애애앵.

“에이 씨. 진짜.”

신경질을 내며 모기를 물리고 있는데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이호성은 손바닥으로 목을 탁 때리며 휴대폰에 뜬 발신자를 확인했다.

저장된 이름이 아니라 040으로 시작되는 번호다.

이호성은 깜짝 놀란 얼굴로 발신 번호를 다시 한 번 보았다.

040은 중앙 기관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번호다.

중앙 기관에서 왜 연락이 온 거지?

이호성은 의아하게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안녕하십니까. 중앙 기관의 인사과 팀장입니다.

이호성은 긴장하며 허리를 구부정하게 굽혔다.

“아, 네! 어쩐 일로 연락을……?”

- 긴히 드리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혹시 내일 시간 괜찮으십니까?

이호성은 강민성의 저택을 흘긋 보았다.

“아, 내일이요? 글쎄요, 제가 지금 쉽게 움직일 수가 없는 상황이라서…….”

- 무슨 문제가 있으십니까? 저희가 도와 드릴 수 있는 문제라면 도와 드리겠습니다.

이호성은 뱀눈을 하고서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중앙 기관에서 못할 게 뭐냐 싶겠지만 못하는 게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강민성의 명령’으로 24시간 대기하게 된 거니까.

중앙 기관도 못하는 일이라는 게 있다니 기가 차는구만.

“아니요 뭐 딱히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요.”

강민성 때문에 24시간 대기해야 한다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스케줄이 좀 있어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죄송하지만 지금 전화로 얘기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 음. 시간이 없으시다니 그럼 전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저희 중앙 기관에서 이호성 씨를 모시고 싶다는 뜻을 전하고 싶어 이렇게 연락을 드리게 됐습니다.

이호성은 멍한 눈으로 허공을 보았다.

“저를…… 중앙 기관으로요?”

- 그렇습니다.

실감이 나질 않아 그저 눈만 깜빡였다.

중앙 기관이 어떤 곳이던가?

청와대도 발로 밟고 서 있는 최고의 헌터 기관이다.

중앙 기관에 소속되어 있다는 배지만 달고 있어도 환경은 180도 달라진다.

그야말로 최고의 신분 상승을 증명하는 명패와도 같은 셈인 것이다.

하지만…….

“죄송합니다. 그건 좀 어려울 것 같네요.”

- 네……?

예상치 못했던 답변이었는지 수화기 너머로 신음에 가까운 소리가 들렸다.

하긴, 말단직도 아니고 중앙 기관의 팀장이 직접 스카웃을 제안했는데, 300 초반에 불과한 주제에 중앙 기관의 스카웃을 발로 차다니.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을 만한 대답이었다.

- 이유을 들을 수 있을까요?

“그게…… 제가 모시는 분이 있어서라고 하면…… 총군주께서도 이해하실 겁니다.”

이호성이 똥을 씹은 듯한 얼굴로 쓰게 웃었다.

“그렇게 전해 주십시오. 제겐 저의 주군이 있다고.”

- 알겠습니다.

전화가 끊어졌다.

이호성은 팔짱을 끼고서 강민성의 저택을 응시했다.

그러고 보면…… 새삼스레 강민성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최고의 권력을 가진 중앙 헌터 기관.

그 어마어마한 곳을 단신으로 밟고 설 수 있는 유일한 남자가 바로 자신이 모시고 있는 강민성이라는 인간이다.

천상계의 위에 선 신.

그게 바로 강민성인 것이다.

그런 엄청나고 대단한 인간을 모시고 있는 건 분명 영광스러운 일이긴 한데…….

왜애애애애앵!

이호성은 이마에 붙은 모기를 손바닥으로 탁 때렸다.

피 묻은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강민성이라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지존과 함께하는 거긴 한데…….

“왜 이렇게 착잡하지?”

이호성은 처량한 얼굴로 다시 한 번 한숨을 토해 냈다.

“아오, 간지러.”

이호성이 몸을 북북 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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