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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30화 (30/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30화>

감성돔 한 마리가 통 크게 들어간 매운탕.

부글부글 끓고 있는 시원해 보이는 국물을 보자니 시선을 빼앗기지 않을 수가 없다.

어느새 숟가락부터 들이밀게 되는 조급함이 생겨난다.

일순 침착함을 잃고 음미하지 못하게 될 뻔했다.

민성은 국물을 떠서 입에 넣었다.

후룩!

푹 끓인 이 국물은 마치 곰국처럼 그 맛이 진했다.

아주 시원해.

얼큰한 국물이 그야말로 진국이다.

살점을 떼서 먹어 보았다.

낚시꾼과의 힘겨루기에 있어 파이팅이 넘치기로 유명한 감성돔이라 그런 걸까? 기름기가 거의 없는 고기임에도 불구하고 탄력 있는 식감은 녀석의 성격을 아주 직접적으로 말해 주는 듯했다.

쌀밥을 한술 떠서 그 위에 감성돔의 살점과 국에 있는 부추를 얹어 먹었다.

담백한 고기 맛과 깔끔한 부추 맛이 밥알과 함께 입안에서 어우러졌다.

민성은 숟가락으로 깊은 맛을 지닌 매운탕 국물을 떠먹었다.

목을 칼칼하게 적시는 매운탕은 몸에 열이 생기게끔 만들고 그 열은 기분 좋게 몸을 덥혔다.

쌀밥과 칼칼하면서도 시원한 매운탕의 국물은 굶주림으로 요동치던 배를 최고 수준으로 채워 주었다.

국물이 워낙 깊은 맛이라 그런지 손이 멈추질 않았다.

결국 밥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매운탕 국물까지 동을 냈다.

남은 것은 국물을 모두 먹고 남은 뼈뿐이었다.

식사를 모두 마치고 나자 절로 몸이 뒤로 기울어진다.

바닥에 손을 짚고 배를 내밀며 숨을 깊게 뱉었다.

“식사 괜찮으셨습니까?”

거의 몇 술 뜨지도 않은 이호성이 민성을 살피며 물었다.

민성은 아주 작게 미소 지었다.

“최고였다.”

이호성은 다행이라는 듯 웃어 보였다.

민성은 두둑한 포만감을 느끼며 시선을 돌려 창밖의 바다를 보았다.

천국이 따로 없군.

“헌터님. 이번엔 모처럼 식사도 같이하고 했으니 제가 계산하겠습니다.”

민성이 이호성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계산은 내가 한다.”

“아…… 네, 알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헌터님.”

“얼마지?”

식사는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그거와 별개로 가격도 놓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아무리 맛있게 먹었다고 하더라도, 비싼 가격은 그 훈훈한 점수를 깎아먹기에 충분하니까.

“5만 원이네요.”

이호성의 대답에 민성은 잠시 멍해졌다.

“……5만 원?”

“네. 5만 원입니다.”

“어째서?”

민성이 여전히 놀람이 남아 있는 눈으로 이호성을 보았다.

“낚시 용품 대여료가 조금 가격이 있긴 한데, 물고기를 많이 잡아 와서 그런지 할인을 많이 해 주셨네요. 거의 뭐, 이 정도면 밑반찬값밖에 안 받은 거나 다름없는 거죠.”

“그렇군.”

민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모로 이호성의 능력을 실감할 수 있게 된 한 끼 식사였다.

* * *

이호성은 민성을 집 앞까지 모셔다 준 후, 이튿날 아침까지 나오라는 말을 들었다.

24시간 대기에서 해방된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대로는 통장 잔고가 바닥이 나든가, 아니면 굶어 죽든가 둘 중 하나가 될 것만 같아 실로 공포스럽기까지 한 심정이었다.

이호성은 차에 기대 담배를 뻑뻑 피우며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대로 이렇게 멍청하게 썩어 갈 수는 없다.

해결책을 찾아야 해.

강민성을 만난 이후로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던져 온 질문이었지만, 늘 답을 찾지 못했다.

하나 이제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내야만 한다.

이호성은 눈을 날카롭게 떴다.

이대로 나이만 처먹을 수는 없다.

앞으로 나아가야만 해.

결심을 굳힌 이호성은 담배를 바닥에 확 갖다 버리고 차에 올라탔다.

부릉!

이호성의 차가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 * *

“헉! 헉……!”

이호성은 몬스터들의 피를 뒤집어쓴 채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가 찾은 곳은 쥐 몬스터인 렛 보이가 우글거리는 44던전.

이호성은 자신이 쓰러트린 렛 보이를 내려다보며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직 쓰러트려야 할 몬스터가 많이 남았음에도, 벌써부터 팔의 힘이 빠지고 있다.

손이 덜덜 떨리고 어깨와 다리는 한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파티 없이 솔로 플레이로 던전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두렵기도 했지만 그 두려움을 넘어서면서 던전을 찾은 건 그만한 각오가 있기 때문이다.

강해지고자 하는 각오.

그 각오가 홀로 던전에 입성하게 했다.

평소라면 지금의 컨디션으로 몬스터를 더 사냥하는 짓 같은 건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호성은 떠올렸다.

강민성의 밑에서 노예처럼 노역하듯 굴러다녔던 기억을.

더군다나 고작해야 1레벨 불과했던 리치 인형에게 그런 자존심 상하는 치욕을 당한 기억 역시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강해져서 강민성으로부터 벗어날 희망 같은 건 꿈꾸지 않았다.

그건 그야말로 꿈이나 다름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벗어날 수 없다고 해서 희망을 가지지 말란 법은 없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해 가치 있는 무언가를 찾아내야만 한다.

그게 자신을 살아가게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죽음을 불사할 용기가 필요하다.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이호성은 롱소드를 잡은 손에 힘을 실었다.

그때, 어두운 동굴 속 저 멀리에서 새하얀 빛이 번쩍였다.

몬스터, 렛 보이의 안광이다.

“와라, 이 쥐새끼들아.”

이호성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놈들을 쏘아보았다.

* * *

“힐로 치유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몸조리에 신경을 쓰셔야 합니다. 몸을 더 혹사시켜서는 위험해요.”

의사의 말에 이호성이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을 나온 이호성은 약국에 들러 약을 사고 나왔다.

밤하늘에 달이 떠 있다.

오른쪽만 볼록한 반달 모양의 상현달이다.

꼭 자신의 반쪽짜리 인생을 보는 것 같아 서글픔이 밀려왔다.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획득한 아이템은 최하급뿐.

그리고 던전에서 사투를 벌이며 오른 경험치라고 해 봐야, 고작 2%밖에 오르지 않았다.

술이 한잔하고 싶은 밤이다.

차를 타고 이동했다.

15분 정도 걸려 자신의 아지트와도 같은 장소에 도착했다.

괴로운 일이 있을 때면 늘 홀로 찾던 곳이다.

의사는 술이나 담배를 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호성은 입에 담배를 물고 상호도 없는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왜 이렇게 오랜만이야?”

주인아저씨가 이호성을 보자마자 애교 섞인 투정을 부렸다.

이호성은 쓰게 웃으며 고갯짓으로 인사한 후, 알루미늄 테이블 앞에 앉았다.

평일인 데다 늦은 새벽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은 자신뿐이었다.

외로운 밤을 달래기엔 더없이 좋다.

“우동 하나랑 소주 하나 주세요.”

이호성의 표정을 본 주인아저씨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소주와 소주잔을 가져다주었다.

이호성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 연기를 깊게 빨아들이며 소주잔에 소주를 졸졸 따랐다.

다이아몬드 클랜의 클랜장.

이호성은 피식 웃었다.

정말 별 볼 일 없는 이름이지.

송충이 주제에 강민성을 만났다고 해서, 딱히 그와 자신을 비교하고자 하는 마음은 아니다.

솔잎은 아직도 먹고 있다.

송충이답게.

단지, 더럽게 꼬여 버린 삶이 답답할 뿐인 거다.

소주잔에 가득 채워진 소주를 입에 털어 넣어 마셨다.

꿀꺽.

알코올 냄새가 나지 않는다.

기분이 더러워서 그런가?

소주가 아주 달디달다.

이런 날이면 취하기 쉬운데.

취하고 싶은 밤인데 잘된 거지, 뭐.

알코올로 인해 후끈해지기 시작하는 몸을 느끼며 다시 빈 잔에 소주를 따랐다.

잔을 채우고 허공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담배 하나를 다 태워 바닥에 꽁초를 버릴 쯤, 주인아저씨가 우동을 들고 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우동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안주 먹어. 속 버려.”

주인아저씨의 걱정 담긴 말에 이호성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아저씨가 파를 썰러 돌아갈 때, 이호성은 우동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우동 국물 위로 파와 고춧가루가 뿌려져 있다.

이걸 보고 있자니 강민성 생각이 난다.

그 자식은 이걸 먹고도 좋아할까?

무릇 음식이란 분위기와 상황에 맞아야 하는 법.

단순히 배고프다고 먹으면 그 맛이 나지 않는 법이지.

이호성은 나무젓가락을 들고 면발을 집었다.

그리고.

후루루룩!

바로 입으로 빨아 당겼다.

뭣 같은 심정으로 포차를 찾았는데, 이 와중에 우동은 또 맛있다.

진짜 못 말릴 자식이네. 나란 놈은.

“강민성, 이 X새끼…….”

이호성은 우동을 우물거리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소매로 닦아 냈다.

“에휴…….”

* * *

이호성은 술에 잔뜩 취해 목과 얼굴이 벌게진 채 차에서 내렸다.

배를 올챙이처럼 쭉 내밀고 입에 담배를 물고서 불을 붙였다.

“스읍, 후우!”

이호성은 반쯤 풀린 눈으로 강민성의 집을 보며 히죽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겁나 좋은 데 사네.”

코를 들이켜 마신 뒤, 카악! 하고 가래침을 바닥에 탁 뱉었다.

요즘 담배를 얼마나 폈는지 목이 따끔따끔하고 폐가 쑤셨다.

이호성은 피우고 있던 담배를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확 갖다 버리며 민성의 집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쿵! 쿵! 쿵!

문을 거칠게 두드렸다.

잠시 후, 현관문이 열리고 문틈 사이로 자다 일어난 것 같은 민성의 얼굴이 보였다.

이호성은 세수를 하듯 얼굴을 팍팍 문지르고선, 민성을 어깨로 툭 치고 신발을 신은 채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거실에 서서 숨을 몰아쉬었다.

흥분으로 인해 숨이 거칠어지고 몸에 열이 쫙 올랐다.

민성은 팔짱을 끼고 벽에 비스듬히 기대, 삐딱한 시선으로 그런 이호성을 보았다.

이호성은 허리에 양손을 얹고서 천장을 보며 긴 숨을 뱉었다.

그러곤 민성을 돌아보았다.

“너 진짜 나한테 너무하는 거 아니냐?”

“…….”

“내가 생각을 해 봤는데. 시X,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하는 거 아니냐고.”

“…….”

“야, 그래. 내가 솔직히 너 아이템 뺏으려고 했어. 근데 뭐? 도적질하면서 살 수밖에 없었던 내 이 뭣 같은 심정을 네가 알아? 중앙 기관 때문에 우리 뒷골목 헌터들 수입이라고 해 봐야 쥐꼬리야. 밥만 먹고 살기도 힘들다고. 내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데.”

“…….”

“그리고 내가 왜 네 밥 처먹는 거를 하나하나 다 챙겨야 돼? 어!?”

“…….”

“솔직히 이 정도 했으면 리치 인형이 아니라 나도 좀 챙겨 줘야지! 네 밥 셔틀이나 하다가 인생 종 치라고? 어? 이 악마 같은 새끼야!?”

민성의 미간이 구겨졌다.

“다 했나?”

민성이 물었다.

“다 못 했다, 이 새끼야! 어차피 이래 사나, 저래 사나 끝장난 인생! 그래!”

이호성이 고개를 끄덕이곤 배를 쭉 내밀었다.

“죽여라, 죽여!”

민성이 천천히 팔짱을 풀고 차가운 눈으로 이호성을 보았다.

“그래, 알겠다.”

민성이 저벅저벅 이호성에게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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