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삼시세끼-62화 (62/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62화>

이호성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마치 깨진 유리처럼 검이 얇은 파편이 되어 흩어졌다.

거세게 불어나는 마석 폭탄의 화염 폭발.

이호성의 동공이 확장되었을 때.

김지유가 이호성을 뒤로 당기며 레이피어를 휘둘렀다.

오러를 품은 레이피어가 눈부신 속도로 마석 폭탄의 마지막 폭발을 잘라 냈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폭발의 잔해.

마치 기름에 불이 떨어지듯 사방으로 불이 번져 나갔다가, 이내 그 힘을 잃고 허공에서 흩어졌다.

몸이 시커먼 잿빛으로 그을러진 태겸이 힘없이 뒤로 넘어갔다.

“힐러!”

김지유가 뒤를 돌아보며 다급히 소리쳤다.

대기 중이던 2차 힐러들이 쓰러진 태겸을 향해 달려갔다.

그사이 마석 폭탄의 폭발이 완전히 연소된 것을 확인한 이호성은 50년은 늙은 것 같은 얼굴로 철퍽 엉덩방아를 찧으며 대(大)자로 바닥에 누웠다.

그는 천장을 보며 코웃음을 흘렸다.

이 무능한 중앙 기관 마피아들.

폭발 테러에 대한 대비도 미리 안 해 놓고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이호성은 눈물이 맺힌 얼굴로 숨을 길게 뱉었다.

안도의 감정이 가슴에 물들고 있다는 것만이 유일한 위로였다.

“이호성 씨. 고생하셨습니다.”

김지유가 이호성을 내려다보며 지친 표정으로 웃었다.

이 마당에 왜 이렇게 예쁘냐, 이 여자는.

애써 웃는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순수함이 순도 100퍼센트는 될 것 같은 천사의 미소였다.

“이호성 씨 덕분이에요. 호성 씨가 서울을 살린 거예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김지유가 진심이 담긴 눈길을 흘려보냈다.

‘덕분은 개뿔. 강민성 없었으면 서울이 아니라 아주 대한민국 자체가 지도에서 사라졌을 겁니다.’라는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자신이 서울을 지켰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꽤 의미 있게 다가왔으니, 이 정도는 즐겨도 되려나?

보잘것없는 뒷골목의 파락호였던 그가 이런 막중한 임무를 해냈다는 것에 꽤 미묘한 심정이 들었다.

……그래도 살았구나.

해냈어.

이호성은 높은 빌런 수용소의 천장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그때…….

“총군주님.”

부하의 부름에 김지유가 뒤를 돌아보았다.

“조사단장은?”

“2차 힐러가 붙었을 때는…… 이미 사망한 이후였습니다.”

김지유가 쓰러져 있는 조사단장을 눈물이 번진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호성은 상체를 일으켜 넋 나간 얼굴을 한 채, 시커멓게 그을린 태겸을 응시했다.

결코 숭고한 죽음이라고만은 볼 수 없는 참혹한 결과였다.

* * *

에이스의 마석 폭탄 사건을 해결한 직후, 중앙 기관의 기타 능력자 김지유는 대회의를 소집했다.

단상 위에 선 그녀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대회의장 안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만약 이호성 씨가 무장의 검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우린 끔찍한 재앙을 맞이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김지유의 말에 장내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2년 전, 테러 대비책에 대한 회의가 오랫동안 이어졌었죠. 그때부터 지금까지, 최고 직급을 가진 많은 분들이 예산이 초과된다는 이유로 해결 방안에 대해 쉬쉬하기만 하였고, 결국 지금과 같은 위기를 맞이해야만 했습니다.”

김지유는 쓸쓸함이 담긴 눈으로 아래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헌터는 몬스터를 막기 위한 ‘구원’의 존재였습니다. 때문에 그 가치를 인정받아 부와 명예, 그리고 그에 걸맞은 특별한 대우를 받아 왔던 겁니다.”

김지유의 책망에 대회의장이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차가워졌다.

“하지만 저 역시 눈이 멀어, 보다 더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

고개를 들지 못하는 고위 인사들을 보며 김지유는 엷게 웃었다.

“책임은 저에게도 있습니다. 책임은 우리 모두의 것이에요.”

김지유의 눈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헌터로서의 본분을 지키지 않으려는 자에 대해서는 과감한 인사 조치를 취할 예정입니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중앙 기관을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부와 명예가 아닌, 인류의 구원을 위한 걸음을 걸어야 할 중앙 기관으로서, 엄격한 특무 기관으로서의 자세를 유지해 주시기를-”

그녀가 다짐하듯 말을 이었다.

“-중앙 기관의 총군주로서 명하는 바입니다.”

대회의장에 집결한 고위급 인사 전원이 벌떡 일어나 경례를 올려붙였다.

“충-!”

중앙 기관 최고 직급 헌터들의 외침이 대회의장을 커다랗게 울렸다.

* * *

“이호성 씨! 당시의 상황을 보다 자세히 들을 수 있을 까요?”

“중앙 기관에서는 이번 에이스 사건을 해결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이 이호성 씨라고 밝혔습니다!”

“레벨이 300대인 이호성 씨만이 유일하게 이번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였다고 하는데요. 어떻게 그런 중요한 책임을 맡게 된 거죠?”

수많은 기자들이 이호성을 둘러싸고서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며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이호성은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엄청난 수의 카메라와 기자들을 잔뜩 긴장한 얼굴로 훑어보았다.

“아…… 그러니까 그게 말이죠.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난처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좀처럼 감이 잡히질 않았다.

때문에 이호성은 논란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간략히 말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운 좋게 ‘무장의 검’이라는 전설 등급의 무기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는 마법 폭발을 분해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진 무기였습니다.”

“중앙 기관에서는 마석 폭탄의 폭발을 분해할 기술이나 능력이 없었다는 뜻입니까?”

이호성은 짧게 한숨 쉬었다.

“저 혼자가 아니라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이번 사고를 막을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4성 조사단장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이호성의 얼굴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호성 씨?”

“안타까운 사고라고 생각합니다. 헌터로서 국가를 지키기 위한 희생에 경의를 표합니다.”

찰칵, 찰칵, 찰칵!

불쾌감으로 잔뜩 굳어 있는 이호성의 얼굴이 카메라 플래시에 의해 하얗게 번쩍였다.

* * *

공식적인 보도가 나가고 있는 가운데, 중앙 기관 4성 조사단장 태겸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공중파에서 특집으로 방송될 만큼 태겸의 장례는 꽤 거창하게 진행됐다.

중앙 기관은 테러에 대한 대처가 미흡했다는 이유로 시민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있음에도 그에 대한 일체의 변명을 하지 않고, 그들이 해야 할 절차에 집중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 * *

이호성은 강민성의 집 앞에 도착해 창문을 내리고 차 안에서 담배 한 대를 태웠다.

이렇게 느긋하게 담배를 피울 수 있다니.

살아 있다는 사실이 다시금 깨우쳐진다.

이호성은 담배를 피우면서 휴대폰을 꺼내 뉴스 기사를 보았다.

뉴스에는 온통 에이스 사건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중앙 기관, 태겸의 장례식, 그리고 바로 이호성 자신의 인터뷰가 주를 이루고 있다.

꽤 유명해진 덕분인지 휴대폰에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초등학교 동급생부터 시작해 수많은 사람들의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밀려 있었다.

이호성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은 뒤,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강민성의 집을 보며 한숨 쉬었다.

국가의 영웅이 되면 뭐 하나?

조사단장이 죽은 것도 그렇고, 맛집 셔틀을 벗어날 수 없는 건 매한가지인 데다 무엇보다 무장의 검까지 파괴되어 날아갔는데.

“휴우.”

소주 한 잔 하고 싶은 날이다.

* * *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어떠십니까?”

이호성이 말했다.

민성은 그가 말한 메뉴를 머릿속에 떠올려 보았다.

삼겹살에 소주라…….

아주 오래전부터 고전적인 인기를 누려 온, 가히 명문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한 메뉴다.

늦은 밤 배고픔을 달래기엔 더없이 좋은 음식이었다.

“괜찮은 곳이 있겠지?”

민성이 물었다.

“물론입니다.”

이호성이 자신만만하게 미소 지었다.

“바로 출발하지.”

* * *

차가 삼겹살집 앞에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내리자마자 삼겹살 구워지는 냄새가 진동했다.

민성은 그 냄새에 미간을 구기며 가게 간판을 보았다.

[돗추렴]

간판 아래에는 상호에 대한 설명이 작게 있었다.

돗추렴 : 돈을 모아 돼지를 잡는 것

민성은 가볍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주억였다.

그런 의미였군.

상호부터 웃음을 짓게 만드는 가게다.

“그럼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너도 들어와.”

“네? 저도요?”

“그래. 고기 구워야지.”

이호성이 헛기침을 하며 뒤따랐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실내는 생각보다 넓었다.

식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고기를 구워 먹으며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마석 폭탄 사건에 대해서였다.

그래서일까.

전국적으로 방송을 타면서 얼굴이 알려진 이호성이 들어오자, 손님들이 하나둘 그를 알아보고선 가게에 일순 적막함이 맴돌았다.

“이호성 아니야?”

“그 마석 폭탄 막아 냈다는?”

“오-! 이호성이다.”

조용하던 가게 내부가 이내 이호성에 의해 시끄러워졌다.

“이야! 서울을 구해 냈다는 그 양반 아니야?”

“아이고, 고생 많았어요.”

“무능한 중앙 기관보다 이런 사람이 진짜 헌터지!”

“서울을 지켜 줘서 감사합니다!”

“오늘 고기는 내가 사 주리다!”

“아니야, 내가 사겠어!”

“그럼 술은 우리가!”

사방에서 이호성을 향해 연신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민성은 어안이 벙벙해 있는 이호성을 보며 엷게 웃었다.

“가서 앉자.”

민성이 이호성과 비어 있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죄송합니다. 사실상 서울을 구한 건 제가 아니라 헌터님인데, 괜히 제가 주목을 받게 돼서…….”

“이호성.”

“네?”

“난 세간의 관심 같은 건 질색이다. 앞으로도 필요하다면 카메라 앞엔 네가 나서야 할 거야.”

민성이 자신의 입장을 확실하게 표명하자, 이호성이 그런 민성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네. 헌터님이니까요.”

그에 민성은 찌릿하는 눈으로 이호성을 보았다.

“무슨 뜻이야?”

“헌터님다워서요. 역시 그릇이 다르달까?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겁니다.”

민성이 다시 메뉴판으로 시선을 내렸다.

“주접 떨지 말고 메뉴부터 추천해 봐. 육지 돼지 오겹살과 섬 제주 오겹살이 있는데, 가격 차이는 천 원. 섬 제주 오겹살이 더 비싸니까 이게 더 맛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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