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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29화 (29/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29화>

* * *

김지유는 가게로 향하는 민성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부럽네, 정말.”

김지유는 짧게 한숨 쉬며 모자를 푹 눌러썼다.

바다를 돌아보았다.

곧 다가올 어둠과는 달리, 눈부시게 아름다운 초여름의 바다였다.

* * *

“좀 잡았어?”

횟집 사장이 정감 있는 어투로 싱긋 웃으며 물었다.

사장의 물음에 이호성은 자신의 물고기 통과 민성의 통을 넘겼다.

“회랑 매운탕 한 3인분 정도로만 주시고, 남은 고기는 아저씨 쓰세요.”

이호성의 말에 사장이 기분 좋은 듯 웃었다.

“하하, 고맙네. 역시 꾼이야.”

이호성이 웃으며 몇 마디를 주고받다가 민성을 보았다.

“그럼 식사하고 나오십시오.”

“같이 먹지.”

“……네?”

민성은 그렇게 말하곤 안쪽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큰 창문 너머로 바다 풍경이 시원하게 보였다.

민성은 그 풍경을 마치 꿈을 꾸는 듯한 얼굴로 보았다.

이렇게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이런 풍경을 보며 회와 매운탕을 먹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음식이 나오기 전부터 벌써 설렘이 가슴을 흔들었다.

민성이 그렇게 창밖의 풍경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을 때, 자고 있던 바가지가 주머니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으음.”

잠이 덜 깨는지 바닥에 내려온 바가지는 휘청휘청 걸으며 테이블 위로 올라가, 엉덩이를 대고 앉고선 창밖을 보았다.

“던전 좀 알아봐. 적당한 곳으로. 미궁 말고.”

“혹시 이 리치 인형. 앞으로도 계속 키우실 생각이세요?”

민성은 자신처럼 바다 풍경을 보고 있는 바가지를 힐끔거렸다.

“한번 키워 볼 생각이야.”

이호성이 예상 밖이었는지 화들짝 놀랐다.

“던전 가시는 거 귀찮아하셨잖아요. 이제 다시 생활비는 충분히 마련되셨을 텐데.”

“돈이야 어차피 결국은 떨어지게 될 거고. 이 녀석 키울 겸 미리 벌어 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으니.”

민성은 앙상한 뼈의 뒤태를 보여 주고 있는 바가지를 팔짱을 끼고 응시했다.

“취미로 키우는 것도 나쁘지 않지. 이것저것 템도 맞춰 주고. 그럼 나중엔 알아서 돈을 벌어다 줄 테니까.”

이호성이 부러움이 가득한 눈으로 바가지를 보았다.

“……저, 저도.”

민성의 차가운 시선에 이호성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호성이 그렇게 당황한 얼굴로 말을 더듬던 그때, 중년의 여직원 한 명이 기본 상차림을 가지고 왔다.

여직원은 밑반찬을 테이블에 놓으면서 바가지를 보며 호호 웃었다.

“해골 인형이 참 진짜같이 생겼네요. 신기해라.”

그에 바가지가 끼리릭 고개를 돌려 여직원을 돌아보았다.

“꺄아아아악.”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동그라졌다.

한 손에 든 나물 무침이 그릇과 함께 허공으로 솟구쳤다.

민성은 공중을 날고 있는 나물을 그릇에 파파팟! 담아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그사이 여직원은 오들오들 떨면서 주방으로 달아났다.

잠시 후, 횟집 사장이 달려왔다.

“아하하. 우리 마누라가 많이 놀랐나 보네. 아이고, 미안합니다. 마누라가 겁이 많아 가지고. 하핫! 그런데 헌터이신가 보군요? 그것도 소환계열의. 소환계열은 보기 드문데. 이야! 이게 소환 몹인가? 신기하군요.”

사장이 마누라 대신 밑반찬을 놓아 주면서 바가지를 이리저리 훔쳐보았다.

바가지는 다시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았다.

사장은 바가지가 신기한지 눈을 떼지 못했다.

“사장님?”

이호성의 부름에 바가지에게 푹 빠져 있던 사장이 화들짝 놀라며 웃었다.

“아하하. 너무 신기해서 깜빡 넋을 놓고 있었네, 아주. 하하, 있어 봐. 아직 스끼다시 덜 나왔으니까.”

사장이 주방으로 돌아갔다가 한 상을 더 들고 왔다.

민성은 테이블 위에 놓이는 밑반찬들을 보며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태어나 이렇게 많은 음식이 테이블에 올라오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밑반찬의 종류는 거의 50가지에 달했다.

그리고 모두 하나같이 별 볼 일 없는 것이 아니라, 꽤 고급스러운 품목들이 상당했다.

예컨대 전복이나 조개회부터, 각종 해산물과 잘 관리된 반찬 등 보고 있는 눈이 사치스러울 만큼 밑반찬은 양이 많았다.

이쯤 되면 뭐부터 먹어야 할지 고민스러울 정도다.

“밑반찬이 많죠? 단순히 많은 것뿐만이 아니라 맛도 있고 신선합니다. 워낙 이 가게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 신선도가 그만큼 유지되고 있는 거죠. 드셔 보시면 바로 알게 되실 겁니다.”

민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젓가락을 들었다.

배 속에서 어서 음식을 달라고 소리를 쳤지만, 민성은 서두르지 않았다.

음식을 먹는 것은 경건해야 한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히.

머릿속을 식히고 뜨거운 가슴으로 음식을 대해야 한다.

그것이 음식을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민성은 생각했다.

민성이 젓가락으로 작게 잘려 있는 전복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오독!

식감이 오독하면서도 탱글탱글하다.

아주 약간의 단단함이 신선하게 입안을 맑게 만들어 주었다.

조금도 비리지 않는 전복의 신선함은 시작부터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기에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의 식사는 어쩐지 장기전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민성은 다음으로 멍게를 초장에 찍어 입안에 넣었다.

향긋한 멍게 향이 코끝으로 화악 퍼졌다.

보통 멍게는 향이 강하지만, 이건 신선도가 높아 조금도 비리지 않고 마치 꽃향기를 맡는 것만 같았다.

음식을 가장 처음 느끼는 건 맛이 아니라 후각에서부터다.

그런 만큼 음식을 먹음에 있어서 후각에 집중하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그 기본적인 것을 떠올리며, 부드러운 멍게가 입안에서 살살 녹아 목 너머로 넘어가는 걸 느꼈다.

뒤이어 서두르지 않고 조개회를 들었다.

딱딱한 조개껍질 위에 놓여 있는 부드러운 조개는 윤기 있는 빛깔을 머금고 있었다.

조개회를 먹어 본 적은?

당연히 없다.

이제 그 맛을 봐야 할 차례.

민성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살짝 삼키고선 곧장 입안에 조개회를 쓸어 담듯 투하했다.

작지만 전혀 모자라지 않은 느낌이 입안에 삭 전달되었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질감의 맛이 어금니에 짝짝 씹히면서 혀에 전달되었다.

그다음으로 시선을 사로잡은 밑반찬은 바로 소라와 산낙지, 그리고 키조개 관자다.

선택은 헤매지 않고 바로 정해졌다.

조개를 먹었으니 이어서 키조개 관자다.

푹신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이 입안에서 춤을 추었다.

맛있고 즐겁다.

에피타이저를 이렇게 호화롭게 즐길 수 있다니.

그 놀라움이 채 진정되기도 전에 민성은 활발하게 꿈틀거리고 있는 산낙지를 집었다.

소금장에 찍어 바로 입안으로 쏙 넣었다.

혀와 이빨에 빨판을 붙이며 꿈틀거리는 생동감이 아주 재밌다.

산낙지에 이어, 손으로 소라를 뽑았다.

포동포동한 소라를 우물우물 씹으며 민성은 생생한 해산물의 풍미를 연속적으로 만끽했다.

이거, 밑반찬만으로도 배가 부르겠는데?

무리하지 않고 딱 취향에 맞는 것들로만 먹고, 메인을 위한 자리를 남겨 두어야겠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엄청난 종류의 양과 질을 겸비한 밑반찬이다.

민성은 휴지로 입을 한 번 훔쳐 낸 뒤, 꽁치를 젓가락으로 꼬집어 살을 뜯어 낸 다음 소금에 찍지 않고 먹었다.

어렸을 때의 기억과 조금도 다를 것 없는 맛.

그래서 놀랍다.

100년도 넘은 오랜 시간이건만, 그 시간을 초월할 만큼 꽁치는 확고한 맛을 유지하고 있었다.

촉촉한 꽁치의 껍질과 통통한 살의 고소함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자- 회 나왔습니다. 호성 군, 자리 좀 치워 줘.”

이호성이 그릇을 놓기 위해 밑반찬을 사이드 쪽으로 뺐다.

중앙의 빈자리에 회가 한가득 쌓인 접시가 안착했다.

“필요한 거 더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고?”

횟집 사장이 시원하게 웃으며 돌아갔다.

민성은 메인으로 나타난 회를 내려다보았다.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신선해 보이는 회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게 곧 자신의 입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행복하다.

감성돔이 비싼 만큼 회로 감성돔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 예상은 틀렸다.

제철이 아닌 데다 무엇보다 산란철이라 육질이 무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성돔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감성돔은 매운탕에서 등장할 거라는 예고를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회로 먹을 때는 별로지만, 매운탕으로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걸 보면 역시! 하고 감성돔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을 거라고 횟집 사장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어쨌든 그런 감성돔에 대한 기대는 일단 뒤로 접어 두고, 민성은 지금 당장 나와 있는 회에 대해 집중했다.

회로 나온 것은 5월의 참돔이었다.

이 귀한 것은 바로 이호성이 잡은 참돔.

민성은 젓가락으로 참돔 회를 집었다.

붉은 빛깔과 그 살결은 그야말로 끝내준다.

마치 하나의 예술처럼 그 결이 환상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자, 이 비싸고 귀한 참돔의 맛은 과연 어떨까?

민성은 조금 긴장한 채로 참돔을 와사비를 푼 간장에 살짝 찍고 입안에 넣었다.

우물-!

“……!”

참돔 회를 먹자마자 민성은 왜 참돔이 귀하다고 하는지 그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미끼를 물었을 때 저항하던 그 강한 힘만큼이나 파워 가 깊은 맛이다.

힘찬 바다의 맛이라고 할까?

탱탱하고 고소한 고급스러움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정말 좋은걸?

쫄깃쫄깃한 단맛은 마치 자신을 잊지 말라고 소리치는 듯하다.

아무래도 메인 음식들이 들어오자 많은 종류의 밑반찬에는 별로 손이 가지 않았다.

회를 깻잎에 싸서 마늘과 장을 넣고 입안에 넣었다.

살짝 쌉싸래한 깻잎 안에서 부드러운 참돔 회가 장과 어우러지면서 마늘과 함께 씹히는 맛은 가히 일품이었다.

민성은 쌈을 씹으며 사이다 한 병을 주문했다.

탁탁 튀는 탄산을 갖고 있는 사이다를 마시자, 막힌 둑이 뚫린 것처럼 목이 시원해졌다.

그리고 다시 참돔 회를 향해 젓가락이 움직였다.

먹다 보니 어느새 회가 거의 동이 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횟집 사장이 뭔가를 들고 왔다.

타이밍이 예술이었다.

이번에 나온 것은 바로 민성이 기대했던 감성돔 매운탕이었다.

천리안도 아니고 회를 거의 다 먹어 간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딱 알맞은 타이밍에 횟집 사장은 매운탕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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