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50화>
* * *
민성은 소파에 누워 ‘진짜로’ 단잠에 빠져 있는 김지유를 보면서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남자 혼자 사는 집에 핫팬츠에 티셔츠 차림으로 소파에 널브러져서 자고 있다니.
민성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현관문을 열었다.
김지유의 배에 엎어져 있는 바가지는 민성의 외출을 확인하고 화들짝 놀라더니, 서둘러 김지유의 배에서 내려와 아장아장 뛰어 민성의 뒤를 쫓아갔다.
그사이 김지유는 코까지 골면서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바가지가 폴짝 뛰어 민성의 주머니 안으로 들어갔다.
* * *
“몇 시 출발이야?”
“1시 출발입니다.”
이호성이 차 안에서 다크서클이 진하게 밴 퀭한 눈으로 티켓을 보여 주었다.
민성이 고개를 주억였고, 잠시 후 이호성이 운전하는 차가 공항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이호성은 주차를 하면서 한쪽 눈을 문질렀다.
외국에 다녀오기 전 다이아몬드 클랜에 대한 지시 사항을 전달하고, 이것저것 클랜을 체크하는 바람에 잠을 자지 못했다.
강민성 덕분에 채 3시간도 못 자고 티켓을 알아봐야 했기에 이호성의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런 이호성의 상태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민성은 차에서 내리면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이호성에게 주었다.
“커피 좀 사 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이호성이 지폐를 받고 차 문을 닫은 뒤, 엉덩이에 불이 난 것처럼 공항 건물을 향해 뛰어갔다.
헥헥거리며 공항 안으로 뛰어 들어간 이호성은 공항 내 커피숍 앞에 도착해 숨을 몰아쉬었다.
“괜히 뛰었나.”
졸린 와중에 뛰었더니 머리가 핑핑 돌았다.
“아, 토할 것 같네.”
이호성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하여 민성이 준 현금과 자신의 카드로 따로 계산했다.
금세 만들어진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들고 민성을 찾자, 그는 선글라스를 낀 채 공항 안마 의자에서 안마를 받고 있었다.
“헌터님. 여기 거스름돈입니다.”
민성은 안마를 받으면서 돈을 주머니에 넣었다.
민성이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는 사이, 이호성은 단숨에 커피를 쭉 빨았다.
카페인이 급속도로 몸에 퍼지는 느낌이 났다.
후우, 이제 좀 살겠네.
어? 잠깐, 괜히 먹었나?
이호성의 얼굴이 흐려졌다.
한국에서 독일까지의 비행시간은 12시간에 육박한다.
커피를 먹고 애매하게 잠이 오지 않으면 그것은 엄청난 고통.
이런 시X…….
이호성은 자신의 손에 들린 얼음만 남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려다보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괜히 먹었어, 시X, 시X, 시X!
* * *
이호성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서 의자에 앉아 촌놈처럼 이것저것을 살폈다.
“뭐 해?”
민성의 물음에 이호성이 헤벌쭉 웃었다.
“아! 일등석 타는 건 처음이라서요.”
“너 헌터잖아?”
“그렇긴 한데요. 헌터들 때문에 일등석 가격이 많이 올랐거든요. 안 그래도 비쌌었는데, 제 소득으로는 어림없었죠. 헌터님 덕분에 이렇게 일등석도 타 보고. 하핫. 감사합니다.”
이호성이 어린아이처럼 신난 표정을 지었다.
ご搭乗有難うございます。
탑승에 감사드립니다.
Thank you for flying with XX Airlines.
곧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승무원이 나타나 구명조끼 사용법과 탈출에 대해 알려 주었다.
“오, 이쁜데.”
이호성이 늘씬한 승무원을 보며 변태처럼 웃었다.
“이호성.”
“네?”
이호성은 헤벌쭉 웃는 얼굴로 승무원을 보면서 대답했다.
“야.”
“아, 죄송합니다. 말씀하세요.”
이호성이 표정을 고치고 민성을 향해 정중히 허리를 세워 대답했다.
“기내식은 어떻게 먹는 거야?”
“그게 저도 일등석은 처음 타 보는 거라…… 잠시만요.”
快適な空の旅をお楽しみください。
쾌적한 하늘 여행을 즐겨 주십시오.
We wish you a pleasant flight.
마무리 멘트가 나올 때쯤 이호성이 승무원을 불렀다.
기내식에 대해 물어본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민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헌터님. 일단 일등석이라 코스 요리가 기본이고요. 거기 보시면 메뉴판 책자 있거든요. 기내식 드시고 싶으실 때 메인 요리만 선택하시면 됩니다.”
이호성은 말을 마치고 다시 일등석의 자리를 매만지며 신기해했다.
잠시 후 항공기가 이륙했다.
민성은 창밖을 내다보았다.
항공기가 뜨면서 지면이 점점 멀어진다.
비행기를 타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단 한 번도 비행기를 타 본 적이 없다.
가족 여행이라고 해 봐야 할머니와 불꽃 축제를 본 게 전부였다.
하지만 마계를 겪고 난 뒤 귀환해서일까.
생에 첫 항공이라고 해 봐야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창밖을 보자 항공기는 어느새 벌써 구름 위 상공으로 올라와 있었다.
새하얀 구름이 명확히 보이고 구름 사이로 바다가 보였다.
민성은 턱을 괴고서 창밖의 풍경을 감상했다.
* * *
김지유는 눈을 부비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주변을 두리번거린 후,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민성 씨?”
그를 불러 봤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이곳저곳 집을 샅샅이 살펴봤지만 없다.
살아 움직이는 해골 인형도 없다.
“……뭐야? 전부 나갔어?”
김지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집을 버리고 그냥 나가 버리는 쿨함이라니…….
김지유는 휴대폰으로 강민성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 전화기가 꺼져 있어…….
김지유는 한숨을 내쉬며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밀었다.
휴대폰에는 밀린 업무 보고 메시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부재중 전화는 수백 통이 와 있었다.
“근데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나 같은 미녀를 내팽개치고 대체 어딜 간 거야!?”
김지유는 허리에 양손을 얹고서 뾰족하게 소리쳤다.
* * *
민성은 잠깐 졸았다가 눈을 떴다.
눕혀 있던 의자를 바로 세우고 배를 문질렀다.
배꼽시계가 작동했다.
기내식은 어떻게 시키는 거지?
민성을 옆 좌석의 이호성을 보았다.
그는 헤드폰을 쓰고 영화를 보며 낄낄 웃고 있었다.
민성은 전음(傳音)을 사용했다.
전음은 목소리를 상대의 마음속에 울리게끔 전달하는 능력으로, 마계에서 자연스럽게 얻게 된 능력 중 하나였다.
- 이호성.
전음을 사용하자 이호성이 기겁하며 일어나 헤드폰을 벗고 미친 듯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기다.”
민성의 말에 이호성이 혼이 빠진 얼굴로 눈을 커다랗게 뜨고서 민성을 보았다.
“허, 헌터님. 이게 무슨…….”
“됐고. 기내식은 어떻게 먹는 거야?”
“제가 한번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이호성은 승무원을 찾아가 얘기를 나누고 돌아왔다.
“10분만 기다려 달라고 합니다.”
“잘했어.”
10분이라…….
민성은 검지로 팔걸이를 톡톡 두드리며 기내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승무원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고객님, 안녕하세요. 기내식 식사 도와 드리겠습니다. 메인 메뉴와 음료는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품목은 미리 골라 놓았다.
“메인은 쇠고기 안심 스테이크. 음료는 진저엘.”
“알겠습니다. 샐러드 소스는 선택 가능하신데, 어떤 소스로 드릴까요?”
“발사믹으로.”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승무원이 물러가고 잠시 후, 기내식 코스가 시작됐다.
먼저 따뜻한 타월이 나왔다.
민성이 타월로 손을 닦을 때, 식전주가 나왔다.
식전주는 샴페인이었는데 달짝지근하긴 하지만 그다지 입맛을 사로잡는 느낌은 없었다.
승무원이 첫 코스 요리를 가져왔을 때, 식전주를 치우라고 건넸다.
그리고 자리 위로 첫 코스 요리가 놓였다.
처음으로 나온 요리는 최상급 훈제 연어였다.
마치 아티스트가 만든 것처럼 모양새가 심플하면서도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다소 양이 적어 보이지만, 어차피 코스 요리니까 그런 건 별로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접시와 함께 나온 작은 나무 포크를 들어 기내식 첫 코스 요리를 먹어 보려는 순간, 안내 방송이 나왔다.
- 여러분 긴급 비상 상황입니다. 지금 즉시 안전벨트를 매 주십시오. 우리 여객기는 몽골 울란바토르 공항 쪽으로 비상 착륙을 시도할 예정입니다.
안내 방송을 하고 있는 목소리는 은연중에 상당히 떨리고 있었다.
위험하다는 느낌을 감지했는지 1등석 기내 여기저기서 일순 탄식이 흘러나왔다.
“헌터님. 제가 한번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이호성은 벌떡 일어나 승무원을 찾아갔다.
헌터임을 밝히고 잠시 얘기를 나누고 온 이호성이 당장 울 것 같은 얼굴로 뛰어왔다.
“허, 헌터님. 큰일입니다. 몬스터예요.”
이호성이 그렇게 말했을 때 여객기가 강한 충격으로 인해 크게 흔들렸다.
“어어!”
이호성이 바닥에 넘어지면서 새하얗게 질린 얼굴이 됐다.
창가로 뭔가가 날아와 부딪쳤다.
퍼억!
단단한 아크릴로 이루어진 창에 아주 살짝 금이 갔다.
민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창밖의 몬스터들을 살폈다.
“그, 그리폰이다.”
이호성이 몬스터를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폰은 매의 머리와 날개, 그리고 사자의 몸통을 가진 몬스터였다.
그리폰이 괴성을 내지르며 온몸을 떨면서 날갯짓을 했다.
민성은 어금니를 깨물고 미간을 구기며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멋지게 연출되어 있던 최상급 훈제 연어의 형태가 무너져 내려 있었다.
피이이이이이잉!
마력을 머금은 기운이 여객기 전체에 서서히 응집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쉬이이이이이이익!
날카로운 검기의 바람이 소용돌이쳤다.
여객기 주변을 배회하며 공격적인 태세를 갖췄던 그리폰들이 마치 분쇄기에 갈리는 것처럼 찢어지기 시작했다.
퍼버버버버벅! 퍽! 퍼어억!
그리폰의 전신이 찢어지면서 여객기 창과 외벽에 피를 강하게 흩뿌리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약 19마리에 달하는 그리폰들이 죽기까지는 채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삽시간에 그리폰들이 피를 흩뿌리며 낙하되는 걸 보고, 이호성은 이해가 가지 않아 눈만 끔뻑거렸다.
그러다 민성을 보았다.
“허, 헌터님……?”
민성은 창문에 피가 잔뜩 묻어 있는 걸 보고 커튼을 아래로 확 잡아당겼다.
타악!
그는 곧이어 나무 포크를 들어 훈제 연어를 찍었다.
이호성이 넋이 나간 얼굴로 그런 민성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