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54화>
* * *
커다란 철문이 열렸다.
노란 택시가 이를 지나 긴 마당을 가로질렀다.
저택 앞에 정차한 에이스가 차에서 내려 초인종 대신 현관문을 주먹으로 쿵쿵 두드렸다.
잠시 후 문이 열렸다.
가정부가 에이스를 보고 정중히 인사했다.
“내 형제는 어디 있지?”
“2층 서재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에이스는 그녀를 지나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서재 앞에 선 에이스는 노크를 하자마자 문을 벌컥 열었다.
어두운 조명 아래, 긴 책상의 상석에 앉은 검은 로브의 사내를 보고 에이스가 반가운 듯 웃음 지으며 양팔을 벌렸다.
“형제여.”
검은 로브의 사내가 차가운 눈으로 에이스를 보았다.
“앉아.”
에이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검은 로브 사내와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내가 거기 있는지는 어떻게 알았대?”
“네 위치를 찾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
검은 로브의 사내가 아래에 있던, 007 가방으로 유명한 아타셰케이스를 들어 테이블 위로 쿵 올렸다.
에이스는 흥분한 눈으로 가방을 확 잡아당겼다.
“비밀번호는?”
“0000.”
“귀엽네.”
에이스가 비밀번호를 0000으로 맞추고 가방을 ‘달칵’ 열었다.
가방 안에 최고급 마석이 깔끔한 형태로 쌓여 있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에이스는 흥분한 눈으로 마석을 내려다보다가 가방을 탁! 닫았다.
“역시 우린 형제야. 그렇지?”
에이스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웃으며 벌떡 일어났다.
서재를 나가려던 에이스는 문 앞에서 멈추고서 검은 로브의 사내를 돌아보았다.
“정말 내 마음대로 한국을 터트리고 다녀도 되는 거지? 놀아도 되는 거지?”
에이스의 물음에 검은 로브의 사내는 감정이 메마른 눈으로 에이스를 응시했다.
“이미 시작했잖아.”
에이스가 길쭉하게 웃었다.
“우린 진짜 형제야. 마음이 너무 잘 맞는단 말이야. 아, 근데 그거 알아?”
에이스는 입꼬리를 아래로 내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 로브, 안 어울려.”
그 말을 끝으로 에이스가 문을 쿵 닫고 서재를 나갔다.
검은 로브의 사내는 창가에 서서 노란 택시가 떠나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 * *
민성은 몸에 묻은 분진 가루를 털어 내며 주변을 훑었다.
비상 사이렌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렸다.
구경꾼들이 몰려들었고 취재진이 나타났으며 구급차에서는 바쁘게 사람을 실었다.
헌터 기관 또한 응급 구조 작업에 나서고 있었다.
민성은 폭발로 인해 처참해진 현장을 멍한 눈으로 보았다.
자신은 살았지만 수많은 민간인들이 죽었을 것이다.
대형 사고다.
“헌터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호성이 옆으로 헐레벌떡 뛰어와 섰다.
“큰 사고가 있었다길래 와 봤더니 헌터님이 계시네요. 건물 안에 계셨던 겁니까?”
“그래.”
“저, 그런데 헌터님. 손에 들고 계시는 건 뭐예요?”
“치킨.”
민성이 시커멓게 타 버린 닭다리를 들어 보였다.
이호성은 민성이 보여 주는 그것을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러니까…… 치킨집에서 식사하시는데 건물이 폭발한 거군요?”
“테러인 것 같다. 일반적인 폭발의 화력이 아니었으니까.”
“그럼 누군가에 의한 테러라는 말씀이세요?”
민성의 눈이 하얗게 변했다.
이호성은 민성을 보며 서늘한 존재감에 몸을 떨었다.
* * *
“크히히히!”
에이스는 마석으로 제조한 특급 폭탄을 손에 들고서 웃음을 흘렸다.
최고급 마석으로 폭탄을 제조하면 강력한 힘을 발휘하여 헌터들도 즉사시킬 수 있다.
지금 막 완성한 이 마석 폭탄은 반경 100미터 정도를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에이스는 옥상 난간에 앉아 제조한 폭탄을 들고 고민했다.
근데 왜 그 녀석은 죽지 않았던 거지?
에이스는 무너진 건물 안에서 홀로 걸어 나왔던 남자를 떠올렸다가 이내 관심을 지웠다.
그보다 이걸 들고 어디를 터트리는 게 재밌을까?
단순히 폭파하기만 해서는 재미가 없다.
골몰히 고민에 잠겨 있던 에이스가 번쩍 눈을 뜨며 음흉하게 웃음 지었다.
* * *
집에 오는 길에 치킨을 주문했다.
BBK 치킨 본점 가게를 직접 찾아가 가장 따뜻한 온도를 갖고 있는 치킨을 먹으려 했지만, 폭발 사고가 일어난 탓에 제대로 치킨을 먹지 못했다.
집에서 샤워를 하고 편한 옷을 입었을 때 때마침 치킨이 도착했다.
민성은 배달된 치킨과 맥주를 들고 TV 앞 소파에 앉았다.
TV를 틀어 뉴스 채널을 맞춘 후, 치킨을 개봉했다.
BBK 치킨 강남점에서 주문한 프라이브 반, 양념 반.
반반 치킨이다.
배달된 치킨임에도 다행히 꽤 따뜻한 온도를 갖고 있다.
민성은 포장을 벗기면서 뉴스를 틀었다. 뉴스에서는 오늘 있었던 폭발 사고에 대해 집중 보도 중이었다.
그사이 민성은 치킨 무를 뜯어 싱크대에서 물을 절반쯤 버리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따끈따끈 완전한 형태의 프라이드치킨이 자신의 황금빛 자태를 뽐내고, 새빨간빛을 머금은 양념 치킨이 우람한 풍채를 자랑했다.
민성은 프라이드치킨 중 닭다리를 들었다.
모름지기 시작은 닭다리다.
적어도 민성은 맛있는 걸 뒤에 남겨 두는 성격이 아니었다.
코스 요리가 아닌 이상 맛있는 건 가장 먼저, 가장 입맛이 살아 있을 때 먹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민성은 그대로 닭다리를 깨물었다.
바삭!
구름 같은 닭 껍질 튀김이 부서지면서 부드럽고 촉촉한 속살이 깨물렸다.
“하아, 호오.”
배달을 시켰는데도 뜨겁다.
속살의 뜨거움이 그대로 살아 있어.
민성은 한 번 더 닭다리를 물어뜯었다.
화라락!
단숨에 뼈밖에 남지 않은 닭다리 뼈가 툭 하고 떨어졌다.
민성은 짭조름한 치킨 맛을 음미했다.
이래서 황금 올리브유라 불리는 거구나.
민성이 맛을 음미하며 눈을 떴을 때, 뉴스에서 사고 원인에 대한 보도가 나왔다.
[XX 빌딩 폭발 사고에 대한 원인이 밝혀졌습니다. 폭발 사고의 원인은 마석 폭탄 테러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마석 폭탄은 폭발 반경은 짧지만 고레벨 헌터의 목숨까지 앗아 갈 수도 있는 무시무시한 힘을 갖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민성은 뉴스를 보면서 프라이드치킨 날개 부위를 집어 들었다.
“테러였다고?”
속에서 뜨거운 열이 서서히 끓었다.
정신 나간 테러범에 의해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테러 때문에 치킨을 먹지 못했다는 것이 확실시 되자, 놈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치밀었다.
민성은 날개 부위를 쪽 빨아 먹으며 치킨 무를 와삭와삭 씹었다.
뉴스에서 용의자로 추정되는 인물의 얼굴을 공개했다.
깡마른 얼굴에 길게 찢어진 눈.
코는 매부리고, 입술은 굉장히 얇다.
평범하게 못생긴 얼굴이지만, 얼굴 여기저기에 칼자국이 있고 외국인이어서 거리에서 만난다면 쉽게 알아볼 수 있을 듯했다.
민성은 용의자 에이스의 얼굴을 쏘아보며 손에 들고 있던 날개 뼈를 툭 던지고 양념 치킨을 먹었다.
양념 닭다리 살은 부드럽게 찢어졌다.
촉촉한 기름진 속살과 달콤한 양념 맛이 입안에서 헤엄쳤다.
양념 닭다리 살을 입안에 가득 씹으면서 무를 와삭와삭 씹어 먹었다.
치킨과 이 치킨 무의 조합은 대체 누가 생각해 낸 걸까?
가히 감탄할 수밖에 없는 조합이다.
그리고 막상 이렇게 치킨을 먹어 보니 독일에서 먹었던 학센과 자연스럽게 비교를 하게 되었는데, 독일의 학센은 코리안 치킨에게 상대도 되지 않았다.
코리안 치킨의 압승이다.
쓸데없이 독일까지 가서 학센을 먹었다고까지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특성이 다르다고는 해도 한국의 치킨은 국제적인 이슈가 될 만큼 환상적인 맛을 자랑했다.
민성은 양념이 묻은 손을 물티슈로 닦은 뒤, 바로 캔 맥주를 따고 입으로 직행시켰다.
꿀꺽꿀꺽, 꿀꺽꿀꺽!
차갑고 시원한 맥주가 기름진 입안을 깨끗이 지우며 식도를 넘어갔다.
“크으…….”
민성은 자신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너무 맛있다.
치킨은 진리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야.
요즘 치킨은 치느님이라고 불리고 있다.
하느님과 동급의 호칭을 받을 정도로 호평을 받는 게 바로 한국 치킨의 힘인 것이다.
민성은 고소한 프라이드 가슴살을 꿀꺽 삼켰다.
콜라를 따서 그대로 입을 대고 마셨다.
톡톡 튀는 탄산이 기분 좋게 목을 긁었다.
이렇게 부드러운 치킨 살이라니.
곧이어 기다란 넓적다리, 닭다리 살과는 전혀 다른 식감을 갖고 있는 봉을 들었다.
봉을 입으로 뜯자, 약간 질기지만 그만큼 탄력적인 맛을 보여 준다.
봉과 날개만 시켜 먹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마니아층을 두껍게 자랑하는 치킨 부위다.
민성은 마치 해와 달을 건너뛰는 사람처럼 프라이드에서 바로 양념으로 넘어가며 맛을 보았다.
두 가지의 맛.
반반 치킨.
실패할 수가 없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 * *
중앙 헌터 기관의 기타 능력자 김지유는 무게 있는 검은 슈트 차림으로 헌터 기관 대회의장 안으로 들어섰다.
준비해 있던 고위급 헌터들이 일제히 기립했다.
김지유는 그들을 지나 단상 위로 올라가 마이크 앞에 섰다.
그녀는 좌중을 훑어보며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마석 폭탄을 무기로 하는 테러리스트가 국내에 입국했습니다. XX 빌딩 사고로 무고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어요. 이는 수백 명이 참사를 당한 사건입니다.”
좌중은 침묵을 지켰다.
김지유는 슬픔이 배어든 눈으로 말을 이었다.
“……조의를 표하며 XX 빌딩 폭발 테러 사건에 대한 해당 안건 회의를 진행하겠습니다.”
* * *
자체 회의를 거친 중앙 헌터 기관은 총력을 다해 에이스를 잡겠다고 선포했다.
중앙 기관에서는 에이스에 대한 현상금을 걸었으며, 중앙 기관의 40퍼센트에 달하는 병력이 에이스를 잡기 위해 서울 전역을 조사 중에 있었다.
또한 용의자로 의심되는 에이스가 발견되는 즉시 위치 보고를 받을 수 있도록 했으며, 경찰들도 CCTV와 순찰을 통해 에이스의 위치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온 국민이 에이스에 대한 두려움으로 공포에 떨고 있는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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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기관 최하단부 지하에 존재하는 ‘빌런 수용소’.
심각한 범죄를 일으킨 헌터들을 관리하는 특별 감옥으로, 악질적인 죄를 저지른 사이코패스들의 집합소다.
죄수들은 마력 에너지를 소실시키는 블랙 헌트를 피부 속에 품고 있어, 일반인에 가까운 신체를 지니게 된다.
결국 헌터의 힘을 잃은 그들이 1급 미스릴로 제작된 감옥을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