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34화>
* * *
이호성은 옆에서 걸어가고 있는 민성을 흘깃흘깃 보며 혀를 내둘렀다.
중앙 헌터 기관 병사들을 동네 양아치 때려잡듯 처리하는 것도 그렇지만, 그것보다 더 충격적인 건 그 사건을 터트려 놓고도 태연하게 술과 안주를 즐겼다는 점이다.
게다가 무슨 놈의 소주를 1시간도 안 돼서 20병을 마셔?
이게 사람 새끼인가……?
보면 볼수록 경악할 수밖에 없는 남자다.
“저 헌터님.”
“왜.”
“헌터님은 처음부터 강하셨던 거죠? 각성하자마자 말입니다.”
“각성? 그게 뭐지?”
“그러니까 최초의 몬스터 브레이크가 발생한 시점에, 소수의 인간들이 헌터로서 각성하게 되는 힘을 부여받았던 그때 말입니다.”
민성은 픽 웃었다.
“난 그런 평화로운 시기를 맞이하지 못했어.”
이호성은 어안이 벙벙했다.
괴물이 튀어나오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세상이 뒤집어지는 그때가 평화로운 시기라고?
“얘기해 준다고 해도 넌 믿지도 못할뿐더러, 이해할 수 없을 거다. 내가 살아온 시간들을.”
민성이 텅 빈 눈으로 허공을 보며 말했다.
왠지 이호성은 그 눈 안에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무언가가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막연하게 들었다.
그에겐 비밀이 있는 건가?
그것도 엄청나게 큰 비밀이?
여러 궁금증이 고개를 들이밀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지금 와서 중요하지 않았다.
“헌터님. 강해지기 위해선 단순히 노력하는 것이 최선일까요? 반복적인 사냥을 통한 레벨 업. 그것이 진정 강함으로 가는 유일한 길일까요?”
민성은 픽 웃었다.
“수천 번이다.”
“……네?”
이호성이 의아한 얼굴로 민성을 보았다.
“딱 수천 번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짐승처럼 살아남으면 강해질 수 있겠지.”
민성이 지난 기억에 잠긴 눈으로 말했다.
그의 눈은 너무나 황폐해 보였다.
그가 말하는 건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
단순히 노력이라고 정의할 수 없는 것.
죽음과 공포를 넘어서는 초월적인 도전.
그것이 그가 가진 강함의 비결인가……?
“말이 나온 김에…… 헌터님.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볼 수 있을까요? 이건 예전부터 묻고 싶었던 겁니다.”
“말해 봐.”
“헌터님은 엄청나게 강하지 않으십니까? 적어도 제가 보기엔 한계가 없어 보일 만큼이니까요.”
“그런데?”
“뭐, 돈과 권력에 크게 관심이 없는 것은 납득이 됩니다. 성향의 차이니까. 하지만 본능은 다르죠. 헌터님이라면 세계의 미녀라는 미녀는 모두 독차지할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이 있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어째서 여자에 관심을 두지 않으시는 겁니까?”
“그게 내가 강해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데엥-
이호성은 머릿속에 커다란 종이 울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욕정에 사로잡히지는 않는 것.
흔들리지 않는 것.
그것이…… 그가 강해질 수 있었던 진정한 비결이었던가!?
이호성은 엄청난 깨달음이 머릿속으로 파고 들어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 *
민성을 배웅하고 이호성은 집으로 돌아왔다.
터덜터덜 걸어 소파에 털썩 앉았다.
여전히 민성이 자신에게 준 충격이 머릿속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게 내가 강해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이호성은 민성의 명언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그래.
세상에 이유가 없는 것은 없다.
단순히 노력만으로 세상을 쟁취할 수 있었다면, 세상의 그 누가 실패를 경험하겠는가?
강함.
그 강함을 손에 얻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고통이 필요하다.
단순히 육체적인 것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자세가 곧 무(武)의 극의로 인도하는 것이다.
돈과 권력, 그리고 여자에 취한 이가 어찌 강함을 바랄 수 있단 말인가?
강함을 추구하는 것은 완성된 영웅에게만 그 자격이 주어진다.
한데 자신은 어떠한가?
고작해야 뒷골목 파락호라 불리는 헌터다.
그런 주제에 담배를 피우고 여자를 품고 돈을 갈망하며, 권력을 탐하고자 하는 희망을 갖는 것 자체가 자신의 수준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닌가!
이호성은 눈을 번뜩였다.
달라질 것이다.
강함을 추구할 것이며, 그 추구하는 강함을 손에 얻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각오를 굳건하게 뼈에 새겨야만 한다.
이호성은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이며 벌떡 소파에서 일어났다.
주방으로 걸어가 가위를 꺼냈다.
허리띠를 풀고 팬티를 다리 밑으로 확 내렸다.
이호성은 자신의 소중한 물건을 내려다보며 가위를 들어 올렸다.
“…….”
순간 정적이 목을 졸라 왔다.
이호성은 자신의 물건을 보며 동공이 흔들렸다.
한참 동안 고민하던 이호성은 이내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건 아니야.”
그는 소름이 돋는다는 듯 손가락에 끼고 있던 가위를 싱크대에 털어 내듯이 던졌다.
바지춤도 위로 끌어 올렸다.
“이건 오바야. 그래. 이러고 강해지면 무슨 의미가 있어. 그냥 나도 강민성처럼 조용히 성욕을 버리고 강함을 추구하면 되는 거야.”
고개를 끄덕인 이호성이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컴퓨터를 켜자 며칠 전에 기록해 둔 내용이 시야에 들어왔다.
[강민성 프로파일링]
이름 : 강민성
나이 : ???
레벨 : 추정 불가 (기타 능력자)
펫 : 리치 인형 ‘바가지’ (레벨 1,000)
성향 : 오만함과 비정함의 극치를 달리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좋아하는 것 : 먹는 거
싫어하는 것 : 귀찮은 거
궁극적 목표 : 삼시세끼
약점 : 없음
위험 등급 : 최상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스읍, 후우-”
이호성은 담배 연기를 뿜으며 새로운 추가 내용을 입력하기 위해 타자를 쳤다.
특징 : 고자
이호성은 워드 저장을 마친 후, 의자에 등을 파묻으며 천장을 보았다.
하얀 담배 연기가 천장 위로 뭉글뭉글 올라갔다.
이호성은 세상을 다 잃은 듯한 표정으로 허공을 멍하니 보았다.
“강함의 비결이 고자였다니…….”
* * *
“마스터. 이번 중앙 헌터 기관 병사들의 사고 원인은 분명 미궁을 클리어하고 있는 제3의 단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3성 조사단장 태겸의 말에, 중앙 헌터 기관의 마스터 김지유는 안경을 벗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미궁과 관련된 제3의 존재에 대한 사안은 제가 개인적으로 직접 알아보고 있습니다.”
그에 조사단장 태겸은 조금 당혹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아…… 그러셨군요. 말씀을 안 해 주셔서 몰랐습니다.”
김지유가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조사단장 태겸은 그런 그녀의 빛나는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넋 놓고 그녀의 얼굴을 응시하던 태겸은 이내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시, 실례했습니다.”
“실례?”
김지유가 의아하다는 얼굴로 태겸을 보며 되물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른 분부는 없으십니까?”
김지유는 태겸을 날카로운 눈으로 직시했다.
“당분간은 불규칙적인 던전 게이트 출연에 대한 조치에만 집중하도록 하세요. 던전 게이트와 함께 몬스터가 도심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게이트 자체 조사와 수습에 총력을 실어 주세요.”
“……알겠습니다.”
태겸이 절도 있게 머리를 숙였다.
* * *
이튿날 아침.
이호성은 눈을 뜨자마자 습관적으로 베게 옆에 놓인 휴대폰을 켰다.
민성의 메시지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이호성은 졸린 눈을 번쩍 뜨고 침대에서 확 일어났다.
두 눈을 비비고 메시지 내용을 다시 확인했다.
다시 봐도 메시지 내용은 처음 봤던 그대로였다.
던전으로 출발할 테니 시간 맞춰 오라는 강민성의 문자 메시지를 받은 것이다.
이호성은 환하게 웃으며 곧장 옷을 훌렁 벗고 나갈 채비를 하기 위해 서둘러 욕실로 뛰어갔다.
그러다 애완견이 싸지른 오줌에 발이 미끄러져 꼴사납게 넘어졌지만, 그럼에도 기분이 너무 좋아서 입가에 퍼지는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드디어 약속한 쩔을 받을 기회가 온 것이다!
이 귀차니즘의 결정체라고 해도 좋을 만한 인간이 자신을 위해서 약속을 지켜 주다니.
말만 하고 약속을 안 지키면 어쩌나 얼마나 노심초사했는데, 이렇듯 빨리 약속을 지키다니.
강민성을 다시 보게끔 된다.
이번 기회를 통해 폭발적인 레벨 업의 성장을 이루고 말 것이다.
빠르게 준비를 마친 이호성이 들뜬 얼굴로 강민성의 집 앞에 도착했다.
참 많이 달라졌다.
처음엔 목표도 없이, 그저 강민성의 밑에서 눈치 보고 노예로서 살아남을 생각만 하며 전전긍긍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이렇듯 강해지고자 하는 목표가 생기자 삶이 달라졌다.
패배주의는 자신을 늪 속으로 끌고 갈 뿐이다.
어차피 막장이나 다름없는 벼랑 끝이라면, 벼랑에서 피는 꽃이 되는 거다.
그렇게 핀 곳은 험난함을 거친 만큼 단단해질 수 있겠지.
더군다나 좋게 생각하면 무려 기타 능력자와 함께하고 있지 않은가?
고작해야 파락호에 불과한 채로 끝장날 뻔했던 자신의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다.
이호성은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그리고 잠시 후.
오래 걸리지 않아 준비를 마친 강민성과 함께, 이호성은 던전으로 출발했다.
* * *
던전에 입장했다.
이호성은 아직 미궁에 입장할 수 있는 레벨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일반 던전 중에서 난이도가 높은 12던전에 들어오게 됐다.
12던전은 쩔을 받기에 가장 최적화되어 있는 곳이었다.
몬스터들의 체력이 높아서 일반 헌터들은 많이 꺼리는 곳이지만, 체력이 높은 만큼 많은 경험치를 준다.
크큭! 강민성이라면 놈들의 체력 따위야 종잇조각에 불과할 것이다.
‘순식간에 폭 업을 하는 거야.’
이호성은 반짝거리는 기대감이 가득한 눈으로 민성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뭐 하는 거지?
민성은 템 창에서 커다란 담요를 하나 꺼내더니 던전 동굴 바닥에 깔았다.
그러곤 그 바닥에 앉아 휴대폰을 보기 시작했다.
이호성은 눈을 끔뻑이며 그런 민성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저, 헌터님……?”
이호성의 부름에 민성이 주머니를 톡톡 두드렸다.
잠시 후, 바가지가 민성의 주머니에서 꾸물거리며 나왔다.
바가지는 잠이 덜 깨는지 바닥으로 내려와 머리를 한 차례 휘젓곤 이호성을 향해 자박자박 걸어갔다.
바가지가 뼈 손가락으로 이호성의 다리를 쿡쿡 찔렀다.
“……!?”
이호성이 영문 모를 얼굴로 바가지를 쳐다볼 때, 민성이 휴대폰을 하며 입을 열었다.
“바가지가 어그로를 끌어서 몸을 대 줄 거다. 잡아서 아이템 챙기고 넘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