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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16화 (16/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16화>

따랑-

출입문을 열자 종소리가 울렸다.

이른 아침 시간이라 그런지 자리에는 허름한 차림세의 중·노년들이 이제 막 잠이 깨려는 얼굴로 식사에 한창이었다.

“어서 오세요. 빈자리에 앉으시면 되세요.”

중년 여성이 앞치마에 물기 묻은 손을 닦으며 말했다.

민성은 창가에 작은 테이블이 있는 곳에 가서 앉았다.

“뭐로 드릴까요? 잔치 국수?”

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년 여성도 미소와 함께 고개를 주억이며 주방으로 돌아갔다.

민성은 테이블을 보았다.

양념장이 들어 있는 작은 양념 단지가 있고, 그 옆에는 수저통이 있다.

수저통에서 수저를 꺼내 놓은 뒤 주변을 훑어보자, 벽에 ‘물은 셀프’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민성은 직접 냉장고에서 물통과 물 잔을 챙겨 자리로 돌아왔다.

가게의 분위기는 평범했다.

장인 정신과도 같은 숭고한 분위기는 없지만, 시장 분위기와도 같은 편안함이 형성되어 있다.

부담 없이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이 최고의 장점인 그런 가게다.

민성은 가게 내부를 살피며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잔치 국수가 나오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중년 여성이 잔치 국수 하나와 김치가 담긴 그릇을 민성의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맛있게 드세요.”

중년 여성이 물러가고 민성은 잔치 국수를 바라보며 천천히 젓가락을 들어 올렸다.

숟가락은 필요 없겠군.

들고 마시면 되니까.

젓가락을 대기 전 잔치 국수의 자태를 한 번 더 눈에 담았다.

잔치 국수.

마을 잔치 때 많은 사람들이 함께 기쁨을 나누며 먹었다는 음식이 잔치 국수다.

삶아 건진 국수에 맑은 장국을 부어 내는 이 국수 요리는 요즘은 쉽게 접하지만, 예전엔 잔칫날에나 먹을 만큼 귀한 음식으로 대접을 받았다.

그런 잔치 국수가 2,900원.

가격이 세월의 흐름을 전하고 시대의 변화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민성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잔치 국수에 양념장을 덜어 넣고, 젓가락으로 면과 양념을 풀어 헤쳤다. 그리고 곧바로 면을 크게 들어 후후! 분 뒤에 그대로 입안에 넣었다.

호로로롭!

면발이 세차게 민성의 입안으로 진공청소기처럼 빨려 들어갔다.

푹신하게 면발이 씹힌다.

이어서 바로 그릇을 양손에 들고 국물을 마셨다.

후루루룩!

“하아…….”

고개를 젖힌 민성의 입에서 뜨거운 기운이 흘러나왔다.

멸치로 국물을 낸 잔치 국수의 멸치 국물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서민 음식의 힘이란 이런 걸까?

평범한 장점이 비범하다는 걸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맛있어!’

그릇을 내려놓고 김치를 집어 먹었다.

아삭아삭!

적당히 익은 배추김치의 새빨간 맛이 싱그럽다.

젓가락은 다시 쉬지 않고 면발로 향했다.

뜨거운 면발을 입으로 바람을 불어 식힌 후에 먹었다.

부드러운 면이 입안에서 씹힐 때의 그 푹신함은 마치 침대의 안락함과도 같은 느낌을 선사했다.

면을 최대한 끊지 않고 먹어 보았다.

완전한 흡입.

한입 가득 들어온 면이지만, 결코 입안을 부담스럽게 하지 않는다.

외려 많은 양의 면이 풍부한 감각을 더해 주고 있다.

우물우물!

얼큰하고 시원한 맛이 입안과 코끝을 주무른다.

젓가락질을 몇 번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그릇에는 면이 보이지 않았다.

금세 먹었지만 잔치 국수는 단숨에 배를 든든하게 불려 주었다.

민성은 남은 국물을 천천히 음미하듯 후루룩 마신 후, 그릇을 내려놓았다.

깨끗하게 한 그릇을 통으로 비워 낸 민성은 시원한 숨을 내뱉으며 차가운 물을 꿀꺽꿀꺽 마셨다.

얼음이 섞인 물이라 그런지 몸속에 차가운 수분이 쫙 퍼져 나가는 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마치 몸속을 씻어 내는 것만 같은 개운함이다.

‘후우……! 잘 먹었어.’

민성은 만족한 얼굴로 일어섰다.

* * *

이호성은 민성이 나오는 모습을 보고, 피우고 있던 담배를 급하게 껐다.

“식사 맛있게 하셨습니까?”

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았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민성이 뒷좌석에 올라탔다.

이호성은 운전석에 오르며 민성을 돌아보았다.

“이제 어디로 모실까요?”

“미궁으로.”

“네. 알겠…… 네!?”

이호성이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하는 표정으로 눈을 끔뻑이며 되물었다.

“가까운 미궁으로 출발해.”

민성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정말 미궁으로 가시려고 하시는 겁니까? 위험하실 텐데요.”

“출발해.”

이호성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차를 출발시켰다.

재정신인가!? 미궁으로 가겠다니!?

이호성은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미궁으로 들어가겠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한 건가?

진짜 완전히 불나방이 따로 없구나, 허허.

잠깐만? 이거 완전 빅 찬스잖아?

제 놈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미궁은 자신이 설명한 대로 결코 쉬운 던전이 아니다.

놈이 미궁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자신은 사실상 자유의 몸이나 다름없다.

미궁에서 살아 돌아올 가능성이 얼마나 낮은지는 자신이 충분히 설명했음에도 그 사지로 들어가겠다니.

그는 아마도 아직 미궁에 대해 제대로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더 큰 영리 목적을 가진 길드조차 미궁으로 들어가는 건 가히 자살 행위라고 보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 혼자서 미궁에 들어가겠다고?

아니, 그 전에 잠깐.

등골이 싸늘하다.

“헌터님. 저도 데려가실 생각은 아니시죠?”

민성이 미간을 구겼다.

“당연히 들어가야지.”

이런 시발!?

이호성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건 같이 죽자는 얘기랑 뭐가 달라!?

“헌터님……. 미궁은 정말 위험한 곳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일반 클랜이나 대형 길드조차 쉬이 엄두를 내지 못하는…….”

“들어가기 싫으면 내 손에 죽든가.”

사면초가(四面楚歌).

이호성은 피와 영혼이 다 빨린 것만 같은 퀭한 얼굴로 전방을 보았다.

“구, 굳이 절 데려가려고 하시는 이유가…….”

“아이템 창엔 한계가 있으니까 네 아이템 창을 좀 써야겠어.”

이호성은 손으로 얼굴에 묻어나는 눈물을 서둘러 닦았다.

요즘 들어 눈물이 많아진다.

아무리 슬픈 영화를 봐도 하품밖에 나오지 않는 자신이었는데.

참 많이 변했다.

세상일이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거구나…….

차라리 도망가고 잠수나 탈걸…….

후회막심이다.

이호성은 코를 훌쩍이며 자꾸만 삐져나오는 울음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시끄러워.”

민성의 한 소리에 이호성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소리 없이 눈물과 콧물을 줄줄 흘렸다.

* * *

차가 구불구불한 산길을 계속해서 올라갔다.

해발 3천 미터에 달하는 위치에서 차가 정차했다.

민성은 이호성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여기서부턴 조금 더 걸어 올라가셔야 할 겁니다.”

이호성이 그렇게 말하며 어깨가 축 처진 채 앞장섰다.

“여기가 확실한가?”

“네. 아마 맞을 겁니다.”

민성은 앞장 서는 이호성을 뒤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저 그런데 헌터님. 미궁에 가려고 하시는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일반 던전도 있는데 왜 굳이…….”

“집을 새로 구해야 해서 목돈이 좀 필요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호성이 의아한 시선으로 민성을 돌아보았다.

“-미궁이라는 곳이 궁금하기도 하고.”

이호성은 민성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보다가 미궁이 있을 전방을 보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 * *

미궁 앞에 도착했다.

반투명한 UFO가 세로로 세워져 있는 듯한 던전 특유의 형태를 지닌 미궁이 보인다.

이호성은 미궁 던전을 보며 반쯤 실성한 얼굴로 웃음을 흘렸다.

천운이 있을지도 모른다.

최하 난이도가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의외로 하급 난이도가 나오는 건 흔하다는 걸 들어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해.’

꿀꺽.

이호성은 미궁 던전을 보며 굵은 침을 삼켰다.

자신의 인생에서 미궁에 들어가게 될 날이 올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미궁의 입장을 앞두고 있다.

제발 저 좀 내버려 두고 혼자 들어가서 뒈지시면 안 되실까요? 라는 말이 도저히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그랬다간 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는 던전에 들어가기도 전에 자신을 찢어 죽일 게 틀림없었다.

“가자.”

민성이 앞장서며 그렇게 말했다.

이호성은 들어가자는 그 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만 같은 공포감을 느꼈다.

진짜 가는 건가? 진짜……?

앞서 걸어가던 민성이 살짝 짜증이 담긴 얼굴로 이호성을 돌아보았다.

“가, 갑니다.”

이호성은 체념하고서 민성을 뒤따랐다.

던전 입장을 위해 던전 아래 지정 위치에 섰다.

잠시 후, 민성과 이호성의 몸이 서서히 공중으로 부양하기 시작했다.

‘시발, 진짜 들어간다. 아, X됐어. 제발! 제발 최하 난이도가 나오기를!’

검은 어둠이 의식을 집어삼켰다.

* * *

어둠 속에서 던전 시스템의 음성이 들려왔다.

[미궁 던전에 입장하였습니다.]

[던전을 클리어하기 전까지 미궁은 탈출할 수 없습니다.]

[5초 후 난이도를 공개합니다.]

[5, 4, 3, 2, 1…….]

이호성은 마음속으로 싹싹 빌었다.

제발 최하 난이도가 나타나기를……!

[미궁 난이도]

[지옥]

“아아아아아아악! 안 돼!”

이호성은 절규했다.

이제 틀렸어.

살아 돌아가는 건 틀려먹었다.

미궁의 난이도는 ‘쉬움, 보통, 중간, 어려움, 최상급, 지옥, 불지옥, 불가능’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 미궁의 난이도는 지옥이다.

세간에 알려진 정보에 의하면 지옥의 난이도는 그림자 길드가 통째로 달려들어도 클리어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했다.

그런 지옥의 난이도가 걸려든 것이다.

죽어.

이제 죽는다고!

왜 하필 강민성을 만나 가지고, 크흑!

후회와 한탄이 가슴속으로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그리고 그사이 서서히 빛이 찾아들었다.

눈을 뜨자 지옥 난이도의 미궁 던전이 그 공간을 드러냈다.

이호성은 정신이 파괴될 것만 같은 얼굴로 벌써부터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었다.

널찍한 넓이의 동굴 안은 천장에 박혀 있는 야광석이 은은하게 밝히고 있었다.

이호성은 심장이 너무 세게 뛰어서 온몸이 덜덜 떨릴 지경이었다.

지옥 난이도라니…… 지옥 난이도라니!

“망했어요. 난이도가 지옥입니다. 우린 여기서 죽게 될 거예요. 죽게 될 거라고요.”

이호성이 눈물 맺혀선 초조하게 중얼거렸다.

“이호성.”

“……네?”

“시끄럽게 굴지 마라.”

시끄럽게 굴면 뭐? 죽일 거야?

어차피 죽을 텐데, 뭐. 마음대로 해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똥 밭에 굴러도 저승보단 이승이 좋다고, 몇 초라도 더 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였다.

그사이 민성은 전방을 주시하며 아이템 창을 열어 레어 템인 수정 단검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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