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삼시세끼-41화 (41/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41화>

“헌터님이라면 다이아몬드 클랜을 정점으로 부활시킬 수 있으실 겁니다. 헌터님이 클랜을 부활시키시면 제가 10명은 책임지고 데려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업계에서 최고 레벨이 아니십니까? 클랜장님 밑으로 순식간에 헌터들이 모여들기 시작할 겁니다.”

“끄흠…….”

이호성은 신음을 흘리며 생각에 잠겼다.

사실 그동안 잊고 있었다.

클랜을 부활시키는 것에 대해선.

워낙 강민성의 뒤를 닦아 주기 바빴으니까.

다이아몬드 클랜의 재건이라…….

일순 그 상상만으로 두근거림이 찾아왔다.

그리고 이내 허물어져 있던 가슴의 골에 다시 샘물이 채워지는 것만 같았다.

기본적으로 뒷골목 헌터들은 몬스터로부터 지역을 지켜 주는 조건으로 돈을 받는다.

가게 주인들의 칭송과 자신을 따르는 대형의 무리.

200레벨이라면 조민욱의 말대로 다이아몬드 클랜이 지역 상권을 장악하는 것도 전혀 가능성 없는 얘기가 아니다.

‘보스’라는 두 글자가 머릿속에 파고들었다.

* * *

“헌터님. 제가 준비한 맛집 리스트입니다.”

커피숍 테라스에서 이호성이 맛집 정보가 담겨 있는 굉장히 두꺼워 보이는 종이뭉치를 꺼냈다.

민성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이호성이 꺼낸 맛집 정보를 보며 미간을 구겼다.

“근데?”

“……네?”

“이걸 나보고 읽으라고?”

이호성이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이렇게 헌터님을 위해서 열심히 맛집 정보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드리고 싶어서였지요. 하하하하하하하핫!”

민성은 웃고 있는 이호성을 수상하다는 듯이 보았다.

“조증이냐?”

“예?”

“뭐 좋은 일 있어?”

“아, 아닙니다. 좋은 일은 무슨. 저야 헌터님을 보필하는 게 제 일이고, 행복이고, 삶이 아니겠습니까.”

“수상한데…….”

민성이 커피를 마시며 이호성을 빤히 보았다.

이호성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고개를 먼 곳으로 돌렸다.

“조용히 지내라.”

이호성이 여전히 딴 곳을 보며 손사래를 쳤다.

“에이! 제 까짓게 뭐 대단한 욕심이 있다고 시끄럽게 살겠어요. 그런 일 없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민성은 이내 신경을 끄고 경치를 보았다.

날씨가 좋다.

햇빛도 좋고 바람도 딱 좋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정말 화창한 날씨다.

민성은 평화로움을 즐기며 배를 문질렀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에는 어떤 음식이 좋을까?

“으으, 햇빛 싫어.”

주머니 안에서 바가지가 꼼지락거렸다.

“……뼈 감자탕?”

민성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고, 주머니 안에서 꼼지락거리던 바가지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떨었다.

그러곤 죽은 척 움직이지 않았다.

민성은 고개를 뒤로 젖혀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 뭐 먹지.”

“헌터님. 오늘의 점심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말해 봐.”

민성이 여전히 하늘을 본 채로 말했다.

“물회 어떠십니까?”

민성이 이호성을 쳐다보았다.

“물회라…….”

“네. 근처 멀지 않은 곳에 물회 맛집이 하나 있습니다.”

선선하면서도 햇빛이 강한 날에 먹는 물회.

민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출발하자.”

민성이 손에 들고 있던 빈 커피 잔을 공중에 던졌다.

이호성이 벌떡 일어나 허공에 떠오른 커피 잔을 낚아챘다.

* * *

[본토 물회]

간판에 걸린 가게 상호가 주는 무게감은 상당했다.

서울에서 물회를 가게 상호로 잡는 식당이 좀처럼 없기 때문이다.

보통은 ‘땡땡 횟집’ 등 회를 주제로 하거나 화려한 메인을 상호 이름으로 거는데, 이곳은 과감하게 물회를 가게 상호로 걸고 있는 것이다.

가게 주인이 물회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원래도 꽤 유명했지만, 방송을 타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입니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줄을 좀 오래 서야 해서…….”

이호성이 눈치를 살폈다.

그만큼 물회를 먹기 위한 대기 줄은 길었다.

“신기하네. 아직 한여름도 아닌데 이렇게 물회를 많이 찾는다는 게.”

“뭐, 그래도 이제 초여름도 거의 지나가고 있고, 낮엔 확실히 햇빛이 뜨겁기도 하니까요.”

민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줄을 섰다.

“헌터님. 대기표부터 먼저 뽑으셔야 합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순번이 가까운 순으로 줄을 선 사람들이라서요. 아마 길게는 1시간 정도 기다리셔야 할 겁니다.”

민성이 미간을 구겼다.

“그렇게 오래?”

“조금 오래 걸리긴 하죠? 아니면 다른 곳으로 모실까요?”

민성은 자부심을 담은 가게의 상호를 보며 얼굴을 굳혔다.

“아니. 배가 많이 고프지만 기다린다.”

“예. 알겠습니다. 하지만 분명 기다린 만큼 충분히 만족할 만한 식사가 되실 겁니다.”

이호성이 달려가서 대기표를 뽑아 왔다.

“헌터님. 여기 대기표입니다.”

민성이 이호성이 주는 대기표를 받았을 때.

누군가가 반가운 듯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어!? 클랜장님, 식사하러 오셨어요? 저희도 마침 점심 먹으려고 왔는데, 같이 한 끼 하…… 컥!”

민성은 대기표를 쥐고서 옆을 돌아보았다.

이호성이 한 남자의 목에 헤드록(Headlock)을 걸고서 저 멀리 질질 끌다시피 뛰어가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민성은 눈살을 구기며 이호성을 보다가 다시 가게 쪽을 보았다.

줄이 정말 길다.

한 시간이면 먹을 수 있을까?

민성은 짧게 한숨 쉬었다.

기다린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지만, 마계에서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맛을 위해 1시간 참는 일 따위야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상대적인 비교를 통해 심신의 안정을 찾은 뒤, 민성은 근처의 대기 좌석에 앉아 줄이 줄어들기를 기다렸다.

* * *

“크, 클랜장님! 왜 이러세요, 아파요!”

에이스 클랜을 탈퇴하고 다이아몬드 클랜에 막 신규 가입한 조민욱이 이호성의 어깨를 탁탁탁 두드렸다.

이호성은 골목에 들어와 강민성의 위치와 분위기를 살핀 뒤에야, 조민욱의 목에 휘감고 있던 헤드록을 풀었다.

“너 뭐야? 네가 여기 왜 있어?”

이호성이 당혹감이 가득한 얼굴로 조민욱을 보며 물었다.

조민욱이 목을 문지르며 인상을 썼다.

“여기 왜 있긴요…… 점심 먹으러 왔다니까요.”

이호성은 조민욱을 보며 굵은 침을 꿀떡 삼켰다.

그리고 이마를 벅벅 긁으며 생각에 잠겼다.

만약 자신이 다시 다이아몬드 클랜을 만들었다는 걸 강민성이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애초에 강민성은 뒷골목 클랜에 대한 시선이 그다지 곱지 않다.

헌터를 해치고 아이템을 강탈하는 집단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을 거야.

그래.

설명할 시간이 필요하다.

왜 뒷골목 클랜이 필요한지.

그 존재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하고 납득시킬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전에 강민성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역시 쓰레기는 죽어야 돼.”

라고 말하며 단칼에 목을 날려 버릴 지도 몰라.

바질리스크도 한 방에 두 조각을 내 버리는 괴물 같은 인간이다.

더군다나 필요한 순간엔 피도 눈물도 존재하지 않는 남자.

그래서 늘 불안했던 거다.

아직은 시기상조야.

숨겨야만 한다.

이호성은 맥주 펍에서 만나 자신의 다이아몬드 클랜에 신규 가입한 조민욱의 멱살을 잡아당겼다.

“컥! 클랜장님. 진짜 왜 이러세요.”

“잘 들어.”

이호성이 조민욱을 무시무시한 눈길로 노려보았다.

조민욱은 영문 모를 얼굴로 그런 이호성을 보았다.

“지금 물회 가게에 네가 아는 헌터들 몇 명 있어?”

“아직 없어요. 지금 오는 중이라서.”

“그럼 걔네들 데리고 다른 식당으로 가라.”

“예? 이미 단체 예약을 해 놨는데…….”

“가라면 좀 가! 난 지금 중요한 분을 모시고 있다. 나중에 적당한 때가 되면 설명을 해 줄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여전히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조민욱을 보며 이호성이 말을 이었다.

“내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레벨을 올렸다고 생각해?”

이호성의 물음에 조민욱은 뭔가를 딱 눈치챘다.

“아……!”

“알아들었으면 어서 연락 때려.”

“알겠습니다!”

조민욱이 서둘러 전체 문자를 돌리는 걸 보며, 이호성은 그제야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호성은 다시금 고개를 빼꼼 내밀어 강민성의 분위기를 관측했다.

이호성은 뒤따라 호기심을 보이는 조민욱의 머리를 손으로 확 밀어냈다.

* * *

30분 정도 됐을 때, 민성은 대기 의자에서 일어났다.

본래 1시간은 족히 더 있어야 줄이라도 설 수 있을 테지만, 단체 손님이 펑크 난 관계로 줄이 확 줄어드는 행운이 있었다.

시간을 확인하자, 10분 정도만 더 있으면 기다리고 기다린 물회를 먹을 수 있을 듯했다.

민성은 안에서 먹고 있는 사람들과 줄을 선 사람들을 보며 팔짱을 꼈다.

장사가 참 잘된다.

근처에 회사도 많고, 점심시간이라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얼핏 보기에 물회가 한 끼 식사로는 꽤 비싼 가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비싼 물회를 점심으로 사 먹는 건 다소 의외였다.

물회 식당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줄이 훌쩍 줄어들었다.

이제 한 테이블만 일어나면 민성도 자리를 잡고 앉아 주문을 할 수 있을 듯했다.

인내를 갖고 기다린 끝에 드디어 차례가 됐다.

“128번 손님?”

종업원의 물음에 민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으로 오세요.”

종업원이 빈자리를 가리켰다.

이제 막 정리가 끝난 테이블인 듯했다.

민성은 종업원이 건네주는 메뉴판을 받고서 메뉴를 확인했다.

물회의 종류는 총 5가지.

[멍게 물회]

[막회 물회]

[낙지 물회]

[전복 물회]

[스페셜 모둠 물회]

각각 그림이 있어서 어떤 메뉴를 선택할 것인지 결정에 도움이 되었다.

스페셜 모둠 물회는 3만5천 원의 가격으로, 점심에 먹기에는 다소 그 양이 부담스러울 듯했다.

어떤 게 좋을까?

가장 가격이 싸고 기본이 되는 것은 멍게 물회.

음…… 하지만 이왕 먹는 거라면 제대로 된 물회를 먹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자연히 3만 원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 낙지 물회와 전북 물회에 눈이 갔지만, 물회의 진정한 기본은 막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민성은 이내 결정을 내리고 곧 벨을 눌렀다.

“주문하시겠어요?”

검은 유니폼을 입은 여자 종업원이 물었다.

“막회 물회 하나.”

“알겠습니다.”

종업원이 시크하게 주문을 받고 돌아갔다.

민성은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늘 그랬듯이 가게 내부를 훑어보았다.

물회집치고는 굉장히 세련되었다.

나무 재질로 된 밝은 톤의 인테리어가 돋보였다.

벽에는 연예인 사인이 줄지어 있고, 가게 주인이 연예인과 함께 찍은 사진도 벽에 전시되어 있다시피 걸려 있다.

실내는 점심시간이라서 그런지, 인원이 많은데도 별로 시끄럽지가 않았다.

다들 식사에 집중하고 있다.

민성은 음식을 기다리면서 다른 사람들은 뭘 먹는지 보았다.

보통은 막회 물회를 먹었고, 인원이 꽤 있는 단체 테이블에는 스페셜 모둠 물회를 먹는 곳도 있었는데 비주얼이 그다지 좋지는 않다.

차가운 물 위에 낙지와 전복, 그리고 막회가 떠 있는 건 다소 과해 보였다.

전혀 식욕을 당기는 비주얼이 아니다.

그런 가운데 한 테이블에서 회덮밥을 먹고 있는 모습이 민성의 눈에 들어왔다.

회덮밥.

싱그러우면서도 부드럽고, 또한 야생적인 맛이 살아 숨 쉬는 회덮밥의 식감을 떠올리자, ‘회덮밥도 있었네.’ 하는 생각이 자연히 떠올랐다.

회덮밥을 시킬 걸 그랬나?

하나 애초에 물회를 먹으러 들어오기도 했고, 결국 더 승기가 굳혀지는 쪽은 역시나 물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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