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40화>
팔에 뱀 문신이 그려져 있는 4명의 부산 헌터들이었다.
그들은 들어오자마자 주인을 불렀다.
“아줌마. 와 자꾸 돈이 밀리노? 어? 장사도 잘되면서 와 이칼까, 진짜.”
뱀 문신이 팔에 그려진 남자의 말에 주인이 울상을 지었다.
“이렇게 상납금을 올리면 저희보고 어떻게 먹고살라는 거예요.”
“아, 우리 아줌마. 이제 먹고살 만하니까 몬스터가 안 무서운 갑네? 어? 배 좀 부르니까 눈에 보이는 게 없재?”
“그런 게 아니라…….”
“오늘 안에 부치라.”
뱀 문신이 무겁게 말하자 주인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알았어요.”
“상다리 뿌라지게 함 차리 주고.”
뱀 문신이 이죽거리며 일행들과 함께 중앙에 위치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민성은 그런 그들을 개의치 않고 영화를 계속 시청했다.
그사이 종업원이 음식을 들고 민성의 테이블로 걸음을 옮겼다.
뱀 문신은 민성이 앉아 있는 방향을 흘깃 보고선 종업원을 향해 손짓했다.
“야, 그거. 갖고 온나.”
종업원은 당황한 얼굴로 민성과 뱀 문신을 번갈아 보며 눈치를 살폈다.
“마, 확! 그거 갖고 오라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탕수육.
본래 민성의 테이블에 와야 할 음식이었다.
종업원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민성의 눈치를 살피다가, 탕수육을 뱀 문신이 있는 남자의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민성이 쳐다보자, 뱀 문신은 피식 웃으며 일어나 민성의 테이블 앞으로 걸어갔다.
“마? 불만 있나?”
민성은 영화를 잠시 정지시킨 뒤, 뱀 문신을 보았다.
“너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민성이 물었다.
“꼬우면 네가 헌터 하든가. 아니, 근데 휴대폰으로 뭘 보노?”
뱀 문신이 고개를 빼꼼 내밀어 민성의 휴대폰을 보았다.
“억!? 야들아. 이 새끼,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보고 있다. 푸하하하핫!”
뱀 문신이 웃음을 커다랗게 터트렸다.
“이 새끼, 이 영화 보면서 탕수육 처먹으려고 하고 있네. 푸핫! 야, 네가 뭐 하정오가? 푸하하하!”
민성이 조용히 물컵에 물을 따라 마신 뒤, 티슈 한 장을 뽑아 입가를 닦고서 일어났다.
“따라 나와.”
민성이 어깨로 뱀 문신의 어깨를 탁 치며 가게를 나갔다.
뱀 문신은 잠시 충격에 빠진 표정을 짓더니 쿡! 하고 웃었다.
젓가락을 들고서 탕수육을 먹고 있던 동료들도 피식 웃으며 젓가락을 놓고 천천히 일어났다.
4명의 헌터들이 킬킬 웃으며 가게를 나갔다.
잠시 후, 4명의 헌터들이 민성을 따라나선 지 1분도 되지 않아 민성이 가게 안으로 돌아왔다.
민성은 소매에 묻은 피를 탁탁 털어 낸 뒤, 자신의 자리에 다시 앉았다.
가게 안에 있던 손님들은 하나둘 기겁한 얼굴로 카운터에 돈을 놓고 가게를 도망치듯이 빠져나갔다.
손님들이 뛰다시피 가게를 나가는 사이, 민성은 벨을 눌렀다.
딩동-!
멍하게 서 있던 종업원이 화들짝 놀라며 민성에게 다가갔다.
“……네?”
“주문한 음식은?”
민성이 다소 심기가 좋지 않은 표정으로 물었다.
“아! 최, 최대한 빨리 새 걸로 내오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종업원이 90도로 머리를 숙이곤 주방으로 달아났다.
민성은 젓가락으로 단무지 하나를 집어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짜자작, 짜자작!
어금니로 노란 단무지를 씹는 소리가 경쾌하다.
다시 영화를 본 지 조금 됐을 때 음식이 차례차례 나왔다.
먼저 탕수육이 도착하고, 다음으로 군만두가 왔다.
생각보다 영화가 굉장히 재밌어서 민성은 영화를 보면서 음식을 먹기로 했다.
우선 소주병부터 땄다.
짜자! 짝!
한 바퀴 반을 돌려 소주병을 까고, 잔에 소주를 꼴꼴 따랐다.
민성은 탕수육을 보며 살짝 놀란 얼굴이 되었다.
탕수육이 조금 특이하다.
보통 노란 소스에 노릇한 튀김옷을 입은 것이 보통의 탕수육일진대, 자신의 식탁 위로 올라온 탕수육은 무명실처럼 새하얀 튀김옷에 하얀 소스가 배어져 그 위로는 양파가 올라가 있었다.
맛을 한번 보자.
젓가락을 들어 가장 먼저 다소 부피감이 있는 탕수육을 집어 입에 넣었다.
우물-
달짝지근한 것이 말 그대로 꿀맛이었다.
게다가 튀김과 고기가 너무나도 부드럽게 짝짝 씹혔다.
민성은 놀란 눈으로 하얀 원반 접시에 담긴 탕수육을 보았다.
어떻게 이런 맛이 나지?
메뉴판을 다시 보니 이름이 찹쌀 탕수육이다.
아, 찹쌀!
여기선 찹쌀 탕수육을 파는군.
꿀이 실제로 들어간 것 같지는 않은데 꿀맛이 난다니, 신기한 음식이다.
민성은 영화를 보면서 다음으론 군만두를 간장에 찍어 입에 넣었다.
바삭한 표면의 식감에 이어, 기름기를 머금은 군만두 속 육즙이 민성의 입안에 퍼졌다.
“후우…….”
민성은 뜨거운 입김을 내뿜으며 소주잔을 들었다.
영화를 보면서 그대로 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꿀꺽-!
민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품이다.
중화요리를 즐기는 데 이것이 최고 수준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완벽한 만족감을 전해 준다.
민성은 영화를 보며 느긋하게 식사를 즐겼다.
그사이 식당 주인은 용기를 내서 바깥으로 나가 보곤 충격에 빠졌다.
주인은 종업원과 함께 민성의 눈치를 살피며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주인이 종업원의 옆구리를 계속해서 찌르자, 종업원은 이내 떨리는 몸으로 민성에게 조심히 다가갔다.
“저…….”
종업원이 겁을 잔뜩 먹은 채로 말문을 열었다.
민성은 찹쌀 탕수육을 먹으며 종업원을 보았다.
“왜?”
“……저, 혹시 가게 앞에 쓰러져 있는 헌터들…… 아, 아, 안 죽었죠? 만약에 살아 있으면 구급차를 부르든지 해야 할 것 같아서…….”
종업원이 덜덜 떨면서 그렇게 물어보던 바로 그 순간.
민성이 손에 쥐고 있는 휴대폰에서 영화 대사가 흘러나왔다.
- 살아 있네.
민성이 종업원을 보았다.
“들었지?”
* * *
119 구급대원들이 중식당 가게 앞에 쓰러져 있는 헌터들을 구급차에 태워 갔다.
처참한 몰골로 들것에 실려 가는 헌터들을 중식당 가게의 주인과 종업원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CCTV도, 블랙박스도 먹통이 되어서, 무슨 일 때문에 헌터가 다친 것인지 경찰들에게 취조를 당하다시피 시달려야만 했다.
구급차가 떠나고 경찰들도 별달리 성과 없이 돌아가고 있는 지금, 주인과 종업원은 휴대폰으로 영화를 보며 차분하게 식사를 마치고 간 그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 * *
“흐흐! 푸흐흐! 후헷! 프헷!”
이호성은 미친 사람처럼 웃으며 거리를 걸었다.
웃고, 또 웃고, 또 웃었다.
그럼에도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오러를 쓸 수 있는 레벨이 됐다.
거기다 강민성이 준 전설 아이템 무장의 검까지!
꿈을 꾸는 게 아닌가 몇 번이나 뺨을 꼬집어 보았지만 생생한 통증이 현실임을 알려 주었다.
“푸흐흐!”
자꾸만 입술 밖으로 삐져나오는 웃음과 함께 이호성은 담배를 물고 시원하게 빨았다.
“좋다, 좋아.”
강민성을 만난 건 불행이 아니다.
천운이었어.
이호성은 담배를 피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충심으로 모실 거다.
온 힘을 다해 그를 주인으로 인정하고 모실 거라고 결심을 굳혔다.
이호성은 휴대폰을 꺼내 ‘똥싸가지’라고 되어 있는 강민성을 ‘주군’으로 고쳐서 저장했다.
“흠흠.”
이호성은 웃음을 참으며 콧구멍을 벌름거렸다.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간다.
200이라는 레벨.
그리고 오러 유저라는 호칭이 어깨에 힘을 세워 준다.
어차피 강민성도 부산에 있으니, 오러 유저가 된 것을 오늘 밤 스스로 자축하고 싶었다.
이호성은 자신이 자주 찾곤 했었던 이태원 펍 앞에 도착했다.
금요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하지만 이곳은 외국인도 많고 혼자 오는 손님도 많아서 부담 없이 맥주를 즐길 수 있었다.
이호성은 맥주를 주문하고 적당한 자리에 앉아 담배를 입에 물었다.
‘크…… 이 얼마 만에 즐기는 휴식다운 휴식이란 말인가?’
강민성이 금세 다시 서울에 오는 건 아닌지 불안했지만, 뭐 어차피 강민성이 부르면 다시 가면 그만이다.
짧게라도 좋으니 이 순간을 즐겨 주마.
펍 안에서 포켓볼을 치고 있는 외국인들을 보며 맥주가 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맥주가 도착하자마자 이호성은 잔을 들어 꿀꺽꿀꺽 마셨다.
“크으. 그래! 이 맛이지!”
성취감과 함께 맛보는 맥주는 그야말로 최고였다.
더군다나 템 창에 50억을 호가할 수 있는 아이템이 있다는 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을 만큼 행복한 일이었다.
그래, 이게 인생이야. 이게 인생이라고!
“큭큭!”
웃음을 흘리며 맥주를 다시금 마시려던 그때, 3명의 남자가 자신에게 다가왔다.
“음?”
이호성은 맥주를 마시며 그들을 보았다.
에이스 클랜의 클랜원들이다.
3명의 클랜원 중 101레벨의 조민욱이 먼저 이호성의 옆자리에 앉았다.
“이호성 클랜장님 맞으세요?”
에이스 클랜의 조민욱이 놀란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물어 왔다.
뭐야, 이 자식들?
이호성은 미간을 구겼다.
“그래, 내가 다이아몬드 클랜의 클랜장 이호성이다. 보면 모르냐?”
에이스 클랜은 뒷골목에서 상위권의 세력을 가진 클랜 중 하나였다.
다이아몬드 클랜이 강민성에 의해 박살이 난 이후로, 에이스 클랜이 영역을 꽤 넓혔 나갔을 것이란 건 불 보듯 뻔한 일.
어차피 뒷골목을 쥐고 흔드는 파락호 집단은 얼마 되지 않으니 다 거기서 거기인 것이다.
“역시 맞군요! 반갑습니다. 조민욱입니다.”
조민욱이 활기차게 악수를 청해 왔다.
이호성은 악수를 하지 않고 찌릿 조민욱을 노려보았다.
헌터에게 있어 의심과 경계는 습관이다.
목숨을 거는 게 직업인 만큼 의심과 경계가 무너지면 끝장이다.
“혼자 있고 싶으니까 저리들…….”
“이호성 클랜장님. 저희를 받아 주십시오.”
엉……?
이호성이 놀란 눈으로 그들을 보았다.
3명의 에이스 클랜원들이 반짝거리는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게?”
“200레벨이라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조민욱이 경이롭다는 듯 이호성의 머리 위 헌터 네임을 보며 말했다.
“헌터님, 지금 활동 중단 중이시죠? 이런저런 소문이 많았지만 그사이에 이토록 대단한 성과를 이루셨을 줄이야!”
“아니, 너희들…….”
“이호성 클랜장님! 곧 다시 시작할 생각이신 거죠?”
“엉?”
“클랜장님이 필두로 나서는 다이아몬드 클랜이라면 분명 서울 상권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을 겁니다. 저희가 힘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너희들은 에이스 클랜에 있잖아.”
“그렇지 않아도 탈퇴하고 싶었습니다. 능력도 없는 클랜장이 어찌나 패악질이 심한지, 욕심도 많고 아무튼 문제가 많은 인간이에요.”
원래 뒷골목이라는 게 그렇다.
호시탐탐 자신을 노리는 인간들이 많다 보니 클랜을 관리하려면 다소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애초에 밑바닥이라는 게 그런 거다.
흙을 구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그런데 대체 어떻게 200레벨을 달성하신 겁니까? 정말 대단한 경지에 이르셨습니다!”
조민욱과 그 동료들이 대단하다는 듯 반짝거리는 눈을 지우지 않았다.
“흠흠…… 그거야 다 노력이지.”
이호성이 먼 곳을 보며 말했다.
“아아, 노력! 하지만 분명 중간에 각성을 하신 거겠죠! 축하드립니다.”
각성이라니 가당치 않다.
그냥 강민성의 도움으로 레벨을 올린 것뿐이다.
그걸 말해 줄 수는 없으니 그냥 입 다물고 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