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51화>
* * *
훈제 연어는 최고급이라고는 하지만, ‘글쎄.’라는 느낌이었다.
일전 초밥집에서도 연어를 먹어 봤지만 그와 비교해 별달리 추켜세울 만한 장점은 없는, 그저 그런 훈제 연어 맛에 불과했다.
민성이 별 감흥 없이 연어를 먹고 있을 때, 안내 멘트가 나왔다.
몬스터 문제가 해결되면서 긴급 착륙을 취소하고 예정대로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으로 간다는 내용이었다.
민성은 호출 벨을 눌러 다음 코스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바로 준비해 드릴게요.”
그리폰이라는 몬스터가 해결되었음에도 승무원은 여전히 긴장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코스 요리를 가져오기 위해 황급히 움직였다.
잠시 후, 승무원이 다음 코스 요리를 가져다주었다.
다음으로 나온 것은 샴페인으로 맛을 낸 거위 간과 왕게살 샐러드.
푸아그라는 처음 먹어 보는 음식이었는데, 맛이 없었다.
비려서 푸아그라에 대한 인식 자체가 안 좋아질 만큼 최악이었다.
왕게살 샐러드도 그저 그런 수준.
일등석 기내식이라 기대했는데, 전혀 기대에 못 미쳤다.
모양만 화려할 뿐 알맹이가 비어 있다.
메인으로 나온 스테이크 요리도 그저 그런 평범한 맛일 뿐, 절대 맛있다고 할 만한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다.
민성은 기내식 식사를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채 끝마치고, 미간을 구긴 채 시트에 기대 눈을 감았다.
어서 독일에 도착해서 진짜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 * *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호성은 커피를 먹은 덕분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피 멍이 든 것만 같은 다크서클이 둥그렇게 번져 있었다.
이호성이 민성을 흘깃 보았다.
‘조금만 차에서 자고 가면 안 될까요?’라고 물으면, ‘영원히 자는 게 어때?’라는 식의 무자비하고 냉혹한 대답이 들려올 것 같았다.
졸음운전을 하다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 그런 질문은 할 수 없다.
그냥 빨리 밥 먹이고 어떻게든 자자. 그게 베스트다.
이호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민성과 함께 게이트를 통과했다.
공항 입구 쪽으로 나오자 기자들이 엄청나게 몰려 있었다.
사방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였고, 기자들이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그리폰들이 여객기를 습격했다고 들었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비상 착륙이 예정되었는데, 어떻게 다시 정상 비행이 가능했죠?”
“그리폰들은 어떻게 된 겁니까!?”
공항이 시장 통처럼 시끄럽게 북적거렸다.
민성을 포함해 같은 여객기를 타고 온 승객들에게 독일 측 언론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기자가 왜 이렇게 많아?”
민성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마 그리폰들이 나타난 것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요?”
“길 뚫어.”
민성의 짤막한 명령에 이호성은 재빨리 민성의 앞으로 가면서 기자들을 물리치며 길을 텄다.
“비켜, 이놈들아!”
겨우 기자들을 뚫고 공항 밖으로 나온 이호성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내며 민성을 보았다.
“택시 잡아 오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민성이 선글라스를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호성은 택시를 잡은 뒤, 민성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차 뒷문을 열어 주자 민성이 올라탔다.
이호성이 조수석에 탔을 때.
“맛집으로 바로 출발해.”
민성이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
이호성은 퀭한 눈으로 운전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했다.
일부 기자들이 달려와 문을 쿵쿵 두드렸으나, 시크한 택시 운전사는 그들을 무시하고 바로 액셀을 밟았다.
* * *
강민성은 독일에 처음 온 게 틀림없다.
그런데도 진짜로 소시지와 맥주만 먹고 돌아갈 생각인 듯, 주변의 경관이라든지 외국의 풍경이라든지 건축 형태라든지 그런 독일의 문화 따위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저 소시지를 먹겠다는 의지밖에 존재하지 않는 인간처럼 보였다.
“헌터님, 이제 거의 다 왔는데요. 식사 예정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말해.”
택시가 근처에 다다랐을 때 이호성이 창문을 내려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저기 포장마차에서 소시지를 간단히 먹고, 이후엔 학센을 먹으러 갈 겁니다.”
민성은 창밖의 포장마차를 보고 엷게 미소 지었다.
차가 정차하자마자 포장마차에 시선을 고정시키며 빠르게 차에서 내렸다.
* * *
소시지를 주문했다.
민성이 반짝이는 눈으로 소시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입에 군침이 돌았다.
어서 먹고 싶다는 충동이 위를 쥐어짜는 듯했다.
식욕이 어마어마하게 솟구치고 있는 시점, 드디어 소지가 나왔다.
비교적 큰 빵에 길쭉한 소시지가 들어간 심플한 소시지 빵이다.
이호성이 그것을 받아 민성에게 공손히 건네주었다.
민성은 소시지 빵을 내려다보았다.
빵 안에 들어 있는 기다란 소시지가 하얀 김을 내며 그 자태를 자랑했다.
왠지 이 소시지라면 기내식의 실망감을 모조리 뒤덮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민성은 입을 크게 벌려 소시지 빵을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호오!”
민성은 입김을 뿜으며 소시지 빵을 씹었다.
맛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짠맛이 강렬하게 입안의 혀를 휘감는다.
식욕을 두 배로 증폭시키는 짭조름한 맛이다.
확실히 한국과는 다른 소시지 맛을 갖고 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폭신하면서도 촉촉한 속살을 가지고 있다.
다소 얇긴 하지만 속은 육즙으로 가득 차 있었다.
너무 맛있어.
민성은 연거푸 소시지 빵을 두 입째 물었다.
그릴로 구어 훈연의 맛이 살아 있는 소시지는 독일의 소시지가 왜 유명한지를 생생하게 증명했다.
민성은 소시지 빵을 내려다보면서 피식 웃었다.
빵과 소시지, 머스타드, 그리고 케찹이 이 소시지 빵을 이루는 전부인데, 이런 맛을 낼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달콤하면서도 짭조름한 소시지 빵을 한 번에 입안에 집어넣었다.
민성은 뺨을 크게 부풀리며 소시지 빵을 우물우물 씹었다.
그때, 옆에서 이호성이 자신을 불렀다.
“헌터님.”
“왜?”
“다른 소시지도 드셔 보시겠어요?”
민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호성이 소시지를 주문하고 나서 설명을 덧붙였다.
“제가 주문한 소시지는 ‘파프리카부어스트’라고 하는 소시지입니다.”
“파프리카가 들어가는 건가?”
“그렇습니다. 돼지고기와 파프리카 가루를 주재료로 한 매콤한 소시지입니다.”
민성은 소시지 빵을 모두 삼키고 난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잠시 후, 1회용 접시에 소시지 하나가 놓여서 나왔다.
민성은 포크로 소시지 중앙을 툭 찍어 그대로 들어 올려서 절반을 훅 깨어 물었다.
우물우물!
소스가 필요 없을 정도로 간이 잘 배어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밥과 함께 먹고 싶다는 것이다.
탄수화물에 중독된 한국인의 특성이로군.
민성은 가볍게 웃으며 절반 남은 소시지를 먹었다.
꿀꺽!
입안에 짠맛이 남아 있는 걸 예상한 이호성이 콜라를 따서 건네주었다.
민성은 이호성이 주는 콜라를 받아 들고 그대로 입으로 나발을 불었다.
꿀꺽꿀꺽, 꿀꺽꿀꺽!
탄산이 목에서 탁탁 튀며 식도를 넘어갔다.
소시지와 콜라의 콜라보는 최고다.
독일 포장마차에서 먹는 소시지.
그것은 완벽한 펀치라고 해도 될 만큼 아름다운 대미지를 선사했다.
맛있었어.
“저 헌터님.”
이호성의 부름에 민성이 쳐다보자, 그가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포장마차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조그마한 TV를 보고 있었다.
이호성은 TV 뉴스를 보며 입을 열었다.
“공항에 기자들이 잔뜩 있었던 게 아마도 그리폰들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호성의 말대로 TV에서 뉴스로 크게 떠들고 있는 건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으로 향하던 여객기를 급습한 그리폰에 대한 것이었다.
“헌터님, 기내식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아 보이셔서 제가 못 물어봤었는데요. 그 그리폰들, 헌터님이 처리하신 거예요?”
민성은 티슈로 입을 닦으며 이호성을 보았다.
“근데 뭐?”
이호성은 민성을 보며 눈을 끔뻑였다.
“아니, 비행기 안에서 바깥에 있는 그리폰을 어떻게 죽여요?”
“난 돼.”
“…….”
“예컨대 이런 것도 되니까.”
그릇 옆에 놓여 있던 플라스틱 포크가 새파란 오러를 머금으며 스스로 허공에 떠올랐다.
그리고 날카로운 끝 부분이 이호성의 얼굴을 향해 슥 회전했다.
이호성은 눈알이 빠질 것 같은 눈으로 그것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이, 이, 이, 이기어검술(以氣御劍術)!?”
플라스틱 포크에 푸른 기운이 사라지며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민성은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는 이호성의 가슴을 주먹으로 툭 치곤 도로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자. 학센 먹으러.”
이호성은 앞서 걸어가는 민성의 뒷모습을 보며 넋을 잃었다.
* * *
그리폰 여객기 습격 사건으로 인해 전 세계가 시끄러워졌다.
언론사와 각국에서는 그 문제를 심각하게 다뤘으며, 여객기를 공격한 그리폰들이 일제히 갈기갈기 찢어지며 죽게 된 미스터리한 현상에도 온갖 관심이 쏟아지고 있었다.
독일 측에서는 어떻게 그리폰들이 죽게 되었는지 조사에 나섰지만, 그 실마리를 찾아내지 못했다.
혹여 헌터가 그리폰을 물리친 것은 아닌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접근했지만, 탑승자 명단에는 헌터라고 해 봐야 겨우 200레벨에 불과한 이호성이라는 헌터밖에 없었다.
그가 아무리 특이한 공격 스킬을 갖고 있다고 해도, 여객기 안에서 바깥에 있는 그리폰들을 단숨에 일망타진할 만한 능력을 갖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때문에 전 세계에서는 이 미스터리 현상에 대해 언론 보도가 쏟아지고 있는 중이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기자의 물음에 당시 목격자였던 탑승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이명 같은 증상이 느껴지긴 했지만, 별달리 기내 내에서 특별하다고 할 만한 점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갑자기 그리폰들이 다 죽더라고요.”
기자는 현재까지도 그리폰들의 죽음에 대해 단서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보도로 멘트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