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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36화 (36/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36화>

민성은 팔짱을 끼고서 개인당 배정된 디귿자 형태의 식탁을 살펴보았다.

전기레인지, 오븐과 각종 요리 도구들이 개인 식탁마다 비치되어 있다.

확실히 VIP반이라 그런지 하나같이 고급스럽다.

시계를 보자 이제 수업 시작까지 남은 시간은 5분가량.

민성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벗어날 수 없었던 지옥 속에서 겪었던 그 끔찍한 시간들.

그 모든 시간들을 지금 이렇듯 보상 받고 있는 것만 같아, 가슴에 거센 파도와도 같은 감정이 범람했다.

단순히 식사를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요리를 만드는 것.

인간이기에 요리를 만들어 먹는다는 것.

이것은 새로운 전환점이었다.

철컥-

문이 열리고 오늘 수업을 맡은 학원 원장이 나타났다.

꽤 나이가 있어 보이는 호리호리한 중년 여성이었다.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원장이 앞쪽 상단 테이블 위에서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명확하게 울렸다.

“오늘 VIP 기초 수업반에서 특별 수업을 하게 된 원장 조미연입니다.”

원장은 안경을 한 번 올려 쓰고선 간단한 자기소개와 오늘 하게 될 수업에 대해 간략히 브리핑했다.

이후, 오늘 요리하게 될 메뉴가 모니터에 나타났다.

원장의 교육 아래 오늘 요리해 볼 메뉴는 바로 ‘브로콜리 스프’.

원장은 대형 모니터에 조리법을 띄우고 그것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그리고 원장이 직접 요리를 시연하기 시작했다.

요리를 하고 있는 걸 보자 원장이 워낙 능숙하게 해서일까?

민성이 보기에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는 않았다.

순식간에 요리를 능숙하게 끝마친 원장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수강생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제 수강생들의 실습이 시작될 차례가 됐다.

원장이 재료 손질 방법에 대해 설명했고, 수강생들은 그 설명대로 앞치마를 두른 후 재료를 꺼내 손질을 해 나갔다.

원장은 확실히 귀에 쏙쏙 들어오도록 설명을 참 잘했다.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민성도 앞치마를 하고 다른 수강생들처럼 재료를 챙겼다.

가장 먼저 식칼을 들었다.

칼을 쓰는 것 자체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한다.

어렵지 않아.

민성은 모니터에 보이는 대로 브로콜리와 양파, 그리고 감자를 손질했다.

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

민성은 엄청난 속도로 양파와 감자를 균일하게 잘랐다.

브로콜리는 적당한 크기로 잘랐다.

화려한 칼질에 주변의 이목이 자연스럽게 집중되었지만, 민성은 신경 쓰지 않고 요리에만 집중했다.

예열된 팬에 감자와 브로콜리, 그리고 양파를 넣고 볶는 게 첫 번째.

민성은 손바닥으로 팬의 온도를 체크했다.

좋아.

어느새 팬이 꽤 열기를 머금었다.

민성은 팬에 재료를 투하시켰다.

치익! 하고 얇은 소리가 났다.

재료들이 노릇하게 익었을 때, 민성은 레시피대로 믹서에 넣었다.

우유도 콸콸 넣었다.

믹서 버튼 온(Button on)!

왜애애애앵!

믹서가 힘차게 내용물을 갈기 시작했다.

민성은 믹서에 의해 스프가 되어 가고 있는 걸 보며 작게 웃음 지었다.

생각보다 굉장히 간단한걸?

이렇게 쉽게 음식을 만들어 갈 수도 있는 거구나.

막상 해 보니 별게 아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요리가 만들어져 간다는 신기함은 여전히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다.

민성은 감탄한 눈으로 믹서를 보았다.

적당히 다 갈렸다고 판단되었을 때 민성은 믹서 가동을 멈추었다.

믹서로 갈아 놓은 재료를 냄비에 붓고 물을 적당히 넣은 뒤, 전기레인지를 켰다.

민성은 팔짱을 끼고서 스프가 잘 끓고 있는지를 지켜보았다.

잠시 후, 거품이 생기며 재료가 끓기 시작했다.

좋았어.

민성은 레시피대로 체다 치즈와 파마산 치즈, 그리고 후추를 넣었다.

스프가 다 끓자 그릇에 옮겨 담은 뒤, 주사위 모양으로 썰어 기름에 튀긴 크루통 4개를 떨어트렸다.

이로써 브로콜리 스프 완성!

민성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자신이 태어나 처음으로 해 본 정식 요리다.

어릴 적 만들어 본 거라고 해 봐야 라면이나 3분 카레가 전부다.

그에 비하면 이것은 진정한 첫 요리라고 해도 좋을 만했다.

옆을 돌아보자 원장이 이호성의 브로콜리 스프를 맛보고 있었다.

“음, 괜찮네요. 다만 재료를 조금 식힌 후에 믹서에 갈았다면 풍미가 한층 더 강했을 겁니다.”

“그래요? 그다지 큰 차이가 없을 것 같은데.”

이호성의 말에 원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요리의 과정을 무시해서는 안 돼요. 작은 차이처럼 보이겠지만, 그 결과는 천지차이가 나니까.”

원장은 이호성 다음으로 민성의 식탁 앞에 섰다.

브로콜리 스프를 내려다보고 있는 원장을 향해 민성은 먹어 보라는 듯 턱짓했다.

“이게…… 브로콜리 스프인가요?”

원장의 얼굴은 그야말로 마치 희대의 괴작을 보고 있는 듯했다.

브로콜리 스프는 밝은 녹색이어야 정상인데, 민성이 만든 브로콜리 스프는 마치 심해 속에 있는 이끼처럼 보였다.

“본인이 직접 한번 드셔 보시죠.”

원장이 스프를 먹어 보라고 손짓했다.

민성은 자신이 만든 브로콜리 스프를 한 스푼 크게 떠서 입으로 덥석 물었다.

꿀꺽-

브로콜리 스프를 먹은 민성은 미간을 구기다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스프를 내려다보았다.

“재료가 너무 많이 들어간 데다 우유 배합률이 엉망이고, 또 가장 중요한 건 너무 오래 졸였어요. 다시 한 번 만들어 보세요.”

원장이 찡긋 웃어 보이고 다른 식탁으로 이동할 때, 이호성이 옆으로 다가왔다.

“어? 헌터님. 왜 헌터님 거는 원장이 맛을 안 보고 그냥 가요?”

“됐어.”

“어이, 원장! 당신, 내 것은 먹고 이분 거는 왜 안 먹어 봐? 이분이 누군지 알고!”

이호성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원장이 걸음을 멈추고 이호성을 돌아보았다.

“왜 안 먹었는지 궁금하면 직접 한번 드셔 보시죠.”

원장이 눈으로 웃으며 말했다.

“아니, 우리 헌터님이 만든 걸 왜 나보고 먹어 보라는 거야. 나 참.”

이호성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며, 민성의 브로콜리 스프를 한 스푼 떠먹었다.

그리고.

“컥!?”

이호성이 싱크대를 양손으로 붙잡았다.

“우억! 이, 이거 뭐야, 맛이 왜 이래. 토할 것 같…… 컥!”

싱크대를 붙잡고 허리를 구부리며 켁켁거리고 있는 이호성을 보면서 민성은 얼굴을 굳혔다.

“우웨에에에에에엑!”

이호성의 토하는 소리가 요리 학원 교실을 커다랗게 울렸다.

민성은 죽을 것처럼 토악질하고 있는 이호성을 빤히 보다가 앞치마를 천천히 풀었다.

* * *

이호성은 속이 안 좋다며 화장실을 몇 번 가더니 이내 병원에 가 봐야겠다고 연락이 왔다.

수업을 중간에 그만두고 나오는 바람에 배가 고팠기에, 어쩔 수 없이 혼자 식당을 찾아 나서야 했다.

요리라는 게 쉬운 게 아니다.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어.

그냥 사 먹자.

요리 학원 부근에 식사를 할 만한 곳이 있는지 찾아보기 위해 거리를 둘러보았다.

학원 부근에는 식당이 많았다.

다만 시간이 조금 애매하여 손님이 많은 곳이 없어서, 맛집인지 아닌지 유추할 수 있을 만한 근거를 찾기가 힘들다는 게 문제였다.

뭐, 실패한다고 해도 나쁘지 않겠지.

굳이 이호성에게 기대서 맛집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괜찮아 보이는 곳에 들어가자.

어느 식당이 좋을까?

여러 메뉴들이 민성의 시야 안에 들어왔다.

해물찜, 불고기, 비빔밥 등 각종 메인 메뉴를 간판으로 건 식당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하지만 오늘 점심은 화려한 식사보다는 소소한 한 끼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차, 한 식당의 간판이 민성의 눈에 들어왔다.

[일미 식당]

화려함은커녕 낙후되었다는 인상을 강하게 주는 허름한 식당이었다.

식당 유리창에 페인트로 새겨져 있는 메뉴 중 된장찌개가 민성의 눈을 사로잡았다.

한식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된장찌개.

꿀꺽-

침샘이 혀를 강하게 휘감았다.

인간의 식욕은 정말 신기하다.

매 순간 먹고 싶은 음식이 이렇듯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은 놀랍도록 신비한 일이었다.

민성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배를 손바닥으로 천천히 문질렀다.

도저히 못 참겠어.

맛집이든 아니든, 된장찌개를 지금 당장 먹고 싶다.

결정을 내렸다.

민성은 식당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하얀 두건을 머리에 쓴 중년 여성이 테이블을 닦다가 민성을 보고 인사했다.

외부만큼이나 내부도 허름하지만, 그래도 제법 청결해 보였다.

두건을 써서 모발이 빠지지 않도록 신경을 쓰는 모습도 그렇고, 바닥과 테이블 모두 깨끗하게 닦여 있다.

깨끗하다는 느낌이 식욕을 한층 더 돋우게끔 했다.

“된장찌개.”

민성은 빈 테이블에 앉으면서 된장찌개를 주문했다.

“네. 엄마, 된장찌개요!”

파이팅이 넘치는 여성이다.

엄마와 딸이 운영하는 작은 식당인 듯했다.

인간적인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부담 없이 집처럼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주방에서 오더를 받아 찌개를 만들기 시작하자, 인사를 했던 중년 여성은 반찬을 세팅했다.

이를 지켜보며, 오래된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세 명의 남자가 주로 정치 이야기나 사회 이슈에 대해 토론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현재 그들이 토론하고 있는 주제는 바로 ‘헌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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