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39화>
* * *
정신없이 민성의 등 뒤를 쫓으며 막타를 가해 경험치를 획득했다. 레벨이 얼마나 오르는지, 경험치를 얼마나 먹었는지 그런 걸 생각할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오직 강민성의 발치 뒤를 쫓는 것에만 집중했다.
죽을 고비는 몇 번이나 있었다.
그 고비를 살려 준 건 강민성이 아니라 바가지였다.
놈에게 정말 감사해야겠다.
너를 부러워하고 미워했던 나를 용서해라.
앞으로 잘할게.
그런 마음이 진심으로 생겨났다.
바가지가 아니었으면 자신은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이렇게 200레벨을 달성해 오러 유저가 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오러를 사용할 수 있다니!
오러를 사용할 수가 있다니이이이이-!
이호성은 운전을 하면서 미친 사람처럼 헤죽헤죽 웃었다.
* * *
아이템을 정산하고 돈을 받았다.
66던전 120층 공략을 끝마치고 벌게 된 돈은 12억.
아무리 급처로 상인에게 팔았다고는 해도, 120층이나 클리어했는데 이 가격이라니.
미궁에 비하면 그야말로 형편없는 정산금이다.
하지만 절대 작은 금액은 아니다.
민성은 새삼 돈 벌기가 참 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만에 12억이라니.
게다가 미궁을 털었을 때는 하루아침에 200억이 넘는 금액을 벌어들였다.
이게 말인가, 막걸리인가.
스스로도 기가 찰 지경이다.
적어도 자신에게 던전은 호황이라고 해야 할 만한 시장이었다.
어쨌든 던전도 클리어했고 정산금도 받고 나자, 배가 고파졌다.
“식당으로 모실까요?”
이호성이 눈치 빠르게 다가와 그렇게 물었다.
역시 이호성은 맛집 셔틀로 쓰기에 가장 유능한 인적 자원이다.
상점을 나오자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던전에서 나왔을 때 하늘이 어둡더니, 세차게 굵은 빗줄기를 쏟아 낸다.
이호성이 우산을 착 펼쳐서 씌워 주었다.
“이호성.”
“네?”
“이건 네가 써라.”
민성이 무기 한 자루를 던졌다.
핏빛으로 된 검 한 자루가 빗속에서 허공을 팽그르! 돌면서 바닥에 푹 꽂혀 들었다.
이호성이 그 무기를 바라보았다.
[무장의 검]
순간 이호성은 넋 나간 얼굴을 했다.
이건 120층을 클리어하면서 특별 보상으로 얻은 무기였다.
이호성은 조심스레 검을 들어 올렸다.
[무장의 검]
등급 : 전설
공격력(작은/큰 몬스터) : 13 / 16
한 손/양손 : 한 손
옵션 : 힘+5, 추가 타격치+12
재질 : 미스릴
인챈트 : +0부터 실패할 가능성이 있음
손상 여부 : 손상
매매 : 가능
*주인 각인 시 양도 불가능
레벨 제한 : 200~400
특성 : 마법 폭발 대미지 분해
이호성은 입을 떡 벌렸다.
레전드 템이라고……?
무려 적의 마법 공격을 분해시킬 수 있는 특성도 있다.
이호성은 입술을 바들바들 떨었다.
“허, 헌터님. 이건 받을 수 없습니다. 제 주제에…….”
“왜?”
“너무 비싼 거예요, 이건. 당장 저 매매상에게 헐값에 넘겨도 30억은 족히 나올 겁니다.”
“그렇게 비싼 거였나?”
“네. 헌터 시장에서 가장 매매가 활발한 구간이 200에서 400레벨 사이의 아이템입니다. 그래서 가격도 높은 거고요. 이건 경매에 올리면 50억까지도 올라갈 수 있는 아이템…….”
“뭐, 어차피 던져 준 거니까 그냥 써라. 밥 먹자.”
민성이 걸음을 옮겼다.
이호성은 정신없는 얼굴로 황급히 뒤쫓으며 우산을 씌워 주었다.
* * *
“한식, 중식, 일식, 이태리, 프랑스. 어떤 쪽이 괜찮으십니까?”
이호성이 운전을 하면서 한껏 충심을 담은 어투로 물었다.
민성은 창밖의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며 잠시 고민했다.
어떤 장르가 좋을까?
고민이 꽤 길어진다.
식사의 한 장르를 결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메뉴를 결정하는 것만큼 민성에게 어려운 것은 없었다.
고민의 해답이 쉽사리 나오지 않던 중, 신호를 받은 차가 멈춰 섰다.
차가 정차하자 민성의 시선이 한곳에 고정되었다.
가전제품을 파는 가게였는데, 진열되어 있는 TV에서 뭔가를 틀어 주고 있었다.
그것은 민성의 시선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민성은 창문을 내려 좀 더 자세히 보았다.
“저건 무슨 방송이지?”
민성의 물음에 이호성은 민성이 보고 있는 것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 저거요? 영화예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다’라는 영화로, 1982년도 무대를 배경으로 만든 조폭 영화예요. 꽤 재밌죠.”
영화에서는 조직 보스로 보이는 한 남자가 중화요리를 먹고 있었다.
“하정오라는 배우인데, 연기가 정말 일품입니다.”
TV에서는 하정오라는 배우가 탕수육을 먹고 있었다.
“……어떻게 탕수육을 저렇게 맛있어 먹을 수가 있는 거지?”
민성이 충격을 먹은 얼굴로 영화를 보고 있자, 이호성이 작게 웃었다.
“먹방 배우로 유명하죠. 먹방의 시초가 저 하정오라는 배우 때문에 나왔다는 말도 있을 정도니까요.”
꿀꺽-
나도 저렇게 먹어 보고 싶다.
“저 가게, 실제로 있는 곳인가?”
“네. 실제로 운영되는 유명 가게입니다. 다만 지금은 리모델링을 해서 조금 넓어지기도 했고, 인테리어도 다소 바뀌었죠. 영화가 성공하고 가게 장사가 잘되면서 확장했나 봐요.”
“맛은?”
“뭐, 상당히 평이 괜찮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시간은 오후 5시로 초저녁.
소나기가 쏟아져 적당히 서늘한 날씨.
중식을 먹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분위기다.
“저기로 가야겠어.”
민성이 영화에 눈을 떼지 못하며 말했다.
“어…… 근데 헌터님. 저기 부산인데요? 지금 달리면 한 5시간 이상 걸릴 겁니다.”
“부산?”
민성의 되물음에 이호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부산이요.”
“전화하면 받아라.”
“……예?”
민성이 철컥 차 문을 열었다.
“어? 헌터님! 우산을…….”
“필요 없어.”
민성이 문을 쿵 닫았다.
* * *
아호성은 민성이 왜 비를 맞으면서까지 갑자기 차에서 내리겠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잠시 후 이호성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려 주변을 살피고 있는 민성을 보았다.
빗물이 민성을 적시지 못하고 비켜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전신에 오러를 둘렀다고……?”
이호성은 충격에 빠진 눈으로 민성을 보았다.
“인간 맞나, 진짜…….”
팟!
그때 차 옆에 서 있던 민성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 뭐야? 어디 갔어?”
주변을 살펴봤지만 민성은 찾을 수가 없었다.
빠앙, 빠앙!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출발하지 않자 뒤에서 클랙슨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이호성은 여전히 멍한 얼굴로 액셀을 밟았다.
“뭐야, 갑자기?”
그는 황당함에 혀를 차면서 근처에 차를 세울 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골목 빈자리에 차를 세운 이호성은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웠다.
떨어지는 빗물이 얼굴에 탁탁 튀었다.
담배를 다 피우고 20분 후.
“뭐지? 그냥 집에 가야 하나?”
이호성이 뒤통수를 긁적일 때 전화가 울렸다.
강민성의 전화였다.
이호성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 부산이다. 가게 위치가 어디야?
“……예? 아, 부산…… 네?! 아니, 부산이라고요?”
- 가게 위치 어디야?
“아, 자, 자, 잠시만요.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호성은 검색을 통해 주소를 확인한 뒤, 메시지를 보냈다.
“문자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헌터님, 진짜 지금 부산이시라…….”
뚜우. 뚜우. 뚜우.
이호성은 끊어진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부산이라고?”
이호성은 눈을 부빈 뒤, 다시 시계를 확인했다.
몇 번을 확인해도 분명 20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20분 만에 서울 강남에서 부산에 갔다고?
이호성은 눈을 커다랗게 뜨면서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잠시 받아들이지 못했던 현실이 뇌를 울렸다.
“와…… 인간 맞나, 진짜.”
온몸에 소름이 돋아 올랐다.
* * *
[중화요리 전문점 사천성]
이호성이 알려 준 주소대로 도착했다.
꽤 거창해 보이는 이름이지만, 가게의 규모는 생각만큼은 그리 크지 않았다.
여기가 영화에 나왔던 그 중화요리집인가?
별달리 화려하다고 할 만한 느낌은 없어도, 상당히 고급스럽게 인테리어되어 있었다.
영화에서는 허름했는데 과연 그 느낌이 날까?
민성은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조명이 굉장히 톤 다운이 되어 있어서 중국집이라기보다는 술집에 가깝다는 느낌이었다.
이 조명은 확실히 영화에서 주는 느낌 그대로가 맞다.
인테리어 자체가 모두 새것처럼 보여서 낡은 느낌은 없지만, 그래도 충분히 어두운 분위기에서 중화요리를 즐길 수 있어 보였다.
이를 증명하듯 중국집 안에는 손님들이 상당히 많았다.
비가 와서 그런지, 영화로 유명해진 가게라 그런지, 작지도 크지도 않은 규모의 중국집엔 약 80%의 자리를 손님들이 차지하고서 식사에 집중하고 있었다.
“몇 분이세요?”
빨간 유니폼의 젊은 남자 종업원이 다가와 물었다.
“혼자.”
혼자라는 말에 종업원은 가장 작은 2인석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운이 좋다.
2인석임에도 창가 자리다.
영화 그대로의 구석진 자리야.
주방에서 센 불로 조리하는 소리와 아주 조금 열린 창문 밖으로 들리는 빗물 소리를 들으며, 민성은 메뉴판을 살폈다.
메뉴판을 잠시 본 뒤, 더 볼 것이 없는 것 같아 바로 벨을 눌렀다.
사실 이곳으로 오면서 머릿속에 그려 둔 메뉴가 있었다.
“네, 주문하세요.”
종업원이 와서 주문을 받았다.
“탕수육 하나, 군만두 하나, 소주 하나.”
“네, 알겠습니다.”
종업원이 주문을 받고 돌아가자 민성은 휴대폰으로 영화를 검색했다.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다’라는 제목이었지, 아마.
검색을 해 보자 영화 포스터가 보였고, 그 옆으로 다운로드라는 글자가 보였다.
휴대폰으로도 볼 수 있나?
민성은 다운로드를 터치했다.
잠시 후 결제 창이 나타났다.
민성은 시키는 대로 유료 결제를 했다.
잠시 후, 영화가 시작되었다.
영화가 시작되고 연기를 하는 배우들을 보면서 민성은 엷게 웃었다.
참 잘 만들었다.
당시의 분위기는 물론, 정서를 잘 표현하기도 했고 배우들의 연기력이 정말 일품이다.
이제 막 시작했음에도 흥미를 끌어당겼다.
그렇게 영화를 보고 있던 그때, 중국집 문이 열리면서 4명이 남자들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