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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19화 (19/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19화>

* * *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면서, 이호성은 민성이 보스 몬스터 리치를 단 한 방에 죽였던 광경을 떠올렸다.

강해도 너무 강하다.

기타 능력자라는 게 이렇게 강한 존재였던가?

일반 헌터와의 격차는 실로 가늠할 수조차 없는 수준 차이다.

자신은 그동안 이런 엄청난 남자를 그림자 길드에게 떠넘기려고 했던 거다.

만약 잠적을 했거나, 그림자 길드를 통해 뒤통수치려 했던 걸 들켰다면?

이호성은 간담이 서늘해서 눈을 질끈 감았다.

잠깐……!?

이호성은 눈을 번쩍 떴다.

강민성의 집은 불에 탔다고 했다.

그래서 집을 구하기 위해 미궁에 들어갔던 거고.

그런데 그림자 길드도 화재가 일어났어.

그렇다는 건, 설마 진짜 그림자 길드를 강민성이!?

“이호성.”

민성의 부름에 이호성은 화들짝 놀라며 허리를 바짝 세웠다.

“네, 헌터님!”

“아이템을 처분하려면 전에 갔던 그곳으로 가면 되는 건가?”

“아, 자잘한 것만 거기서 처분하고, 나머지는 경매 시장에 푸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경매 시장?”

“네. 헌터들이 개인 거래를 하는 시장입니다. 워낙 비싼 물건들이 많아서, 경매 시장에서 풀어야 제값을 받기 좋습니다. 가게에 넘기면 가치가 높은 만큼 수수료도 커서요.”

“경매 말고 가게에 전부 넘기면 얼마 정도 나올 것 같아?”

이호성은 머릿속으로 잠시 계산기를 두드렸다.

“음…… 글쎄요. 이런 고가의 아이템은 본 적도 없어서…….”

이호성은 그렇게 대답하면서 새삼 강민성의 아이템 수급 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그럼 가게에 바로 넘기는 걸로.”

“……알겠, 네? 가게에 바로 넘기신다고요!?”

“그래.”

이호성은 어이가 없었다.

이 비싼 아이템을 헐값에 넘기겠다니.

수수료만 해도 수십억은 족히 나올 텐데.

그런 생각을 하던 이호성은 이내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지옥 난이도도 밥 먹듯이 털고 나오는 양반 아니던가?

이호성은 그의 그 엄청난 자신감과 여유에 씁쓸함을 삼키며 차를 출발시켰다.

그때.

“쿠울-”

이호성은 낯선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리치 인형이 민성의 옆자리에 대(大)자로 누워 코를 골고 있었다.

이호성은 헛웃음을 삼켰다.

새삼 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사내가 자신의 등 뒤에 앉아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그리고 그런 남자가 자신을 그다지 호의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긴장감이 폭발했다.

커피숍에서 자신을 죽이려고 단검을 꺼내 들었던 민성이 생각났다.

그건 장난이 아니야.

아차 하다가 죽는다.

그의 비위를 늘 100퍼센트 맞춰 줘야 한다.

개념을 챙겨야 해.

클랜 업무고 나발이고, 오늘 안에 맛집 리스트를 제대로 정리해야겠어.

기타 능력자라니…… 시발, 진짜.

이호성은 이마에 맺혀드는 땀을 팔뚝으로 황급히 닦아 냈다.

* * *

판매할 아이템의 금액이 큰 만큼, 한 군데서 모두 처분할 수가 없어서 여러 곳을 들러야만 했다.

리치를 쓰러트리면서 습득한 전설 아이템 오리하르콘 단검만을 제외하고, 모두 현금으로 환전했다.

환전한 금액은 210억이었다.

급처라서 수수료가 확실히 많이 떼이긴 했지만, 민성은 그런 건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빨리 팔고 빨리 돈을 챙겨서 빨리 필요한 걸 갖는 게 좋았다.

그런 만큼 속전속결로 아이템을 처분했고, 이호성에게 좋은 주택도 빨리 찾아오라고 명령했다.

민성이 차에서 쉬는 동안, 이호성은 발품을 팔아 부동산에 들러 직접 좋은 집을 찾아 나섰다.

금전적으로 엄청나게 여유가 있었던 만큼 이호성도 오래 걸리지 않아 훌륭한 집을 찾아낼 수 있었다.

가히 저택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집이다.

민성이 이호성이 찾아낸 집을 훑어보았고, 집도 마당도 인테리어도 비싼 만큼 마음에 들었기에 계약은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계약과 동시에 입주 절차를 밟았다.

이호성이 필요한 가구와 물건, 그리고 의류까지 민성을 위해 구입했고, 민성은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집과 필요 물품을 가질 수 있었다.

이호성은 역시 이런 심부름용으로 써먹기엔 굉장히 유능했다.

* * *

이호성은 가구 배치를 마치자마자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는 걸 느꼈다.

청소를 완벽히 끝마친 상태.

드디어 강민성의 생활을 위한 준비가 끝났다.

이제 더 이상은 하고 싶어도 할 일이 없었다.

“헌터님. 청소 모두 끝마쳤습니다. 이제 저는 그만 들어가 봐도 될까요?”

이호성이 살짝 거친 호흡을 내쉬며 민성을 향해 물었다.

‘빨리 처리해.’라는 민성의 한마디에 그 짧은 시간 동안 정말이지 혼이 빠지도록 뛰어다녔다.

가구 배치부터 온갖 잡일에 청소까지, 시간을 지체하지 않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속도를 올렸다.

그런 탓에 이호성은 현재 상당히 지쳐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민성은 그런 이호성을 보았다.

“피곤해?”

“네……? 아닙니다. 피곤하다니요! 헌터님을 위해서 이렇게 일할 수…… 아니, 봉사할 수 있어서 너무 영광이었습니다. 하하……! 더 시키실 일이 있으신가요? 24시간 밖에서 대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해, 그럼.”

“……네?”

“그렇게 하라고.”

이호성은 심장이 철렁했다.

땀이 얼굴에 비 오듯이 흘렸다.

한마디 더 해서 어떻게든 이 상황을 수습해 보려던 이호성은 민성의 눈빛을 보고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도저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자신의 입을 오려 내고 싶었다.

왜 쓸데없는 말은 해 가지고…….

“별로 그러고 싶지 않은 표정 같은데. 그래, 싫으면-”

민성이 아이템 창에서 오리하르콘 단검을 꺼내기 위해 팔을 뻗었다.

이호성이 얼굴을 팍 들었다.

“헌터님! 그 무슨 섭섭한 말씀이십니까!? 헌터님처럼 강하신 분을 모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인데요. 아직도 저를 잘 모르시는군요, 하하하! 헌터님 곁에 가까이 있을 수 있다는 영광! 기쁜 마음으로 대기하겠습니다.”

이호성은 90도로 인사를 올린 후, 빠른 걸음으로 현관문을 열고 집에서 나왔다.

잔디가 넓게 펼쳐진 마당으로 나온 이호성은 그 자리에 나무처럼 서서 멍하니 허공을 보았다.

“하아…….”

깊은 한숨이 가슴을 울린다.

철컥!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어? 실은 모두 농담이었고 집에 보내 주는 건가?

희망을 담아 현관문을 돌아보았을 때였다.

“많이 담았다. 많이 먹어라.”

민성이 양은 냄비에 한가득 담긴 밥그릇을 툭 놓고 다시 현관문을 닫았다.

이호성은 마치 봉우리처럼 보이는 막대한 양의 흰 고봉 쌀밥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기타 능력자인 만큼 혹시라도 콩고물이 떨어져 내릴지도 모른다고 기대한 자신이 병신이었다.

이호성은 밥그릇을 들고 밥을 손으로 주워 먹었다.

먹고 싶어서 먹겠는가?

안 먹었다간 또 무기 꺼내려고 지랄 염병을 할 텐데.

밥을 반쯤 먹던 이호성은 목이 막혀서 켁켁 기침이 나왔다.

“뭐가 이렇게 많아, 김치라도 주든가. 크흑.”

이호성은 밥그릇을 탁 내려놓고 울면서 별이 가득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밥풀 묻은 손을 싹싹 비볐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진짜 반성하고 있어요. 착하게 살게요. 물건도 안 빼앗고 범죄도 안 저지를게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호성은 이어질 말을 민성이 혹여라도 들을까 봐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이었다.

‘저 씌벌뇬! 저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새끼로부터 해방시켜 주세요. 진짜 착하게 살 수 있어요. 진심입니다. 그러니 제발요!’

마음속으로 온 힘을 담아 싹싹 빌 때.

띠링-

문자 소리가 울렸다.

이호성은 휴대폰 문자를 확인했다.

[다 먹고 설거지해라.

-강민성-]

X새끼…….

이호성은 훌쩍이며 손으로 밥을 다시 주워 먹었다.

“왈왈!”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 * *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자마자 민성은 배를 문질렀다.

아침이 시작되자마자 배가 고프다니.

마계에선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감각이다.

한번 밥을 먹기 시작하자 잠자고 있던 식욕의 본능이 본격적으로 깨어난 것 같다.

민성은 짧은 신음을 흘리며 침대에서 내려와, 부스스한 얼굴로 거실을 가로질러 현관문을 열었다.

마당에 이호성이 보이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 보자 차 안에서 자고 있는 이호성이 보였다.

민성이 창문을 톡톡 두드렸다.

“…….”

노크에도 깨어나지 않자, 민성이 차 문을 발로 쿵 찼다.

쾅!

“헉!”

이호성이 깜짝 놀라며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민성을 발견하곤 화들짝 놀라며 차 안에서 나왔다.

“허, 헌터님. 기상하셨습니까?”

이호성이 새집을 지은 머리로 나와 입가에 묻은 침을 닦으며 꾸벅 인사했다.

“씻고 나올 테니까 출발 대기해. 아침 먹으러 간다.”

“아, 예. 알겠습니다.”

이호성이 잠이 덜 깬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민성은 다시 집으로 돌아와 욕실 안으로 들어왔다.

집이 워낙 고가의 집이라 그런지 욕실도 넓고 쾌적하다.

민성은 천장에서 소나기처럼 일직선으로 떨어져 내리는 물줄기를 맞으며 샤워를 시작했다.

몸을 청결하게 씻는다는 것은 정말 굉장하다.

샤워를 할 때마다 매번 새로운 느낌을 받게 된다.

민성은 젖은 머리를 쫙 쓸어 올리며 눈을 감고서 얼굴에 쏟아지는 물줄기를 기분 좋게 즐겼다.

깔끔히 샤워를 하고 먹는 아침 식사는 매우 일품일 것이다.

* * *

이호성이 옷장에 세팅해 둔 옷들을 살펴보았다. 이호성은 패션 센스도 좋다. 하나같이 화려하지 않고 심플하면서도 멋이 있는 의류들이다.

민성은 흰 티에 청바지, 그리고 스니커즈를 신었다.

전신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다듬을 때, 리치 인형이 다가와 발아래에 섰다.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는 자신을 따라 하는 리치 인형을 내려다보며 민성은 피식 웃었다.

옷도 없는 해골 주제에 뭘 따라 하는 거야.

꽤 성가실 줄 알았는데 조용하기도 하고 손바닥만 한 해골이 움직이고 있는 걸 보니 귀엽기도 했다.

“가자.”

민성의 말에 리치 인형이 풀쩍 뛰어올라 민성의 바지 앞주머니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러곤 머리만 빼꼼 내밀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민성은 그렇게 리치 인형과 함께 아침 식사를 위해 집을 나섰다.

이제 5월.

봄이 지나고 여름이 곧 시작될 시기.

그래서인지 차갑지 않은 바람이 몸을 스쳐 지나갔다.

평상시에는 속성 저항 능력을 해제해 놓기 때문에, 온도의 감각이 그대로 느껴지고 있었다.

자연을 느끼는 것.

그것만큼 기분 좋은 감각은 없다.

미세 먼지가 많아져 공기가 탁해진 건 다소 아쉬웠지만, 100년 만에 귀환해서인지 민성은 그런 부분조차 현세로 돌아온 것을 실감하게 해 외려 좋기까지 했다.

“아침은?”

민성이 이호성의 차 뒷좌석에 올라탄 뒤 새집 지은 이호성의 뒤통수를 보며 물었다.

“네. 물론입니다.”

이호성이 퉁퉁 부운 얼굴로 민성을 돌아보면서 웃음 지었다.

“너 밥 먹을 동안 좀 씻고 와라. 냄새 나니까.”

이호성이 기쁜 듯 활짝 웃음 지었다.

“네. 헌터님!”

이호성이 기어를 내리고 차를 출발시켰다.

오늘 아침은 뭘 먹게 될까?

민성은 스틸로 된 자신의 손목시계를 보았다.

시계에는 요일도 표시되어 있다.

오늘은 주말인 토요일이었다.

“주말인데도 아침 일찍 여는 식당이 있나?”

민성의 물음에.

“물론입니다.”

이호성은 막힘없이 대답했다.

토요일 아침 식당이라.

어떤 곳일까?

민성은 기대감을 품으며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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