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37화>
[지금 서울 중앙 헌터 기관과 지방 헌터 기관의 대립이 날이 갈수록 더 그 골이 깊어지고 있는데, 이러다 만약 기타 능력자 간의 전쟁이 난다면?]
[엄청난 피해를 입겠죠.]
[좋게 해결이 되면 좋을 텐데, 워낙 대단한 분들이라…… 이거 뭐, 어떻게 국가에서도 나설 수가 없는 일이고.]
[이런 큰일이 세간에 알려진 것도 참. 허허, 그렇죠?]
[언론에 극비 사항을 공식적으로 노출시켰던 건, 중앙 헌터 기관이 내전을 막고자 하는 의도로 볼 수 있는 거니까요. 저는 그건 진짜 잘했다고 봐요.]
[그럴 수도 있겠군요. 어쨌든 지금 지방 헌터 기관의 행태는 중앙 진출을 하기 위한 액션으로 보여요.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TV에서 각 헌터 기관의 대립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점점 더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중년 여성이 원 쟁반을 갖고 왔다.
동그란 알루미늄 재질의 원 쟁반 위에는 밥, 그리고 뚝배기에 담긴 된장찌개가 있었다.
오…… 아직도 이런 원 쟁반을 쓰는 곳이 있구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되새겨지기도 하고, 서민적인 느낌이 물씬 나기도 했는데, 이런 고전적인 느낌이 민성은 싫지 않았다.
외려 더 좋았다.
외관도 내부도, 그리고 밥 스타일도 모두 집밥처럼 정말 편안한 느낌이다.
“맛있게 드세요-”
중년 여성의 인사에 민성은 짧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수저를 챙기면서 반찬의 종류를 눈으로 보며 제대로 확인했다.
시원해 보이는 오이 무침과 김치, 그리고 빨간 고춧가루 양념을 식초와 함께 입힌 겉절이가 눈에 띈다.
기름을 잔뜩 머금은 햄과 계란 옷을 입은 소시지도 보이고, 마늘장아찌도 눈에 삭 들어왔다.
반찬은 거기서 끝이 아니다.
냉장고에 식혀 놓은 계란찜 조금과 파전까지.
5천원짜리 된장찌개 하나를 시켜 먹는데, 이렇게 먹음직스럽고 훌륭한 반찬 세팅이라니.
정말 놀라군.
꼬르륵!
배에서 배꼽시계가 우렁창게 울렸다.
얼른 이 시계를 꺼 주자.
민성은 숟가락으로 밥뚜껑을 열고 밥을 크게 한술 떠서 입에 넣었다.
잘 지은 쌀밥은 정말 맛있었다.
찰밥인가?
부드럽고 달짝지근한 것이 밥만 먹어도 될 정도다.
딸랑-
종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고 몇몇 사람들이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아직 된장찌개를 먹어 보기 전이지만, 확실히 맛이 있는 식당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된장찌개를 한술 떠먹는 순간, 그 확신은 딱 들어맞는 결과를 보여 주었다.
매운 고추와 아주 작은 규격으로 잘려 있는 귀여운 두부, 그리고 파와 팽이버섯의 조화는 입안을 마치 완벽한 코너킥을 차는 유로파 축구 선수처럼 감칠맛 있게 휘감았다.
된장이 상당히 달긴 하지만, 민성의 입맛에는 이 단맛이 매우 취향에 맞아서 만족감이 배로 불어났다.
진한 된장보다는 마치 고깃집에서 먹는 듯한 단맛을 내는 된장찌개가 훨씬 민성의 취향이었고, 이 식당은 그런 민성의 취향을 정확하게 저격하는 가게였다.
새하얗게 윤기가 나는 밥 한술을 떠서 먹고, 반찬을 먹어 보았다.
오이무침을 입에 넣어 씹자, 아삭! 하고 향긋한 오이 향과 더불어 상큼함이 입안에 마치 분무기를 뿌리듯 퍼져 나갔다.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오이가 무르지 않고 탱탱하다.
식재료를 훌륭히 관리하고 있어.
민성의 시선이 된장찌개로 다시 옮겨 갔다.
이번엔 비벼서 먹어 볼까?
먼저 된장찌개 안에 잠겨 있는 팽이 버섯을 꺼내서 밥 위에 올려놓고, 두부와 청량 고추, 그리고 잘게 썰려 있는 파를 국물과 함께 퍼서 쌀밥 한쪽 부분에 부었다.
숟가락으로 된장찌개의 구성원으로 적셔진 밥을 삭삭 비볐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 환상적인 된장 섞인 밥을 입에 넣었다.
우물-
환상적이다.
청량 고추의 매운맛이 된장찌개의 단맛과 완벽하게 어우러지고 있다.
민성은 눈을 질끈 감고 강력한 대미지를 입은 듯이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저 어금니로 밥을 씹을 뿐.
정말 맛있다.
된장찌개가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던가?
눈을 뜬 민성이 계란 입은 소시지를 한입 베어 물었다.
푹신하게 들어온 소시지의 맛이 어릴 적의 기억을 떠올리게끔 만든다.
예전 그대로의 맛이다.
세상은 몬스터와 헌터로 격변기를 맞이했지만, 음식은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다.
한국 음식의 전통은 변하지 않은 것이다.
천천히 음미하기엔 너무 힘들다.
민성은 된장을 밥에 퍼다 날라 순식간에 숟가락으로 휘저으며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웠다.
자신이 바라던, 가장 완벽한 점심 식사였다.
* * *
이호성은 병실 침대에 누운 채로 시름시름 앓았다.
그런 이호성을 내려다보며 의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얼마 전에는 무리한 던전 사냥으로 몸이 엉망이 돼서 오시더니, 이번엔 대체 뭘 드신 겁니까?”
의사의 책망 섞인 말에 이호성은 창백한 얼굴로 쓴웃음을 지었다.
“브로콜리 스프요.”
의사가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브로콜리 스프요?”
그때를 떠올리자 공포스러운 듯 이호성이 굳은 얼굴로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브로콜리 스프.”
“전 무슨 독약이라도 먹은 줄 알았습니다. 빨리 회복 마법으로 치료를 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심각한 장 트러블을 일으킬 뻔했어요.”
의사에 말에 이호성은 어금니를 바드득 갈았다.
강민성, 이 개자식. 브로콜리 스프를 만들랬더니 대체 뭘 만든 거야. 진짜 독약이라도 제조했나? 설마 이런 식으로 날 보내 버리려고 했던 건가?
설마…… 그런 건 아니겠지.
“아무튼 약 꼬박꼬박 드시고, 이따가 오후에 퇴원하셔도 식사는 당분간 자극적이지 않게 드시도록 하세요.”
“걷기도 힘든데 벌써 퇴원합니까?”
이호성의 물음에 의사는 피식 웃었다.
“힐 치료를 해서 괜찮을 겁니다.”
의사가 병실을 나가자, 이호성은 창밖의 노을 지는 풍경을 보며 해탈한 표정이 되었다.
퇴원을 하게 되면 이 몸으로 또 강민성의 시중을 들어야 한다.
미칠 노릇이군, 정말.
이호성은 허허 웃었다.
그때-
벨소리가 울렸다.
이호성은 화들짝 놀라며 숨을 몰아쉬었다.
이젠 벨소리만 울려도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침을 꿀꺽 삼키며 발신자를 확인했다.
[똥싸가지]
또 강민성이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강민성이 만든 음식을 먹고 그렇게 토를 해 댔으니 기분이 상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호성은 심호흡을 하며 목을 가다듬은 뒤 애써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네, 헌터님. 이호성! 전화 받았습니다.”
- 괜찮냐?
“네?”
- 괜찮냐고.
“아, 별일 아닙니다. 조금만 있으면 퇴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퇴원하고 쩔 필요하면 말해라.
“……예!?”
이호성은 상체를 바짝 일으켰다.
“그게 정말이십니까?”
- 그래.
“감사합…….”
뚜우. 뚜우. 뚜우.
싸가지 없게 전화가 끊어졌지만, 이호성의 입가에는 기쁨의 미소가 씩 그려졌다.
바가지에게 쩔을 받는 건 기분 나쁘긴 하지만, 그래도 결론적으로 쩔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쁨의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음?”
이호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쩔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일까.
왠지 한결 몸이 가벼워진 것 같기도 하고, 속이 좋아진 것 같기도 하다.
이호성은 담배를 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역시.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라니까.”
또 어떤 핑계로 던전에 갈 수 있을지 고민이었는데,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렸다.
그런 독약 같은 음식을 먹였다고 양심에 찔렸던 건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인 줄 알았는데, 그래도 사람은 사람이네. 큭큭!
던전 가게 다음번에도 강민성이 만든 걸 한 번 먹어 봐?
잠시 그런 생각을 했던 이호성은 이내 웃고 있던 표정을 지웠다.
다시 천천히 생각을 해 보니 그건 아닌 것 같다.
이호성은 경기를 일으키듯 몸을 한차례 부르르 떤 뒤, 라이터를 꺼냈다.
드르륵-
“아, 환자분! 여기서 담배 피우시면 안 돼요!”
간호사가 빽 소리를 질렀다.
이호성은 아쉬운 얼굴로 손에 쥔 담배를 보다가 어깨를 으쓱이며 담뱃갑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침대에 벌렁 누워 다리를 꼬고 발을 달달 떨면서 히죽히죽 웃었다.
강해질 테다.
강해지고 말 거야.
이호성은 천장을 보며 연신 웃음을 흘렸다.
간호사는 그런 이호성을 혐오스럽다는 듯이 보며 체크를 마치곤 병실 문을 탁! 닫고 나갔다.
“……강해지는 거야.”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입가에 번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러다 이호성은 강렬한 복부 통증에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며 배를 붙잡고 가늘게 떨었다.
* * *
이튿날 아침.
민성은 시끄러운 초인종 소리에 천천히 눈을 떴다.
침대에서 내려와 스트레칭을 하며 현관문을 열자, 이호성이 징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굿모닝입니다. 헌터님.”
이호성이 빵긋빵긋 웃으며 아침 인사를 전해 왔다.
“지금 몇 시냐?”
“아침 6시입니다.”
“근데?”
민성이 미간을 구부리며 되물었다.
“아…… 그게 헌터님이 쩔해 주신다고 해서 찾아왔습죠. 너무 일찍 왔나요?”
민성은 짧게 한숨 쉬며 목을 긁적였다.
“속은?”
“괜찮습니다. 다 나았습니다!”
민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고 있어.”
“예! 헌터님!”
민성은 샤워를 하고 외출 준비를 했다.
“주인님. 던전에 가는 건가요?”
바가지가 다리 밑에서 민성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래.”
바가지가 칵칵 웃으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웃고 있는 바가지를 집어 주머니에 구겨 넣은 뒤, 집 밖으로 나섰다.
이호성은 어느새 차 시동까지 걸어 놓고 출발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민성이 뒷좌석에 타자 이호성은 곧장 출발했다.
이호성의 차가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빠른 속도로 바람을 가르며 도로를 내달렸다.
머지않아 허공에 부양되어 있는 던전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호성.”
“예, 헌터님!”
“작게 말해라, 좀.”
“죄송합니다. 하핫.”
“신났냐?”
“그럼요. 헌터님이 또 쩔을 시켜 주신다는데. 진짜 감동했습니다.”
“너, 최대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이동 속도가 얼마나 되지?”
“……네? 음,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하나. 100미터 기준으로 말씀드릴까요?”
“그래.”
“스킬 쓰면 한 6초대까지는 끊을 수 있습니다.”
“스킬을 쓸 수 있는 조건은?”
“마력 조절 때문에 쿨 타임이 있기는 한데, 그렇게 길진 않습니다.”
민성이 창밖을 보며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빠르게 클리어한다. 도중에 뒤떨어지면 쩔은 거기서 끝이야. 확실히 붙어라.”
민성의 말에 이호성이 백미러를 통해 놀란 눈으로 민성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