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44화>
223의 레벨.
그가 입을 열었다.
“지금 나보고 멈추라 그랬나?”
용병 최민수가 묵직한 저음의 목소리로 말하더니, 서슬 퍼런 눈으로 템 창에서 자신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시커먼 묵빛의 장검이다.
장검에는 푸른 오러가 맺혀 들어 기괴한 느낌을 만들어 냈다.
용병 최민수가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네가 뭔데 날 세워. 한번 해보자는 거지?”
그가 이호성 앞으로 걸어갔다.
“다이아몬드 클랜?”
그러곤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병신같이 뒷골목에서 돈이나 뜯으러 다니는 양아치들 아니야, 이거?”
“말이 좀 심하…….”
“무기 들어.”
용병 최민수가 느슨한 눈으로 이호성을 보며 말했다.
이호성은 그런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아 놔…….
이 자식, 여기에 몇 명이나 있는지 보이지 않는 건가?
이호성이 콧방귀를 뀌며 ‘저 새끼 조져!’라고 외치려는 순간, 조민욱이 슬쩍 옆으로 다가왔다.
“크, 클랜장님. 아무래도 증명해 보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호성은 의아한 눈으로 조민욱을 보았다.
“뭐라고?”
조민욱이 눈짓으로 레벨 223의 용병 최민수를 가리켰다.
“오러 유저입니다. 저자를 상대로 클랜 전체가 움직이는 건 좋지 않습니다. 클랜 전체가 저자를 친다고 해도 클랜장님을 향한 클랜원들의 충심은 전부 다 떨어져 나갈 겁니다. 클랜장님이 해결하셔야 합니다.”
식은땀 한 줄기가 목덜미에 흐르는 걸 느꼈다.
이호성의 동공이 지진 난 것처럼 흔들렸다.
클랜원들을 훑자 모두 긴장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
“헌터님이 저자와 정면 승부를 하는 것이 베스트입니다.”
식은땀이 이내 등을 축축하게 젖셔 왔다.
‘저 자식 레벨이 나보다 20이나 더 높잖아?’라는 말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다시 밑으로 내려갔다.
모두가 지켜보고 있는 이 상황에서 그런 약한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레벨이 높은 데다 전투 경험도 훨씬 노련할 거란 말이야…….
마음이 약해진다.
앞머리가 땀으로 축축하게 젖었다.
“무기 들어.”
용병 최민수가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로 이호성을 노려보며 말했다.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건 이럴 때를 말하는 걸까?
이호성은 다시금 주변을 훑어보았다.
모두가 자신을 보고 있다.
기대감이라기보다는 확인을 하고 싶어 하는 눈동자다.
보스로서, 클랜장으로서 다이아몬드 클랜을 이끌어 나갈 수 있을 만한 재목인지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그런 감정이 클랜원들의 눈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니미럴.
이호성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결심을 굳히고선 템 창에서 자신의 무기를 꺼냈다.
강민성이 던져 준 전설급 무기.
무장의 검이 이호성의 손에 들려 나왔다.
이호성의 손에 잡힌 무기를 보고 클랜원들이 ‘오오!’ 하고 감탄하였다.
용병 최민수도 이호성의 검을 보며 미간을 굳혔다.
얼핏 한눈에 봐도 좋은 무기라는 걸 그도 직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레벨에서 앞서고 있는 데다, 경험도 풍부하다고 자신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최민수는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눈에서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어서 싸우고 싶어 하는 투쟁 본능이 흘러넘쳤다.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어.’
이호성은 그렇게 생각했다.
일장 연설을 위해 대강당을 빌렸는데, 이곳이 자신의 일대기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아찔한 공포감이 밀려들었다.
그냥 녀석에게 이 클랜을 넘겨 버릴까?
어차피 자존심이라는 건 강민성에게 다 팔아 넘겼잖아.
그러니 여기서 물러선다고 해도 달라질 건…….
일순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난데없이 나타난 저 최민수라는 놈에게 굴복하여 클랜을 내주고, 꼴사납게 비웃음을 받으며 이 대강당을 나가는 자신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히 그려진 것이다.
이호성은 픽 하고 웃음을 흘렸다.
최민수는 눈살을 구기며 목을 모로 꺾었고, 클랜원들은 의아한 눈으로 이호성을 주시했다.
진짜 한심하다.
강민성도 아니고, 강민성에 비하면 고작해야 레벨이 20 정도 더 높은 헌터일 뿐이다. 그런데도 겁쟁이처럼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다니.
이호성은 어금니를 빠드득 갈았다.
차라리 죽자.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마치 용암처럼 끓어올랐다.
“해보자, 그래.”
이호성이 공격성을 드러내는 목소리로 말했다.
바닥에 검을 꽂고서 팔짱을 낀 채 지루해하고 있던 최민수가 ‘이제 됐냐?’라는 표정으로 박아 놓은 묵빛의 검을 뽑아 들었다.
곧 전투가 시작될 것을 예견한 클랜원들은 뒤로 물러나며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들어와.”
최민수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마치 강아지를 부르듯 손짓했다.
이호성은 검을 잡고 있는 손잡이를 으스러질 듯 강하게 잡았다.
이동 속도와 공격 속도를 올리는 스킬 효과로 인해 이호성의 다리와 팔에 새하얀 바람이 휘감겼다.
그리고 전설 등급인 무장의 검에는 푸르스름한 오러 가 맺혀 들었다.
‘꼴사나운 짓은 강민성 앞에서 하는 걸로 충분해.’
이호성은 곧장 최민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에 최민수는 검은 눈으로 응수했다.
마치 태어나기를 용병으로 태어난 것처럼, 그의 눈은 그가 가진 무기만큼이나 검게 그늘져 있었다.
카강!
검과 검이 충돌하면서 금빛의 스파크가 튀었다.
수백에 달하는 다이아몬드 클랜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호성과 용병 최민수의 검이 섞여 들었다.
검과 검은 연거푸 톱니바퀴처럼 맞물렸다.
호각(互角).
이호성과 최민수의 공수는 호각을 나타냈다.
레벨 차이가 20이나 났지만 누군가의 우세를 쉽게 점칠 수 없다는 점에서 클랜원들은 이호성에게 감탄했다.
그리고 그런 점은 그 누구보다도 이호성이 가장 크게 느끼는 부분이었다.
해볼 만하잖아?
레벨과 경험의 차이가 굉장히 클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검을 섞어 보자 싸울 만한 상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외려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과 속도에서 자신이 우세를 점점 더 장악해 나가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희망이 생겼다.
가슴이 부풀어지고, 흥분은 서서히 최고조를 향해 달려갔다.
사각-!
이호성의 검이 용병 최민수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무장의 검은 전설 등급의 검이다.
200대 레벨 안에서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검인 것이다.
그랬기에 레벨이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대미지를 입히는 것이 가능했다.
그 점을 깨닫게 되자 이호성은 심리적인 우위로 최민수를 압박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동일한 수준이라면 힘과 속도에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
스킬이라는 변수가 위험한 것이지만, 그 변수라는 것은 최민수만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호성 자신도 갖고 있다.
다만 그 변수를 활용하는 경험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최민수는 그동안 축적해 온 경험을 백분 활용했다.
우세를 잡아 간다고 생각했던 것이 역전된 시점은 거기서부터였다.
최민수가 이호성의 얼굴을 향해 하얀 가루를 내던졌다.
이호성은 당황하면서 뒤로 빠르게 물러났지만, 최민수는 이런 방식의 싸움이 익숙한 듯 아래쪽으로 몸을 낮추며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시야가 가려져 있던 가운데, 순식간에 밑에서 나타난 최민수의 검이 위로 쑥 올라왔다.
“큭!”
이호성은 짧은 신음을 흘리며 얼굴을 오른쪽으로 틀었다.
최민수의 검은 이호성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핏방울이 튀면서 이호성의 중심이 흐트러지자, 최민수는 이호성을 향해 검을 대각으로 내리그었다.
이호성이 황급히 검을 세로로 세웠다.
중심을 잃은 상황이라 검과 검이 부딪치면 본래 그 충격에 몸이 뒤로 넘어가야 정상이겠지만, 이호성이 들고 있는 것은 무장의 검.
용병 최민수의 무게를 담은 공격을 무장의 검이 흡수했다.
예상치 못한 충격 흡수량에 최민수가 놀랐을 때, 이호성은 바로 지금이 기회라는 것을 직감했다.
발뒤꿈치로 땅을 밟으며 그 탄력을 이용해 역공격에 들어간 것이다.
퍽!
이호성의 검이 짧은 빈틈을 파고들어 최민수의 심장을 관통했다.
최민수의 검은 눈이 새빨갛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쿨럭!”
그가 한 움쿰의 피를 토하며 자신의 심장에 박혀 든 검을 내려다보았다.
그걸로 끝이었다.
그는 눈을 감지도 못한 채 그대로 멈춰 섰다.
이호성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그의 심장에 박아 넣은 검을 뽑아냈다.
스르륵!
검이 빠지고, 이미 죽은 최민수가 허물어지듯 앞으로 엎어졌다.
“와아아아아아-!”
대강당 안에 있는 다이아몬드 클랜의 클랜원들이 환호했다.
귀를 쩌렁쩌렁 울리는 환호의 소리.
이호성은 멍한 얼굴로 자신을 향해 환호하는 클랜원들을 훑어보았다.
경험한 적 없던 전율이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이겼어.
이겼다.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 아니다.
태어나 처음 느껴 보는 감정이 가슴 안으로 파고들어 왔다.
존경과 감탄, 그리고 동경의 시선이 대강당의 중심에 선 자신에게 화살 비처럼 날아왔다.
이호성은 무장의 검을 머리 높이 번쩍 치켜들었다.
클랜장 이호성을 향한 환호가 훨씬 더 커다랗게 대강당을 울렸다.
* * *
“……용병이 죽어?”
북부 헌터 기관의 기타 능력자 김수현이 부하의 보고에 살짝 놀란 눈이 되었다.
“네. 용병 최민수가 이호성에게 당했습니다.”
부하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김수현은 의자에 기대며 헛웃음을 흘렸다.
“이호성이라는 놈을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네. 그 정도면 충분히 처리가 가능할 줄 알았는데.”
부하가 눈치를 살폈다.
“용병을 새로…….”
김수현이 부하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니, 됐어. 그보다 녀석이 꽤 좋은 템을 갖고 있는 모양이네.”
“확인해 본 결과, 무장의 검이었습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뒤, 부하를 향해 턱짓했다.
“나가 있어.”
김수현의 명령에 부하가 벌떡 일어나 인사를 하고 룸을 나갔다.
김수현은 테이블 스크린을 터치했다.
프로젝트 빔을 통해 벽에 영상 스크린이 나타났다.
신호가 가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 하나둘 김수현이 건 전화를 받기 시작했다.
동부와 서부, 그리고 남부의 기타 능력자들이었다.
“휴우, 용병이 죽어 버렸네요.”
김수현이 헛웃음을 흘리며 말문을 열었다.
그 말에 영상 스크린에 나타난 3명의 기타 능력자들이 제각각 다른 표정을 지었다.
동부는 재미있다는 표정.
서부는 짜증이 담긴 표정을 지었고, 남부는 냉랭한 표정이었다.
김수현은 그런 그들과는 달리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 계획이 미끄러졌는데, 얼굴을 보니 다른 생각이 있는 건가?
남부 기타 능력자가 무뚝뚝하게 물었다.
김수현은 팔짱을 끼고서 테이블에 엉덩이를 대곤 스크린을 향해 눈웃음을 지었다.
“계획이 미끄러졌다고 판 자체가 끝이 난 건 아니죠.”
- 그래서 다음 계획은?
“졸이 죽었으니 농포(弄包)로 장을 칠 생각입니다.”
남부 기타 능력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 이호성을 미끼로 중앙 기타 능력자를 끌어 낼 생각이군. 처음부터 계획된 거였나?
김수현이 미소 지었다.
“그럴 리가요. 판을 이어 갈 뿐입니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판을 까 보니, 오히려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겠어요. 애초에…….”
김수현의 눈이 검게, 반달로 휘어졌다.
“김지유라는 중앙 기타 능력자는 물러 터진 계집애니까.”
동부 기타 능력자가 킥킥 웃었다.
- 하지만 그 계집애의 힘이 가장 세다고.
“고립된 왕은 쓰러지기 마련이죠.”
- 이호성이라는 미끼를 간단히 내준다면?
남부 기타 능력자가 묻자 김수현은 웃음 지었다.
“서서히 잘라 내야죠. 종양이 전이될 수 있도록.”
- 조금씩 균열을 내겠다는 생각이군.
“그렇습니다.”
- 아아, 이러다 정말 중앙 집권이 생각보다 빨라지겠는걸?
동부 기타 능력자가 약에 취한 듯한 얼굴로 헤롱거렸다.
남부 기타 능력자는 짧게 혀를 찼고.
서부 기타 능력자는 지루한 제스처를 취했다.
김수현은 그런 그들을 보며 미소 지었다.
“작전 진행 상황은 여기까지입니다. 조만간 다시 연락드리죠. 앞으로는 꽤 회의가 잦아질 것입니다. 그사이, 여유를 즐기시길.”
김수현이 테이블을 터치해 스크린 통화를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