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31화>
* * *
이호성은 마당에 쓰러진 채로 몸을 가늘게 떨었다.
눈이 얼마나 부었는지 앞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X새끼, XX 새끼…….”
이호성은 퍼렇게 부어오른 입술로 욕을 중얼거렸다.
강민성은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다.
그래.
놈은 처음에 그렇게 말했었지.
다음엔 차라리 죽여 달라고 애원하게 될 거라고.
그건 사실이 됐다.
차라리 죽여 주세요.
그 말이 입 밖으로 자동으로 흘러나왔다.
술이 머리끝까지 취했음에도, 놈에게 얻어맞기 시작하는 순간 공포가 심장을 움켜쥐었다.
처음엔 잘못했다고, 살려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마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처럼 건조하기 짝이 없는 눈빛이었다.
그 눈빛이 너무 무서웠다.
결국엔 죽게 될 거야. 다만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지. 꼭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은 눈빛이었다.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나면 또 얻어맞았다.
그렇게 맞고 맞으면서 결국 차라리 죽여 달라는 말이 나왔다.
무자비한 놈.
1초가 지옥과도 같았던 그 시간을 모두 합친다면 대체 몇 시간이었을까?
강민성은 딱히 감정이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영향을 받지도 않는 주제에, 놈은 마치 당연한 순리처럼 자신을 응징했다.
그렇게 맞고 맞으면서 놈에 대한 악감정은 옅어지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대신 공포가 자리 잡았고, 술이 깼으며, 자신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도 그간의 정이 있는데 설마 죽일까?
그런 생각은 바보 같은 희망이었다.
그는 자신을 진짜 때려죽이려고 했다.
정말로. 진심으로.
그래서 살고 싶다고 외쳤다.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살려 달라고 빌었다.
그렇게 비참하게 매달렸다.
그는 듣지 않았다.
그저 의식이 희미해져서 고통을 거의 느끼지 못할 만큼이 되어서야 마당에 내던져짐으로써 지옥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마당의 잔디밭에 엎드려 있는 지금.
눈물이 흐른다.
철컥!
현관문이 열렸다.
이호성은 화들짝 놀라며 어깨를 떨었다.
곰 앞에서 죽은 척을 하는 것처럼, 눈을 질끈 감고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잠깐의 정적이 지나간 후에, 다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푸우.”
참았던 숨을 뱉어 냈다.
……너무 무섭다.
이호성은 코를 훌쩍이며 통증의 여운으로 신음을 흘렸다.
앞으로…… 두 번 다시 까불지 말자.
* * *
“아니, 몸조리 잘하라니까 이 꼴로 나타나면 어쩝니까? 자칫하면 죽을 뻔했어요.”
의사의 말에 이호성은 영혼이 반쯤 날아간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죄송합니다.”
“아니, 환자분. 죄송이 아니라 걱정이 돼서 그러지요. 진짜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했단 말입니다. 대체 얼마나 위험한 던전에 들어갔으면…… 휴우.”
의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당분간 제발 몸 좀 챙기세요. 무리하면 안 됩니다?”
이호성은 꾸벅 인사를 하고선 병원을 나왔다.
햇빛이 쨍쨍하다.
날씨가 참 따뜻하다.
온몸이 욱신거리고 술을 많이 먹어서 머리가 지끈거리기도 했지만, 신기하게도 속은 시원했다.
* * *
민성은 물을 마시며 거실에 무릎 꿇고 있는 이호성을 무심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헌터님. 제가 술을 먹고 머리가 회까닥 어떻게 되었던 모양입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이호성.”
민성의 부름에 이호성이 바짝 머리를 들었다.
“그만. 됐다.”
이호성이 어리둥절한 눈으로 민성을 보았다.
“네?”
“이제 그만 됐다고.”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만 가 봐. 자유란 뜻이다.”
민성이 그렇게 말하곤 몸을 돌리며 손에 들고 있던 물을 원샷 했다.
이호성은 주방으로 가서 컵을 씻고 있는 민성을 멍하니 보았다.
뭐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응에 이호성은 혼란스러웠다.
그토록 갈구했던 자유.
그 자유를 방금 민성이 던져 준 것이다.
그런데 기분이 왜 이렇지?
이호성은 꿇고 있던 무릎을 펴고 절뚝이며 일어났다.
그리고 생각했다.
왜 자신이 다시 민성을 찾아왔는지.
그리고 그 이유가 놀랍게도 지금 이 순간 명확해졌다.
“헌터님.”
민성이 다 씻은 컵을 내려놓고서 이호성을 돌아보았다.
“헌터님 옆에 남아 있고 싶습니다. 그리고 강해지고 싶습니다.”
“…….”
“저도 헌터님처럼 강해지고 싶어요.”
민성이 이호성을 빤히 보았다.
이호성은 그런 민성의 눈빛이 아팠다.
그래.
나는 쓰레기다.
“네. 저는 쓰레깁니다! 지금까지 쓰레기같이 살아왔어요. 하지만 새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지은 죄를 속죄하며 살겠습니다. 헌터님을 모시면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민성이 저벅저벅 걸어 그대로 이호성을 무시하고 지나쳤다.
이호성은 이를 악물며 민성을 돌아보았다.
“헌터님! 술에 대해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이호성이 그렇게 외쳤고, 민성은 걸음을 우뚝 멈췄다.
민성과 이호성 사이에 무거운 긴장감이 휘돌았다.
“단순히 술만 먹는다고 해서 술의 묘미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분위기와 안주! 그리고 술에 대한 깊은 이해도 또한 삶과 술의 교차점! 그 4박자가 맞아야만 비로소 술의 맛을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호성이 필살의 의지를 담은 눈으로 민성을 응시했다.
민성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호성을 돌아보았다.
“그래서?”
“딱 한 번만, 리치 인형을 키울 때 저도 함께 키워 주십시오. 제발 부탁드립니다.”
민성의 강한 눈빛이 이호성에게로 향했지만, 이호성은 이번만큼은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단호한 태도로 민성의 시선을 맞받았다.
민성은 미간을 구기며 잠시 고민하다가 이호성을 보았다.
“해 지는 대로 술 먹으러 갈 채비해.”
민성이 그 말을 끝으로 마당으로 나갔다.
이호성은 활짝 웃으며 양손을 머리 위로 만세하듯 팍 치켜들었다.
* * *
술이라…….
민성은 정원 나무에 물을 주면서 술에 대해 생각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단 한 번도 술을 마셔 본 적이 없다.
수학여행 때 친구가 마셔 보라고 한 잔을 주긴 했지만 별로 흥미가 없어서 거절했었다.
그 이후로는 마계에 소환되었으니, 술을 마실 기회는 당연히 없었다.
민성은 이호성이 고주망태가 되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덤벼들었던 모습을 떠올렸다.
술을 먹으면 전부 그렇게 되는 건가?
그런 거라면 왜 먹는 거지?
민성은 짧게 한숨 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 알 수는 없지만 궁금한 만큼 저녁에 직접 몸으로 확인해 보면 될 일이다.
* * *
집을 나섰다.
바가지는 주머니 안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고, 이호성은 술집으로 안내하기 위해 앞장섰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아니니 근처 가까운 동네로 가는 듯했다.
그렇게 앞장서는 이호성을 따라 도착한 곳은 예상외였다.
“여기입니다. 이런 식의 인테리어를 가진 가게들은 대부분 이자카야라고 부릅니다.”
이호성이 ‘이자카야’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선술집 이자카야(いざかや).
술 종류와 그에 따른 간단한 요리를 제공하는 일본식 술집이다.
다만 일반 술집과 차이점이 있다면 술보다는 요리에 중점을 두었다는 것.
“실제로 일본의 이자카야 같은 경우는 음식의 종류가 엄청 많아서 여러 가지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 많지만, 한국은 아무래도 그 색깔만 카피해 온 거라 그렇게 많은 메뉴를 가지고 있진 않는 편입니다.”
“그렇군.”
“그리고 가장 큰 차이라고 한다면 일본 맥주를 즐길 수 있다는 점 정도겠네요.”
확실히 가게 인테리어 자체도 이국적이다.
일본식 스타일이라는 것이 그대로 드러난다.
“들어가 보실까요?”
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호성이 여닫이문을 열어 주자 민성이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초저녁인데도 불구하고 가게엔 손님이 다섯 테이블이나 있었다.
직원이 창가 자리를 안내해 주었고, 민성은 이호성과 함께 자리에 착석했다.
민성은 앉자마자 가게 내부를 훑어보았다.
내부도 모두 목재다.
기둥의 틀은 물론 벽과 바닥 모두 나무로 되어 있어, 고전적인 일본풍의 느낌을 이곳저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술은 제가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안주만 드시고 싶으신 걸로 고르세요. 그리고 안주에 대해 궁금하시면 제가 바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호성이 마치 준비된 멘트처럼 민성에게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민성은 짧게 고개를 주억이곤 메뉴판을 확인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첫 번째 페이지에 있는 사시미.
그다음으로는 수제 꼬치와 탕, 그리고 일품 요리와 튀김, 마지막이 스테이크다.
큰 줄기의 메뉴를 살펴보며 호기심이 드는 메뉴에 대해 질문을 했다.
“타타키가 뭐지?”
민성의 물음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호성이 기계처럼 답변했다.
“간단히 설명을 드리자면 일본 말 그대로 두들겨 때려서 다진 고기라는 뜻이긴 한데, 지금은 그런 의미로 쓰이지는 않고요. 음, 그냥 일본의 육회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매우 얇고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죠.”
“육회라면…….”
“육회라곤 하지만 핏물이 살짝 보일 정도입니다.”
“그렇군. 메뉴는 결정했다.”
“말씀해 주시죠.”
“소고기 타타키. 그리고 오뎅 나베다.”
“술은 소주로 하겠습니다.”
“마음대로.”
이호성이 벨을 눌렀다.
잠시 후, 직원이 네에-! 하고 커다란 소리로 대답하며 뛰어왔다.
“소고기 타타키 하나, 오뎅 나베 하나, 그리고 소주 하나.”
“네. 알겠습니다.”
직원이 메뉴판을 받고 주방으로 돌아갔다.
잠시 후, 직원이 주방에 메뉴를 말해 준 뒤 소주병과 소주잔 두 개를 가져왔다.
소주가 도착하자마자 이호성은 소주병을 들고서 현란하게 흔들기 시작했다.
민성은 그런 이호성을 의아하게 보았다.
“그건 왜 흔드는 거지?”
“네? 아! 이거요? 소주에는 알칼리 환원수가 섞여 있는데요. 흔들지 않으면 알칼리 물이랑 알코올이 잘 안 섞여서 더 빨리 취하게 되는 거죠.”
이호성은 어깨를 으쓱였다.
“뭐, 별 큰 차이는 없지만, 기분 내기용이기도 하고요.”
소주병을 흔들어 안에 회오리를 만들어 내는 모습을 보며 민성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호성이 소주병을 따고 일어서서 정중히 소주를 따라 주었다.
꼴꼴!
소주가 작은 소주잔에 투명하게 차오른다.
“헌터님. 저도 한 잔 따라 주십시오.”
이호성이 술병을 넘기고 잔을 공손히 들어 머리를 숙였다.
민성은 이호성의 잔에 소주를 따랐다.
“주량껏 마시겠습니다. 어제와 같은 실수는 다신 없을 겁니다.”
“그때는 그냥 죽인다. 고통은 없을 거야.”
민성은 담담하게 말하고선 소주잔을 들었다.
“네. 각오하겠습니다.”
이호성이 진지한 얼굴로 건배를 청해 왔다.
민성은 엷게 웃었다.
100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어느덧 어른의 흉내를 낸다.
짠- 하고 소주잔이 부딪치는 맑은 소리가 났다.
소주잔을 천천히 입가로 가져오는 그 순간-
철컥!
문이 거칠게 열리며 5명의 남녀가 안으로 저벅저벅 들어왔다.
“지금 당장 전부 다 가게 밖으로 꺼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