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5화>
* * *
“미, 미궁에 또 들어가신다고요?”
“네가 너무 비싼 것들을 사들여서 그렇잖아.”
“죄, 죄송합니다. 헌터님 만족도에 맞추다 보니 그만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미처 금액 계산까지는 못 했네요.”
“됐어. 다시 던전 가면 되니까.”
“식사는요?”
“갔다 와서.”
이호성이 그늘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워낙 괴물 같은 사내고, 미궁을 클리어하는 데 하등의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이호성의 입장에서는 민성과 경우가 달랐다.
등 뒤에서 숨어서 구경만 해도 목이 나가떨어질 가능성이 너무 높으니까.
그만큼 위험한 던전이 바로 미궁이다.
“저 헌터님?”
“왜.”
“제가 뭐 미궁에 들어가는 게 무섭거나 그래서 그러는 건 절대 아니고요. 얼마 전에 미궁을 클리어하셨잖아요?”
“그런데?”
“그런 관계로 아마 지금 중앙 헌터 기관 쪽에서 조사단을 파견했을 겁니다. 누가 미궁을 클리어했는지 찾고 있겠죠.”
“그래서?”
절대적인 힘을 가진 중앙 헌터기관이다.
그런데 그 무거운 이름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이호성의 목 뒤로 살짝 식은땀이 흘렀다.
“괜히 중앙 헌터 기관이랑 엮이면 피곤한 일이 또 생기실 것 같아서요. 그러니 미궁보다는 당분간 일반 던전을 도는 게 낫지 않을까요?”
“내가 눈치를 봐야 한다고 생각하나?”
이호성이 땀을 뻘뻘 흘렸다.
“아니, 저기……. 그런 게 아니고요. 눈치 보실 필요야 없지만요. 또 귀찮은 일에 괜히 휘말려서 혹여나 헌터님이 스트레스를 받으실까 염려가 되어 그래서 그런 거지요. 중앙 헌터 기관이란 가장 큰 단체고, 그런 만큼 긁어 부스럼 만들어서 복잡해질 필요는 없으니까…….”
“미궁으로 출발해.”
“……예.”
이호성이 썩은 흙탕물 빛 얼굴을 한 채 던전으로 출발했다.
* * *
이호성은 미궁 던전을 올려다보며 한숨 쉬었다.
또다시 오게 되었다.
중앙 헌터 기관을 제외한 모두가 외면하는 던전.
이곳 미궁으로.
이호성은 흘긋 민성을 보았다.
무감정의 극치다.
음식을 먹을 때 말고는 그 어떠한 가치도 찾지 못하는 듯한 눈빛과 무료한 표정.
기타 능력자라는 어마어마한 힘이 그에겐 일상이고 아무런 감흥도 전해 주지 않는 당연한 순리인 듯했다.
이호성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미궁을 보았다.
그는 그고, 자신은 자신이다.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대상이니까.
그러니 정신 차려야 된다.
아차 하면 새우등만 터지는 거다.
“가자.”
민성이 앞장섰다.
이호성은 심호흡을 했다.
이번엔 진짜 죽을 수도 있어.
반드시…… 반드시 살아서 나온다!
이호성은 결의가 선 얼굴로 미궁 던전 입장을 위해 게이트 진입 위치에 올라섰다.
쿵쿵쿵!
심장이 거세게 뛴다.
[레벨이 낮아 입장할 수 없습니다.]
“……응?”
자신을 두고 민성이 혼자 허공으로 서서히 부양하기 시작했다.
“허, 헌터님. 레벨이 낮아서 입장할 수 없다는데요?”
이호성의 당혹감에 물든 말에 민성은 관심 없는 태도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대기하고 있어.”
민성이 미궁 던전 안으로 사라졌다.
“…….”
이호성은 민성이 사라진 방향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레벨이 낮아서 입장하지 못했다.
자, 잘된 건가?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사태를 피했으니?
그런데…… 왜 이렇게 기분이 이상한 걸까?
이호성은 머리를 긁적이며 코를 들이켰다.
어? 잠깐……!
그럼 뭐야?
이제 쩔(도움) 받아서 레벨도 못 올리고, 그냥 단순 노예로 살아가야 하는 건가?
“아……!”
그런 생각이 들자 섬뜩한 기분이 가슴을 휘저었다.
* * *
[미궁 던전에 입장하였습니다.]
[던전을 클리어하기 전까지 미궁은 탈출할 수 없습니다.]
[5초 후 난이도를 공개합니다.]
[5, 4, 3, 2, 1…….]
[미궁 난이도]
[불가능]
화아아아악!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시야에 파고들었다.
눈을 뜨자 SF를 연상하게끔 하는 최첨단 시스템의 대기실이 보였다.
회색빛 대리석으로 된 벽면과 바닥.
그리고 강화 유리로 만들어져 있는 자동 출입문이 보인다.
그런데 어쩐지 풍경이 색다르다.
던전이긴 한데, 출입구 쪽으로 다가가자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지금까지 봐 왔던 던전과는 상이했다.
기이이잉!
유리로 된 출입문이 열리고 풍경이 나타났다.
좁은 복도나 동굴이 아니라, 숲이다.
짹- 짹!
새소리가 들리고, 벌레들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출입문 바로 앞부터 풀이 자라 있다.
민성은 밖으로 나가 주변을 훑어보았다.
우거진 숲속.
나뭇잎 사이로 눈부신 태양의 빛이 내려온다.
이곳은 던전보다는 바깥의 현세와 다를 게 없는 느낌을 전해 주었다.
이게 오픈 던전이라는 거군.
민성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아이템 창에서 오리하르콘 단검을 꺼내 들었다.
전설 등급의 오리하르콘 단검이 파지직! 하고 푸른 뇌력을 머금으며 민성의 손바닥에 흡수되듯 착 달라붙었다.
그때.
[클리어 조건을 알려 드립니다.]
[클리어 조건은 던전에 존재하는 모든 몬스터를 처치하는 것입니다.]
[‘불가능’ 난이도의 미궁 던전을 클리어하면 특별한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미궁 클리어 조건에 입각해 지금부터 몬스터 섬멸을 시작해 주십시오.]
시스템 창이 닫혔다.
민성은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굵직하고 높게 솟은 초대형 나무 사이를 걸으면서, 민성은 대체 이런 던전은 왜 생겼으며, 무엇보다 이런 시스템은 왜 있는 걸까? 하고 생각했다.
시스템이 있다면 그 시스템을 만든 제삼자가 반드시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외계인인가?
생각을 이어 가던 민성은 목을 꺾어 스트레칭을 했다.
그러다 몬스터가 나타나길 기다리며 걸음을 옮겼다.
한 5분 정도를 걸었을 때, 청각에 잡히는 파공음이 있었다.
쐐애애애액!
민성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화살이다.
바람을 찢으며 날아오는 화살을 보며 민성은 목을 살짝 뒤로 젖혔다.
한숨이 나올 정도로 정직한 공격이다.
피이이잉!
화살이 민성의 바로 코앞을 스쳐 지나갔다.
퍼어어억!
민성은 거목에 꽂힌 화살을 특이하다는 듯 보았다.
화살이 얼어 있다.
차가운 한기가 화살 주변에 어른거렸다.
단순히 얼어 있는 게 아니라, 특수한 마법 능력이 깃들어 있는 화살 같았다.
민성은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다시 돌아보았다.
거대한 나무의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뭔가가 보였다.
Lv2,000 오크 궁수
오크가 화살통을 등에 메고, 활과 화살을 손에 들고 있다.
얼굴은 마치 돼지의 형상을 하여 끔찍하게도 못생겼다.
팔다리와 몸은 인간과 비슷했으며, 인간처럼 이족 보행을 하는 몬스터였다.
판타지 영화에서 나왔던 몬스터가 실존한다는 게 웃겨서 민성은 피식거리며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오크 궁수를 향해 걸어갔다.
오크 궁수가 다시 시위를 당겼다.
피이이이잉!
이번엔 동시에 3개의 화살이 날아왔다.
평범했던 화살은 순식간에 빙결되었다.
쫘자작!
차가운 한기를 품은 마법 화살이 민성을 향해 날아왔다.
민성은 날아오는 3개의 얼음 화살을 손으로 한 번에 낚아챘다.
파박!
손에서 얼음이 깨진다.
민성은 그 화살을 그대로 오크 궁수를 향해 집어 던졌다.
화살이 그대로 오크 궁수의 몸에 퍼버벅! 박혀 들어갔다.
오크 궁수가 초록 피를 입 밖으로 뿜으며 무릎을 꿇던 그때.
민성은 그 짧은 찰나에 오크 궁수 앞에 당도했다.
오리하르콘 단검을 역수로 잡아 오크 궁수의 목을 내리그었다.
촤악!
마치 벌레처럼, 오크 궁수가 녹색의 피를 뿌리며 절명했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그곳엔 어느새 시체가 사라지고 아이템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아이템을 집자 곧바로 정보가 떴다.
[오크 궁수의 활]
등급 : 레어
공격력(작은/큰 몬스터) : 7 / 8
한 손/양손 : 양손
옵션 : 추가 명중률+1
재질 : 나무
강화 : +10까지 안전
손상 여부 : 손상
매매 : 가능
레벨 제한 : 없음
특성 : 얼음 화살
민성은 정보 창을 닫고, 아이템을 아이템 창 안에 넣었다.
이호성이 없는 관계로 아마 오늘 버리게 될 아이템이 많을 듯했다.
민성은 다시 사냥을 위해 주변을 살피며 움직였다.
짹- 짹!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민성은 거목이 가득한 숲을 빠르게 걸었다.
숲이 꽤 넓어서 클리어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려나? 하고 생각하는 찰나, 하나의 기운이 감지되었다.
민성은 그 기운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땅을 박차고 뛰었다.
파앗!
순식간에 100여 미터의 거리를 이동한 민성이 하나의 몬스터를 찾아냈다.
Lv2,200 오크 전사
오크 전사의 뒷모습이 보였다.
전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우람한 체격.
녹색의 피부에 돼지 같은 대가리.
커다란 등판에는 수많은 흉터가 새겨져 있다.
커다란 체구와 우락부락한 근육은 꽤 공격적이면서도 탄탄해 보였다.
마침 오크 전사가 민성을 되돌아보았다.
민성이 오리하르콘 단검 손잡이를 꽉 잡았을 때.
주머니에서 리치 인형이 꼬물거리며 나와 지상으로 폴짝 뛰어내렸다.
“음……?”
풀이 자란 바닥에 착지한 리치 인형은 등에 메고 있던 짧은 완드를 손에 쥐었다.
완드는 짧은 길이의 마법 지팡이였다.
리치 인형은 그런 자신의 무기를 들고서 오크 전사를 노려보았다.
리치 인형이 눈을 감고 흑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리치 인형의 발아래에 마법진이 생겨났다.
리치 인형의 공격 마법이 발동되었다.
마법진에서 생성된 검은 그림자는 바닥을 타면서 오크 전사를 향해 빠르게 접근했다.
이내 날카로워진 검은 그림자가 불쑥 튀어나와 오크 전사의 몸통을 찔렀다.
태앵-!
검은 그림자는 오크 전사의 몸통을 찌름과 동시에 팍! 하고 깨지면서 소멸되었다.
오크 전사는 간지러운 듯 두꺼운 손으로 자신의 배를 툭툭 털었다.
그리고 시뻘건 눈으로 리치 인형을 보며 음흉하게 웃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