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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20화 (20/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20화>

* * *

식당 앞에 도착했을 때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차를 타고 출발했을 때만 해도 맑은 날씨라고 생각했는데, 구름은 금세 흐려졌고 지금은 이렇듯 부슬비가 내렸다.

“우산 씌워 드리겠습니다.”

이호성이 트렁크에서 검은색의 고급 우산을 꺼내 펴면서 차 뒷문을 열어 주었다.

민성은 차에서 내려 이호성의 우산을 넘겨받으며 식당 간판을 바라보았다.

[큰 할머니 24시간 한우 소고기 육개장]

민성은 간판을 보며 엷은 웃음을 지었다.

부슬비 내리는 아침에 먹는 육개장이라…….

좋다.

“가서 씻고 와.”

민성은 그렇게 말하며 식당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90도로 꾸벅 인사하는 이호성을 뒤로하고, 민성은 가게 앞에서 우산을 접고 식당 문을 열었다.

우산 꽂이에 우산을 꽂고 창가에 앉았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식당에는 손님이 자신밖에 없었다.

퉁퉁한 체격에 무뚝뚝해 보이는 중년 남성이 식자재 창고로 보이는 곳에서 나왔다.

“어서 오세요. 뭐 드릴까요?”

무뚝뚝해 보이는 얼굴만큼이나 종업원은 무뚝뚝하게 물었다.

여러 메뉴가 있지만 역시 선택은 간판 메인이다.

“육개장으로.”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종업원이 음식을 내오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갔다.

민성은 가게를 훑어보았다.

최근에 인테리어 공사를 새로 했는지 전체적으로 깔끔했다.

보통 육개장하면 낡은 가게를 떠올리게끔 되는데, 이곳은 본점이었고 여러 곳의 체인점을 내고 있는 만큼 깔끔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다 한쪽 벽면을 보자, 처음 가게를 오픈했을 때의 사진이 보였다.

낡고 허름하고 좁은 가게다.

그렇게 시작해서 이렇게 큰 가게로 성장한 것이다.

오랜 전통이 있는 만큼 분명 맛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솟았다.

“식사 나왔습니다.”

종업원이 음식을 가져왔다.

반찬은 단출했다.

깍두기와 양파, 그리고 찍어먹는 쌈장이 전부다.

그리고 하얀 쌀밥과 메인 음식인 육개장.

2,900원에 불과했던 잔치 국수와는 달리, 한 끼에 8천 원이라는 꽤 비싼 가격이다.

한우 소고기 육개장이라더니, 꽤 괜찮은 고기가 들어 있는 모양이다.

민성은 숟가락을 들고서 육개장을 내려다보았다.

새빨간 국에 고기 기름이 둥둥 떠 있다.

그 기름 아래로 숙주나물과 고사리, 오래 삶아진 무와 파, 양파에 표고버섯까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종결시키는 한우 국거리 고기가 풍성하게 그릇을 채우고 있었다.

흔히 육개장은 소고기 국과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건 틀린 얘기다.

테이블에는 육개장과 소고기 국의 차이에 대해 적혀 있었다.

육개장과 소고기 국의 차이는 바로 양념.

소고기 국의 경우 국간장이나 소금으로 간을 하는데, 찌개가 아닌 국이다 보니 육개장에 비해 비교적 간이 약하다.

하지만 그에 반해 육개장은 고춧가루를 풀어 매운 양념을 하며, 간도 소고기 국에 비해 훨씬 강한 편이었다.

또 다른 차이가 있다고 한다면 육개장은 보통 술안주로 먹지만, 소고기 국은 해장을 위해 먹곤 한다는 것.

민성은 엷게 웃음 지었다.

음식이라는 건 알면 알수록 재미있다.

먹기 전에 시선을 옆으로 돌려 창가에 묻어나는 빗방울을 보았다.

날씨와 분위기는 음식의 맛을 배로 불려 준다.

분위기도 먹는 것이라고 민성은 생각하며, 그 분위기를 한 아름 마시며 흰 쌀밥을 통째로 육개장에 조심히 투하시켰다.

흴 쌀밥이 마치 침몰하는 배처럼 육개장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기다리지 않고 숟가락으로 꾹꾹 눌러 밥을 육개장에 풀었다.

흰 쌀밥이 육개장에 적절히 퍼져 나가자마자 민성은 그대로 숟갈을 떴다.

육개장 국물에 적셔진 밥과 고사리, 그리고 숙주나물이 섞여 있는 한 숟가락이었다.

민성이 그것을 입을 크게 벌려 입안에 넣으려고 할 때, 주머니에 있던 리치 인형이 꼬물거리며 식탁 위로 올라왔다.

리치 인형은 육개장 뚝배기 그릇 옆에 털썩 엉덩이뼈를 대고 앉았다.

민성은 리치 인형을 무시하고 퍼 올린 육개장 숟가락을 입안에 넣었다.

“호옵!”

아주 뜨거우면서도 매운맛이 혀 위에서 춤을 추듯 감돌았다.

“하아아…… 뜨거워.”

민성은 뜨거운 입김을 뿜어내면서도 숟가락을 쉬지 않았다. 두 번째로 퍼 올린 숟가락 위의 육개장은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돌았다.

민성은 느꼈다.

굶주린 자에겐 그 어떠한 음식보다 화려해 보일 국밥의 힘이라고.

아침에 깨어나자마자 마치 쥐어짜이듯이 배가 고팠는데, 그 배고픔을 완벽하게 채워 주는 아침이었다.

민성은 두 번째 숟가락을 입안에 넣으면서 입김을 뿜고 우물우물 씹었다.

고사리와 숙주나물이 어금니에 씹히는 감각은 실로 황홀했다.

리치 인형은 흥미를 잃었는지 다시 주머니 안으로 힘없이 기어 들어갔다.

그사이 민성은 육개장 뚝배기에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전통성이 가진 육개장의 힘인 걸까?

한식의 위대함을 절대 얕보아서는 안 된다.

민성은 결심했다.

시간이 흐르더라도 절대, 음식의 소중함을 가벼이 여기지 않겠노라고. 그리고 굳이 그런 결심을 하지 않더라도 지금의 이 심정은 아주 오랫동안 이어질 것이다.

음식이란 죽는 그 순간까지 절대로 곁을 떠나지 않는 일생의 동반자니까.

민성은 입으로 육개장을 후후 불었다.

두꺼운 뚝배기에 나온 육개장은 시간이 흘러도 그 뜨거움을 잃지 않았다.

바로 뚝배기의 마법.

마인들의 마법 공격 같은 건 이런 뚝배기의 마법에 비하면 실로 보잘것없는 것에 불과했다.

“호로롭!”

부드럽게 입술을 스치며 입안으로 들어오는 육개장의 건더기는 식욕을 잠재우지 않고 한껏 더 그 식욕을 끌어 올리게끔 만들었다.

그렇기에 먹는 속도는 자연히 올라갔고, 그렇게 먹다 보니 어느새 밥이 동이 났다.

민성이 손을 들었다.

“여기 공깃밥 하나 더.”

민성의 목소리에 TV를 보고 있던 종업원이 밥공기를 하나 더 가져왔다.

민성은 밥공기가 도착하자마자 그 열기가 식기 전에 바로 밥을 육개장 안으로 투하시켰다.

본래 아침은 황제처럼 먹으라고 했다.

이제 활동이 막 시작될 예정이기에 두 공기의 밥은 결코 몸을 무겁게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외려 몸에 건강한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민성은 약간 붉게 변한 자신의 입술을 혀로 살짝 핥으며 숟가락을 육개장에 꽂아 폭풍 식사를 연이었다.

매운 고춧가루의 맛에 나물의 달콤함, 그리고 깊고 진한 육개장의 국물이 기분 좋게 몸 안에 스며든다.

이미 한 공기를 깨끗하게 비웠음에도 배 속에서는 육개장을 어서 더 달라고 난리가 났다.

두 공기째에서 육개장 국물이 살짝 식긴 했지만, 그건 그것 나름대로의 맛이 있었다.

식은 만큼 먹는 속도가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게 눈 감추듯 육개장 건더기와 밥을 해치웠다.

남은 것은 3분의 1에 불과한 육개장 국물.

민성은 눈을 반짝이며 이제 조금은 식은 육개장 뚝배기를 양손으로 들었다.

“후루루루루룩!”

맵고 진한 육개장의 남은 국물이 민성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타악!

민성은 깨끗하게 다 비운 뚝배기를 내려놓은 뒤 혀로 앞 이빨을 닦으며 물컵을 들었다.

“후우……!”

참았던 숨을 뱉으면서 물을 마셨다.

한기 가득한 차가운 물이 몸속을 깨끗하게 정화해 나간다.

식사를 마치고 소화를 위해 먹는 한 잔의 물은 그야말로 천상의 샘물과도 같았다.

“참 복스럽게도 드시네.”

TV를 보던 종업원이 민성을 보며 웃음 지었다.

* * *

민성이 육개장을 맛있게 먹고 있는 사이, 다이아몬드 클랜의 클랜장 이호성은 목욕탕에서 사우나를 즐기고 있었다.

그간의 피로를 풀기 위해 탕 안에서 푹 퍼진 채로 뜨거운 온도를 느끼며 휴식을 취했다.

사우나를 통해 그렇게 땀을 빼면서 이호성은 눈을 뜨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스탯 창을 오픈했다.

스탯 창 안에 나타나 있는 자신의 레벨을 바라보며 이호성은 짧게 신음을 흘렸다.

본래 101레벨에 불과했던 자신의 레벨은 현재 미궁을 강민성과 함께 돈 것만으로도 135레벨로 점프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믿을 수 없는 폭업.

그 폭발적인 레벨 업으로 다량의 추가 스탯을 찍고 스킬도 업그레이드할 수 있게끔 되었지만, 글쎄…… 마냥 기쁜 일만은 아니었다.

늘 강민성에게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에 시달려야만 하고, 개밥이나 다름없는 밥을 먹으며, 그의 심부름을 해야 하는 건 결코 감당하기 쉬운 무게가 아니었다.

하지만 강민성은 이번에 증명된 대로 단순한 헌터가 아니라 기타 능력자다.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사내인 것이다.

그런 그와 함께한다면, 아이템은 몰라도 레벨 업만큼은 확실하게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엄청난 장점이 있다고 해도…….

이호성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언제 죽을지 모를 사신과도 같은 남자 옆에 있는 건 정말 스트레스 받는 일이었다.

이호성은 뒷골이 뻐근해지는 걸 느끼며 머리를 뒤로 크게 젖혔다.

“후우…….”

그에게 예쁨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맛집 정보를 알려 주는 것뿐.

이호성은 눈을 지끈 감았다.

위기를 기회로 삼자.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거야.

이호성은 탕 안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어느새 보살님을 믿게 된 이호성이 합장을 하며 출구로 향했다.

목욕을 하던 어린아이가 그런 이호성을 이상하다는 듯 빤히 바라보며 물장구를 쳤다.

* * *

개운하게 목욕을 마치고 나온 이호성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부슬비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빗줄기가 굵진 않았지만, 목욕을 하고 나왔는데 비를 맞으면 찜찜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플라스틱 통에 우산이 여러 개가 꽂혀 있어, 이호성은 그중 아무거나 하나를 들어 펼치며 목욕탕을 나왔다.

“휴우. 목욕도 했고 이제 슬슬 다시 클랜원 모집에 신경을 써야겠어.”

주차해 둔 차량으로 걸어가던 이호성은 흠칫 놀라며 우뚝 걸음을 멈춰 섰다.

대머리에 용 모양 문신을 한 사내와 12명의 헌터들이 차에 타려던 이호성을 둘러쌌다.

대머리 사내가 비릿하게 웃으며 이호성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다이아몬드 클랜의 클랜장님. 조용히 따라오시겠습니까? 아니면 여기서 피를 볼까요?”

이호성은 그들을 훑어보다 어금니를 빠드득 깨물며 무리의 대장인 대머리 사내를 쏘아보았다.

다크호스 클랜의 클랜장

Lv100 최만식

이호성은 놈을 보며 아차 하는 생각에 머리가 부글부글 끓었다.

다크호스 클랜은 자신과 같은 뒷골목 클랜이었다.

자신의 다이아몬드 클랜에 비해 늦게 뒷골목에 데뷔했으나, 슬슬 세력을 키워 나가고 있던 클랜.

그런 놈들이 이렇듯 자신을 찾아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바로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록 스타 나이트클럽을 빼앗기 위해서!

……빌어먹을. 완전히 코너에 몰렸어.

놈들은 노렸다.

자신이 클랜원들을 잃어 세력이 약해졌다는 것을 알고, 빈집 상태인 다이아몬드 클랜의 수장인 자신을 치러 온 것이다.

이호성은 쓰디쓴 침을 삼키며 놈들을 훑어보았다.

12명에 달하는 다크호스 클랜의 헌터들은 모두 100레벨에 근접해 있었다.

그들보다 30이나 더 높은 레벨을 가졌다고 해도 이렇듯 다수를 상대로 싸워 이기는 건 불가능했다.

“조용히 따라오시죠?”

다크호스 클랜의 클랜장 최만식이 얄미운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이호성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모셔.”

다크호스 클랜장 최만식의 말에, 부하들이 이호성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거칠게 잡아끌었다.

이호성은 그들의 팔을 뿌리치며 아이템 창 안에서 무기를 꺼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준비가 미리 되어 있지 않은 상황.

사방에서 이호성을 공격해 왔다.

속박 스킬에 의해 몸이 둔화되면서 주먹질과 발길질을 피하지 못했다.

이호성은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바닥에 축 늘어지며 쓰러졌다.

“쯧. 조용히 모신다니까.”

최만식이 코웃음을 치며 부하들을 훑어보았다.

“끌고 가.”

부하들이 이호성을 끌고 봉고차에 탑승했다.

이호성을 태운 차가 이내 부릉! 하고 목욕탕 주차장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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