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58화>
“이 작은 나라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헌터가 겨우 이런 계집애라니. 신도 참 가혹하기도 하시지.”
별다른 대꾸 없이 김지유는 냉철한 눈빛으로 에이스를 향해 돌진했다.
눈 깜짝할 사이, 그녀가 에이스의 코앞에 이르렀을 때-
“조사단장 태겸.”
레이피어가 에이스의 이마 끝에서 멈췄다.
“놈의 몸에 서울을 날려 버릴 만한 마나 폭탄을 달아 놨다.”
김지유는 넋이 나간 얼굴로 에이스를 보며 완전히 굳어 버렸다.
에이스가 킬킬 웃으며 오러가 담긴 주먹으로 김지유의 명치를 때렸다.
당황한 탓에 미처 대응하지 못한 김지유는 30여 미터를 날아가 바닥을 굴렀다.
에이스는 곧바로 크히히! 웃으며 폭탄을 던졌다.
콰아아아아아앙!
뿌연 흙먼지 사이로 김지유가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다.
그녀의 얼굴에는 전에 없던 무거운 살기가 서려 있었다.
“와우. 역시 기타 능력자라 이건가?”
김지유의 레이피어에 새파란 굵은 오러가 맺혀 들고, 눈에서는 파란 불꽃이 일렁였다.
당장 세상이라도 뒤엎을 만한 눈빛이었다.
에이스는 그런 그녀의 눈을 보며 재밌어 죽겠다는 듯이 웃어 댔다.
“크히히히, 크히. 빌런 수용소가 폭파되면서 기관에 있던 모두가 피신을 시작했지. 그때 놈을 만났어.”
“…….”
“중앙 기관의 지배자, 김지유. 무기를 버려라. 서울을 구하고 무고한 시민들을 구하고 싶다면.”
에이스가 품 안에서 휴대폰을 꺼내 동영상 하나를 튼 다음, 김지유의 발치 아래로 던졌다.
휴대폰에는 태겸이 피로 물든 채 묶여 있는 모습이 촬영되어 있었다.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태겸은 상당히 지쳐 보였다.
김지유가 눈물이 잔뜩 배어든 얼굴로 손에 들고 있던 레이피어를 놓았다.
적막한 도로에 레이피어가 떨어지는 소리가 퍼졌다.
에이스는 코를 훌쩍이며 주변을 훑어보았다.
“근데 그 많던 중앙 기관의 병사들은 왜 보이지 않는 거지?”
그가 김지유를 보며 웃음을 흘렸다.
“아아. 혹시나 무고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철수 명령을 내리고 친히 움직이신 건가?”
에이스는 미동도 없이 휴대폰의 영상만 보고 있는 김지유를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우리 대한민국의 유일한 구원자가 고작 이렇듯 검조차 들지 못하고 있으니, 크히히히!”
에이스가 재차 폭탄을 던졌다.
꽈아아아아아앙!
마석 폭탄이 김지유의 몸에 정통으로 적중하자, 그녀는 바닥에 쓰러진 채 얕은 피를 뿜었다.
“음음, 누구의 뼈부터 부수는 게 재미있을까?”
에이스는 쓰러져 있는 이호성과 김지유를 번갈아 보다가 시선을 한쪽에 고정시키며 입을 헤벌쭉 벌렸다.
“당첨-♪”
* * *
“크윽! 쿨럭!”
이호성은 비릿한 피가 섞인 침을 삼키며 기침했다.
빌어먹을…… 큰일이야.
자신에게 걸어오고 있는 에이스가 보이자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대미지가 너무 커서 움직일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자신의 수준을 너무 과신했다.
고작해야 200대 초반 레벨밖에 되지 않는 주제에, 검 한 자루만 믿고 에이스를 자극한 게 문제였어.
어떻게 최대한 시간을 끄는 쪽으로만 집중했어야 했는데.
놈을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다.
중앙 기관의 기타 능력자가 저 여자라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녀조차도 에이스에게 휘둘리고 있었다.
……이대로 끝인 건가.
“좀 전에 하지 못했던 고문 놀이를 시작해 볼 건데, 어때? 기대가 좀 돼?”
에이스가 망치를 빙글빙글 돌리며 웃었다.
이호성은 몸이 점점 더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기억해. 이 작은 땅은 이 몸으로 인해 지옥으로 변하게 될 거다. 혼란과 어둠, 그리고 피와 죽음으로 가득한 땅이 될 거야.”
전신이 벌벌 떨렸다.
곧 이 미치광이에게 무차별적인 고문을 당하게 될 거라는 사실이, 힘이 하나도 없는 와중에도 온전하게 몸을 지배했다.
“이호성. 지금부터 네 뼛조각을 마치 쏟아 낸 퍼즐처럼 만들 예정이야. 포션은 넉넉하니 고통의 시간은 충분하겠지. 자, 그럼 시작한다?”
에이스가 흥분한 얼굴로 이호성의 발등을 망치로 내려찍으려는 순간, 이호성이 웃음을 터트렸다.
“큭큭큭! 크큭! 하하하하하하하!”
미친 사람처럼 커다랗게 웃는 그를 보며 에이스가 미간을 구기고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호성은 눈물까지 맺힌 얼굴로 에이스를 올려다보았다.
“야, 폭탄 변태. 크큭! 넌 이제 끝났어.”
“……?”
“시간을 끌 수 없을 줄 알았는데, 네 길고 긴 혓바닥이 우릴 살렸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고문을 앞두고 머리가 어떻게 된 거냐?”
이호성이 상기된 얼굴로 에이스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드디어 나타났어.”
“나타나? 누가?”
“내가 말했잖아. 인류 역사상 가장 불합리한 존재가 널 찾을 거라고.”
에이스는 등골이 서늘했다.
그제야 등 뒤에 누가 서 있음을 느낀 것이다.
* * *
“맛집 부수고 다닌다는 놈이 얘야?”
에이스는 자신의 등 뒤에 서 있는 존재를 뒤늦게 감지하고서 화들짝 놀라며 팟! 하고 물러섰다.
“야, 이호성. 위치를 똑바로 말해야 할 거 아니야. 찾는데 고생했잖아.”
민성이 쓰러져 있는 이호성을 보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이호성은 잔뜩 지쳐 있는 얼굴로 힘없이 웃었다.
“죄송합니다. 전화를 안 받으셔서 메시지를 보낼 틈이 없었어요.”
“잤어.”
“…….”
민성이 에이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됐고. 쟤가 그놈이라는 거지?”
“네. 폴 에이스, 쿨럭! 서울 전역을 터트리고 다녔던 그 미치광이 테러범입니다.”
기침을 하며 힘겹게 내뱉은 이호성의 말에, 민성은 짜증이 배어든 눈으로 에이스를 노려보았다.
“치킨 못 먹게 건물 부순 게 너냐?”
그렇게 묻자 에이스는 코웃음을 흘렸다.
“크히히, 네놈. 아직 사태 파악을 잘 못하는 모양인데…….”
민성이 눈살을 구겼다.
“사태 파악을 못 해? 새끼가 묻는데 딴소리는.”
민성의 신형이 일순 증발하듯 사라졌다.
눈을 한 번 깜빡였을 때 민성은 에이스의 앞에 나타나 있었다.
자세를 살짝 낮춘 민성이 주먹으로 에이스의 허벅지를 후려쳤다.
뻐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에이스는 마치 다람쥐가 쳇바퀴 도는 것처럼 회전하다가 바닥에 철퍽 쓰러졌다.
“끄어억…….”
에이스가 입을 쩍 벌리고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그의 이빨에 피가 잔뜩 묻어났다.
민성은 무정한 눈으로 에이스를 보며 템 창에서 오리하르콘 단검을 꺼냈다.
그대로 검을 바로 내려찍으려는 그때.
“안 돼!”
김지유가 비명처럼 소리 쳤다.
민성이 검을 멈추며 김지유를 돌아보았다.
“넌 또 왜 여기 있어?”
“……그를 죽이면 안 돼요.”
그녀가 힘겹게 일어나면서 말했다.
“왜?”
“에이스가 중앙 기관의 조사단장 태겸을 납치해서 그의 몸에 폭탄을 달아 놨어요. 서울을 날려 버릴 만한 힘을 가진 마석 폭탄을.”
민성은 김지유와 에이스를 보다가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이호성이 엉금엉금 기어 와 에이스가 들고 있던 치료 회복 물약을 뺏어 마시고 있었다.
“뭐 하냐?”
회복 물약을 마심으로써 에이스에게 받았던 대미지가 급격히 치유되자, 이호성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후우…… 헌터님. 제가 인질로 잡혀 있는 조사단장을 찾아오겠습니다.”
“네가 왜?”
“네……?”
민성이 다시 이호성에게서 고개를 돌려 김지유를 쏘아보았다.
“네 부하잖아. 직접 찾아. 그때까지 이건 가능한 살려 둘 테니까.”
민성은 여전히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에이스의 엉덩이를 툭 찼다.
김지유의 얼굴이 흐려졌다.
“하지만 어디 있는지 위치를 아직…….”
민성이 에이스의 멱살을 잡아 들어 올렸다.
에이스는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민성을 내려다보며 킬킬 웃었다.
“와…… 진짜 강하네? 거의 반응하지도 못했어. 거리가 꽤 있었는데도.”
“어디 있어? 조사단장이라는 놈.”
에이스가 크히히히! 하고 정말로 즐겁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넌 믿기 힘들 만큼 강해. 도저히 덤벼들 마음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말이야, 크히히. 난 죽음이 두렵지 않거든. 당장 이 손을 놔. 안 그러면 폭탄을…….”
민성이 에이스를 바닥에 내리꽂고, 그의 발목을 밟았다.
콰앙!
아스팔트 바닥에 금이 가면서 에이스의 발목이 부러졌다.
“아아아아아아아악!”
에이스가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민성은 무릎을 굽혀 앉아, 엎어져 있는 에이스의 뒷머리를 움켜잡고 살짝 들었다.
“조사단장, 어디 있어?”
낮은 소리로 묻자, 에이스는 피로 물든 얼굴로 신음이 섞인 웃음을 잇새로 흘렸다.
“흐히히! 흐으으으하아! 흐히. 이런 식으로 나온다고 해서 상황은 달라지지 않아. 날 놓아주면…….”
“네 말을 왜 믿냐, 내가.”
민성이 에이스의 손등에 오리하르콘 단검을 박았다.
푸북! 쿵!
단검이 손등을 뚫고 바닥에 박혀 들어갔다.
“크아아악! 크히! 크히히히! 크히!”
민성은 굽혔던 다리를 펴고 천천히 일어났다.
“김지유였나?”
민성의 부름에 김지유가 불안감이 가득한 얼굴로 민성을 보았다.
“이 문제는 내가 해결한다. 넌 기관으로 돌아가서 네가 해야 할 일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