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8화>
* * *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부패된 중앙 헌터 기관 병사들의 수가 더 늘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 마리, 그다음엔 세 마리, 이젠 그 숫자가 8을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상대를 해 봤던 녀석들이고 그 수준을 알고 있기에, 놈들의 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민성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놈들의 중심 안으로 여유 있게 걸어 들어갔다.
사방에서 오러를 품은 창날이 민성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빈틈없이 마치 고슴도치처럼 찔러 든 공격에, 순간 이호성은 이번엔 민성이 몬스터들의 공격을 막아 내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겼지만, 그건 쓸데없는 걱정에 불과했다.
민성의 움직임은 상식이라는 걸 완전히 파괴했다.
얼핏 보면 살짝 느려 보이기도 하지만, 그 움직임 속에는 무(武)의 극의(極意)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꿰뚫어 볼 수 없는 이호성의 눈에는 민성의 움직임이 그저 신묘할 뿐이었다.
사방에서 찔러 들어오는 공격을 짧은 수정 단검 하나로 흘리듯이 막아 내는 건,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아름다워 보이기도 했고 편안해 보였으며 안정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느려 보인다 싶다가도 일순간 섬광과도 같은 움직임을 선보일 때면 그 속도를 감히 눈으로 좇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호성은 뒤늦게 깨달았다.
지금 강민성이 부패된 중앙 헌터 기관 병사들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고 있다는 것을……!
“맙소사.”
이호성이 보는 대로 민성은 부패된 중앙 헌터 기관 병사들의 공격을 보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수를 섞었다.
자칫 모르는 사람이 보면 꽤 아슬아슬한 격차로 민성이 우위에 있다고 볼지도 모르지만,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리라.
민성이 자신의 감각 기능을 체크하기 위해 놀고 있다는 것을.
이호성은 그런 민성의 모습에 감탄을 넘어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 * *
민성은 생각했다.
이곳 현세에서 오러. 오러의 발출인 ‘검기’라 부르는 건 자신이 마계에서 ‘마기’라고 칭했던 것과 같다.
기타 능력자라는 놈들은 어느 정도의 마력 에너지를 가지고 있을까?
마계에서 마인들과의 싸움을 떠올려 보면 사실상 검기 같은 건 별로 전투에 있어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정신이다.
무에 대한 극의를 깨닫고, 그 깨달음 속으로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을 때 비로소 굉장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세상을 빨아들이는 것만 같은 강렬한 감각.
검과 하나가 되어 마치 소우주가 몸 안에서 폭발하는 느낌.
최고 난이도의 미궁이라면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
민성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현세로 귀환해 놓고 뭐 하는 짓인가.
빨리 나가자.
민성이 수정 단검을 횡으로 일직선으로 그었다.
쉴 새 없이 창을 휘두르고 찔러 대던 부패된 중앙 헌터 기관 병사들의 목이 일제히 허무하리만큼 쉽게 잘려 나갔다.
그와 동시에 부패된 중앙 헌터 기관 병사들의 몸이 폭발하며 그 자리에 아이템을 후두두 떨어트렸다.
민성이 수정 단검에 묻은 시체들의 피를 확 털어 냈다.
* * *
이호성은 지금 꿈을 꾸는 듯했다.
꿈이 아니라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머리가 어떻게 돼 버리는 게 아닐까 불안할 지경이다.
그림자 길드 전체가 달려들어도 미궁의 지옥 난이도에 대한 클리어를 확신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강민성은 그런 지옥의 미궁 난이도를 마치 전기 파리채로 모기 잡듯 해치우고 있었다.
기타 능력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확신으로 뒤바뀌는 순간, 이호성은 온몸에 전율이 치밀어 올랐다.
처음엔 살아서 미궁을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기뻐했고, 그다음엔 덩달아 자신의 레벨이 올라서 기쁨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두려움이 물밀 듯이 밀려옴과 동시에 경외심이 가슴속을 가득 물들였다.
기타 능력자는 감히 신의 영역에 발을 디딘 자들이다.
그런 자가 자신 앞에서 미궁을 연쇄 격파하며 정면으로 돌파하고 있다.
이호성은 지금 이 순간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 * *
100번째 부패된 중앙 헌터 기관 병사를 해치웠을 때 미궁이 쿠르르! 떨렸다.
이내 바닥에 커다란 마법진이 그려지더니 그 마법진 위로 그동안 처치한 부패된 중앙 헌터 기관 병사들과는 다른, 새로운 몬스터가 등장했다.
미궁의 주인
Lv1,500 리치
예상보다 일찍 등장한 보스 몬스터다.
몸에 비해 커다란 장포를 입은 해골이 시커먼 안광을 번쩍였다.
2미터는 될 법한 커다란 키의 흑마법사 리치가 냉랭한 눈으로 민성을 직시했다.
“인간이라 보기 어려운 존재로군……. 그대는 정녕 인간인가?”
리치가 음산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내가 너 같은 몬스터겠냐?”
민성의 대답에 리치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놀랍군. 그대가 인간이라니……. 인간이라고 하기엔 믿을 수 없는 힘을 가졌어.”
민성이 더는 듣기 싫다는 듯 수정 단검을 강하게 쥐고서 앞서 걸어갔다.
“빨리 끝내자. 이제 지겹다.”
미궁의 주인 리치가 허공에 뜬 채로 뒤로 쭉 물러났다.
“그대가 아무리 강한 인간이라고는 해도 고작해야 인간. 감히 미궁을 침범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난 미궁의 주인. 격을 느껴라. 죽음의 고리를 통해 나의 영원한 시체가 되어라!”
리치가 눈을 감고서 음산한 목소리로 흑마법의 언어를 읊조렸다.
그 순간 바닥에서 먹구름 같은 시커먼 연기가 뭉게뭉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검은 연기는 민성의 발목부터 시작해 이내 전신을 휘감았다.
흑마법사 리치의 푸른 눈이 검은 빛으로 변할 때.
미궁 전체가 진동할 만큼 강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콰과콰 쾅쾅 콰아앙!
폭발에 의해 뿌연 흙먼지가 날렸다.
리치가 냉랭한 비웃음을 입가에 머금은 그 순간이었다.
툭툭!
몸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 내며 민성이 태연하게 연기를 뚫고 나왔다.
리치는 놀란 눈으로 민성을 보며 입을 살짝 벌리다가 황급히 흑마법의 주문을 영창했다.
시커먼 유령과도 같은 검은 연기가 이내 칼날처럼 날카롭게 변하면서 민성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민성이 수정 단검을 휘둘렀다.
꽈르르르릉!
민성의 수정 단검에서 발출된 검기는 리치의 검은 연기를 가볍게 박살 냈다.
힘없이 흩어지는 연기 사이로 민성이 리치를 향해 쇄도했다.
수정 단검을 그의 심장에 박아 넣었다.
푸북!
검기의 폭발.
쩌저저저적!
리치의 몸이 깨진 유리처럼 금이 가면서 갈라졌다.
“이, 이럴 수가……!”
리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리고 바로.
파아아아아앙!
균열되던 몸이 깨졌다.
미궁의 주인 리치는 새파란 빛의 파편이 되어 360도로 촤르륵 흩어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하나의 아이템이 허공에서 떨어져 내렸다.
민성은 팔을 휘둘러 그것을 낚아챘다.
[미궁의 주인 ‘리치’를 처치하였습니다.]
[미궁 클리어!]
[1인 미궁 클리어에 성공하였습니다.]
[호칭과 레벨과 스킬이 모두 초기화됩니다.]
[‘강민성’ 님에게 미궁 난이도가 조정됩니다.]
[액트2 오픈]
[특별 보상을 습득합니다.]
[리치 처치 보상으로 ‘오리하르콘 단검’을 지급합니다.]
시스템 음성이 사라진 이후, 주변이 시커먼 어둠으로 물들었다.
잠시 후.
벨벳으로 된 커다란 문이 서서히 빛을 받으며 나타났다.
민성은 그 문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지옥 난이도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민성이 벨벳으로 된 문을 신경질적으로 열어젖혔다.
* * *
이호성은 눈을 끔뻑거렸다.
살아서 미궁 던전을 빠져나왔다.
푸릇한 나무들이 무성한 산속으로 다시 나오게 된 것이다.
새소리가 명확하게 들림에도 실로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호성은 옆으로 시선을 돌려 민성을 보았다.
퍼스트 호칭. 150의 레벨. 그리고 이름.
그 모든 게 사라졌다.
이제 강민성은 일반인처럼 보인다.
미궁을 홀로 클리어함으로써 헌터 네임이 사라진 것이다.
그는 이제 기타 능력자였다.
“어이.”
민성의 부름에 심장이 쿵 하고 뛰면서 현실이 깨어났다.
“네!?”
“아이템은 확실히 다 챙겼지?”
“네, 네. 다 챙겼습니다.”
“근데 이건 뭐야?”
“무슨……?”
“이거 말이야.”
정신이 하나도 없는 가운데 민성이 아래쪽을 가리켜 보였다.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가자, 민성의 발 옆에 웬 작은 인형이 하나 서 있었다.
미궁에서 처치한 보스 몬스터 리치의 모습을 닮은 작은 해골 인형이었다.
아기 해골의 모습을 한 인형 리치.
그리고 그 인형은 자신의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인형이 움직여! 이게 뭐야!?”
이호성은 움직이는 인형을 보며 눈알이 튀어나올 것같이 변했다.
“너도 뭔지 몰라?”
이호성이 귀신을 본 것 같은 얼굴로 인형을 보며 빠르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저도 이런 건 처음 봅니다. 이게 뭐지, 대체……!? 왜 인형이 살아 움직이는 거야. 잠깐만요! 혹시 이거 아이템 아닐까요? 한번 터치해 보시겠어요? 아이템 정보가 뜰 수도 있습니다.”
민성은 발로 리치 인형 엉덩이를 살짝 툭 밀어 보았다.
인형이 그 힘에 훅 밀려나더니 깜짝 놀라하며 민성을 올려다보았다.
[‘강민성’의 귀속 인형 리치]
[레벨 1]
[등급 / 전설]
[HP 1,500]
[MP 4,000]
[힘 120 민첩 97 지능 31 행운 59]
[공격력 349 방어력 337 명중률 70 회피율 86 속성저항 1,000]
[특성 : 흑마법 공격]
[특수 능력 : 부활]
“……라는데?”
민성이 리치 인형의 정보를 말해 주자, 이호성은 넋이 나갔다.
“완전 쩌는 전설 액세서리 아이템이네요.”
“귀속이면 못 버리는 건가?”
“이, 이걸 왜 버려요!?”
이호성이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리치 인형이 펄쩍 뛰어서 민성의 허리춤에 열쇠고리처럼 매달렸다.
민성이 못마땅한 얼굴로 내려다봤지만, 리치 인형은 절대 떨어질 생각이 없는 듯 대롱거렸다.
“귀속 아이템을 버리려면 특수 아이템을 통해 파괴해야 하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엄청나게 유용할 겁니다. 남들은 갖고 싶어도 절대 못 갖는 아이템이라고요. 게다가 어쩌면 이건 최초의 아이템일지도 모릅니다.”
손바닥만 한 크기니까 딱히 걸리적거리진 않지만.
리치 인형이 허리띠를 잡고 놀이기구를 타듯 몸을 흔들었다.
민성은 그런 리치 인형을 어이없어하는 얼굴로 내려다보았다.
“이건 역시 그냥 갖다 버리는 게…….”
민성의 말에 리치 인형이 오들오들 떨며 머리를 민성의 옆구리에 파묻었다.
민성은 리치 인형을 보며 짧은 한숨을 쉬었다.
꼭 지능이 모자란 어린애 같아서 상대하기도 난감한 심정이다.
“일단 내려가자.”
민성이 그렇게 말하며 앞장섰다.
이호성은 앞서 걸어가는 민성과, 그의 허리에 매달려 있는 리치 인형을 보며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미궁 탈출에, 기타 능력자, 마법 인형……?”
이호성은 마치 귀신에 홀린 것만 같은 표정으로 뜨거워진 이마를 탁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