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55화>
* * *
늦은 밤.
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각.
빌런 수용소가 작게 진동했다.
잠시 후, 환기구를 통해 쥐들이 떨어져 내렸다.
찍찍! 찌찍! 찍!
수많은 쥐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린 후, 눈을 번쩍이며 뛰기 시작했다.
잠들어 있던 빌런 수용소 죄수 한 명이 그 인기척에 눈을 떴다.
눈을 부비며 일어나자, 주변에서 찍찍거리는 소리가 났다.
죄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쇠창살 쪽으로 다가가 붙었다.
쇠창살 너머로 쥐가 무더기로 뛰어다니는 게 보였다.
“뭐야, 이게……?”
의아해하던 죄수는 쥐들의 몸 일부분이 마치 반딧불처럼 반짝거리는 걸 보고, 이 정체모를 괴이한 현상에 코를 찡그렸다.
악몽인가……?
죄수가 그렇게 희망했을 때-
빌런 수용소를 뛰어다니던 쥐들이 일제히 폭발하기 시작했다.
콰아앙! 쾅! 콰아앙! 콰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아앙!
폭발과 동시에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죄수들이 모두 깨어났다.
새빨간 불꽃이 삽시간에 퍼졌고, 시커먼 연기가 자욱이 번졌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빌런 수용소는 패닉에 빠져 웅성거렸다.
그 연기 사이에서 한 남자가 나타났다.
누런 이빨을 보이며 웃음 짓는 남자, 에이스.
그는 매캐한 연기 속에서 마치 유령처럼 움직였다.
그리고 기침하고 있는 죄수들의 몸에 칼을 들이댔다.
칼을 깊숙이 찔러 몸속에 삽입되어 있는 블랙 헌트를 찾아 뽑아낸 것이다.
“자유다. 수용소를 탈출해라!”
에이스가 검은 연기 속에서 소리쳤다.
에이스에 의해 블랙 헌트가 뽑혀 나가면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던 죄수들은 잃어버렸던 헌터의 능력을 다시금 각성하기 시작했다.
각성한 죄수들 중 힐러의 능력을 가진 이들이 블랙 헌트를 추출하면서 상처 입은 동료 죄수의 대미지를 회복시켰다.
“탈출이다! 탈출하라!”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빌런 수용소의 출입구가 폭발했다.
쥐의 몸속에 넣어 놓은 마석 폭탄의 힘이, 최고의 방어 물질이라 불리는 미스릴 재질의 방어벽을 단숨에 허물어트렸다.
* * *
“긴급 보고입니다. 빌런 수용소가 폭발하면서 죄수들이 탈출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부하의 보고에 중앙 기관 3성 조사단장 태겸이 어금니를 빠드득 깨물었다.
중앙 헌터 기관의 주요 병력들이 에이스를 잡기 위해 밖으로 나가 있는 사이, 에이스가 중앙 기관의 빌런 수용소를 타격했다.
빈집털이를 당한 격.
“에이스의 짓이다. 중앙 기관의 모든 출입구를 봉쇄해!”
부하 한 명이 더 뛰어 들어왔다.
“크, 큰일입니다. 대부분의 죄수들이 중앙 기관 밖으로 이미 탈출하고 있습니다. 병력의 부재가…….”
“그런 멍청한 소리를 하고 있을 때냐! 당장 나가 있는 병력에 연락해서 놈들을 잡아! 그리고 에이스의 위치를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아, 알겠습니다!”
부하 두 명이 허겁지겁 뛰어나갈 때, 태겸이 템 창에서 자신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새파란 오러의 기운이 넘실거리는 창을 들고 태겸이 창문을 향해 뛰었다.
타다다다닥!
쨍그랑!
태겸이 창문을 깨고 27층 고층에서 지상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쿠우우우웅!
지상에 착지하자 아스팔트가 깨지면서 주변에 강한 바람이 불었다.
태겸은 번쩍거리는 눈으로 탈출을 시도하고 있는 죄수들을 보며 격분했다.
“에이스, 넌 반드시 내가 죽인다.”
태겸이 도망치고 있는 죄수들을 향해 빛살처럼 날아갔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도망치고 있는 한 죄수의 등 뒤에 당도했을 때.
“폭탄 받아라!”
유쾌한 음성이 섞인 에이스의 목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태겸이 놀란 얼굴로 하늘 쪽으로 시선을 올리자, 길쭉한 다이너마이트 뭉치 하나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태겸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다이너마이트 뭉치를 향해 오러를 감은 창을 휘둘렀다.
하나 창을 휘두르기도 전에 다이너마이트 뭉치가 폭발했다.
거대한 폭발성 화염이 태겸이 위치한 주변 일대로 번져 나갔다.
* * *
뒤늦게 소식을 접한 김지유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막심한 피해를 입은 데다, 에이스는 물론 빌런 수용소의 죄수들이 모두 도망치고 난 이후였다.
김지유는 힐러와 구급대원의 응급 처치를 받고 있는 병사들을 보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들의 상태는 심각했다.
고위급 레벨에 값비싼 아이템을 갖고 있음에도 에이스의 마석 폭탄에 치명적인 대미지를 입었다.
화상을 입고서 실려 가는 그들을 보며 김지유는 주먹을 꽉 쥐었다.
“……반드시 잡을 거야.”
김지유가 굳은 얼굴로 몸을 팩 돌리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 * *
던전에서 나온 이호성은 후련한 얼굴로 숨을 뱉으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드디어 210레벨을 달성했다.
레벨을 무려 10이나 올린 것이다.
오러 유저가 된 이후로부터는 사냥에 속도가 붙었고, 그것은 자연히 빠른 경험치 획득의 결과로 이어졌다.
경험치 올라가는 속도가 빨라지자 지치는 것도 모르고 사냥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 결과, 10업이라는 믿을 수 없는 레벨 업을 했다.
미친 듯이 사냥을 한 탓에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지친 상태였지만, 이호성은 그 피로도로부터 달성감과 성취감을 느꼈다.
“이대로라면 300레벨도 꿈이 아니겠어.”
이호성은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검에 묻은 몬스터의 피를 닦아 냈다.
미소를 건 얼굴로 자신의 애검인 무장의 검을 깨끗하게 닦고 있을 때, 던전 앞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클랜장님.”
이호성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검을 템 창에 넣으며 고개를 들었다.
다이아몬드 클랜에서 자신의 오른팔인 조민욱이었다.
“응? 네가 왜 여기 있어?”
“클랜장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왜? 아, 근데 지금쯤이면 관리비 수금 중일 때 아니야?”
“지금 수금이 문제가 아닙니다.”
조민욱이 그늘진 얼굴로 말했다.
“무슨 일인데?”
이호성이 턱을 긁으며 물었다.
“에이스가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중앙 기관의 빌런 수용소를 폭파해 죄수들을 탈출시켰습니다. 그들이 지금 무차별적으로 헌터와 시민들을 죽이고 있고, 에이스가 중앙 기관의 어그로를 끌면서…….”
조민욱이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상권을 무차별적으로 폭파시키고 있습니다.”
이호성은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완전 막나가는구만, 그 망나니 자식. 내 손으로 죽여 버려야겠어. 그 녀석 레벨이 몇이지?”
“레벨이 보이지 않습니다.”
“…….”
“클랜장님, 이제 어떡하죠? 이대로라면 서울 상권이 에이스에 의해 모두 잿더미가 될 겁니다.”
이호성은 다소 기 죽은 얼굴로 조민욱의 시선을 피했다.
“레벨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기타 능력자급 헌터라는 거잖아.”
“……그야 그렇죠. 하지만 어떻게든 대책을…….”
“그럼 뭐, 중앙 기관에서 어떻게든 알아서 하지 않을까?”
“이대로 두고 보실 생각이십니까?”
“나도 열 받기도 하고 에이스란 놈을 잡고 싶지만 말이야. 현실적으로 상대가 안 되잖아. 게다가 난 지금 막 사냥을 마쳐서 완전 체력 방전 상태라고.”
“굳이 에이스와 붙지 않더라도 상권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호성은 눈치를 살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일리 있는 말이야.”
이호성이 담배를 물자, 조민욱이 듀폰 라이터로 잽싸게 불을 붙여 주었다.
“스읍, 후우-.”
이호성은 담배를 피우며 고민했다.
무차별적으로 상권을 폭파시키고 있는 에이스로부터 상권을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빌어먹을.
이호성이 초조한 얼굴로 담배를 피우다가 화들짝 놀랐다.
조민욱은 그런 이호성의 얼굴 상태를 보고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클랜장님, 왜 그러세요?”
“……에이스의 폭탄 테러로 단순히 상권을 잃는 게 문제가 아니야.”
“그럼 뭔가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는 건가요?”
이호성은 신체의 자율 신경계가 고장 나고 있음을 느꼈다.
온몸이 순식간에 땀으로 가득 번져 나갔다.
“클랜장님?”
“이러다 진짜 큰일 난다고.”
“클랜장님, 대체 무슨 말씀을…….”
“막아야 돼. 어떻게든 상권 지역이 폭파되는 걸 막아야 한다고! 야, 지금 얼마나 망가졌어?”
“……네?”
조민욱이 의아해서 고개만 갸웃거리자 이호성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상권이 얼마나 망가졌냐고!”
“지금 분위기로는 몇 시간 안에 상권 3분의 1은 날아갈 것 같습니다.”
“대체 중앙 기관, 이 병신들은 뭘 하고 있는 거야? 그 미친놈 하나 못 잡고!”
“은신 능력이 상당한 것 같습니다.”
“이런 시X, 그럼 어떡하지? 놈을 막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도 없고.”
갑자기 패닉에 빠진 사람처럼 횡설수설하는 이호성을 보며 조민욱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클랜장님, 일단 진정하시고…….”
“진정은 무슨. 이럴 때가 아니야. 급히 다녀올 때가 있다. 일단은 클랜원들에게 당분간 싸돌아 다니지 말고 안전한 곳에서 대기하고 있으라고 해.”
이호성이 주차해 둔 차량으로 미친 듯이 뛰어갔다.
조민욱은 어딘가로 급출발하는 이호성의 차량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 * *
이호성은 마른침을 연거푸 꼴깍꼴깍 삼켰다.
상권이 폭파되어서 당분간 자금줄이 끊기는 것 정도는 어떻게든 훗날 해결책을 찾아볼 수 있는 일이다.
중앙 기관이 바보도 아니고, 헌터 한 명을 못 잡고 나라가 파국에 치닫는 건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
상권 복구는 분명 타이밍이 나온다.
하지만 복구가 안 되는 문제가 바로 강민성이라고!
이대로 에이스의 폭탄 테러에 의해 골목 상권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맛집도 박살이 난다.
그게 문제인 거다.
맛집이 사라지면 강민성을 맛집으로 인도하는 자신의 존재 가치는 무(無).
무(無)가치로써 무(無)의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맛집 없다고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그동안의 정이 있는데? 따위의 생각 같은 건 하지 말아야 한다.
강민성이 얼마나 상식 밖의 인간이고, 상식 밖의 행보를 걸어가는지는 그 누구보다 그가 더 잘 안다고 자신한다.
‘강민성을 설득해서 에이스를 잡아야 돼.’
맛집이 사라지기 전에, 강민성이 에이스를 잡게끔 만들어야 한다고.
끼이이이이익!
이호성이 브레이크를 길게 밟았다.
이호성의 미국 외제차가 드리프트로 회전하며 강민성의 집 앞에 정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