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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27화 (27/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27화>

“얼른 먹어. 마음 변하기 전에.”

조그마한 바가지가 허겁지겁 뒤뚱거리며 뛰어왔다.

“어둠의 신이여, 귀한 어둠이여, 숭고한 어둠이여. 어둠의 힘을 투영하여 우주 만물의 중심을 내 손 안에…….”

열심히 중얼거리고 있는 리치를 민성은 힘 빠진 얼굴로 쳐다보았다.

“전능한 어둠의 힘으로 심판한다!”

간지럽기는 할지 의심스러운 시커먼 연기 공격이 죽기 직전의 오우거를 향해 날아갔다.

바가지의 공격은 오우거에게 있어 추억의 모기 차(방역차)가 뿜는 미약한 살충 성분이진 않을까 걱정스러웠지만…….

퍼어어어엉!

다행히 바가지의 공격에 오우거가 혀를 쭉 내밀며 고개를 픽 떨구었다.

[‘바가지’가 오우거를 처치하였습니다.]

[‘바가지’가 최초로 개인 경험치 획득에 성공합니다.]

바가지가 덩실덩실 만세 자세로 춤을 추며 좋아했다.

그래도 잡긴 잡네.

어차피 아이템만 먹으면 되는 거니까 막타는 저 녀석에게 줘도 상관없겠지.

[미궁 클리어!]

[‘강민성’ 님에게 미궁 난이도가 조정됩니다.]

[액트 3 오픈]

아이템을 모두 챙기고 나자, 시스템 문구와 함께 탈출 게이트가 나타났다.

민성은 몬스터의 피가 묻은 오리하르콘 단검을 풀에 닦은 뒤, 템 창에 넣으면서 게이트를 통과했다.

그렇게 민성이 게이트 밖으로 나왔을 때, 그 모습을 한 여성이 지켜보고 있었다.

짧은 금발의 그녀는 민성의 모습을 깊은 눈으로 응시했다.

* * *

“……어? 뭐, 뭐야? 리치 레벨이 왜 이렇게 높아!?”

미궁을 나오자 이호성이 리치를 경악한 얼굴로 보며 소리쳤다.

현재 이호성이 보고 있는 리치 인형의 레벨은 정확히 1,000.

일천이었다.

미궁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레벨 1이었던 녀석이, 어떻게 한 번에 레벨이 일천…… 이게 말이 돼?

이호성은 리치를 보며 완전히 넋이 나갔다.

“마석 먹이고 보스 몹 막타 줬거든.”

민성이 말했다.

마석? 그리고 막타를 줬다고……?

이호성은 새하얘진 얼굴로 허허 웃었다.

누구는 이제 쩔도 못 받는 노예 신세인데, 리치 인형이란 놈은 주인 잘 만나서 한 방에 레벨이 일천이라니.

하하…….

이호성은 어이가 없어서 그냥 헛웃음만 연거푸 흘렸다.

리치 인형은 민성의 허리춤에 매달려서는.

“와아- 재밌다-”

놀이기구를 타듯 몸을 흔들어 댔다.

뭐야? 이제 말도 해?

무슨 리치가 저래……?

순 잡종 애완견 수준이군.

이호성이 리치 인형을 노려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저건 뭐지?

바가지……?

“헌터님. 그런데 저 리치 인형, 머리 위에 떠 있는 바가지라는 건 뭔가요?”

“이름 지어 주래서 지어 줬지.”

민성의 말에 이호성은 넋 나간 얼굴로 민성을 보았다.

와…… 시발, 진짜 오지도록 대단한 새끼다.

어떻게 저 비싼 마법 인형의 이름을 저렇게 지을 수가 있는 거야?

진짜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호성은 리치 인형을 다시 보았다.

바가지.

…….

보고 있으니 웃긴다.

바가지라니.

“리치…… 아니, 바가지야. 이름은 마음에 드냐?”

이호성이 웃음을 참으며 바가지를 향해 물었다.

“당연히 좋죠. 주인님이 지어 주신 이름이니까요. 너무너무 마음에 드는데요?”

애교 어린 어깨춤을 추는 바가지를 보며 이호성은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이거 완전 멍청한 인형이로군.

제 이름을 바가지로 지었는데도 좋아하다니.

강민성도 그렇고, 저 해골바가지도 그렇고. 진짜 대단한 것들이다, 정말.

일천 레벨을 찍은 게 부러워서 배가 아프긴 했지만, 그래도 뭐 저 이름을 보고 있자니 우스워서 조금 아픈 배가 가시는 것 같기도 했다.

“이제 그만 내려가자. 빨리 밥을 먹어야겠어.”

민성이 먼저 앞서서 산을 내려갔다.

그가 산을 내려가고 있는 사이, 이호성은 리치 인형 바가지를 보면서 낄낄 웃었다.

“이름이 바가지가 뭐냐, 바가지가? 큭큭. 진짜 꼴사나운 이름이네.”

보면 볼수록 웃겨서 이호성이 큭큭 웃을 때였다.

바가지가 이호성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민성이 앞서감으로써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 되자, 바가지는 눈에서 검은 불길을 활활 불태웠다.

시커먼 어둠을 품은 그 안광은 암흑 그 자체처럼 보일 정도로 지독히도 어두웠다.

그리고 이내 바가지의 몸에서 거대한 어둠의 기운이 서서히 풍겨져 나와, 이내 이호성을 에워쌌다.

손바닥만 한 크기지만, 1천 레벨의 바가지가 뿜어내는 살기는 어마어마했다.

숨조차 쉬기 힘든 압도적인 어둠의 살기가 이호성의 몸을 찌그러트릴 듯 압박해 왔다.

갑자기 죽음의 공포가 숨 막히게 목을 졸라 오자, 이호성은 기겁했다.

“이호성. ……한 번만 더 그 주둥이로 웃었다간 널 찢어 죽인 다음, 네 시체를 내 종속으로 부릴 것이다.”

낮은 심연의 목소리가 이호성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알겠느냐?”

이호성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눈을 커다랗게 뜨고서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가지는 살기를 거두어들이고 민성이 걸어간 방향을 향해 뒤뚱거리며 뛰어갔다.

“커헉! 하악! 하!”

살기가 사라졌다.

이호성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숨을 몰아쉬다가 바가지가 걸어간 방향을 보았다.

손을 바지 안에 넣어 보자, 오줌이 살짝 지려 있었다.

이호성은 눈물이 맺힌 얼굴로 입을 꽉 다물었다.

* * *

차를 타고 가면서 백미러로 뒷좌석에 앉은 민성과 바가지를 보았다.

민성은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고, 바가지는 민성의 다리를 베고 누워 있었다.

시선을 느낀 바가지가 이호성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이호성을 향해 이빨을 톡톡 두드려 보였다.

입 조심하라는 신호였다.

그 광경을 보며 이호성은 소름이 우수수 돋았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백미러로부터 시선을 서둘러 거두었다.

단순히 액세서리로 쓰는 마법 인형인 줄 알았더니, 1천 레벨이 넘으면서 괴물이 됐다.

바가지의 흑마법 한 방에 자신은 먼지처럼 사라질 것이다.

제길…….

겨우 1레벨이었던 인형 쪼가리 주제에.

안 돼!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 없다.

잠을 줄여서라도 레벨을 올려야겠어.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버티고 버텨서 레벨을 올리는 거다.

미궁에 들어갈 수 있는 레벨이 되면, 그땐 강민성의 도움을 받아 고렙을 목표로 달린다.

비록 지금은 밑바닥이지만 강민성의 쩔을 목표로 내 인생 전부를 던지겠어.

“거의 다 왔지?”

민성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이호성은 머릿속을 이성적으로 만들며 민성을 돌아보았다.

“예. 곧 도착입니다.”

아이템 판매처인 가게 앞에 도착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강민성은 상점 매입가에 아이템을 처분할 생각인 듯했다.

민성이 차에서 내리자 바가지가 폴짝 뛰어 민성의 등허리에 매달렸다.

저렇게 보면 꽤 귀여운 마법 인형이지만…….

자신을 향해 어둠의 살기를 뿌렸던 순간을 떠올리며 이호성은 치를 떨었다.

이제 1천 레벨이 넘는 리치 몬스터.

가뜩이나 강민성 때문에 살기 힘든데, 저놈의 눈치까지 보고 살아야 하다니…….

이호성은 우울함이 가득한 얼굴로 땅바닥을 보았다.

“대기하고 있어. 갔다 온다.”

민성이 바가지를 대롱대롱 달고서 가게 안으로 사라졌다.

민성이 미궁에서 구한 아이템을 처분하고 있는 사이, 이호성은 담배를 피우며 머리를 긁적였다.

하아…… 그나저나.

오늘은 또 어디로 그를 데려가야 좋아하려나?

이호성은 머릿속으로 맛집 리스트를 고민했다.

그리고 이내 괜찮은 곳이 한 군데 떠올랐다.

꽤 이색적이면서도 그 맛이 아주 일품인 가게가 있다.

다만 거리가 좀 있어서 강민성이 싫어할 수도 있었다.

이호성은 혹시나 강민성이 거리가 멀어서 가기 싫어한다면 차선책으로 갈 만한 맛집도 고민했다.

이내 두 가지 맛집을 선정해 놓은 뒤, 담배를 끄며 강민성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미궁에서 구한 아이템을 처분함으로써 정산을 마친 민성이 가게에서 나왔다.

“바로 식당으로 모시겠습니다.”

이호성이 차 뒷문을 열어 주었다.

민성은 자연스럽게 뒷좌석에 올라탔다.

난 전생에 무슨 죄를 지은 걸까?

나라라도 팔아먹었나?

이호성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운전석 쪽으로 돌아갔다.

시트에 앉아 시동을 걸면서 민성을 돌아보았다.

“헌터님.”

이호성의 부름에 민성이 이호성을 보았다.

“일단 맛집을 두 개 정도 생각해 놨는데요. 먼저 추천하는 곳은 이색적이면서도 맛이 아주 좋은 곳입니다. 그런데 거리가 조금 있어서 멀리 가기 싫으시면…….”

“난 해외도 갈 수 있다.”

민성의 말에 이호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로 그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어디로 가는 거지?”

이호성이 자신감이 깃든 얼굴로 빙긋 웃었다.

“오이도입니다.”

“그럼 해산물을 먹으러 가는 건가?”

“네. 그렇긴 한데 조금 이색적입니다.”

“뭐가 이색적인데?”

“오이도는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주로 낚시를 하기 위해 찾는 곳 중 하나입니다. 제가 가는 맛집에서는 낚시를 통해 직접 물고기를 낚아, 그 물고기로 회와 매운탕을 먹을 수 있습니다.”

민성의 눈이 일순 흥미로 번쩍였다.

“재미있군.”

“그렇지요? 하하. 물론 굳이 낚시를 하지 않고 사 먹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게 편하긴 하죠. 낚시를 좋아하지 않는다면요. 그냥 드시겠어요?”

민성이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낚시를 하겠어. 내가 낚은 물고기로 매운탕을 먹고 싶다.”

민성의 눈에 즐거움이 깃들어 있는 걸 보고 이호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또 오늘 하루를 버틸 수 있게 되는 것 같아 한시름을 덜었다고 생각하는 이호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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