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4화>
* * *
3성 조사단장 태겸은 굳은 얼굴로 주변의 상황을 체크했다.
중앙 헌터 기관이 현장에 나타났을 때 모든 상황은 이미 종료되어 있었으며, 이미 그림자 길드가 다녀간 후였다.
국내 최대 정보 집단인 만큼 그림자 길드의 정보 습득 속도는 역시 최고 수준.
던전 발생 지점을 예측하고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중앙 헌터 기관은 가장 후발대로 현장에 도착했다.
올해 2분기 현장 조사에 책임을 맡게 된 3성 조사단장 태겸은 바질리스크의 시체를 보며 얼굴을 굳혔다.
던전이 아닌 외부로 나온 몬스터는 던전 안에서와는 달리 파기되지 않고 시체가 남는다.
때문에 시체를 통해 여러 가지 단서를 찾을 수 있는데.
“대체…….”
3성 조사단장 태겸은 바질리스크의 시체를 보며 의문이 증폭되어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의문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바질리스크 시체의 형태다.
정확히 두 쪽으로 갈라졌다.
단 일격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시체의 모습이었다.
대체 어느 누가 1,200레벨에 달하는 바질리스크를 일격에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신이나 악마라도 되는 건가?
동부, 서부, 남부, 북부.
그 어떤 기관에서도 움직임이 발견되지 않았다.
설마…….
3성 조사단장 태겸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미궁을 클리어한 제3의 존재.
그 단체와 이번 사건이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추측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두 번째 의문은 바닥에 새겨져 있는 마법진이었다.
바질리스크의 갈라진 시체 사이로 바닥에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그다지 크지 않은 마법진.
이는 조사 결과 리치의 전용 마법진이라는 판단이 나왔다.
즉, 리치가 바질리스크의 시체를 언데드화하여 조종하기 위해 흑마법을 실행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질리스크를 언데드화하려는 리치.
‘뭔가 연결점이 안 맞아.’
던전의 형성과 바질리스크의 등장까지는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해 확인할 수 있었던 정보지만, 이 마법진은 대체 뭐란 말인가?
더군다나 바질리스크를 언데드화하려 했던 흑마법은 결론적으로 실패했다.
성공했다면 이렇듯 바질리스크의 시체는 남아 있지 않았을 테니까.
결국 아직 리치의 레벨이 별로 높지 않다는 것이겠지.
하지만 리치의 연성 실패 자체는 크게 중요한 점이 아니다.
중요한 건 리치의 잠재력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몬스터를 흡수할수록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해질 수 있다는 점이 리치가 경계 대상 1순위에 올라가는 이유다.
아무런 방해 요소 없이 리치가 성체를 이룬다면, 그 순간 잠재력이 폭발하여 순식간에 3천 레벨이 넘어가게 된다.
결코 쉽게 간과할 수 없는 대상.
중앙 헌터 기관의 3성 조사단장 태겸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대체 어떤 놈인 거냐…….’
태겸이 홱 하고 시선을 돌렸다.
“안 팀장.”
태겸의 부름에 근처에 있던 안 팀장이라 불린 헌터가 빠르게 다가왔다.
“예. 조사단장님!”
“CCTV는?”
안 팀장이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인근 CCTV는 물론, 차량 블랙박스까지 모두 먹통입니다. 던전이 발생하면서 주변을 모두 망가트린 모양이에요.”
예상했던 부분이다.
던전은 막대한 마력 에너지를 생성하는 만큼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주변 건물이 붕괴되지 않고 이 정도로만 피해를 입은 것이 외려 기적이라 할 만했다.
“조사단장님.”
그때 조사 팀장 중 하나가 와서 경례를 했다.
“사건의 배후에 있는 인물을 목격한 목격자를 찾았습니다.”
“누구야?”
“푸시푸시라는 아이스크림 가게의 알바생입니다.”
“정보는?”
“그게…… 한 명이랍니다. 혼자서 저 바질리스크를 단 칼에 죽였다고 합니다.”
태겸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몽타주 따고, 절대 정보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한데 저…… 그게 얼굴이 기억이 나질 않는답니다.”
“……뭐?”
황당한 표정으로 조사 팀장을 보던 태겸은 알바생을 찾아갔다.
알바생은 두 눈에 초점이 반쯤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 새겨진 리치의 마법진과 같은 그림의 마법진이 알바생의 한쪽 팔에 작게 새겨져 있었다.
태겸이 미간을 구겼다.
‘리치가 흑마법으로 기억을 지운 거야…….’
레벨이 낮아 기억을 지우는 것도 아주 짧은 부분에 불과했던 거고.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부분을 지웠어.
빌어먹을.
태겸은 이를 꽉 깨물었다.
리치의 레벨이 그 정도로 낮다면, 바질리스크를 죽인 건 단 한 명뿐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 사건에 리치라는 마물이 관련되어 있는 거지?
리치는 보통 던전을 지키는 걸 좋아한다.
외부 활동에 대해선 극히 꺼리는 걸로 알고 있는데, 왜 이 시점에 리치가 그 흔적을 남긴 거야?
태겸은 초동 수사 자체가 시작부터 꼬여 버리는 것 같아 골치가 아팠다.
바질리스크의 시체와 리치의 마법진을 보며 태겸의 낯빛이 굳어졌다.
* * *
이호성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민성은 무릎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힘없이 흔들거리고 있는 리치 인형을 내려다보았다.
차를 타고 떠나기 전, 리치 인형은 주머니에서 튀어나오더니 알바생을 향해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알바생은 그 자리에서 바로 기절하여 잠들었다.
그리고 바로 뒤이어 리치 인형은 바질리스크 시체에 다가가 중얼중얼 마법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바닥에 마법진이 생겨났고 이내 검은 연기가 서서히 몬스터 시체를 휘감았다.
하지만 이내 검은 연기는 바질리스크의 몸을 반도 머금지 못한 상태에서 순식간에 흩어져 버리고 말았다.
허망한 눈으로 바질리스크 시체를 보던 리치 인형은 축 처진 채 돌아와 다시 민성의 주머니 안으로 힘없이 들어갔다.
민성이 보기엔 아마도 마력이 고갈되어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그럴 수밖에.
놈은 아직 고작해야 레벨이 1밖에 되지 않으니까.
그런 주제에 바질리스크를 삼키려고 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는 거다.
힘없는 얼굴을 하고 있는 손바닥만 한 이 뼈다귀 인형을 보고 있자니 조금 신경이 쓰였다.
이 녀석의 레벨을 올려 줘야 하나?
민성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귀찮다.
* * *
집에 도착했다.
이제 현세로 돌아와 살아가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적응을 한 것 같다.
마계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었던 건 편안한 휴식.
민성은 햇살 좋은 날 침대에 누웠다.
낮잠을 자 본 지 너무 오래되어 잠이 올까? 싶었지만, 무릇 환경은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법이다.
아니, 본래의 규칙적인 인체 리듬을 되돌리게끔 만든다.
침대에 눕자마자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마치 침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마취된 것처럼 온몸이 무거워지고 의식은 어두워졌다.
눈꺼풀이 감기고.
짹- 짹-
새소리를 들으며 민성은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었다.
민성이 색색 잠들었을 때, 주머니에 들어가 있던 리치 인형이 꼬물거리며 기어 나왔다.
리치 인형은 이제 막 잠이 깬 얼굴로 눈을 부비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자신의 주인이 자고 있는 걸 확인하곤 침대 밖으로 폴짝 뛰어내렸다.
열려 있는 방문을 지나 주방으로 이동한 리치는 깨끗한 걸레를 들고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왔다 갔다 하며 바닥을 닦고, 마법을 이용해 걸레를 빤 다음 테이블과 소파도 박박 닦았다.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청소를 계속했다.
거실과 민성이 자고 있는 방.
나머지 빈방도 깨끗이 청소를 마친 뒤, 민성이 자고 있는 침대 위로 올라왔다.
리치는 주인을 위해 봉사했다는 것에 대해 큰 만족감을 느끼는 얼굴로 칵칵! 웃으며 민성 옆에 대(大)자로 뻗었다.
그리고 이내 쿨쿨 코를 골며 다시 잠을 자기 시작했다.
* * *
다이아몬드로 된 샹들리에가 천장에 걸려 있고, 벽과 바닥은 온통 대리석이다.
고급스레 치장된 인테리어는 가히 보고 있는 눈이 호사스럽다고 느낄 정도다.
7성급 호텔보다도 고급스러운 룸.
초호화라는 말이 어울릴 법한 그 공간에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미녀가 블랙 미스릴 재질로 된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짧은 금발 머리에 깊은 눈빛을 가진 여성.
그녀는 주변의 분위기와 아주 잘 어울렸다.
자신의 피부와도 같은 새하얀 셔츠를 입고, 핏이 딱 맞아떨어지는 검은 면 팬츠와 검은색 수제 구두는 그녀의 눈부신 외모만큼이나 그녀를 빛나게 했다.
똑똑-
노크 소리에 읽고 있던 책에서 시선을 뗀 그녀는 은테 안경을 벗으며 문 쪽으로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문이 열리고, 뛰어난 몸매의 여자가 들어왔다.
그녀의 개인 비서였다.
“3성 조사단장. 태겸이 뵙기를 청합니다.”
비서가 말했다.
“이유는?”
그녀가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깃들어 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미확인 기타 능력자에 관한 것이라고 합니다.”
일순 그녀의 눈에 빛이 짧게 스쳐 지나간다.
그녀가 책을 탁! 덮으며 일어섰다.
“바로 올려 보내.”
비서가 꾸벅 인사를 올리고 룸을 나갔다.
그녀는 책과 안경을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팔짱을 꼈다.
잠시 후, 노크 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들어왔다.
3성 조사단장 태겸이 금발 머리의 그녀를 향해 정중히 예를 올렸다.
“조사단장, 인사드립니다.”
“기타 능력자에 대한 이야기라고?”
“그렇습니다.”
태겸을 보는 여성의 눈빛이 한층 더 깊어졌다.
* * *
민성은 천천히 눈을 떴다.
상체를 일으켜 시계를 보았다.
2시간 정도 낮잠을 잔 것 같다.
민성은 놀라서 쓴웃음을 지었다.
2시간이나 잤다고? 내가?
믿겨지지가 않았다.
마계에서 늘 몇 분 간격으로 잠을 잤던 자신이 이렇듯 길게 낮잠까지 잔다니.
민성은 픽 웃었다.
기분 좋은 편안함이 몸 전체에 나른하게 퍼져 있었다.
그 감각의 여운을 느끼며 민성은 서 있는 자세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리치 인형을 보았다.
왜 서서 자고 있는 거지?
몽유병이라도 있나?
민성이 검지로 리치 인형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리치 인형은 화들짝 놀라며 눈을 떴다.
리치인 주제에 귀엽게 생겼다.
손바닥만 한 해골 뼈다귀가 움직이는 게 꼭 피규어 같다.
리치 인형은 여전히 잠이 덜 깬 얼굴로 주머니를 향해 꼬물꼬물 기어 왔다.
아직 고작해야 레벨 1.
그렇기에 이렇게 잠이 많은 건가?
민성은 곧 관심을 지우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거실로 나와 휴대폰을 챙겼을 때, 메시지 알림음이 들렸다.
메시지 내용을 확인해 보자 무차별 광고인 스팸 메시지다.
스팸 메시지를 삭제하던 중, 민성의 눈에 통장 잔액을 표시하는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잔액 1,900원
“어……?”
민성은 돌처럼 굳어 버린 상태로 그 메시지를 내려다보았다.
얼마 전 미궁을 클리어하면서 엄청난 돈을 모았다고 생각했는데, 잔액이 고작해야 1,900원밖에 남지 않았다.
이 돈이라면 밥 한 끼 사 먹기도 힘든 금액이다.
집이 엄청난 고가였던 데다가 가구와 의류 등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이 모두 명품이었던 탓에 돈을 거의 다 쓴 모양이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던전에 가서 돈을 벌어야 할 듯싶었다.
어차피 돈을 버는 건 어렵지 않다.
조금 번거롭긴 해도 돈을 버는 액수에 비하면 고생이라고 할 것도 없는 일이다.
이호성에게 곧 출발할 거라는 메시지를 보낸 뒤, 민성은 샤워를 위해 스트레칭을 하며 욕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