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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33화 (33/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33화>

* * *

이호성은 민성의 맞은편에 앉으며 조용히 벨을 눌렀다.

넋 놓고 있던 이자카야 술집 매니저가 바들바들 떨며 다가왔다.

민성은 손에 묻은 피를 물티슈로 닦아 냈다.

“가게를 망가트린 건 내가 배상한다. 술을 가져오고. 안주는 아직인가?”

“바, 바, 바, 바로 준비해서 오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매니저가 겁을 잔뜩 먹은 얼굴로 뛰어가 소주를 다시 가져다주었다.

“중앙 헌터 기관의 병사들이 민간인을 죽인 적이 있나?”

민성이 컵에 물을 따르며 물었다.

이호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죽이는 경우는 잘 없습니다. 나름 자신들만의 명예를 따지고 있어서.”

“명예? 웃기는군.”

민성은 피식 웃음을 흘리곤 물을 마셨다.

꼬물꼬물.

그때, 바가지가 주머니에서 나와 검은 안광을 번쩍였다.

“으음, 주인님. 먹어도 되나요?”

바가지가 쓰러져 있는 중앙 헌터 기관 병사들을 보며 졸림이 가시지 않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먹어도 되냐니?”

“언데드로 부리려고요.”

“살아 있는 건 안 돼.”

민성의 단호한 거절에 바가지의 시커먼 안광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바가지는 다시 민성의 주머니 안으로 꼬깃꼬깃 몸을 구기며 들어갔다.

이호성이 목을 빼꼼 내밀어 바깥쪽을 보았다.

“소란이 생겼고, 더군다나 중앙 헌터 기관입니다. 관계자들이 곧 올 텐데 괜찮으십니까?”

이호성이 물음에, 민성은 미처 마시지 못했던 소주를 확 마셨다.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찌르고, 화끈한 느낌의 목 넘김이 느껴졌다.

맛은 없다.

첫 잔을 먹은 느낌은 알코올 냄새가 강하다는 것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이내 새로운 감각이 향상되는 것을 느꼈다.

알코올이 세포로 흡수되는 신선한 감각을 경험하고 있을 때.

매니저가 알바생과 함께 달달 떨면서 안주를 들고 왔다.

곧 엎어질 것같이 불안해 보였지만, 다행히 매니저와 알바생은 민성의 테이블에 안주를 안착시켰다.

안주는 처음에 주문했던 대로 소고기 타타키와 오뎅 나베였다.

민성은 소고기 타타키와 오뎅 나베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소고기 타타키는 이호성이 말한 대로 육회처럼 붉은빛이 감돌았다.

젓가락이 곧바로 소고기 타타키로 향했다.

와사비를 푼 간장에 콕 찍어 입에 넣었다.

소고기 타타키의 부드러운 감각이 혀에 닿았다.

쫄깃하게 씹히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특유의 부드러움은 상당히 매력적이며, 코를 쏘는 와사비는 소고기 타타키의 맛을 한껏 증폭시켜 줬다.

이호성이 술잔을 채워 주고, 앞 접시에 오뎅 나베를 덜어 놓아 주었다.

이호성은 신경이 자꾸만 쓰이는지 쓰러져 있는 중앙 헌터 기관의 병사들을 훑어보았지만, 민성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술잔을 다시 들었다.

처음에 먹을 때는 술이 단순히 쓰기만 했는데, 몇 잔 먹어 보니 왜 술을 먹는지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단순히 쓴 게 아니라 알코올이 몸에 전하는, 술이 가진 그 본분의 목표가 분명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신체 면역 능력을 컨트롤하자 기분 좋은 취기가 몸에 올라왔다.

그리고 이 오뎅 나베.

정말 좋은데?

일반적인 오뎅 탕과는 맛이 사뭇 다르다.

이는 고급 재료의 어묵을 써서인 것도 있을 테지만, 기본적으로 국물을 우려내는 그 육수의 맛이 남다른 깊이를 가지고 있어서였다.

오뎅 나베는 달짝지근하면서도 깊고 시원한 맛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이것이 일본이 가진 오뎅 나베의 힘인가?

민성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소주병을 들어 잔을 채웠다.

쓰디쓴 소주를 한 잔 하고, 따뜻한 오뎅 국물을 마신 후 오뎅을 한입 베어 물면 그 환상적인 조화가 몸 전체에 스며드는 듯한 신비한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자신의 취향은 타타키보다는 오뎅 나베 쪽으로 조금 더 기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소고기 타타키가 별로라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다음에 술 없이 똑같은 메뉴를 먹게 된다면 그땐 소고기 타타키가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이호성이 말한 분위기와 안주, 그리고 술에 대한 이해, 삶과 술의 교차점.

그 4박자가 무엇을 뜻하는 건지 민성은 짧은 시간 안에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알코올로 인해 취기가 도는 건 아주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다.

아직 술을 덜 먹어서 그런가 싶어, 민성은 이호성과 함께 한 잔, 두 잔 다소 빠른 속도로 마셨다.

이호성은 이대로라면 취할 것 같다며 쉬어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민성은 편한 대로 하라고 말하고선 홀로 술을 마셨다.

한 병이 두 병이 되고, 두 병이 세 병이 되었다. 그리고 이내 소주병은 20병을 넘어갔다.

이호성은 기인을 보듯 민성을 보았다.

민성으로서도 조금 당황스러웠다.

기분 좋은 취기가 없는 건 아닌데, 문제는 취하지가 않는다는 거다.

그 취한다는 의미를 보다 분명하게 알고 싶어서 안주를 음미하며 술을 계속 마셔 보았지만, 술병만 늘어날 뿐 취기가 크게 오를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 독성을 분해하는 능력이 너무 뛰어나서인 듯했다.

그래도 기분 좋은 취기는 미약하게나마 남아 있어서 왜 사람들이 술을 찾는지 알 수 있었다.

“저 헌터님. 엄청 마셨는데 이제 그만 일어나는 게 어떨까요?”

이호성이 연신 출입구 바깥쪽을 살피며 물었다.

민성은 테이블을 보았다.

소고기 타타키도 다 먹었고, 오뎅 나베도 이제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무릇 아쉬움이 있을 때 기약이라는 것은 더 빛날 수 있는 법.

민성은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민성은 테이블에서 일어나면서 새로운 것을 경험했다.

앉아 있을 때는 미처 몰랐던 감각이다.

취기가 올라와 몸을 무겁게 만들었다.

기분 좋은 아찔함에 민성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하하…… 재밌네.”

“허, 헌터님.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민성은 다시금 차가워진 눈으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중앙 헌터 기관의 병사들을 보았다.

다음번엔 방해 없이 제대로 된 술자리를 즐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 그리고 술자리에 대한 만족감으로 인해 오늘 있었던 불쾌감은 깨끗이 사라졌다.

민성이 카드로 계산을 하려고 할 때, 이호성이 재빨리 현금을 꺼내 매니저에게 내밀었다.

“계산은 제가 하겠습니다. 어서 나가시죠.”

민성은 의아한 눈으로 이호성을 보았다.

“왜 네가 계산을 해?”

“카드로 계산을 하면 흔적이 남기도 하고, 헌터님께 감사한 것도 있어서 술 한잔 사 드리고 싶기도 했었으니까요. 자, 어서 가시죠.”

이호성이 서둘러 뛰어가 가게 밖을 살폈다.

민성은 취기에 고개를 살짝 젖혀 숨을 가다듬은 뒤, 걸음을 옮겼다.

* * *

이자카야 술집 매니저는 알바생과 함께 민성과 이호성이 조금 전에 나간 출입구를 충격이 가시질 않은 얼굴로 멍하니 바라보았다.

매니저와 알바생은 이어 쓰러져 있는 중앙 헌터 기관의 병사들을 보며 동시에 침을 꿀꺽 삼켰다.

“신고를 해야 할까?”

매니저가 알바생을 보며 물었다.

알바생은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만약에 보복 당하면?”

“그럼 안 하는 게 좋겠어요.”

“중앙 헌터 기관이 우릴 죽이려 들면.”

“그럼 신고를 해야겠죠?”

“뭘 어쩌자는 거야.”

“모르겠어요. 그냥 집에 가고 싶어요.”

알바생이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은 그 순간-

끼익!

출입문이 열렸다.

매니저와 알바생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출입문을 보았다.

문틈 사이로 손바닥만 한 크기의 해골이 뒤뚱거리며 걸어 들어왔다.

“……?”

“……!?”

매니저와 알바생의 얼굴이 공포로 물들었을 때.

리치 인형 바가지가 시커먼 안광을 번뜩였다.

마치 불길처럼 타오르는 듯한 검은 안광.

이내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바닥을 타고 매니저와 알바생의 몸을 순식간에 휘어 감았다.

매니저와 알바생은 의식을 잃고 실이 끊어진 꼭두각시 인형처럼 풀썩 쓰러졌다.

* * *

조사단을 이끌고 해당 위치에 도착한 것은 3성 조사단장 태겸이었다.

태겸은 이자카야 술집 입구를 보며 이를 갈았다.

대체 어떤 놈들이 감히 중앙 헌터 기관 병사를 건드린단 말인가?

태겸은 성난 얼굴로 이자카야 술집 문을 신경질적으로 열어젖혔다.

술집 안에서 긴급 구급대원들이 분주하게 치료를 하고 있는 현장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민머리 용 문신의 사내, 조태수는 턱뼈가 깨져 있다.

갈색 머리 미녀, 최지안은 어깨에 나무 파편이 박혀 있으며 한쪽 팔은 끊어져 있다시피 한 상태.

그리고 나머지 3명은 겉으로 보이는 상처는 크게 없지만 속이 엉망이었다.

한 명은 복부 파열로 인한 내장 손상.

한 명은 갈비뼈 8개가 부러졌고.

마지막 한 명은 얼굴이 함몰되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중앙 헌터 기관 병사들이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그리고 그림자 길드에서 왜 연락이 안 왔던 거지?

본래라면 그림자 길드로부터 정보를 구매할 의사가 있는지 메시지가 와야 한다.

그랬다면 즉시 정보를 구입하고, 해당 사안을 파악한 중앙 헌터 기관에서는 즉시 구급차를 보냄과 동시에 조사단을 파견했을 것이다.

한데 늦었다.

이미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존재는 자리를 벗어난 상태.

“조사단장님.”

부하 한 명이 다가와 태겸을 불렀다.

“목격자인 매니저와 알바생이 현장의 인물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답니다. 또한 주변 CCTV와 차량 블랙박스 역시 모두 제거되어 있었습니다.”

설마……!?

조사단장 태겸은 한 가지를 떠올렸다.

미궁을 클리어했으며, 도시에 나타난 바질리스크를 단칼에 해치운 정체불명의 존재!

그 연결점이 바로 이 현장과 이어지고 있다는 추측이 들었다.

태겸은 담배를 입에 물고 현장을 나왔다.

그리고 미간을 구기며 생각에 잠겼다.

서울시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는 정체를 숨긴 집단이 있다.

그곳엔 기타 능력자를 상회하는 수준의 헌터들도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음지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최초의 몬스터 브레이크가 일어났던 초기 시점 이후로 종적을 감추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수면 위에 떠오른다?

태겸은 고개를 저었다.

방식이 너무 이상해.

이런 식으로 노골적으로, 우습기 짝이 없는 방식으로 나타날 리가 없다.

결국 이건 완전히 제3의 등장이라고 해야만 납득할 수 있다.

조사단장 태겸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이자카야 술집을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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