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6화>
리치 인형이 후다닥 뛰어와 민성의 등 뒤로 숨었다.
민성은 픽 웃으며 오리하르콘 단검을 들고 오크 전사에게 걸어갔다.
민성의 살기를 느낀 오크 전사의 표정이 변했다.
오크 전사가 투박하면서도 무식하게 큰 대형 도끼를 들고 기세를 끌어 올렸다.
쿠구궁!
검은 마력의 기운이 오크 전사의 몸을 휘감으며 전투력을 올렸다.
하나 그 전투력을 채 사용하기도 전.
민성이 눈을 번쩍이며 오리하르콘 단검을 휘둘렀다.
콰르르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민성의 특유의 새하얀 검기가 직선으로 쏘아져 나갔다.
검기는 그대로 오크 전사의 목을 날렸다.
[오크 전사 처치]
[경험치를 152,111 획득합니다.]
파아아아앙!
오크 전사의 시체가 푸른빛이 되어 유리가 깨지듯이 흩어졌다.
뒤이어 그 자리에 아이템이 핑그르! 떨어져 내렸다.
[최고급 마석]
고가로 거래되는 재료 아이템이다.
민성은 마석을 주워 아이템 창 안에 넣은 뒤 다시 사냥을 하려다,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오크 전사의 시체가 사라진 곳에 파란 도깨비불 같은 것이 생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리치 인형은 그 도깨비불을 향해 앙증맞은 양손을 뻗으며 흑마법 주문을 외우는 중이었다.
뭐 하는 거야?
보다 보니 리치 인형은 오크 전사를 언데드화하기 위해 흑마법을 영창하는 것 같았다.
파란 도깨비불은 오크 전사의 영혼.
그 영혼을 갖기 위해서인 듯하지만…….
1분이 흐르고, 2분이 흘렀음에도 오크의 영혼은 변화 없이 그대로였다.
약 5분이 흘렀을 때.
리치 인형은 팔을 내리더니 한숨을 푹 내쉬곤, 민성을 올려다보며 멋쩍게 뒤통수를 긁적였다.
민성의 이마에 빠직 혈관이 돋았다.
“될 리가 있겠냐? 고작 1레벨 주제에.”
리치 인형이 조용히 민성의 시선을 피했다.
그때 메시지 창이 떴다.
[리치 인형은 마석을 먹으면 레벨을 올릴 수 있습니다.]
오크 전사를 해치우면서 얻게 된 아이템이 최고급 마석이다.
민성은 아이템 창 안의 마석을 보다가 리치를 보았다.
“야, 리치.”
민성의 부름에 리치가 고개를 젖혀 민성을 올려다보았다.
“마석 먹어 봤어?”
“……?”
아직 모르는 건가?
민성은 아이템 창에서 주먹만 한 크기의 마석을 녀석에게 줘 보았다.
리치 인형은 자신의 몸집만 한 마석을 받아 들고선 재차 의아한 눈으로 민성을 올려다보았다.
“먹어 봐.”
민성의 명령에도 리치 인형은 다시 마석을 돌려주며 고개를 도리질 쳤다.
먹기 싫다는 걸 극도로 표현하고 있었다.
하나 민성은 손가락으로 리치의 이빨을 벌려서 마석을 억지로 들이밀었다.
안 먹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리치가 살짝 마석을 깨물어 보곤 안광을 번쩍였다.
그와 동시에 리치 인형의 머리 위에 황금빛 느낌표 표시가 떴다.
리치 인형이 작정하고 입을 크게 벌려 마석을 콱 깨물었다.
아그작! 아그작!
단단해 보이던 마석은 초콜릿처럼 쉽게 부서졌다.
그때부터 리치 인형은 최고급 마석을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단숨에 마석을 다 먹어치운 리치 인형이 행복한 듯 칵칵! 웃었다.
[리치 인형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리치 인형의 레벨이 150으로 급성장합니다.]
[리치 인형에게 최초로 마석을 먹였습니다.]
[리치 인형의 스킬이 대폭 강화됩니다.]
리치 인형이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배부르면 이제 좀 자라.”
민성이 리치 인형을 집어 주머니 안에 넣었다.
* * *
불가능이란 난이도의 미궁 던전 숲속에서 민성은 절대적인 포식자로 그 영역을 넓혀 나갔다.
민성은 유령처럼 거대한 나무 사이를 이동하며 몬스터들의 생명을 훔쳤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 죽어 나간 몬스터의 수만 이제 딱 100마리를 넘겼다.
그럼에도 아직 귀에 몬스터들의 발소리가 들린다.
일전의 미궁보다 이번 던전은 몬스터가 훨씬 많은 듯했다.
아이템 창은 이미 진즉에 가득찬 지 오래다.
보다 낮은 등급의 아이템을 버리고 새로이 더 좋은 아이템을 습득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마석을 확보할 때면 리치 인형에게 그것을 먹였다.
리치는 마석을 주면 마치 굶주린 것처럼 깨물어 먹었다.
마석이 나오는 족족 놈에게 먹인 결과, 놈의 레벨은 현재 벌써 일천을 앞두고 있었다.
현재 리치 인형의 레벨은 900.
미궁 던전에 들어온 지 단 하루 만에 이뤄 낸 성과였다.
확실히 놈은 성장 속도가 빨랐다.
서걱!
어둠 속에서 외눈의 싸이클롭스가 순식간에 목이 바닥 아래로 떨어지며 절명했다.
파아아아앙!
시체가 깨지듯 흩어지면서 아이템이 나타났다.
이번에 나타난 것은 또다시 최고급 마석.
어쩐지 이 녀석 좋은 일만 시키는 것 같네.
이젠 마석이 나타나면 냄새도 맡는 건가?
리치 인형이 폴짝 바닥에 뛰어내려, 먹이를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민성의 손에 든 마석을 올려다보며 발을 동동 굴렸다.
민성은 마석을 던져 주었다.
리치 인형은 허공에서 떨어지는 마석을 이빨로 콱 깨물었다.
와그작와그작!
리치 인형은 마석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곤 기분이 좋은지 칵칵 웃었다.
바로 그때.
리치 인형의 전신에서 검은 불길과도 같은 것이 치솟았다.
[리치 인형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리치 인형 999레벨 달성.]
[리치 인형이 언어 능력을 습득합니다.]
리치 인형의 안광이 시커멓게 일렁였다.
“주인님을 뵙습니다.”
손바닥만 한 리치 인형이 커다란 가분수의 머리를 숙이며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리치 인형의 이름을 지어 줄 수 있습니다.]
뒤이어 새로운 시스템 문구가 나타났다.
리치 인형의 레벨이 999가 되면서 나타난 시스템 문구.
민성은 리치 인형을 빤히 보다가 물었다.
“뭐 갖고 싶은 이름 있어?”
그에 리치 인형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민성을 올려다보았다.
“저는 주인님이 지어 주시는 어떠한 이름도 좋아요.”
“그래도 원하는 분위기라는 게 있을 거 아니야?”
“음…… 그럼 파르비스 아리앙 제논 타크 폰 플레이크 아츠. 혹은 디앙스 펜 존 카리스탈 아르페논 칼 페이스. 이 두 개 중 하나는 어떤가요?”
민성의 이마에 혈관이 빠직 돋았다.
“너무 길잖아.”
민성이 리치 인형을 다시금 빤히 응시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겠다.”
“……?”
“바가지. 그래, 바가지로 하자.”
침착하던 리치 인형이 화들짝 놀랐다.
“바가지!?”
“해골바가지도 기니까, 네 이름은 지금부터 바가지다.”
[리치 인형의 이름을 ‘바가지’로 정하시겠습니까?]
[승인 / 거절]
민성이 승인을 터치하려는 걸 보고 리치 인형이 머리를 바짝 들었다.
“주, 주인님!”
“뭐든 좋다며?”
“네에…….”
민성이 고민 없이 승인을 터치했다.
[리치 인형의 이름이 ‘바가지’로 고정됩니다.]
리치 인형.
아니, 바가지가 철퍽 무릎을 꿇었다.
* * *
어느새 마지막 보스 몬스터만 남겨 두게 되었다.
보스 몬스터가 걸을 때마다 바닥에는 공룡처럼 발자국이 남았다.
Lv2,700 오우거
민성이 오우거를 앞에 두고 대치했다.
미궁의 보스 몬스터인 오우거는 낫처럼 생긴 무기를 들고 있었다.
사슬이 연결되어 있으니 사슬 낫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 사슬이 연결된 낫은 웬만한 인간의 몸과 맞먹을 정도로 컸다.
무기도 그렇고 오우거란 몬스터도 그렇고, 마계에서 봐 왔던 몬스터들이랑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오우거의 크기는 민성에게 전혀 감흥을 주지 못했다.
몬스터를 죽이는 것에 무료해졌다는 건 그만큼 익숙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몬스터의 크기나 외양은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민성은 오우거를 올려다보았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오우거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민성의 무정한 눈을 보면서 오우거는 그때부터 전신을 가늘게 떨었다.
그리고 이내, 자존심이었을까?
오우거가 두려움을 넘어섰다.
촤르르르륵!
사슬이 끌리는 소리를 나며 거대하고 날카로운 낫이 민성을 향해 휘둘러졌다.
민성이 오리하르콘 단검을 꽉 잡고 밑에서 위로 올려 그었다.
꽈르르르릉!
천둥 벼락이 민성의 오리하르콘 단검을 휘감았다.
그리고.
퍼어어어어어어엉!
민성의 머리로 다가오던 거대한 사슬이 민성의 오리하르콘 단검에 의해 산산조각 났다.
사슬 낫의 부서진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오우거가 놀란 눈으로 자신의 깨진 무기를 보던 그때, 민성이 오리하르콘 단검을 휘둘렀다.
콰콰콰콰콰콰콰콰!
민성의 오리하르콘 단검에서 수십 개의 검기 다발이 오우거를 향해 날아갔다.
퍼버버버버버버벅!
민성이 쏘아 보낸 검기가 오우거의 전신을 휘어 감았다.
오우거의 질긴 피부가 찢어지면서 오우거가 피분수를 뿜으며 쓰러졌다.
쿠우우우웅!
워낙 오우거의 덩치가 거대한 탓에 뿌연 흙먼지가 뿔뿔 날렸다.
그 먼지 사이로 쓰러져 있는 오우거를 보며 민성은 픽 웃었다.
그래도 보스 몹이라 그런지 다른 몬스터에 비해 꽤 맷집이 좋은 편인 듯했다.
오우거는 아직 간헐적지만 숨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그뿐.
오우거는 더 이상 움직일 수도, 저항할 수도 없는 수준의 빈사 상태였다.
오우거에게 걸어가 마지막으로 처리하려는 순간.
민성은 이상한 소리에 미간을 구기며 옆을 돌아보았다.
“……너, 자꾸 신경 쓰이게 아까부터 뭐라고 구시렁거리고 있는 거야?”
민성이 리치 인형인 바가지를 보며 물었다.
바가지는 쪼그리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바닥에 휙휙 의미 없이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었다.
민성의 관자놀이에 혈관이 불쑥 솟았다.
“너 왜 그러고 있냐고.”
“저는 레벨도 낮고, 주인님한테 도움도 안 되고…… 하릴없이 마석이나 먹는 마석충이고…… 리치인데 리치 같지도 않고…… 저란 것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해골바가지…….”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는 리치에게서 엄청난 우울함이 뿜어져 나왔다.
민성은 그런 리치를 보며 미간을 구겼다.
“일로 와.”
리치 인형은 여전히 우울한 분위기가 남아 있는 모습으로 민성을 돌아보았다.
“이 오우거. 네가 막타 쳐서 먹어라.”
순간 리치 인형의 안광에서 시커먼 불길이 활활 불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