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45화>
* * *
민성은 방송을 클릭했다.
잠시 후, 잠깐의 로딩을 거쳐 화면이 나타났다.
이하나는 방송 준비 상태인지 라이브 영상이 아닌 사진을 걸려 있었다.
본격적인 방송은 제목대로 5분 후에 시작될 예정인 듯했다.
- 잔혹한 사육사!
- 잔혹한 사육사 등장ㅋㅋㅋ
- 오늘도 BJ 누나 살찌우러 오심? ㅋㅋ
- 이호성 님 스폰은 진짜 잔혹 그 자체인 듯.
- ㅇㅈ.
- 와, 저분이 말로만 듣던 잔혹한 사육사예요?
민성은 자신을 향해 시끄러워지는 채팅을 무시하고, 모니터를 보며 먹방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방송 시간이 되고 먹방 BJ 이하나는 칼같이 방송을 시작했다.
“여러분 안녕-”
그녀는 새로운 음악을 틀면서 인사를 했다.
그러다 채팅창을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호성 오빠 또 왔어? 무섭다, 진짜.”
이하나는 이호성으로 인해 채팅 창이 시끄럽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오빠. 오늘은 살살 좀 부탁해. 진짜 이러다 죽을 것 같단 말이야.”
민성은 몸을 배배 꼬면서 말하는 이하나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달풍선 스폰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어쩐지 야한 느낌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하나의 특성이다.
이것 역시 시청자를 끌어모으는 능력 중 하나.
어떻게 보면 일을 참 잘하는 여자다.
그러니 스페셜 BJ가 될 수 있었겠지.
“근데 호성 오빠는 항상 먹방 스폰할 때 말고는 왜 말을 안 해요?”
이하나가 카메라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귀여운 표정을 지었다.
“웅? 웅? 호성 오빠-”
민성은 그녀가 자신을 향해 자꾸만 쓸데없는 애교를 부리는 걸 보고 미간을 구겼다.
민성이 타자를 쳤다.
- 이호성 : 밥 안 먹나?
이하나는 민성의 채팅에 서운하다는 얼굴로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흥! 아직 배달 안 왔거든요?”
그때 초인종 소리가 났다.
“앗! 마침 도착했네. 호성 오빠, 조금만 기다려-”
이하나가 총총걸음으로 방을 뛰어 나갔다.
잠시 후, 그녀는 테이블을 세팅하고 먹방을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그사이.
채팅창은 여전히 민성을 중심으로 시끄러웠다.
- 잔혹한 사육사, 이호성 형님! 오늘도 하나 누나 완전 보내 버리십니까?
- 달풍선 애무 지려 버림ㅋㅋㅋㅋㅋ
- 나도 달풍선으로 하나 누나 보내 버리고 싶다.
- 응, 건빵은 꺼져.
- ㅋㅋㅋㅋㅋㅋ
- 변태들ㅋㅋ
채팅 창이 유치한 이야기로 도배되고 있는 가운데, BJ이하나가 먹방 세팅을 끝마쳤다.
떡볶이, 튀김, 순대, 잎새 만두, 어묵.
오늘의 먹방 메뉴는 분식이었다.
“야. 너희들 채팅 창 이쁘게 안 쓸래? 강퇴시킨다?”
이하나의 말에 채팅 창이 다소 깨끗하게 정리되기 시작했다.
“호성 오빠, 오늘도 스폰할 꾸야?”
민성은 애교를 부리고 있는 이하나를 보며 엷게 웃었다.
꽤 할 만한 모양이네.
이렇게 여유를 부리는 걸 보면.
그래.
게임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겠지.
내가 널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어.
미안하다.
민성은 눈을 하얗게 번쩍이며 타자를 쳤다.
- 이호성 : 그거 다 먹고 요구르트 100개. 성공 시 달풍선 5만 개.
민성의 채팅에 이하나의 얼굴이 하얗게 떴다.
“요구르트 100개? 아, 오빠! 그걸 어떻게 먹어.”
민성은 팔짱을 끼고 그녀의 선택을 기다렸다.
채팅 창엔 ‘역시 잔혹한 사육사다, 요구르트 100개가 말이 되냐, 못 먹는다, 하나 누나면 먹을 수 있다, 달풍선 5만 개라니!’ 등등 각종 의견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잠시 후, 고민 끝에 이하나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오빠, 50개로 해요. 100개는 진짜 무리야. 요구르트 100개가 말이 돼요? 미쳤나, 진짜.”
- 이호성 님이 퇴장하셨습니다.
“어? 어!? 안 돼! 오빠 잘못했어요. 돌아와요, 오빠아! 오빠아아아-!”
민성이 방송을 나가자 이하나가 뒤늦게 양손을 파리처림 비비며 소리를 꽥꽥 내질렀다.
하지만 민성은 이미 방송을 나왔기 때문에 이하나가 좌절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다른 먹방 방송을 찾아 나섰다.
어차피 먹방 BJ는 많았다.
파프리카 TV의 먹방 BJ에게 감탄하는 건 순전히 그들의 거대한 위장 능력 때문이다.
다른 먹방 BJ는 누가 있을까? 찾아보던 중에 쪽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이 쉴 새 없이 울렸다.
민성은 자꾸만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 때문에 쪽지를 확인했다.
- 호성 형님. 하나 누나가 스폰 먹방하겠대요.
- 형, 제발 와 주세요.
- 호성 형님. 하나 누나가 요쿠르트 먹겠대요ㅋㅋㅋㅋㅋ
- 형님 와 주십셔.
수없이 많은 쪽지가 와 있는 걸 보고 민성은 이하나의 방송에 다시 들어가 보았다.
도대체 그 짧은 사이에 언제 요구르트를 사 왔는지 분식 옆으로 요구르트가 탑처럼 쌓여 있었다.
“와, 호성 오빠…… 진짜 너무해. 못 하겠다고 하니까 바로 나가 버리냐. 알았어요. 할게요, 한다고. 이번에도 반드시 승리하고 말겠어!”
이하나는 언제나처럼 결정을 내린 듯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주먹을 꽉 쥐어 보였다.
“도- 전!”
그리고 그녀는 자리에 조용히 앉아 바로 먹방을 시작했다.
* * *
방송 화면에서 이하나가 바닥에 쓰러져 있다.
그녀의 입 밖으로는 요구르트가 흐르고 있었다.
방송을 보고 있던 누군가가 신고했는지, 구급대원들이 문을 따고 들어가 들것에 이하나를 실어 갔다.
민성은 모니터를 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좀 심했나?”
- BJ 이하나 님의 방송이 강제 종료되었습니다.
운영자에 의해 방송이 종료되었다.
“…….”
민성은 잠시 고민하다가 마우스를 잡았다.
- 이호성 님이 달풍선 150,000개를 선물했습니다.
- 이호성님이 퇴장하셨습니다.
방송은 종료되었지만 채팅 창은 살아 있다.
민성이 달풍선 15만 개를 선물하고 나가자, 채팅 창은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는 것처럼 시끄러워졌다.
그사이 민성은 컴퓨터를 끄고 일어났다.
“앞으로 안 해야겠다, 이거.”
민성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컴퓨터 방에서 나왔다.
* * *
왕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클랜원들은 자신을 왕으로 추대했다.
용병 최민수를 쓰러트리고 얻은 것은 조민욱의 말대로 클랜원들의 신뢰였다.
클랜원들의 눈빛은 처음 다이아몬드 클랜에 가입했을 때와는 상이하게 달랐다.
클랜장으로서의 면모를 직접 보여 주었고, 증명했다.
그것은 곧 충심으로 이어졌다.
도망치지 않고 싸우기를 잘했어.
입가가 웃음으로 벌어진다.
흐흐.
“클랜장님. 한 잔 받아 주십시오.”
클랜원 한 명이 소주병을 들고 다가왔다.
대강당에서 준비한 대로 일장 연설을 하고, 뒤풀이 겸으로 술집 하나를 통째로 빌렸다.
클랜원들이 모두 소주잔을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호성은 흠흠! 헛기침을 하면서 소주잔을 들었다.
클랜원 한 명이 이호성의 잔에 소주를 꼴꼴 따라 주었다.
“다이아몬드 클랜은 더 높은 곳으로 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해. 잘 따라 주길 바란다. 다이아몬드 클랜을 위하여-!”
이호성의 제의에 일제히 소주잔을 머리 높이 들어 올렸다.
“위하여-!”
술집을 가득 채운 클랜원들이 한목소리로 건배를 외쳤다.
이호성은 단숨에 소주잔을 비웠다.
“크으-!”
소주의 쓴맛이 너무나도 좋다.
로또에 당첨이 되거나, 도박장에서 거액의 돈을 딴 것보다도 더 기뻤다.
이호성은 오늘이 태어나서 가장 기분 좋은 하루였다.
성취감이 마치 전기처럼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찌르는 듯했다.
다이아몬드 클랜이 이토록 커질 줄이야.
강민성을 만난 뒤로 시궁창 같은 인생만 남아 있는 줄 알았는데, 자신에게 이런 금쪽같은 황금빛 인생이 펼쳐질 거라고는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역시 세상일이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거야.
“큭큭큭!”
이호성은 입에 담배를 물고 극락을 떠다니는 듯한 얼굴로 술을 기울였다.
그때-
“참 별의별 일이 다 있네요.”
조민욱이 TV를 보며 낄낄 웃었다.
“뭔데 그래?”
이호성이 조민욱을 보며 묻자, 그가 TV를 가리켰다.
TV에서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오늘 저녁. 모 인터넷 방송 업체에서 개인 방송을 하던 BJ가 요구르트를 과다하게 먹다가 실신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개인 방송을 보고 있던 시청자가 이를 신고해 구급대원이 그녀를 구조했습니다. 병원으로 이송된 BJ 모 씨는 다행히 안전에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BJ가 필요 이상으로 요구르트를 먹은 건 시청자가 선물하는 달풍선 때문인데요. ‘이호성’이라는 닉네임의 시청자가 5만 개를 선물하는 조건으로, 많은 양의 분식까지 먹은 BJ에게 요구르트 100개를 먹으라는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개인 방송의 사건 사고는 이번…….]
이호성은 TV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왜 하필 닉네임으로 내 이름이 나오는 거야. 재수 없게.”
“그러게 말입니다.”
옆에서 조민욱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야. TV 꺼. 술맛 떨어진다.”
조민욱이 웃음을 흘리며 방정맞게 뛰어가 TV를 종료했다.
* * *
“지금 뭐라고 하셨죠?”
중앙 헌터 기관의 무신(武神).
기타 능력자 김지유가 보석같이 영롱한 눈으로 북부를 지배하고 있는 기타 능력자 김수현을 불쾌하다는 듯 쏘아보았다.
김수현은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은 자세로 태연하게 웃음을 흘렸다.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이호성을 제거해야겠다고. 우리 기관에 있는 헌터 하나가 그에게 죽임을 당했어요. 따라서 우린 그자에게 책임을 물을 자격이 있죠.”
김지유가 입을 꼭 다물었다.
가장 간단한 해결법은 그의 말대로 이호성을 내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를 함부로 내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이호성을 내주는 건 서울 지하 상권이 넘어간다는 거고, 그것이 곧 내전의 시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 남자다.
신규 기타 능력자 강민성.
아직 이들 지방 무리들은 강민성의 존재에 대해 모르고 있다.
현 시점에 그의 존재가 세간에…… 아니, 그들의 눈에 드러난다면 자신이 그리고 있었던 그림에 차질이 생긴다.
딜레마(Dilemma).
어느 쪽도 이득을 보기 힘든 선택이다.
김수현은 그런 김지유를 보며 헛웃음과 함께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외네요. 그딴 버러지 하나 내주는데 이리 어려워하시는 모습이 말입니다.”
김수현은 더욱더 기다란 웃음기를 입가에 머금으며,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상대가 무슨 패를 꺼내든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양 거만한 태도를 유지했다.
김지유 자신이 좋은 패를 가지고 있다면 북부의 기타 능력자에게 빅엿을 선사하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들고 있는 건 똥패였다.
어떻게든 이 게임은 엎어야만 한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사흘. 사흘 안에 이호성의 처분에 대한 대답을 드리죠.”
그 대답에 김수현은 픽 하고 웃음을 흘리며 일어나,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그런 쓰레기를 왜 싸고 도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좋아요. 하지만 단 하루입니다. 더는 못 드려요.”
김수현은 경고가 담긴 눈으로 김지유를 내려다본 후, 자리를 떠났다.
그가 응접실을 나간 뒤, 김지유는 이마를 붙잡았다.
이마에 댄 손끝에서 뜨거운 열기가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