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8화>
* * *
오이도에 도착했다.
1시간 반 이상을 잡아먹긴 했지만, 민성은 전혀 지친 기색 없이 어서 새로운 맛집을 경험하고 싶은 얼굴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차를 주차하고 민성과 이호성, 그리고 바가지가 차에서 내렸다.
바다 풍경이 일품이다.
안개도 없고, 쨍쨍한 햇빛이 바다를 그대로 아름답게 보여 주고 있다.
날씨는 완벽했다.
“이 가게인가?”
민성이 한 가게를 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동대 횟집]
가게 이름은 거창할 것 없이 심플했다.
이색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별달리 티를 내지도 않는다.
다만 주변의 가게에 비해 허름한 것이 특별하다면 특별한 걸까?
주변의 신식 인테리어로 되어 있는 가게들과 달리, 오래된 느낌을 전해 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것이 외려 전통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전통성이 얼마나 무시할 수 없는 것인지는 이미 직접 몸으로 체감했다.
세월의 힘은 그만큼 굉장한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맛과 분위기니까.
“그런데 우리 낚싯대가 없지 않나?”
민성이 이호성을 보며 물었다.
이호성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어 보였다.
“가게에서 대여료를 지급하고 빌릴 수가 있습니다만, 굳이 대여료를 받지 않을 겁니다. 여기 사장님은 헌터들을 꽤 좋게 보고 있거든요. 또 제가 오면 항상 무료로 빌려주곤 했습니다.”
“꽤 와 본 적이 있나 보군.”
“네. 제 고향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제가 낚시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렇군. 들어가지.”
민성이 관심 없다는 듯 앞장섰다.
이호성은 인상을 쓰며 그런 민성을 뒤따랐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50대의 깡마른 중년 사장이 이호성을 반겼다.
“오, 호성 군. 오랜만이야, 아주? 왜 이렇게 안 왔어. 얼마 만이야, 이게.”
이호성이 쓰게 웃었다.
“사는 게 바쁘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사장이 껄껄 웃으며 이호성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그래그래. 먹고사는 게 제일 중요하지. 이렇게 두 분이서 오신 건가?”
“네. 아, 사장님. 낚싯대 좀 부탁드립니다.”
“어디 있는지 알지? 마음에 드는 걸로 마음껏 써.”
이호성은 몇 마디 더 사장과 이야기를 나눈 후, 괜찮아 보이는 낚싯대와 낚시용품 세트를 챙겼다.
준비를 마치자마자 민성과 함께 낚시를 하러 방파제로 이동했다.
방파제에는 벌써부터 꽤 많은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이호성은 자신이 주로 갔던 지점 포인트로 향했다.
“낚시를 해 보신 적 있으세요?”
이호성이 위치를 잡고 준비를 하면서 물었다.
“아니. 없다.”
민성은 먼 바다를 보며 말했다.
넓고 찬란한 바다를 보자 가슴속이 뻥 뚫리는 것처럼 시원했다.
“그럼 제가 천천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그래.”
“음, 먼저 여기가 방파제잖아요? 그래서 방파제 낚시라고 부릅니다. 방파제 낚시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여기 방파제 자체가 발판이 비교적 안전하고요. 개체 크기가 작은 것부터 감성돔이나 벵에돔 등 다양한 물고기를 낚을 수 있습니다.”
“그렇군.”
“그럼 이제 설명을 좀 드릴게요.”
이호성은 민성에게 낚시용품에 대한 설명과, 낚시를 하는 순서에 대해 알려 주었다.
왕초보 낚시꾼 강민성의 생애 첫 낚시가 그 시작을 앞두고 있었다.
미끼를 끼운 뒤, 낚싯대를 던질 준비를 했다.
낚싯대를 드리우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이호성보다도 더 완벽하게 낚싯대를 던졌다.
이제 남은 것은 입질이 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뿐.
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제 막 시작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잡은 걸로 회를 치고, 매운탕을 먹는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입에서 군침이 돌았다.
커다란 고기를 잡고 싶다는 생각이 가슴에 파고들었다.
목표는 감성돔과 벵에돔.
“초반에는 입질이 없더라도 미끼를 자주 갈아 주셔야 해요.”
민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낚시에 집중했다.
주변에서 물고기를 하나둘 낚아채는 게 보였다.
민성도 빨리 잡았으면 좋겠는데 미끼를 몇 번이나 갈면서 기다렸음에도 왜인지 좀처럼 입질이 오지 않았다.
“헌터님. 기본 팁을 조금 드리자면 지금 조류가 좌에서 우로 흐르고 있잖아요? 찌보다 왼쪽으로 밑밥을 치면서, 고기가 물면 빠르게 랜딩하면 됩니다.”
민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력을 잃지 않고서 이호성의 조언대로 밑밥을 던졌다.
하나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참을 지나도 물고기는 민성의 미끼를 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저…… 헌터님. 물고기는 민감합니다. 때문에 헌터들이 기운을 감추지 않으면 물고기는 지레 겁을 먹고 근처에도 오지 않죠.”
이호성의 말에 민성은 그제야 물고기가 왜 잡히지 않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군.”
민성은 마기를 잠재웠다.
그리고 밑밥을 치자, 오래 걸리지 않아 입질이 오는 게 손끝에서 느껴졌다.
이호성의 말대로다.
왔어!
민성은 빠르게 줄을 감았다.
하지만 이내 몇 초 만에 허전함이 손끝에 남았다.
물고기가 미끼만 훔치고 유유히 사라진 것이다.
빠직!
민성의 이마에 혈관이 돋아났다.
조용히 다시 미끼를 끼우고 낚싯대를 던졌다.
* * *
‘왜 이렇게 못 잡아, 이 새끼?’
이호성은 민성의 눈치를 살피며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사실상 직접 몸을 쓰면 물고기가 떼로 죽어서 둥둥 뜨겠지만, 강민성도 그걸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니다.
재미를 위해 낚시를 하고 있는 거다.
그런데 왜 이렇게 낚시에는 재주가 없는 거야?
이러다 폭발해서 자신만 죽어 나가는 게 아닌지 이호성은 불안해졌다.
잊지 말아야 한다.
그는 천상계 기타 능력자이며, 사람 하나 죽일 때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냉혈한이라는 걸.
그렇게 불안에 시달리고 있을 때, 누군가 민성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호성은 목을 살짝 내밀어 상대를 자세히 보았다.
모자를 깊게 눌러쓴 여자였는데 얼핏 봐도 굉장히 예뻐 보였다.
하얀 티셔츠에 핫팬츠.
그리고 운동화를 신었다.
새하얀 피부와 모자 아래로 보이는 짧은 금발의 머리.
타이트한 티셔츠라서 가슴이 굉장히 크다는 걸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허리는 잘록했다.
밝은 금발이라 다소 이국적으로도 보이기도 하는 그녀는 능숙하게 장비를 챙겨 낚시를 시작했다.
‘오우, 죽이는데?’
이호성이 그녀를 보며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민성이 좌절감에 물든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어? ……또 놓치신 거예요?”
이호성이 눈치를 보며 물었다.
민성이 쓴웃음을 지었다.
“생각만큼 쉽지가 않군.”
“…….”
잠시 후…….
민성이 해탈한 얼굴로 목을 삐딱하게 꺾으며 바다를 보았다.
누가 보아도 열이 바짝 오른 것처럼 보였다.
이호성은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물고기를 못 잡아도 이렇게 못 잡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명색의 기타 능력자인데 낚시를 못할 거라는 건 계산하지 못한 것이다.
왜 이런 데 데려왔냐고 자신을 죽이려 들까 봐 이호성은 눈이 퀭해졌다.
* * *
민성은 멍하니 바다를 보다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심호흡을 하고 머리를 휙휙 휘저었다.
다시 심기일전하여 미끼를 챙기려 했다.
“아!”
민성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느새 미끼를 다 써 버리고 만 것이다.
심기일전이 무너지며 스트레스가 치솟아 올라왔다.
바로 그때.
“쓰세요.”
옆에 앉아 있던 금발 머리 여성이 툭 하고 미끼가 든 통을 내밀었다.
민성은 흘깃 그녀를 보다가 밑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가방에는 미끼통이 여분으로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딱히 써도 피해가 가진 않을 것 같아 보였다.
민성은 잠시 고민하다가 손을 뻗었다.
“고맙다.”
민성의 인사에 여자는 바다를 보며 짧게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인사를 받았다.
그사이 민성은 새로운 미끼를 다시 바늘에 걸었다.
집중력을 끌어 올리며 심기일전의 마음으로 다시 찌를 던졌다.
이렇게 불안한 적은 처음이다.
현세로 귀환한 이후, 처음으로 만난 벽이자 어려움이었다.
그래서 더 재미있기도 했고 오기가 생기기도 했으며, 물고기에게 이기고 싶다는 마음이 잠잠하던 감정 안에서 싹을 틔우며 나타났다.
잠시 후.
드디어!
입질이 왔다.
민성의 눈이 새하얗게 번쩍였다.
이번엔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민성이 곧장 릴을 감았다.
“무작정 감지만 말고 낚싯대를 세워서 물고기의 힘을 빼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옆에 앉은 여성의 말대로 민성은 숨을 길게 훅 뱉으며 낚싯대를 바짝 세웠다.
뭔가 어정쩡하긴 했지만 그래도 손끝에서 느껴지는 느낌은 일전과는 사뭇 달랐다.
“이제 슬슬 힘이 빠졌네. 낚으면 되겠는데요?”
여자의 말에 민성이 집중력을 끌어 올리며 릴을 감았고, 이호성이 재빨리 뜰채를 건네주었다.
딸려 오는 물고기의 무게가 꽤 묵직하다.
잠시 후 릴을 적당히 감고 뜰채를 이용해 물고기를 건져 올리려는 순간.
낚싯바늘이 빠르게 허공으로 솟구쳤다.
낚았다!
낚았는데…….
“물고기 크기가…….”
이호성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민성이 잡은 물고기를 보았다.
민성은 당황스러운 눈으로 자신이 잡은 물고기를 보았다.
새끼손가락만 한 송사리다.
“…….”
민성은 조용히 송사리를 집어 바다에 던져 주었다.
다시 소리 없이 낚시 바늘에 미끼를 걸 때, 옆에서 쿡쿡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민성은 미간을 구기며 옆을 돌아보았다.
“푸하하하하!”
여자가 머리를 뒤로 젖히며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매너가 좀 아닌 것 같은데.”
“아, 미안해요. 그렇지만 너무 웃겨서…… 미안해요.”
그녀는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아 냈다.
민성은 시커멓게 굳은 얼굴로 바다를 보았다.
낚시라는 건…… 정말이지 쉽지 않은 게임이다.
이호성의 통에는 물고기가 절반은 버려도 될 만큼 바글바글하게 들어차 있었다.
그 시선에 이호성은 안절부절한 얼굴로 먼 곳을 보며 딴청을 피웠다.
그때.
“앗! 입질 왔다.”
여자가 벌떡 일어나며 흥분된 눈으로 릴을 감았다.
그리고.
그녀의 바늘에도 송사리가 걸려들었다.
“아……!”
그녀는 빨개진 얼굴로 파닥거리는 송사리를 보았다.
“큭!”
민성은 그녀의 송사리를 보며 웃음을 흘렸다.
여자가 괜스레 헛기침을 하면서 송사리를 풀어 주었다.
“여기 포인트가 안 좋네.”
그녀는 미끼를 물려 낚싯대를 던지고 머쓱한 얼굴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서로 웃지 말기로 하죠.”
여자의 말에 민성은 바다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정적을 깬 건 여자 쪽이었다.
“제 이름은 김지유예요. 소개도 했고, 미끼도 빌려줬는데 통성명 정도는 괜찮지 않아요?”
민성은 고개를 돌려 자신을 김지유라고 밝힌 그녀를 건조하게 보다가 바다로 고개를 돌렸다.
“강민성이다.”
민성은 짤막한 이름을 말해 주었다.
김지유는 모자를 벗으며 미소 지었다.
“강민성. 멋진 이름이네요.”
화장을 짙게 하지 않았음에도, 보는 눈이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미모였다.
이호성은 민성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김지유를 응시하며 입을 쩍 벌렸다.
태어나 본 여자 중에 가장 아름다운 여자라고 확신할 수 있을 만큼 그녀의 외모는 대단했다.
한 나라를 휘청이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폭력적일 만큼 예쁜 여자다.
그사이 김지유가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이제 그만 가야겠다.”
민성은 그녀를 흘겨보며 피식 웃었다.
“고작 송사리를 하나 잡고 포기하다니. 인내력이 바닥이군.”
민성의 도발에 김지유는 작게 미소 지었다.
“만날 사람이 있어서 잠시 들렀을 뿐이에요. 얼굴도 봤고, 어떤 사람인지도 봤으니까 그만 돌아가야죠.”
민성이 살짝 가라앉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즐거웠어요. 인연이 있다면, 다음엔 서로 아는 척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어때요?”
김지유가 가방을 어깨에 걸며 물었다.
민성은 바다로 시선을 돌렸다.
“미끼 고마웠다.”
민성의 대답에 김지유는 밝게 웃음 지었다.
“이런 미녀를 상대로 그렇게 철벽을 치다니. 남자 좋아해요? 혹시 둘이 커플?”
“아니. 그쪽 매력을 의심하는 게 더 설득력이 있을 것 같은데.”
김지유의 이마에 혈관에 두꺼워졌다.
그녀가 억지웃음을 지었다.
“다음에 만나면 미끼값이나 갚아요. 강민성 씨.”
김지유는 그 말을 끝으로 몸을 홱 돌려 자박자박 멀어져 갔다.
바로 그때, 입질이 왔다.
민성은 안광을 번쩍이며 벌떡 일어나 낚싯대의 릴을 감았다.
수면 위로 커다란 물고기가 첨벙거리는 게 눈에 보였다.
침착하자.
흥분하지 말고.
오롯하게 집중한다.
이호성이 뜰채를 들고 긴장한 채로 타이밍을 기다렸다.
물고기가 거의 지척에 다다랐을 때, 이호성이 뜰채를 넘겼다.
“지금입니다.”
민성이 뜰채를 받아 힘 좋게 파닥이는 물고기를 낚았다.
물고기가 뜰채에 건져졌다.
뜰채를 바짝 들자 햇빛을 받아 번쩍이며 물고기가 힘차게 몸부림을 쳤다.
살이 두툼하게 오른 감성돔이었다.
“우와! 감성돔! 대박! 축하드립니다, 헌터님!”
민성은 짧게 숨을 고른 뒤 물고기를 통에 넣으면서 낚싯대를 갈무리했다.
낚시가 재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더 하기엔 배가 너무 고팠다.
배 속이 굶주림으로 요동쳤다.
“이제 그만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