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49화>
* * *
북부 기타 능력자 김수현은 호텔 방 창가에 앉아 흐릿한 눈으로 창밖의 야경을 응시했다.
그는 이내 자신의 잘려 나간 오른팔을 내려다보았다.
있어야 할 팔이 없다.
허전하다.
단 한 칼에 보호 배리어가 깨지면서 팔이 잘려 나간 그때의 기억 또한 뇌리에 선명하다.
김수현은 힘 빠진 눈으로 천장을 보며 바람이 새는 듯한 쓴웃음을 흘렸다.
그때.
철컥-
호텔 방문이 열렸다.
검은 로브의 사내가 박도를 들고서 걸어 들어왔다.
김수현은 검은 로브의 사내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위에서도 모르고 있었던 겁니까? 그 강민성이라는 신규 기타 능력자에 대해.”
검은 로브의 사내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수현은 담배를 피우며 헛웃음을 흘렸다.
“일이 이런 식으로 미끄러질 줄이야. 젠장…… 어이가 없네, 정말.”
검은 로브의 사내가 몇 발자국 옮겨 김수현의 앞에 섰다.
그는 차가운 눈으로 김수현을 응시했다.
“그동안 수고했다, 라고 전하라더군.”
“……X발.”
주변의 공간이 검은 어둠으로 일그러졌다.
그리고.
검은 로브의 사내가 박도를 내려찍었다.
퍼어어억!
피가 분수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피는 벽지와 바닥을 흠뻑 적셨다.
피를 잔뜩 뒤집어쓴 검은 로브의 사내는 바닥을 적신 피를 질퍽하게 밟으며 천천히 호텔 방을 나갔다.
* * *
- 북부 기타 능력자는 호텔에서 시신으로, 남부 기타 능력자는 병원 옥상에서 떨어져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남부 기타 능력자의 경우엔 떨어지기 전에 이미 사망한 이후였습니다.
그림자 길드의 정보를 듣고 김지유는 눈 사이를 짚었다.
“당신들 뒤에 누가 있는 거야?”
김지유가 힘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 이상입니다. 정보비는 주말이 지난 이틀 후에 청구하도록 하겠습니다.
전화가 끊어졌다.
김지유는 어금니를 깨물며 눈을 질끈 감았다.
각 지방 기관 기타 능력자의 자리가 공석이 됐다.
이로써 한국의 국력이 반 토막 났다는 건 기정사실화되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김지유는 허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 동부와 서부는 치료 중에 암살된 거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기타 능력자 둘은 치료가 끝난 후에, 나머지 둘은 치료 중에 암살이 되었다.
애초에 넷 다 치명상을 입고 병원에 가기 전에 죽여야 말이 되잖아.
그럼 기타 능력자를 상회하는 세력이 하나가 아니라는 건가?
김지유는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아 긴 한숨을 뱉으며 의자에 등을 깊숙이 묻었다.
“아…… 몰라.”
김지유는 이마에 손등을 얹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이마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 * *
휠체어에 앉아 있는 남자가 한강을 보고 있을 때, 멀리서 검은색 차량 한 대가 헤드라이트를 반짝이며 다가왔다.
잠시 후 차가 정차하고 운전석에서 검은 로브의 사내가 내렸다.
휠체어에 앉은 남자는 그를 보며 미소 지었다.
“고생 많았어.”
휠체어 남자 옆으로 다가선 검은 로브의 사내가 한강을 응시하면서 입을 열었다.
“강민성. 어떻게 할 거야?”
휠체어 남자는 검은 로브의 사내가 말한 이를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직은 정보가 없으니까 천천히 지켜봐야 할 것 같아.”
검은 로브의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포만감을 느끼면서 잠드는 기분은 중독적이다.
여름밤 새벽에 먹는 우동.
아니, 냉우동은 최고였다.
그런 음식을 먹고 잠드는 건 축복과도 같은 행복을 느끼게끔 했다.
다만 이렇듯 식사를 하고 잠든 뒤 지금처럼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다소 몸이 무겁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런 건 별로 대수롭지 않다.
몸에 마기를 퍼트리면 순식간에 체내의 순환이 이루어지니까.
민성은 침대에서 내려와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거실로 나왔다.
걸레를 들고 테이블을 닦고 있던 리치 인형 바가지가 배꼽 인사를 했다.
“일어나셨습니까. 주인님-”
걸레를 들고 귀엽게 인사하는 바가지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주방으로 갔다.
냉장고 문을 열어 물을 마시려다가 멈췄다.
“이건 커피인가?”
민성은 삼천이백만 원짜리 커피 머신 앞에 서서, 옆에 놓인 설명서를 들고 내용을 파악했다.
커피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알아본 민성은 곧장 커피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워낙 고가의 기계라, 알아서 커피와 물의 양을 균일하게 맞추고 조정한다.
때문에 순서만 알고 있으면 딱히 바리스타의 능력 같은 건 필요가 없었다.
손쉽게 커피를 만든 민성은 잔을 들고 통유리 문을 열어 앞마당으로 나갔다.
푸른 하늘.
따사한 햇빛.
짹- 짹-
새소리가 들린다.
매미 소리도 커다랗게 울렸다.
앞마당 의자에 앉아 자연을 느끼며 커피를 마셨다.
“호롭!”
뜨거운 커피가 입술의 주름을 타고 입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하아- 줗구나.”
민성이 반쯤 풀린 눈으로 파란 하늘을 보았다.
현세로 귀환한 지 조금 되었음에도 여전히 실감이 나질 않았다.
이렇게 평화로운 세상을 살 수 있다는 것이.
민성은 따뜻한 커피를 음미하며 평범한 일상의 행복에 잠겼다.
그렇게 눈을 감고 따뜻한 햇살을 느끼고 있던 중,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민성은 미간을 훅 찌그러트렸다.
누구야?
민성은 정원 테이블에 커피 잔을 올려 두고 일어섰다.
* * *
“안녕하세요?”
민성은 문틈 사이로 방긋 웃으며 인사하는, 놀라우리만큼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을 보며 미간을 구겼다.
“누구?”
“낚시터에서 미끼 빌려줬었잖아요. 기억 안 나요? 김지유.”
“그런데?”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요. 들어가도 될까요?”
“아니.”
김지유가 손에 들고 있는 봉지를 들어 보였다.
봉지에는 ‘충무 김밥’이라고 상표가 적혀 있었다.
“빈손으로 오기는 뭐해서.”
민성은 이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우동을 먹고 잤음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보는 충무 김밥은 강렬하게 식욕을 자극했다.
민성은 문을 활짝 열었다.
김지유는 예쁜 미소를 던진 후 민성의 집 안으로 들어왔다.
“어머, 이건 뭐야? 어? 움직이네. 꺄악, 귀여워.”
김지유는 청소를 하고 있던 바가지를 들고 자지러지게 웃었다.
그사이 민성은 봉지 안에서 충무 김밥을 꺼냈다.
김밥과 오징어무침. 무김치와 시래깃국이 1회용 용기에 정갈하게 담겨 있다.
“헤헤, 헤헤.”
바가지는 김지유의 가슴에 파묻혀 웃음소리를 흘렸고, 김지유는 민성이 충무 김밥을 먹으려고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용기의 뚜껑을 까자마자 고소한 향이 콧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저항이 불가능하다.
민성은 바로 이쑤시개를 들었다.
김에 돌돌 말려 있는 밥의 중심을 이쑤시개로 푹 찌른 뒤, 오징어무침을 겹쳐 찍었다.
이쑤시개를 들어 충무 김밥을 앙 물었다.
부드러우면서도 오독한 식감이 입안에서 파도쳤다.
……맛있다!
눈을 뜬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맛있다.
장국 용기를 들어 후루룩! 마셨다.
국물과 함께 부드러운 시래기가 입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민성은 충무 김밥을 두 개째 먹으려다 김지유를 보았다.
김지유는 빙긋 웃었다.
“전 먹고 왔어요. 많이 드세요.”
주인이 허락하지 않았음에도 멋대로 방문했으나, 그것에 대한 책임은 이 충무 김밥으로 퉁 치는 걸로 하자.
민성은 충무 김밥을 먹어 나갔다.
우물우물.
충무 김밥은 2개, 3개, 4개를 먹어도 지겹지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달라고 위에서 신호를 보내는 것만 같다.
참을 수 없어…….
또 하나의 충무 김밥이 민성의 입안으로 쏙 들어갔다.
크기가 참 먹기 좋게 잘 만들어져 있다.
밥알은 고슬고슬하고 김은 바삭바삭해서, 씹을 때 탁탁 터지는 느낌이 재밌다.
무엇보다 오징어무침이 너무 맛있게 매워 중독적인 섭취를 반복하게끔 만든다.
이쑤시개가 김을 터트리며 푹! 하고 밥알을 찔러 들어갔다.
이제 충무 김밥이 마지막 1개 남았다.
민성은 그것을 아쉬운 듯 바라보다가 오징어무침의 어묵과 오징어, 그리고 야채와 콜라보를 이루게끔 만든 뒤, 마지막 한 입을 입에 물었다.
밥알과 오징어무침을 씹어 삼키곤 시래깃국을 원샷하여 용기를 깨끗하게 비웠다.
꿀꺽!
마지막 한 방울까지 삼켜 버렸다.
포만감이 배를 가득 채운다.
민성은 그대로 소파 뒤로 넘어가듯 기댔다.
그리고 김지유를 보았다.
그녀는 바가지를 간지럽히고 있었다.
“에헤헤, 에헤!”
괴상한 소리를 내며 웃고 있는 바가지와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 듯 웃고 있는 김지유를 째려보았다.
“물어볼 게 뭐지?”
김지유가 생글 웃으며 민성을 보았다.
“지방 기관의 기타 능력자들과 무슨 일이 있었죠?”
“지방 기관의 기타 능력자?”
“대교 위에서.”
“아…….”
민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굳이 대답을 해야 하나.”
“그럼요. 중요한 문제예요. 그들은 국가의 중요한 인적 자원이니까.”
“내가 가려는 길을 막았으니까.”
김지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신이 가려는 길?”
“맛집.”
김지유는 살짝 당황한 얼굴이 됐다.
“아…… 그러니까 맛집에 가기 위해 이호성이 필요했고, 그런 그들이 당신 앞을 막았다는 이유로?”
“충분한 이유 아닌가?”
“당신이 죽인 거예요? 그 네 사람.”
“그 정도로 죽을 것처럼 보이진 않던데.”
“그럼 처음 대교에서 그들과 마주쳤을 때 이후로 그들을 찾아간 적이 없는 거예요?”
민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지유는 바닥 쪽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민성을 보았다.
“거짓말, 아니겠죠?”
“내가 굳이? 네게?”
미소를 짓고 있는 김지유의 관자놀이에 혈관이 살짝 부풀어 올랐다.
“하하. 이 남자, 나 같은 미녀에게 어쩜 이리 시크하실까?”
“질문 해결됐으면 그만 나가.”
민성이 소파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김지유는 콧방귀를 뀌며 소파에 벌렁 다리를 펴고 누워 버렸다.
민성은 그런 그녀를 보며 얼굴을 굳혔다.
“뭐 하는 거야?”
김지유는 나른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
“나 머리가 너무 아파서 조금만 쉬었다가 갈게요. 그리고 말이에요. 최소한의 책임 정도는 느껴 주시죠.”
“무슨 책임?”
“지방 기관 기타 능력자들의 자리가 하루아침에 공석이 됐어요. 그건 곧 균형의 붕괴를 의미해요. 시민의 불안으로 이어질 만한 대형 사건. 그 사건에 당신이 깊게 연관되어 있으니까. 아, 그래서 말인데- 북부든 남부든 동부든 서부든, 지방 기관 자리 하나 맡아 줄 수 있어요?”
“…….”
대답이 없자 김지유는 실눈을 뜨고서 고개를 들어 보았다.
민성은 이미 거실에서 사라진 후였다.
“헐…….”
김지유는 들었던 머리를 툭 떨어트리며 픽 웃었다.
바가지가 김지유의 다리를 붙잡고 올라와 그녀의 배 위에서 축 늘어지듯 엎어졌다.
김지유는 바가지의 머리통을 문지르며 지친 얼굴로 눈을 감았다.
“강민성 씨.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녀가 힘없는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 * *
김지유가 거실 소파를 점령하고 있는 사이, 민성은 컴퓨터 방에서 웹서핑을 하며 맛집과 관련된 블로그나 SNS를 훑었다.
수많은 맛집에 대한 소개가 있지만, 그들이 그토록 칭찬한 식당은 막상 가 보면 의외로 맛이 없었다.
반 이상이 업자가 알바를 고용해 만든 광고용 홍보가 대부분인 것이다.
경험에 의거한 맛집만이 ‘추천’의 힘이라는 것을 발휘할 수 있다.
예컨대 이호성이 추천하는 맛집과도 같은.
그래서다.
이호성이 필요한 이유가.
민성은 마우스를 놓으며 이마를 긁적였다.
스스로 맛집을 찾아내려고 해 봐야 한계를 벗어날 수가 없다.
설령 한 군데의 맛집을 알아낸다고 해도, 그러기엔 그때까지 너무 많은 시간과 불행을 견뎌야만 했다.
민성은 모니터를 보며 고개를 주억였다.
역시, 이호성을 활용하는 게 최고다.
컴퓨터를 끄고 일어나려던 민성은 모니터에 뜬 스팸 광고를 보고, 반쯤 떼었던 엉덩이를 다시 의자에 안착시켰다.
민성이 보고 있는 스팸 광고의 제목은 ‘해외 음식 베스트7’이었다.
* * *
휴대폰 알림 소리에 이호성은 새집을 지은 머리로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켜 휴대폰을 확인했다.
[독일 직항 티켓 네 거까지 두 장 끊고, 소시지 맛집 알아 놔. 오후에 출발한다.
-주군 강민성-]
이호성은 그늘진 얼굴로 휴대폰 문자를 보며 깊게 숨을 내쉬었다.
“아니, 이거 진짜 미친 새X 아니야, 이거? 무슨 이태원도 아니고 독일이야. 아…… 스트레스 받아.”
이호성은 숙취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머리를 붙잡고 신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