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삼시세끼-22화 (22/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22화>

* * *

끼익!

차가 주차장에 들어서며 빠르게 주차되었다.

민성이 차에서 내렸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이호성도 서둘러 차에서 내려 민성을 보좌하며, 입구 쪽으로 이동했다.

가게 입구 앞에 도착한 순간 이호성은 당혹스러움에 물들었다.

“아…… 주말이라서 손님이 좀 많네요. 하하…….”

이호성이 민성의 눈치를 살피며 땀을 뻘뻘 흘렸다.

‘푸시푸시’라는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는 엄청나게 많은 줄이 서 있었다.

대부분 커플이거나 어린 여고생들이다.

테이블이라고 해 봐야 작은 테이블 2개에 불과해서 테이크아웃 전용 아이스크림집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헌터님. 제가 사장을 따로 불러서 먼저 드실 수 있도록 준비를…….”

“매너를 지켜. 줄 서서 먹는다.”

“아하하…… 네. 알겠습니다.”

‘지가 언제부터 그렇게 매너가 있었다고.’

이호성은 속내를 내색하지 않으며 민성과 함께 줄을 섰다.

적어도 1시간 정도는 족히 시간을 잡아먹을 듯했다.

‘오래 걸린다고 또 지랄하는 거 아니야? 지가 줄 서라고 했으니 괜찮겠지?’

이호성은 속으로 그렇게 초조하게 생각하며 어서 이 강민성이라는 호랑이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온순해지기를 바랐다.

* * *

그림자 길드의 길드 마스터는 노크 소리를 듣고 테이블 모니터를 터치했다.

문이 열리면서 안경을 쓴 섹시한 여비서가 나타나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1급 보고서입니다.”

비서가 길드 마스터에게 다가가 정리를 마친 서류를 내밀었다.

길드 마스터는 비서가 준 서류를 받아 내용을 확인했다.

그의 동공이 잠시 커지는 듯싶었다가 이내 침착함을 되찾았다.

강민성의 미궁 클리어라…….

길드 마스터는 쓴웃음을 지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다.

단지 기타 능력자의 출연을 확신하게끔 되는 이 순간이 조금 놀라울 뿐이다.

애초에 알고 있었다.

그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고작해야 150레벨로 그림자 길드라는 대형 길드를 단신으로 박살 낼 수 있을 정도의 사내라면, 기타 능력자가 아닌 게 외려 더 이상한 일이다.

다만 10년째 나타나지 않았던 기타 능력자가 지금 시점에 나타난 것이 놀라울 뿐이었다.

지금은 비록 잔잔한 바다처럼 보이나 기타 능력자의 파급은 그렇게 소리 없이 묻힐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분명 머지않아 이 새로운 기타 능력자는 잔잔했던 수면에 거대한 해일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 미리 위치를 선점해야만 한다.

그림자 길드가 잡아야 할 위치.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

길드 마스터는 굳은 얼굴로 서류에 적혀 있는 강민성에 대한 보고서를 내려다보았다.

* * *

중앙 헌터 기관 제1미궁 탐사 팀 회의실.

상석에 앉은 중앙 헌터 기관 3성 조사단장, 1,100레벨의 태겸은 테이블 모니터에 나타나 있는 영상을 내려다보며 얼굴을 굳혔다.

3성 조사단장 태겸을 필두로 좌우에는 5명의 각 팀장들이 자리를 잡고 일렬로 앉아 있었다.

“미궁이 클리어되었는데 왜 이리 조용한 거지?”

조사단장 태겸이 팀장들을 향해 물었다.

“그림자 길드에서도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발을 빼고 있습니다.”

“언론사 쪽도 조용하고요.”

“타 헌터 기관 쪽도 아닌 것 같습니다. 조사해 본 결과, 미궁이 클리어될 시기쯤 타 기관 모두 서울 쪽으로의 이동 경로는 없었습니다.”

팀장들의 말에 조사단장 태겸은 얼굴을 굳혔다.

중앙 헌터 기관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개입하여 미궁을 클리어했다.

타 기관도 의심되지 않는다면 제3의 개입을 의미한다.

이것은 일대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 정보 조직인 그림자 길드마저 침묵하며 재정비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중앙 헌터 기관 3성 조사단장 태겸이 무거운 눈으로 좌중을 훑었다.

“이번 사건은 본관에서 직접 나선다. 안 팀장은 지금 바로 추적 팀 꾸리도록 하고.”

태겸의 명령에, 안 팀장이라 불린 사내가 꾸벅 절도 있게 고개를 숙였다.

태겸이 말을 이으려고 할 때, 문이 벌컥 열렸다.

회의 중이던 헌터들의 시선이 모두 입구로 향했다.

“크, 큰일 났습니다.”

던전 게이트 팀 팀장의 보고에 태겸이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야?”

삐이! 삐이! 삐이!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긴급 안내 말씀드립니다. 1성급 이상 간부들은 10분 후, 중앙 간부 회의에 참석해 주시길 바랍니다. 반복합니다. 1성급 이상 간부들은 10분 안에 중앙 간부 회의에 참석해 주시길 바랍니다.]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태겸이 벌떡 일어났다.

“간부 회의가 끝날 때까지 팀장들은 회의 내용 정리하고 일단 대기하도록.”

“-네!”

팀장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그사이, 던전 게이트 팀 팀장의 어깨를 잡아끌며 회의실을 나왔다.

“간략히 브리핑해 봐.”

태겸이 걸음을 옮기면서 물었다.

던전 게이트 팀 팀장은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그, 그것이…… 신규 던전 게이트가 열릴 것 같습니다. 그뿐 아니라 기존 던전까지 이상 현상이 발생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던전 시스템 관리 레이더에 의하면 현재 게이트가 전체적으로 급격히 불규칙한 움직임을…….”

“됐어, 거기까지.”

태겸이 설명을 끊고 빠르게 앞장서서 걸어갔다.

던전 게이트 팀 팀장은 앞서 걸어가는 3성 조사단장 태겸의 뒷모습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다가 번뜩 정신을 차리고는 다시 창백해진 얼굴로 중앙 회의실을 향해 뛰었다.

* * *

민성은 어떤 아이스크림을 먹을지 고민했다.

어떤 걸 먹지?

아이스크림의 개수는 총 31개.

종류가 너무 많다.

어떤 게 맛있을까?

아! 순위가 적혀 있다.

민성은 순위표에 있는 메뉴들을 차례차례 살펴보았다.

1위 허니 치즈 라인

2위 아일랜드 뮤직

3위 아몬드 몽몽

4위 아빠는 이계인

5위 민트 초콜릿 맨

6위 치즈 케이크 걸

7위 연애 중인 딸기

8위 바람의 온도

9위 레인보우

10위 신비한 솜사탕

민성은 총 10개에 달하는 순위들을 보며 깊은 고민에 잠겼다.

베스트 순위가 나와 있다고는 해도, 그 안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아이스크림을 먹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스크림 메뉴를 보며 고민에 빠져 있다 보니 어느새 손님들이 서고 있던 줄이 많이 줄었다.

시간이 어느새 훌쩍 흘러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고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메뉴는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찬스를 쓰는 수밖에.

“이호성.”

민성의 부름에 서서 졸고 있던 이호성이 깜짝 놀라며 눈을 떴다.

“네, 헌터님!”

“추천 좀 해 봐.”

사실 단순히 맛있는 걸 먹기 위해선 1위인 허니 치즈 라인을 먹는 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도 있지만, 본디 아이스크림이란 취향을 크게 타기 마련이라 꼭 높은 순위를 갖고 있는 아이스크림이라고 해서 맛있다고 장담하기는 어려웠다.

이럴 때의 선택이 바로 센스를 결정한다.

그리고 센스 있는 이호성은 그런 민성의 생각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허니 치즈 라인이 1순위에 있긴 하나 호불호가 상당히 강합니다. 치즈 맛이 생각보다 상당히 강한 데다 단맛도 센 편이라서요. 만약 단맛이 좋으시다면 허니 치즈 라인은 1순위에 있는 만큼 가장 추천할 만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식사를 마치신 후라서 치즈 맛은 조금 거북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습니다.”

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한 판단이다.”

“감사합니다. 그 전에 콘으로 하나만 드실 건가요, 아니면 여러 가지를 맛볼 수 있는 컵으로 드실 건가요?”

민성이 이호성을 돌아보았다.

“섞어 먹을 수도 있는 건가?”

“물론입니다. 가장 작은 사이즈의 컵인 파인트로 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부담스럽지 않게 세 가지 맛을 맛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민성이 눈을 반짝였다.

“메뉴를 보고 있느라 그 점은 놓치고 있었어. 배가 부르긴 하지만 그래도 여러 가지를 맛보고 싶다.”

“그렇다면 제가 추천드리고 싶은 것은 파인트 사이즈로 아몬드 몽몽, 아일랜드 뮤직, 그리고 민트 초콜릿 맨입니다.”

“믿고 가 보도록 하지.”

“주문은 직접 하실 건가요?”

“그래.”

“그렇다면 혹시나 다음에 혼자 아이스크림 가게에 왔을 때를 생각해, 꿀팁을 하나 알려 드리겠습니다.”

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 봐.”

“직원에게 아이스크림 맛이 다 보이도록 담아 달라고 요청해야 합니다.”

“어째서?”

“그래야만 겹쳐지지 않고 여러 가지 맛을 골고루 먹을 수 있도록 넓게 담아 주기 때문이죠. 보통은 겹쳐서 주기 때문에 하나를 다 먹고 그 밑에 깔려 있는 걸 먹게 됩니다.”

“과연 그렇군.”

민성이 감탄할 때, 어느새 주문을 할 차례가 됐다.

“주문하시겠어요?”

핑크색 모자를 쓴 예쁜 여학생이 민성을 보며 물었다.

“파인트 컵.”

“어떤 맛으로 드릴까요?”

“아몬드 몽몽. 아일랜드 뮤직. 민트 초콜릿 맨. 겹쳐지지 않게 아이스크림이 다 보이게 담도록.”

“네, 알겠습니다. 그럼 결제 도와 드릴게요. 멤버십 카드나 포인트 카드 있으세요?”

민성은 고개를 저었다.

“바로 결제 도와 드릴게요.”

알바생이 현금을 받은 후, 진동 벨을 주었다.

민성은 이를 받고 옆으로 비켜서서 아이스크림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헌터님, 저 담배 한 대 펴도 될까요?”

민성은 아이스크림이 제조되고 있는 환경에 시선을 떼지 못하며 가 보라고 턱짓했다.

* * *

이호성은 담배를 피우며 맥 빠진 표정을 지었다.

아이스크림 추천에 꿀팁에 아주 지랄을 하고 앉아 있다.

시발,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인가…….

이러고 다닌다고 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레벨이 오르는…… 아, 같이 다니면 레벨은 오르는구나.

이호성은 피식 웃었다.

그럼 뭐 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레벨이 오르면 뭐 하냐고.

평생 노예로 살다가 뒤질 텐데.

아무리 레벨이 올라 봐야 저 강민성이라는 사내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는 기타 능력자.

범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천상계의 헌터니까.

이대로 심부름꾼으로 사는 인생에 적응해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나 암담했다.

거기다 입을 잘못 놀려서 거의 24시간 대기조 상태가 되어 버렸다.

어휴, 이 븅신 같은 주둥이!

에라이, 븅신 같은 놈아.

이호성은 손으로 자신의 입을 팍팍 쳤다.

아릿한 통증이 올라온다.

하지만 애꿎은 입술만 아플 뿐, 스트레스는 사라지지 않고 더 극심해지며 어깨와 목 뒤를 뻐근하게 만들었다.

하루만이라도 좀 편하게 쉬고 싶다.

슬픈 눈빛으로 담배를 피우며 하늘을 올려다보던 이호성은 ‘응?’ 하고 의아한 얼굴이 됐다.

하늘의 기류가 어쩐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바람이 점점 더 강하게 불기 시작하더니 이내 하늘의 구름이 뒤틀리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종이를 구기듯 하늘이 구겨지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어……?”

콰르르르릉!

하늘에서 천둥이 치며 공간이 서서히 찢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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