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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46화 (46/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46화>

* * *

“푸하하하핫!”

클랜원의 농담 섞인 아부에 커다랗게 웃고 있던 이호성은 조민욱이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고 웃음을 멈췄다.

“하하! 음? 왜? 표정이 왜 그래?”

“잠깐 밖에서 얘기 좀 하시죠.”

조민욱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호성은 입에 담배를 물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조민욱을 따라 술집 밖으로 나왔다.

벌써부터 후더운 밤공기가 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이호성은 담배 연기를 뿜으며 걸치고 있던 카디건을 벗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조민욱이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이호성을 향해 입을 열었다.

“중앙 헌터 기관에서 호출이 왔습니다.”

“……뭐?”

이호성이 담배를 문 채로 얼굴을 확 일그러트렸다.

“거기서 호출이 왜 와?”

이호성의 물음에 조민욱은 고개를 저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 클랜이 너무 빨리 커지고 있어서 제재가 들어오는 게 아닐까요?”

이호성은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와…… 진짜 미치겠네. 그런 건 아닐 거야. 그게 말이 돼? 국제적으로 노는 놈들이 겨우 뒷골목 털자고 나오는 게. 너무 이상하잖아?”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일단 호출에는 응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호성은 기분이 상한 얼굴로 혀를 찼다.

“가야지. 언제까지 오래?”

“지금 당장 오시랍니다.”

“썩을놈들.”

이호성은 손에 들고 있던 담배꽁초를 확 갖다 던졌다.

지나가던 고양이 한 마리가 냐옹! 소리를 내며 빠르게 달아났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이호성은 고개를 저으며 조민욱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애들 좀 챙기고 있어. 금방 갖다 올 테니까.”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조민욱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이호성은 그런 조민욱을 보며 픽 웃었다.

“짜식, 쫄았냐?”

“쫄 수밖에. 상대가 중앙 기관인데.”

“너무 걱정 마. 별일 없을 거다.”

이호성은 곧장 중앙 헌터 기관으로 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 * *

이호성은 담배를 피우며 중앙 헌터 기관의 으리으리한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을 뚫을 듯이 솟아 있는 중앙 헌터 기관의 웅장함에, 이호성은 혀를 내두르면서도 자신이 참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만 해도 감히 올려다보지도 못할 세계였는데, 이렇게 친히 기관의 부름까지 받게 되고.

“세금을 따로 내라든가, 조직을 해체하라든가. 뭐, 그딴 소리는 하지 않겠지?”

처음 조민욱에게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술기운에 허세를 부렸는데, 막상 기관 건물 앞에 도착하자 술이 바짝 달아났다.

그림자 길드와는 차원이 다른, 완전히 다른 세계라고 봐도 무방한 곳.

그곳이 바로 대한민국의 중심부를 이루는 중앙 헌터 기관이다.

이호성은 벌게진 얼굴을 손으로 한차례 문지른 뒤, 8성급 호텔을 방불케 하는 장엄한 자태의 중앙 헌터 기관 출입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살다 보니 중앙 헌터 기관 안에도 다 들어가 보는구나.

“어떻게 오셨습니까?”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집단인지 입구를 지키는 경호원 레벨만 195레벨에 달한다.

그림자 길드는 상대도 안 되는군.

정말이지 징그러울 정도로 거대한 단체라는 게 새삼 피부를 긁어 왔다.

더군다나 경호원의 눈빛에서 보이는, 중앙 기관에 속해 있다는 자부심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강력했다.

200레벨의 오러 유저인 자신마저도 잡아먹을 듯이 눈을 부라리는 걸 보면, 중앙 기관이라는 배경이 이토록 사람의 어깨에 힘을 실어 주는 모양이다.

하지만 좋은 자세는 아니다.

저러다 집에 가는 길에 뒤통수 맞고 훅 가기 십상이지.

쯧쯧.

이호성은 중앙 기관 입구를 지키는 경호원의 앞날을 걱정하며 신분증을 꺼냈다.

“중앙 기관에서 호출을 받았습니다. 이름은 이호성. 코드 번호는 F0301A.”

중앙 헌터 기관은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하게 규제한다.

외부인이 중앙 헌터 기관의 본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분증 증명과 휴대폰 메시지로 코드 번호를 부여받아야만 출입이 가능했다.

경호원은 손목에 찬 시계로 코드 넘버를 확인한 후에 문을 열어 주었다.

이호성은 띠꺼운 눈으로 경호원을 슬쩍 쳐다본 후에, 코를 훌쩍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여긴 24시간으로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는 건가.

어마무시하게 화려한 로비에 발을 딛자마자 시원한 냉기가 느껴졌다.

로비 천장에는 황금으로 된 거대한 샹들리에가 걸려 있고, 여기가 한국인지 외국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높은 천장과 넓디넓은 로비가 이호성의 눈앞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뭔 로비가 운동장만 하냐.”

이호성은 드넓은 로비 중앙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겨 가까운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엘리베이터는 대충 훑어봐도 족히 8개는 있는 듯했다.

이호성은 코드 번호를 통해 안내받은 대로 97층을 터치했다.

그나저나 대체 누구를 만나는 거지?

그런 의문을 품기를 잠시, 엘리베이터가 97층에 도착했다.

“와, 빠르네?”

이호성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복도는 꽤 넓었지만 보이는 방은 하나뿐이다.

그리고 그 방엔 ‘VVIP ROOM’이라는 글자가 조명을 받아 금빛으로 번쩍였다.

“저기로군.”

이호성은 걸음을 옮겨 룸 앞에 선 후, 심호흡을 크게 했다.

‘제발 다이아몬드 클랜이 무사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곤 한 번 더 심호흡을 하고 노크를 했다.

덜컥-

문이 열리자 문틈 사이로 제복 차림의 한 여자가 보였다.

흘러넘치는 머릿결에 도톰한 입술과 높은 콧날, 그리고 화려한 눈 화장은 보는 순간 성욕이 뇌리를 팍 찌를 정도로 섹시했다.

“이호성 님이십니까?”

여자가 물었다.

이호성은 넋 나간 얼굴로 그녀를 보며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가 문을 활짝 열었다.

“들어오시죠.”

이호성은 머리를 한차례 흔든 뒤, 침을 꿀떡 삼키며 VVIP룸 안으로 들어갔다.

전면 유리창 밖으로 도심의 풍경이 눈부시게 펼쳐져 있는 가운데, 룸 중앙 소파에는 문을 열어 준 섹시한 여자와는 대조적으로 신성해 보일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이호성이 들어오자 다소 지쳐 있는 눈길로 자리를 가리켰다.

“앉으세요.”

그녀가 고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호성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소파 자리에 앉았다.

엄청나게 아름답다.

여신이라고 한다면 어느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만큼 아름답다.

그런데 이렇게 말도 안 되게 아름다운 여자가 어째서 어디서 본 것 같고, 눈에 익은 거지?

소파에 앉아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생각하던 이호성은 아! 하고 저도 모르게 소리를 치고 말았다.

“그, 낚시터……!”

이호성이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키며 외치자, 섹시한 비서가 이호성의 손가락을 잡아 밑으로 확 꺾어 내렸다.

“악!”

“감히 어디다 손가락질을 하는 거야.”

비서가 잡아먹을 듯이 이호성을 노려봤다.

이호성은 손가락이 꺾인 통증에 얼굴을 구기며 반대편 손바닥을 흔들었다.

“죄송해요. 아파요. 이것 좀…… 윽.”

김지유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비서는 잡아 꺾었던 이호성의 손가락을 놔주었다.

이호성은 부어오른 자신의 손가락을 재빨리 문질렀다.

그러다 고개를 들었는데, 김지유가 다소 굳은 얼굴로 자신을 빤히 보고 있었다.

이호성은 그녀의 직선적인 시선에 살짝 위축된 얼굴로 눈치를 살폈다.

“이호성 씨.”

“……네?”

“지금 당장 이 티켓을 가지고 외국으로 떠나세요.”

김지유가 고급스런 테이블 위로 비행기 티켓 한 장을 내밀었다.

이호성은 영문 모를 얼굴로 그녀가 내미는 티켓을 내려다보았다.

“……예?”

“말씀드렸다시피 해외로 가 주셔야겠어요. 2시간 후 인천 공항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왜요?”

이호성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되물었다.

“태도에 유념해 주시죠. 이호성 씨.”

이호성의 옆에 선 김지유의 비서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호성은 그녀의 말에 다시금 김지유를 살펴보았다.

헌터 네임이 없다.

그런데 중앙 헌터 기관에, 그것도 VVIP룸을 쓰는 여자라면…….

고위 직급의 자제라도 되는 건가?

뭐, 어쨌든 상황이 나쁘더라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이호성은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이호성은 허리를 세우고 어깨를 다소 긴장시켰다.

그들이 원하는 예의는 맞춰 줬지만, 일방적으로 강제 사항을 따르고 싶지는 않았다.

“무슨 일 때문에 저를 해외로 보내려고 하시는지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혹시 제 클랜이 거슬려서 그런 거라면 규모를…….”

김지유가 비서를 보았다.

“잠깐 나가 있어.”

비서가 깍듯이 인사를 하고 또각또각 힐 소리를 내며 VVIP룸을 나갔다.

이호성은 눈치를 살피며 머리를 긁적였다.

갑자기 해외로 가라니.

이게 무슨 개소리야?

“당신을 노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김지유가 말했다.

이호성은 넋 나간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예? 저를 왜요?”

“지방 기관에서 당신을 노리고 있어요. 지하 상권부터 서울을, 그리고 중앙 기관까지 장악할 계획을 가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호성은 머리가 급속도로 어지러워졌다.

지방 기관에서 자신을 노린다니.

이해가 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지 부조화 현상 때문에 속이 울렁거렸다.

“왜 하필 나를…….”

“당신이 지하 상권을 대부분 장악했기 때문이죠. 타이밍이 나빴다랄까.”

김지유가 티켓을 짚었다.

“시간이 없어요. 어서 이 티켓을 들고 외국으로 떠나세요.”

조민욱이 처음 자신에게 클랜을 재건시키자고 했던 이야기.

클랜원들이 모이기 시작한 순간들.

용병 최민수를 죽인 뒤의 대강당 연설.

축하 뒤풀이 자리.

짧은 시간이지만, 머릿속에서 그 순간들이 잊히지 않았다.

“만약 떠나지 않는다면요?”

이호성이 허공을 보며 물었다.

“당신은 100% 죽게 되겠죠.”

이호성은 맥 빠진 얼굴로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비행기 티켓을 바라보았다.

해외로 뜰 거였으면 강민성 때문에라도 진즉에 떠났다.

그럼에도 해외로 가지 않은 건……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였어.

그건 이호성이라는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존엄이자, 자존감이자, 자존심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허망하게 물러나라고?

“강민성 씨에게는 절대 도움을 요청하지 마세요.”

이호성은 깜짝 놀란 눈으로 김지유를 보았다.

“그를…… 알고 있습니까?”

김지유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나선다면 그 여파는 쉽게 잠재울 수 없을 거예요. 굳이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지 말아 주세요. 지금 당장 우리 쪽에서 당신을 죽이지 않는 건, 우리가 중립을 지키는 중앙 헌터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생각 따위는 하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

이호성은 헛웃음을 흘렸다.

“굳이 그렇게까지 말하지 않아도.”

“…….”

“당신이 생각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어차피 강민성 그 인간은 제가 도움을 요청해도 도와줄 생각 같은 건 없는 인간이니까.”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서둘러 떠나 주세요. 외국에 지낼 만한 곳과 경비를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도저히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에 이호성은 가슴이 먹먹했다.

하지만 권력층의 최하단부에 있는 자신으로서는 선택권이 없다.

죽지 않기 위해선 그녀의 말대로 떠나야 했다.

이호성은 쓸쓸한 눈으로 비행기 티켓을 주워 들었다.

김지유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힘든 선택이라는 거 알아요. 하지만 제 제안이 당신을 위해서라는 걸, 국가를 위해서라는 걸 잊지 말아 주세요.”

이호성은 손에 꼭 쥔 티켓을 들고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는 멍하게 눈을 몇 번 깜빡거리다가 축 처진 어깨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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