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3화>
그 중심에 둥그런 원형의 검은 공간이 생기며, 이는 점점 더 커졌다.
콰지지지지지지직!
검은 빛의 벼락이 번쩍거렸다.
“더, 던전……!?”
이호성은 입을 벌린 채 던전이 형성되고 있는 광경을 올려다보았다.
검게 일렁이는 공간에서 UFO의 형태를 닮은, 던전 특유의 구조물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던전이 생성되는 걸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더 놀라운 건 새로운 던전이 나타남과 동시에 거대한 몬스터 한 마리가 검은 공간 속에서 함께 나타났다는 점이다.
몬스터는 도마뱀을 닮은 ‘바질리스크’였으며, 레벨은 1200에 달했고 그 크기는 범고래만큼이나 컸다.
“맙소사, 던전이 열림과 동시에 몬스터도 나타나다니……. 그것도 바질리스크…… 이상 현상이잖아?”
이호성이 넋 나간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차 문 열어. 차에서 먹을 거니까.”
민성이 예쁘게 담겨져 있는 아이스크림을 내려다보면서 걸어왔다.
이호성이 뭐라 말하려 할 찰나.
쿠우우우우우우웅!
던전과 함께 나타난 몬스터 바질리스크가 이호성과 민성의 코앞인 지상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몬스터가 지면에 착지하면서 아스팔트 바닥이 깨지고 파편이 튀면서 회색빛의 연기가 뿌옇게 퍼졌다.
민성은 아이스크림 컵 뚜껑을 열어 놓았던 터라 황급히 뚜껑을 닫았다.
다행히 흙모래가 덮치기 전에 뚜껑을 닫아서 아이스크림은 지켜 낼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바질리스크가 지면을 박차며 민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크워어어어어어어!”
거대한 발로 민성을 후려치며 발톱이 민성의 팔을 긁었다.
퍼어어어엉!
바질리스크의 공격에 의해 민성이 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 통이 민성의 손안에서 터져 버리고 말았다.
민성은 멍한 눈으로 자신의 손에서 완전히 녹아 흘러내리는 아이스크림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
민성이 아이스크림으로 물든 자신의 진득진득한 손을 보며 충격에 빠져 있는 사이, 시민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달아났다.
시민은 물론 알바를 하고 있던 알바생들까지 모두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동안 민성은 조용히 아이템 창에서 아이스크림으로 범벅된 손으로 오리하르콘 단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이내 한기 서린 눈으로 고개를 들어 바질리스크를 쏘아보았다.
“이 도룡뇽 새끼…….”
민성과 바질리스크가 대치 중인 상황.
그 중간에서 이호성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왔다.
“헌터님. 제가 알바생 데려와서 아이스크림 다시 주문해 오겠습니다.”
이호성은 민성의 대답도 듣기 전에 몸을 돌려 서둘러 알바생을 찾아 나섰다.
‘어디로 도망간 거야, 얘는? 멀리 안 갔겠지?’
이호성이 이내 허겁지겁 뛰었다. 알바생을 찾아내서 강민성에게 아이스크림을 대령해야만 했다.
놓치면 끝장이다!
* * *
민성은 바질리스크를 보며 얼굴을 구겼다.
이 도룡뇽은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커다랗고 징그러운 혀를 날름거리며 자신을 먹이로 간주하고 있는 바질리스크를 보며, 민성은 이를 꽉 깨물었다.
바질리스크가 아가리를 벌려 민성을 향해 무엇인가를 뱉어 냈다.
회색의 액체.
민성은 슬쩍 움직이는 것만으로 그 액체 공격을 피해 냈다.
민성을 맞추지 못하고 주차되어 있던 자동차를 덮친 그 거대한 양의 타액은 자동차를 순식간에 돌처럼 딱딱하게 굳혀 버렸다.
놈의 침에는 대상을 석화시킬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이 있는 듯했다.
“그게 다냐?”
민성은 놈을 향하여 오리하르콘 단검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그리고.
무정한 눈으로 바질리스크를 보며 세로로 내리그었다.
콰르르르릉!
천둥소리가 울리며 새파란 검기가 직선의 사선을 만들어 냈다.
서걱!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바질리스크가 정확히 2등분이 되며 좌우로 갈라졌다.
단 일격에 거대한 바질리스크를 데칼코마니처럼 2등분 시키는 것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장관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멋진 장관을 지켜본 건 이호성과 울면서 이호성의 등에 억지로 업혀 온 아이스크림 가게의 알바생 둘뿐이었다.
알바생은 눈물이 번진 얼굴로 충격적인 광경을 멍하게 보았다.
“까악- 까악-!”
고요한 정적 속.
하늘에서 까마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알바생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그 현장을 바라보며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지금이 현실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반면 이호성은…….
“헉! 헉! 겁나 숨차네.”
알바생을 데려온 것에 대해 안심하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 * *
알바생은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아이스크림을 파인트 통에 담으며 민성을 흘깃흘깃 쳐다보았다.
그녀도 헌터라는 존재에 대해선 잘 알았다.
인터넷 영상 속에서 활약하는 헌터의 모습을 많이 보기도 했고, 거리를 활보하는 헌터들도 숱하게 보아 왔으니까. 하지만 직접 몬스터를 잡는 걸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정말 대단했다.
한 칼에 무시무시한 몬스터를 죽이는 광경은.
“여, 여기 있습니다.”
알바생이 아이스크림을 담은 파인트 컵을 떨리는 손으로 건넸다.
민성이 아이스크림을 받았을 때, 이호성이 곁으로 다가와 말을 전했다.
“바로 이동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곧 중앙 헌터 기관에서 조사단이 나올 겁니다.”
이호성과 함께 차로 돌아가려고 할 때, 리치 인형의 안광이 검은 어둠으로 물들었다.
* * *
이호성의 차가 출발했다.
깨진 아스팔트의 여파로 인해 뿌옇게 더럽혀진 앞 유리창을 와이퍼가 뻑뻑하게 닦아 냈다.
이호성의 차가 던전이 형성된 지역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는 지금, 민성은 핑크빛 플라스틱 스푼으로 아이스크림을 뜨고 있었다.
처음으로 맛을 본 건 세 가지 맛 중 아몬드 몽몽이라는 이름의 아이스크림이었다.
순위표에서 3위를 기록하고 있는 맛.
과연 어떨까?
작은 핑크빛 스푼으로 퍼 올린 아이스크림을 입안에 넣었다.
우물.
차가운 아이스크림이 혀와 입천장에 닿았다.
민성은 흠칫 어깨를 떨었다.
맛있어…….
이렇게 엄청난 단맛이라니.
인체의 신비가 경이롭게 느껴진다.
아이스크림의 단맛은 뇌를 완전히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고작해야 작은 핑크빛 스푼으로 단 한 번을 떠먹었을 뿐임에도 입안에는 단맛이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유령처럼 떠돌아다녔다.
혀가 마비될 정도로 엄청나게 달아.
아이스크림의 맛은 쇼크에 가까운 엄청난 충격이었다.
민성은 머리를 가로로 휘저었다.
정신을 차리고 맛을 음미해 보자.
집중.
민성은 다시 아몬드 몽몽 한 스푼을 떠먹었다.
진한 바닐라 아이스크림 맛이 강하다.
거기에 초콜릿이 코팅된 아몬드 덩어리는 달콤하게 씹힌다.
아작아작.
달달한 아몬드가 기분 좋게, 재미있게 씹혔다.
뒤이어 민트 초콜릿 맨을 먹어 보았다.
치약 맛이 나는 민트 향의 초콜릿 맛 아이스크림이라…….
순간 민성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이게 뭐야?
민성은 운전대를 잡고 있는 이호성을 쏘아보았다.
“이호성.”
“네?”
“민트 초콜릿 맨. 이걸 추천한 이유가 뭐야?”
“아하하. 마음에 안 드시나요?”
“이건 그냥 치약을 두 겹으로 짜서 양치질을 한 다음에 초콜릿을 먹는 맛이잖아.”
설명한 그대로다.
이건 정말 최악이다.
어떻게 이런 아이스크림을 팔 수가 있지?
민트 맛을 제대로 느끼기도 전에 텁텁한 초콜릿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하하…… 호불호가 극도로 갈리는 아이스크림이긴 하죠.”
“그런데 어째서?”
“이제 아일랜드 뮤직을 한번 드셔 보시죠.”
민성은 그의 말대로 화려한 색감을 지니고 있는 아일랜드 뮤직을 한 스푼 떠먹어 보았다.
아일랜드 뮤직의 테마는 ‘상큼함이 눈부신 열대 과일 케이크!’다.
그리고 그 맛은…….
꽤 다채롭게 느껴졌다.
후르츠, 아사이베리 샤베트, 구아나바나, 키위 샤베트, 거기에 망고와 패션 후르츠 샤베트까지 믹스된 6가지의 맛을 가지고 있었다.
“민트 초콜릿 맨은 다소 호불호를 탑니다. 하지만 그건 민트 초콜릿 맨을 단품으로만 먹었을 때의 얘기!”
이호성이 검지를 바짝 세우며 말을 이었다.
“민트 초콜릿 맨은 일종의 입을 헹궈 주는 역할을 해 줍니다. 단맛만이 감도는 입안을 깨끗이 정화하면서도 시원한 온도를 잃지 않죠. 때문에 더 명확하고 다양한 감각을 선사해 주는 발판이 되어 주는 셈입니다.”
그런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민성은 진심으로 감탄한 눈으로 이호성을 보았다.
이호성의 말대로다.
단순히 단맛만을 즐겼다면 이런 강렬한 감각은 첫 스푼에서 끝났을지 모른다. 하지만 민트 초콜릿 맨으로 인해 입 속이 중화되자 극대화된 단맛이 새롭게 입안에 쾌감을 선사해 줬다.
이호성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 살짝 부끄러워질 정도로, 그는 완벽한 밸런스를 맞춰서 자신에게 아이스크림을 추천해 준 것이었다.
이호성의 맛에 대한 추천은 확실히 프로급이다.
그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민성은 빠르게 파인트 컵에 들어 있는 아이스크림을 싹싹 시원하게 긁어 먹었다.
단맛과 민트의 오묘하고 복잡한 맛. 거기에 이어지는 아일랜드 뮤직의 다채로운 맛은 가히 일류라고 해도 좋을 만한 콤보다.
“후우.”
민성은 만족한 얼굴로 빈 파인트 컵을 옆자리에 내려놓았다.
대단히 훌륭한 디저트였다.
“넌 어떻게 그렇게 맛에 대해 잘 아는 거지? 음식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였는데.”
민성이 이호성을 보며 물었다.
그에 이호성은 핸들을 틀어 코너를 돌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전 여친을 조금 오래 만났어요. 한 5년 정도. 걔가 먹는 걸 엄청 좋아했거든요. 데이트의 절반 이상은 먹는 거였으니까. 먹는 걸 얼마나 좋아했는지…….”
이호성이 짧게 한숨 쉬며 헛웃음을 흘렸다.
“처음에 만났을 때는 예뻤는데 점점 감당 못 할 돼지가 되어 가더라고요. 그래서 헤어졌죠.”
민성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어째서 이호성이 이토록 완벽한 맛집의 향연을 이어 갈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민성은 눈을 감으며 아주 엷게 미소 지었다.
“점심도 기대하마.”
“맡겨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