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삼시세끼-42화 (42/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42화>

‘잘 시켰어.’

그리고 물회는 뭐니 뭐니 해도 막회로 먹는 기본이 최고다.

민성이 그렇게 합리화에 가까운 생각을 하며 음식 나오기를 기다리길 잠시, 생각보다 빨리 민성이 주문한 물회가 반찬들과 함께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물회라서 빨리 나오는 건가?

꼬르륵!

배에서 굶주렸다는 신호가 크게 울렸다.

민성은 수저통에서 젓가락을 꺼내며, 반찬에는 시선도 주지 않고 메인 메뉴인 물회를 집중해서 보았다.

새빨간 것이 아주 먹음직스럽다.

둥둥 떠 있는 얼음과 새빨간 국물.

그리고 그 국물 위로 올라와 있는 풍성한 야채와 막회.

보기만 해도 몸이 시원해질 정도다.

민성의 시선이 물회 그릇에서 옆으로 넘어갔다.

하얀 도자기 그릇 위에는 소면이 있었다.

물회를 먹고 나서 국물에 넣어 먹도록 준비되어 있는 모양이다.

먹어 볼까?

민성은 젓가락으로 잘 정돈되어 있는 물회를 삭삭 휘저어 섞었다.

정갈하던 물회의 형태가 국물과 함께 토네이도처럼 회오리치면서 어우러졌다.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새빨갛게 섞여 든 물회가 민성의 젓가락에 의해 건져 올려졌다.

민성은 입맛을 다신 후 물회의 첫 입을 개시했다.

우물-

물회가 입안으로 들어왔다.

새콤하게 맛있어.

그리고 역시나 차갑고 시원하다!

더불어 막회의 포동하면서도 탱글탱글한 식감은 예상을 웃도는 힘이 있었다.

가히 ‘찰싹!’ 하고 엉덩이를 치는 듯한 탱글탱글함이다.

거기에 달콤 쌉싸래한 야채의 맛이 향긋하게 코끝을 자극한다.

물회를 선택한 건 정말 최고였다.

맛있어.

“호롭!”

입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일품.

정말 위험한 맛이군.

새콤, 달콤, 매콤의 3단 연속 콤보는 충격적이리만큼 강한 대미지를 줬다.

초장 맛이 너무 강하지도 않고, 이 물회 맛집만의 비결이 있는 것인지 간이 완벽한 밸런스를 갖고 있다.

게다가 약간의 시간이 흐르면서 얼음이 조금 녹자 풍미가 한층 더 강해졌다.

젓가락질이 빨라지는 건 당연한 순리였다.

마치 배 위에서 갓 잡은 회를 먹는 것만 같은 신선함이 입안에서 감돈다.

그리고 이곳 물회 맛집의 히트(Hit)는 달짝지근하고 아삭아삭한 배다.

물회 안에 배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어서, 배의 달콤과 야채의 쌉싸래한 맛은 절묘하게 믹스되어 즐거움을 선사했다.

“호로롭!”

맛있는 만큼 순식간에 물회는 마지막 건더기까지 민성의 위 속으로 그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이제 남은 것은 소면을 먹는 것.

아직도 살얼음이 껴 있는 물회의 새빨간 국물 위로 소면을 투하시켜, 하얀 면에 새빨간 양념이 잘 스며들도록 저었다.

면이 부드럽게 풀어지고 물회의 빨간 국물을 흡수했을 때, 민성은 면을 건져 올려 먹었다.

“후루룩!”

면발은 마치 용이 하늘로 승천하듯이 민성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면발이 차갑고 시원한 맛으로 씹혔다.

쫄깃쫄깃!

어금니로 면을 씹는 식감이 참 가볍다.

하나 맛이 주는 무게감은 절대 가볍지 않다.

다만 이 면이 물회의 마지막 순서라는 것이 아쉬울 뿐!

“호로록.”

마지막 면발을 해치우고 아쉬운 눈으로 물회를 내려다볼 때, 종업원이 지나가다가 민성을 보고선 멈춰 섰다.

“밥 드릴까요?”

종업원은 아주 건조하게 당연하다는 듯이, 지나가듯이 툭 하고 그렇게 물었다.

다소 과식이긴 하지만 지금의 컨디션이라면 충분히 소화할 수 있어.

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종업원은 터덜터덜 걸어가더니 공깃밥 한 그릇을 가져와 민성의 테이블에 시크하게 놓아주었다.

민성은 심호흡을 하며 밥뚜껑을 열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쌀밥이 보인다.

따뜻한 밥이라고……?

민성은 잠시 공황 상태에 빠졌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따뜻한 밥과 차가운 물회의 조합이라니?

민성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밥그릇을 들어 단번에 남은 물회 국물 위로 투하시켰다.

그리고 곧바로 숟가락으로 밥을 물회 국물에 삭삭 비볐다.

따뜻한 밥이 녹아든다.

마치 봄눈이 녹는 것처럼 보인다.

민성은 서둘러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었다.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포근한 느낌이다.

이래서였군.

역시 이유가 있었다.

식은 밥이 아니라 따뜻한 밥을 말아 먹는 이유가.

가히 새콤달콤하면서도 부드러움을 잃지 않는, 명품이라 할 만한 맛이다.

밥을 모두 먹고 그릇째 들어 국물을 마셨다.

“후루룩!”

물회 한 그릇을 완벽히 비우고 그릇을 탁 내려놓았다.

민성은 티슈 한 장을 뽑아 입가를 닦은 뒤, 투명하고 맑은 시원한 물 한 잔을 마셨다.

물이 칼칼했던 목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었다.

* * *

민성을 집으로 데려다준 뒤, 이호성은 조민욱을 만났다.

조민욱의 추진력과 과감함은 이호성 자신보다도 훨씬 뛰어났다.

“홀스 클랜장님. 선택하시죠. 우리 다이아몬드 클랜의 휘하로 올지, 전쟁을 할지.”

조민욱이 홀스 클랜의 클랜장에게 선택지를 결정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홀스 클랜장은 이호성을 보며 침음을 흘렸다.

200레벨을 떡하니 헌터 네임에 걸고 있다.

그런 그를 보고서도 전쟁을 할 의지 같은 건 생겨날 수가 없다.

200레벨이라니.

대체 어떻게 한순간에 이렇게 사람이 변할 수 있단 말인가?

200레벨은 오러 유저다.

뒷골목 세계에서는 듣도 보도 못했다.

보통 재능이 있는 놈들은 중앙 기관이나 지방 기관에 스카웃되거나, 이름 있는 공대 클랜에 들어가 더 큰 꿈을 꾸기 마련이니까.

게다가 이호성은 신출내기도 아닌, 오래전부터 이 바닥에서 굴러먹은 베테랑이다.

그 베테랑이 200레벨이 되어 다시 뒷골목으로 돌아왔다.

오러 유저는 넘을 수 없는 벽이다.

적어도 이 세계에서는.

그런 세계에서 벽이 되었으니 그를 막을 방법이 있을 리 만무하다.

고민은 길지 못했다.

홀스 클랜장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그 백기를 확인한 조민욱이 이호성을 향해 반짝거리는 하얀 이를 내보였다.

그사이 이호성은 복잡한 심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아도 조민욱이 오른팔로서 필두에 나서고 있다.

그는 이런 쪽으로 영민했고, 또한 기민했다.

그런 만큼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럼에도 이호성의 마음속에는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해결되지 않은 찜찜함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클랜장님. 홀스 클랜이 다이아몬드 클랜으로 흡수되었으니, 이로써 논현 구역과 신논현 구역이 우리 쪽으로 넘어왔습니다. 벌써 클랜원이 30명을 넘어가고 있어요.”

조민욱이 신이 나서 떠들었지만, 이호성은 조민욱처럼 마냥 좋아하고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뒷정리 좀 하고 있어. 다녀올 데가 있다.”

“어디 가시는데요?”

“그럴 만한 일이 있어.”

이호성은 대충 둘러댄 후, 차를 타고 액셀을 밟았다.

조민욱은 쏜살같이 멀어지는 이호성의 차량을 보며 다소 김이 샌 얼굴로 한숨 쉬었다.

* * *

심심하다.

소파에 앉아 넋 놓고 있는 와중에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인터폰을 통해 이호성의 얼굴이 보였다.

문을 열어 주자 이호성이 빠른 걸음으로 들어왔다.

“헌터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이렇게 불쑥 찾아왔습니다. 하하핫. 방해가 되지는 않았는지요?”

그가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민성은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왜 왔어?”

이호성이 쭈뼛거리며 민성의 옆에 가까이 섰다.

“저…… 그것이 제가 원래 다이아몬드 클랜의 클랜장이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 그래서…… 음, 클랜을 다시 세워 보고 싶어서…….”

민성은 그런 이호성을 보며 픽 웃었다.

긍정적인 웃음이 아니다.

이호성은 다급해졌다.

“헌터님! 제가 클랜을 만들면 애들을 키워서 전국 맛집을 이 잡듯이 뒤지도록 시킬 생각입니다. 그렇게 해서 헌터님을 보다 잘 보필하기 위…….”

띠딕-

민성이 텔레비전을 켰다.

“헌터님……?”

“네 마음대로 해.”

“……정말입니까? 정말 클랜을 만들어도…….”

“앞으로 내가 부르기 전까지는 찾아오지 마라. 당분간 혼자서 식당을 다녀 볼 생각이니까.”

이호성은 잠시 멍한 얼굴이 됐다가 뒤늦게 머리를 조아렸다.

“아, 알겠습니다.”

채널을 돌리다 ‘세계의 요리!’라는 프로그램이 나왔다.

세계의 요리에 대한 다큐멘터리 방송이었다.

비주얼이 좋아서 꽤 흥미가 당겼지만, 아쉽게도 이제 막 방송이 끝날 무렵이었다.

“집에 컴퓨터가 있었나?”

이호성이 손짓했다.

“이쪽입니다. 작업실 겸 컴퓨터 방으로 꾸며 놓았습니다.”

“알았어. 그만 가 봐.”

민성은 이호성에게 손으로 부채질을 하고선 컴퓨터 방으로 들어갔다.

* * *

컴퓨터를 켜자 1초도 되지 않아 윈도우가 나타났다.

“빠르네.”

민성은 감탄하며, D자 마크의 포털 사이트에 들어갔다.

TV에서 봤던 ‘세계의 요리’에 대한 정보와 동영상을 보며 시간을 보내던 중, 오른쪽 영상 목록 하나가 민성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먹방 BJ?”

민성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해당 영상을 클릭해 보았다.

잠시 뒤, 광고 영상을 지나 본 영상이 나타났다.

민성이 클릭한 영상은 인터넷 방송 중의 하나로, 개인 방송 BJ(Broadcast Jacky. 방송하는 배우라는 이름의 약자)가 음식을 먹는 걸 보여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채팅을 치는 유저들이 보였다.

민성은 턱을 괴고서 방송을 지켜보았다.

먹방 BJ가 음식을 먹으면 시청자들이 채팅으로 ‘맛있겠다.’, ‘잘 먹는다.’ 등 이런저런 채팅을 치며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먹방 BJ는 엄청난 양의 음식을 참 맛있게도 먹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이 달풍선이라고 해서, 유저들이 후원 개념으로 달풍선을 결제해서 선물로 주면, BJ는 그걸 통해 돈을 버는 듯했다.

이 달풍선을 얻기 위해 BJ는 괴상망측한 짓을 하거나 쇼를 하는 등 웃기는 리액션을 보여 주고 있었다.

영상을 통해 개인 방송이란 것을 알게 된 민성이 파프리카TV에 접속하자, 엄청난 수의 개인 방송들이 나타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민성은 흥미가 조금 더 강해진 눈길로 모니터를 보며 회원 가입을 클릭했다.

“닉네임이라…….”

민성은 잠깐의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닉네임 : 이호성]

민성은 필요로 하는 정보를 모두 입력한 뒤 회원 가입을 눌렀다.

그러자 ‘회원가입이 완료되었습니다.’라는 글자가 나타났다.

이제 방송을 보면 되는 건가?

실시간 라이브 방송이라는 게 상당히 흥미롭다.

가장 먼저 ‘먹방’을 검색해 보자, 검색과 동시에 가장 많은 시청자 수를 가진 방송 하나가 눈에 띄었다.

<스페셜 먹방BJ 이하나. 짜장면 12그릇 도전!>

“12그릇이라고……?”

민성은 다소 충격에 빠진 얼굴로 이하나라는 이름을 가진 먹방 BJ의 방송을 클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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