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5화>
* * *
집이 불타 버리는 바람에 거처가 사라졌다.
집을 사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고, 돈을 벌기 위해 민성은 이호성을 활용하기로 했다.
“이게 전부?”
커피숍 야외 테라스에서 민성이 이호성에게 서류를 흔들어 보이며 물었다.
이호성은 비굴하게 웃어 보이면서 고개를 낮췄다.
“그게 최대한 간략하게 추린 겁니다. 부족한 정보는 제가 설명을 드릴 수 있고요.”
민성은 이호성이 가져온 던전 정보가 들어 있는 서류를 읽어 나갔다.
던전 정보를 읽다가 이호성을 흘깃 보았다.
불퉁한 표정으로 입술을 우물우물하는 게 보였다.
민성은 서류를 탁 내려놓고 이호성을 빤히 보았다.
“예, 예? 뭐 필요하신 거라도?”
이호성이 민성을 보며 눈치를 살폈다.
“알고 있지?”
“네?”
“넌 날 죽이고 내 물건을 빼앗으려 했다는 걸.”
“그, 그럼요! 그래서 책임을 통감하고 늘 극진히 모시겠다는 마음으로…….”
“극진? 그런 말은 그렇게 쉽게 하는 게 아니지. 주둥이를 꼼지락거리는 걸 보니 불만이 꽤 많아 보이는데.”
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생각이 짧았어.”
민성이 아이템 창을 열어 수정 단검을 반쯤 꺼냈을 때였다.
이호성이 벌떡 일어나더니 민성을 보며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어찌 저의 충심을 그리 곡해하십니까!”
민성이 눈살을 구겼다.
“……뭐?”
“만약! 방금 제 표정이 불충해 보였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나 아십니까?”
민성이 이호성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호성의 턱 끝으로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이렇게 맛없는 커피숍에 모신 것을 후회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리스타가 바뀐 모양이에요! 여기서 100미터만 더 가면 훨씬 더 풍부한 향의 아메리카노를…….”
“너 뭐라는 거냐? 아직 커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이제 막 커피가 나왔음을 알리는 진동 벨을 민성이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 그것은! 제가! 개코이기 때문입니다! 커피의 향이 벌써 별로입니다!”
민성이 수정 단검을 아이템 창 안에 다시 넣었다.
“커피 가져와.”
“예!”
이호성이 커피를 가지러 간 사이, 민성은 이호성이 준비한 서류를 다시 읽었다.
서류 내용에 의하면 던전은 미궁(迷宮) 던전을 포함해 총 79개였다.
그중 현존하는 미궁 던전은 총 5개로, 일반 던전과는 다른 특별한 점이 있었다.
이미 정복된 일반 던전에 비해, 아직 탐사되지 않은 미궁은 특별한 아이템들을 드롭한다는 것이다.
값을 매기기 힘들 만큼 귀한 물건들이 넘쳐나는 게 바로 미궁.
하지만 헌터들은 미궁에 들어가기를 꺼려 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클리어 난이도가 어렵기 때문이다.
미궁은 일반 던전보다 더 높은 난이도를 가진 경우가 대다수였다.
때문에 살아 돌아오는 이들보다 죽는 이들이 더 많았고, 결국 헌터들의 발길이 줄어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일반 헌터들에겐 버겁고 진입 장벽이 높은 만큼, 미궁 탐사는 헌터 기관이 주로 탐사를 맡았다.
이렇듯 헌터 기관이 미궁을 독점하고 있기에 빈익빈 부익부의 순환으로 헌터 기관은 더욱 강력하게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은 늘 불공평했고 그 불공평한 사회를 독식하는 건 현재 헌터 기관들이었다.
그리고 여기까지가 다이아몬드 클랜의 클랜장 이호성이 정리한 서류 내용이었다.
“헌터님. 아메리카노입니다.”
이호성이 커피를 내주고 자리에 앉았다.
민성은 서류를 내려놓고 1회용 용기에 들어 있는 아메리카노를 내려다보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얼음은 잘게 갈아져 있어 마치 빙산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 빙산과도 같은 얼음을 감싸고 있는 진한 아메리카노의 커피색은 영롱해 보였다.
민성은 아메리카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이거…… 맛있을까?
19살에 마계에 소환되었다.
마계에 소환되기 전에 아메리카노를 마셔 본 적은 없었다.
학생이 커피를 즐겨 마시는 경우는 흔치 않으니까.
커피란 것 자체가 첫 경험이다.
‘우선 먹어 보자.’
민성은 아메리카노를 들어 빨대를 입에 물었다.
그대로 쭉 빨아 마셨다.
차가움이 입안을 확 채웠다.
바로 뒤이어 쓴맛이 혀를 확 휘감았다.
쓴맛 뒤에 코끝으로 퍼지는 아메리카노의 연한 커피 향.
몸에 알싸하게 퍼지는 카페인의 느낌.
이것은 설명하기 어려운 편안함을 전해 주었다.
뭐랄까.
짤막하게 총평한다면 시원하고 편안한 느낌이랄까?
마치 폭포수 앞에서 마사지를 받는 느낌과도 비슷하다.
어쨌든…… 처음 먹어 보는 어른의 맛임에도 불구하고 나쁘지 않다.
한 번 더 먹어 보자.
민성은 다시 한 번 커피를 쭉 빨아 당겼다.
시원하게 목을 축이자, 카페인이 몸에 퍼지면서 머리가 맑아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
이것이 카페인의 능력인가?
신기하군.
어째서 커피가 질리지 않는 중독성을 가지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19살 때의 자신이 아메리카노를 먹었다면 이런 좋은 느낌을 받았을까?
민성은 그런 의문을 품으며 자신의 취향에 딱 맞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다시금 음미했다.
몇 번 더 먹다 보니 레귤러 사이즈의 아메리카노는 벌써 민성의 배 속으로 모두 사라져 있었다.
“한 잔 더 갖다 드릴까요?”
이호성이 물었다.
민성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됐어.”
한 잔이면 충분했다.
민성은 다 마신 아메리카노 잔을 옆으로 치웠다.
“미궁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봐.”
민성이 말했다.
“아! 미궁이요? 음…… 미궁이라…….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까. 그냥 복불복이에요.”
“복불복?”
“한 달에 한 번 정도로 생성되는, 단 한 번도 클리어되지 않은 던전. 그게 바로 미궁입니다. 그리고 특수한 점이 있는데, 예를 들어서 만약에 하나의 길드가 미궁을 클리어하기 위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모두 살아 돌아오지 못했어요. 그렇다면 밖에서 그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어떨까요?”
“던전 난이도가 높다고 생각하겠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특수한 점이 있습니다. 미궁 던전의 난이도가 시시각각 변하는 거죠. 랜덤으로.”
“정확히 어떤 식으로?”
민성이 의문을 표했다.
“어느 날은 하느님이 와도 못 깰 것만 같은 난이도를 가졌던 미궁이, 어느 날은 손쉽게 클리어되기도 하고, 그 중간이 되기도 하고. 그렇게 난이도가 입장 때마다 랜덤으로 조정되는 겁니다.”
“쉬운 난이도는 그만큼 보상이 적은 건가?”
“아닙니다. 일종의 도박성을 가지고 있죠. 쉬운 난이도도 일반 던전에 비해 훨씬 더 높은 보상을 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길드와 클랜이 미궁을 꺼리는 건?”
“부담스러워서죠. 혹시나 어려운 난이도가 걸리면 끝장이니까. 미궁은 인원 제한이 있고, 입장을 하면 하나의 ‘파티’가 한 층을 클리어하기 전엔 던전을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런 위험 부담 때문에 결국 큰 보상을 노릴 수 있는 건 최대 규모의 힘을 가진 정식 헌터 기관뿐이죠.”
이호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한 명이 상급 난이도의 미궁을 클리어한 전례가 있나?”
“네. 있습니다. 헌터 기관의 주인들. 바로 최초의 몬스터 브레이크가 발생한 시기에 나타난, ‘기타 능력자’라 불리는 존재들입니다.”
“기타 능력자라는 건?”
“일반 헌터들보다 전투 능력, 성장 속도, 기본 스탯. 뭐, 그런 것들이 쉽게 설명을 드리자면 차원이 달라요.”
“그게 진짜 이유군. 헌터 기관이 미궁을 독점할 수 있는.”
“하지만 그들은 실제로 미궁에 잘 들어가지 않습니다. 상위 간부들이 작전을 짜고, 헌터 기관의 중간 정도 지위를 가진 이들이 팀을 꾸려서 미궁 탐사를 하죠.”
“리스크가 있을 텐데?”
“네. 수시로 죽어 나가기 일쑤예요.”
“그럼 어째서 기타 능력자가 나서지 않는 거지?”
민성의 질문에 이호성이 쓴웃음을 지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중앙 헌터 기관 같은 경우에는 헌터를 성장시키는 데 주력을 쏟아 붓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기타 능력자의 도움 없이도 자력으로 미궁을 클리어할 수 있는 수준을 만들겠다는 의도겠죠. 훗날 기타 능력자가 사라지는 날을 대비하기 위해서.”
민성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타 능력자라는 거,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지?”
“글쎄요. 거기까지는 저도 잘…… 저도 실제로 본 적이 없거든요.”
“기타 능력자의 레벨은?”
이호성이 어깨를 으쓱였다.
“미궁을 혼자서 클리어하게 되면 레벨이 안 보인다고 하던데요? 그냥 일반인처럼 보인답니다. 그래서 기타 능력자들은 다소 베일에 쌓여 있죠. 소문만 무성하고. 워낙 규격 외의 존재들이고. 그냥 뭐, 거의 전설 속에나 있을 법한 분들이죠. 실제로 존재한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랄까.”
“미궁이나 던전을 클리어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지?”
“몬스터가 던전 밖으로 튀어나오죠. 클리어 조건 기간은…….”
민성이 손을 들었다.
“설명은 거기까지면 됐어.”
“그럼 이제……?”
“아침.”
“아! 네. 알겠습니다. 바로 모시겠습니다.”
* * *
이호성이 차를 주차시키며 도착을 알리자 민성이 차에서 내렸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민성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식당으로 향했다.
이호성은 그런 민성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무표정하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시X. 한 번을 같이 먹자고 안 하네.’
* * *
아침은 간단히 할 생각이었고, 이호성은 그런 자신의 의중을 정확하게 캐치해 냈다.
민성은 가게 입구 쪽에 세워져 있는 입간판을 보며 산뜻한 기분으로 미소 지었다.
[잔치 국수 전문점]
[단돈 2,900원]
실로 놀라운 가격이다.
2,900원이라니.
자신이 마계로 갔던 때를 기점으로 지금은 10년이 더 지났다. 그런데 가격이 2,900원이라면 이건 분명 놀랄 만한 것이다.
‘남는 게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가격이 저렴하면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맛이 없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이곳을 데려온 건 다름 아닌 이호성이었다.
한식집도, 초밥집도 이호성은 실패하지 않았다.
만족할 만한 성공을 선보였다.
그럼 이 저렴한 잔치 국수는 어떨까?
먹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