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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35화 (35/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35화>

민성은 그렇게 말하며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이호성은 멍한 얼굴로 민성을 보다가 바가지를 내려다보았다.

시발…… 뭐라고?

약속이 다르잖아?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다고.

그때, 민성이 찌릿하는 시선으로 이호성을 보았다.

“뭐 해? 안 가?”

꿀꺽-

차마 하고 싶은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래, 그럼 그렇지…….

저 귀차니즘 대마왕이 자신을 위해서 직접 움직여 줄 리가 없지…….

대체 나란 놈은 뭘 기대한 건가, 하하…….

이호성은 상한 요구르트빛 얼굴로 바가지를 내려다보았다.

바가지는 이호성을 올려다보며 어서 가자고 손짓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레벨 1밖에 되지 않았던 놈인데, 이런 놈에게 쩔을 받아야 하다니.

속이 탔지만 을이 될 수밖에 없는 자신으로서는 바가지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레벨 업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이호성이 축 처진 어깨로 앞장서는 바가지를 뒤따랐다.

“아이템 빠짐없이 챙겨라.”

* * *

“헉! 허억……!”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팔은 무겁다.

얼마 전 혼자 던전을 찾았을 때와 같다.

검을 내던지고 바닥에 쓰러지고 싶은 마음이 몇 분 간격으로 계속해서 유혹을 해 온다.

이호성은 날 선 눈으로 바가지를 쏘아보았다.

“몸빵만 대지 말고 공격 마법 좀 써 줘!”

참다 참다 소리 질렀지만, 바가지는 그런 자신을 보며 칵칵! 웃을 뿐이었다.

재미있다는 듯이.

빠직!

혈관이 이마에 불룩하게 솟는다.

주인이나 저놈이나, 사람 괴롭히는 악취미가 어찌 저리 닮았단 말인가!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방법이 없다.

그래, 좋게 생각하자.

이런 기회를 갖는 것이 어디인가?

남들은 이런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강해질 수 있다는 건 특권이다.

큰 욕심 부리지 말고, 차근차근 강해져야 한다.

그것이 곧 경험이 되고, 자산이자 뿌리가 될 것이다.

“으아아아아!”

기합을 내지르며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태앵! 태앵! 탱! 탱!

아무리 몬스터의 몸을 내리쳐도, 대미지가 좀처럼 들어가지 않는다.

꼭 쇠막대기로 바위를 두드리는 것만 같은 기분.

“빌어먹을……! 좀 죽어! 죽으라고, 시X!”

이호성은 발악하듯 검을 휘둘렀다.

그런 그를 보며 바가지는 몬스터에게 몸을 내주면서도 칵칵거리는 특유의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 * *

[던전을 나가시겠습니까?]

[승인 / 거절]

이호성은 영혼이 사라진 퀭한 눈으로 허공에 뜬 시스템 문구를 보았다.

시스템을 터치할 힘도 없을 정도로 진이 빠졌다.

마치 나이를 잔뜩 먹은 노인처럼 어깨와 등이 굽었고,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이호성은 심각한 수전증 환자처럼 덜덜 떨리는 손으로 승인을 터치했다.

더 사냥을 하고 싶어도 몸이 따라 주지 않았다.

* * *

민성의 눈짓에 이호성이 템 창에서 아이템을 하나하나 꺼냈다.

아이템을 모두 꺼내고 난 뒤, 이호성은 민성을 보았다.

“이호성.”

“네?”

“이게 전부야?”

“네. 전부입니다.”

“내 눈 봐 봐.”

“지, 진짜 이게 다예요. 제가 설마 헌터님 상대로 아이템을 숨기겠어요?

“너 만약에 숨겨 둔 아이템 같은 거 있으면…….”

“진짜예요. 없어요. 믿어 주십시오, 헌터님!”

민성은 이호성의 표정을 살피다가 상인을 돌아보았다.

“아이템 전부 처분하시겠습니까?”

상인의 물음에 민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총 520만 원입니다.”

상인이 금고에서 현금을 꺼내 건네주었다.

민성은 돈을 챙긴 뒤 상점을 나왔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뭉게구름이 보이지만 햇빛이 아주 밝았다.

날씨가 화창한 것이 기분 좋은 초여름이었다.

초여름엔 어떤 음식이 맛있을까?

민성은 그런 생각을 하며 이호성의 차에 탔다.

* * *

“집에 가서 좀 씻어. 냄새나니까.”

“예, 헌터님. 푹 쉬십시오.”

이호성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민성은 소파에 앉아 등을 깊숙이 파묻고 천장을 보았다.

평화로운 정적이 주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딱히 배가 고프진 않고, 딱히 뭘 할 만한 것도 없다.

조용히 고요함을 즐기던 민성은 텔레비전을 흘깃 보고선 리모컨을 들었다.

삐삑-

채널을 돌려보니 음식 프로그램이 상당히 많다.

요즘은 줄여서 먹방.

그러니까 먹는 방송이 대세였기 때문에 몇 개의 채널에서 모두 음식에 대한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그렇게 채널을 돌리던 중, 채널이 한 프로그램에 고정되었다.

“요리 천왕?”

음식과 관련된 내용이긴 한데, 지금까지 민성이 즐겨 봤던 것과는 그 종류가 조금은 달랐다.

단순히 먹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과정도 보여 주고 있다.

민성이 지금 보고 있는 건 ‘요리 천왕’으로, 요리를 주제로 한 예능 형식의 프로그램 방송이었다.

요리 천왕.

프랜차이즈계의 황제라 불리는 남자가 메인 MC를 보고 있고, 본인이 스튜디오에서 음식을 직접 만들어 연예인들에게 먹여 보면서 자신도 시식한다.

최근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인기 절정의 공중파 예능이었다.

[요리라는 게 별로 어려운 게 아니에요. 사실 음식이라는 것이 먹기 위해서 만드는 거잖아요. 거창할 게 없는 거죠. 만들어서 먹는다.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겁니다. 그것을 특별하게 만드는 게 바로 장인들의 힘인 거고요.]

방송 중에 나온 프랜차이즈계의 황제의 말은 민성을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요리를 직접 해 먹는다라…….

요리.

늘 먹는 것만 생각했지, 자신이 직접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다.

요리를 만들어 먹는다는 건 어떤 느낌이지?

이내 호기심이 강렬하게 파고들었다.

* * *

이호성은 침대에 알몸으로 철퍽 엎어졌다.

단순히 샤워를 하는 것인데도 이렇게 힘들 줄이야.

그야말로 기진맥진이다.

던전에서 모든 에너지를 소진했다.

악랄한 바가지 놈은 그야말로 제 주인을 쏙 빼다 닮은 악마였다.

공격 마법 좀 써 준다고 마력이 닳아 봐야 얼마나 닳는다고, 끝까지 몸만 대어 줄 뿐 놈은 마법 공격은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해골 뼈다귀 새끼.

이호성이 눈을 뜨는 것조차 힘든 상태로 스르륵 잠에 빠져들려는 찰나.

휴대폰이 시끄러운 벨소리를 내며 울렸다.

이호성은 눈을 감은 채 얼굴을 콱 찌푸렸다.

하…… 누구야…….

손을 뻗어 휴대폰을 집어 귀에 가져다 댔다.

“여보세요.”

- 나다.

“아니, 시발. 나라고 하면 내가 누군지 어떻게 알…….”

이호성은 번뜩 눈을 뜨고 상체를 일으켰다.

발신자를 확인했다.

[똥싸가지]

“아, 헌터님! 죄송합니다. 너무 피곤해서 정신이 없었습니다.”

- 됐고. 요리 학원 좀 알아봐.

“……요리 학원이요?”

- 그래.

“언제까지요?”

- 지금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건가?

“아, 당연히 오늘 학원 여는 대로 문의할 생각이었습니다만, 급하지 않으실 수도 있어서.”

- 아침 밝는 대로 바로 수강 시작할 수 있도록 해 놔.

뚜우. 뚜우. 뚜우.

이호성은 끊어진 자신의 휴대폰을 웃으며 내려다보았다.

“와…… 개새X.”

이호성이 침대에 철퍽 엎어졌다.

“요리 학원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지랄 짬뽕이나 만들어 먹어라.”

베개에서 고개를 들어 흘깃 시계를 보았다.

현재 시간 새벽 6시.

요리 학원을 알아보려면 고작해야 2시간에서 3시간 정도밖에 못 잘 듯싶었다.

“아……! 아아! 아아아아아악! 이 개 악마 같은 자식!”

이호성은 미쳐 버릴 것 같은 자신의 뇌를 가까스로 진정시키고 알람을 맞춰 놓은 뒤, 1분이라도 더 자기 위해 서둘러 잠을 청했다.

* * *

학원 수강 등록이 완료되었다는 이호성의 연락이 왔다.

기초 수업 반은 오전 12시로 예정되어 있다.

지금이 오전 10시니까 천천히 준비하면 시간은 적당할 듯했다.

배가 조금 고프긴 했지만, 이호성이 알아본 요리 학원의 커리큘럼에 의하면 자신이 한 요리를 직접 먹기도 하기 때문에 굳이 밥을 챙겨 먹고 갈 필요는 없어 보였다.

잠시 후, 이호성이 도착했다.

민성은 이호성의 차를 타고 바가지와 함께 요리 학원으로 향했다.

이호성이 수강 신청을 끊어 놓은 학원은 ‘더 코리아’ 요리 학원이었다.

더 코리아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요리 학원으로, 수강생도 많고 실력 있는 요리사를 숱하게 배출해 낸 곳이기도 했다.

“헌터님.”

“뭐.”

“오늘 기초반 교육은 학원 원장이 직접 한다고 합니다. 때마침이라고 해야 할지, 운이 좋네요.”

“그가 가르치면 뭐가 달라도 다른 건가?”

“아무래도 일반 강사들보다는 훨씬 잘 가르치겠죠. 학원 원장인 만큼.”

민성은 창밖을 보며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오늘 기초반의 선생이 누구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배워 요리를 직접 만들어 본다는 것.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거니까.

“곧 도착할 것 같습니다.”

이호성이 말했다.

그의 말대로 저 멀리 요리 학원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 * *

“너도 같이 수업을 받는다고?”

민성이 이해 못 하겠다는 얼굴로 이호성을 보았다.

이호성은 아부성 가득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야 항상 가까운 곳에서 헌터님을 보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민성은 관심을 끄고 수업을 받기로 예정된 반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호성은 헛기침을 하며 그런 민성을 뒤따랐다.

‘VIP-1 기초 클래스반’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바가지가 주머니 밖으로 빼꼼 머리를 내미는 걸 민성이 손가락으로 다시 구겨 넣었다.

민성은 곧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VIP-1 기초 클래스반에는 이미 많은 수강생들이 수업을 받기 위해 각자의 식탁 앞에서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모두 하나같이 결혼을 한 젊은 여성 주부거나 아주머니들처럼 보였다.

첫 수업인 민성과 달리, 그녀들은 책을 보며 예습에 치중했다.

잠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매고 있을 때, 뒤늦게 들어온 젊은 여성이 찡긋 웃으며 자리를 배정해 주었다.

‘수업 보조’라는 이름이 가슴 쪽에 붙어 있는 걸 보면 수업을 보조하는 역할을 지닌 듯했다.

민성과 이호성은 수업 보조 선생에 의해 지정 위치에 섰다.

민성은 창가 쪽이었고, 이호성의 위치는 그의 바로 옆인 왼쪽 식탁이었다.

“국내 최고 수준의 학원이라더니, 진짜 크긴 크네요.”

이호성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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