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4화>
* * *
시끄러운 비상벨이 울리는 가운데, 민성은 태연하게 이정희와 오경태를 번갈아 보았다.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두 남자.
이정희와 오경태.
민성은 쓰러져 있는 그들에게 걸어갔다.
저벅저벅.
이정희가 두려움에 질린 눈으로 파들파들 떨며 민성을 올려다보았다.
민성이 이정희의 뒤통수를 밟았다.
바닥에 피가 훅 번졌다.
즉사(卽死)였다.
오경태는 그 광경에 전신을 떨었다.
그림자 길드에서 본부 팀장을 맡고 있는 자신이 이렇게 허무하게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빌어먹…….”
민성이 불타는 항아리를 내려찍었다.
오경태의 머리가 찌그러지며 피가 터졌다.
그때, 비상문이 열리면서 수십 명의 그림자 길드 헌터들이 튀어나오고 엘리베이터에서는 4성 정보 단장 유지혁이 내렸다.
민성은 정보 단장을 직시했다.
그림자 길드 4성 정보 단장
Lv779 유지혁
4성 정보 단장 유지혁의 지휘 아래에 있는 헌터들이 명령 하달을 기다렸다.
“죽여.”
유지혁이 명령했다.
살기를 품은 수십 명의 헌터들이 민성에게 달려들었다.
콰르르르르릉!
민성이 불타는 항아리를 휘두르자 천지가 울리는 듯한 천둥소리와 함께, 수십 명의 헌터들이 칼 한 번 휘두르지 못하고 도미노처럼 우수수 쓰러졌다.
온몸이 불타오르는 채로 수십의 헌터가 눈 깜짝할 사이에 불에 타서 바닥에 누웠다.
길드 로비에는 어느새 불이 크게 번졌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 오롯이 서 있는 민성은 유지혁에게 악마가 현신한 것처럼 보였다.
유지혁은 미간을 구기며 민성을 노려보았다.
“네놈은 대체…….”
활활 타는 불길 속에서 민성이 유지혁에게 걸어갔다.
유지혁이 자신의 애검인 ‘생명의 대검’을 빼 들었다.
* * *
민성의 항아리와 생명의 대검이 맞부딪쳤다.
쿠우우웅!
강렬한 충격에 유지혁은 신음을 흘렸다.
단 한 수를 섞었을 뿐임에도 전신이 진동했다.
팔은 저릿저릿했고 몸은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생명력을 흡수하는 능력을 가진 생명의 대검은 전혀 자신의 특성을 활용하지 못했다.
유지혁은 외려 자신의 체력이 순식간에 빠지는 마법을 경험했다.
민성이 아래쪽에서 불타는 항아리를 올려치듯 휘둘렀다.
공격을 막기 위해 생명의 대검을 세로로 세웠다.
콰아아앙!
불꽃이 터지는 폭발과 함께 생명의 대검이 손을 떠났다.
공중으로 날아오른 생명의 대검이 빠르게 회전하다가 바닥에 푹 박혀 들어갔다.
이로써 무방비 상태로 상체가 완전히 열렸다.
세 번째 공격.
민성의 눈이 시커멓게 흑빛을 머금었다.
쿠우웅!
불타는 간장 항아리가 유지혁의 가슴을 내리쳤다.
“쿨럭-!”
유지혁은 검은 피를 한 사발 토하며 날아갔다.
그는 그대로 벽에 처박혀서 바닥에 쓰러졌다.
유지혁은 새하얗게 탈색된 얼굴로 연거푸 피를 토해 냈다.
“쿨럭! 컥!”
유지혁이 핏발 선 눈으로 일어서려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무릎을 꿇었다.
그 상태로 고개를 들어 민성을 보았을 때, 민성이 달려오고 있었다.
민성이 유지혁의 얼굴을 걷어찼다.
유지혁의 머리가 그대로 터져 버렸다.
* * *
그림자 길드의 길드 마스터는 차량 안에서 휴대폰에 연결된 CCTV를 통해 로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모두 지켜봤다.
그리고 자신의 두 눈으로 보고도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는 초조하게 자신의 입가를 문질렀다.
사실 해당 사안에 대한 내용은 이미 다 파악했다.
오경태 본부 팀장이 강민성이라는 놈에게 이정희를 붙여 청부 살해를 지시했고, 그 지시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고 놈이 그림자 길드 본부로 쳐들어왔다.
4성 정보 단장 유지혁이 제대로 힘 한번 쓰지 못하고 단 세 수에 놈에게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길드 마스터는 정리되지 않는 숨 막히는 혼란을 느꼈다.
설마…… 기타 능력자?
온몸에 소름이 우수수 돋았다.
그림자 길드는 정보로 움직이는 집단이다.
즉, 전력의 80퍼센트는 정보 수집을 위해 외부로 퍼져 있다.
길드 본부 내에 있는 인원의 힘으로는 놈을 막을 수 없는 상태.
하지만 비상 호출로 그림자 길드 전체 전력을 소환한다고 해도 놈을 막을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결국 중앙 헌터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들이 상대가 기타 능력자라는 걸 알면 도움을 줄까?
아니, 대답은 노(No)다.
중앙 헌터 기관, 동부, 서부, 남부, 북부. 이 모든 헌터 기관들은 공통점이 있다.
기관을 장악하고 있는 이가 바로 ‘기타 능력자’라는 것.
그리고 기타 능력자 한 명은 한 도시를 대표할 만큼의 힘과 그 존재 가치를 갖고 있다.
그런데 그림자 길드가 먼저 사고를 친 상황에서 도움을 달라고 한다면?
돌아오는 건 싸늘한 시선뿐일 것이다.
이미 사고는 터졌다.
때문에 길드 마스터인 자신이 해당 사안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다.
길드 마스터는 뜨거운 한숨을 내뱉었다.
부르르! 부르르!
휴대폰이 진동을 울렸다.
길드 마스터는 전화를 받았다.
“지금 길드 본부로 가는 중이다. 더 이상 놈을 자극하지 말고…….”
- 커억!
수화기 너머에서 신음 소리가 들렸다.
길드 마스터는 허리를 바짝 세우며 눈을 크게 떴다.
뒤이어 낯선 사내의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기다리지.
뚜우- 뚜우- 뚜우-
전화가 끊어졌다.
* * *
끼이이익!
고급 대형차가 그림자 길드 건물 앞에 급정거했다.
길드 마스터는 넥타이를 풀어 헤치며 서둘러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CCTV로 보던 현장을 실제로 보게 되자 충격이 뇌리를 흔들었다.
로비는 불타고 있었다.
불길에 휩싸인 자신의 건물을 보는 길드 마스터의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 * *
길드 마스터의 방인 마스터 룸 안에서는 불길이 천천히 번지고 있었다.
그리고 통유리 너머로, 야경을 응시하고 있는 한 사내의 뒷모습이 보였다.
퍼스트
Lv150 강민성
진짜 150레벨이다.
불타는 항아리를 들고서 등을 보이고 있는 그의 모습은 실로 기묘했다.
고작해야 150레벨인데…… 단신으로 그림자 길드를 이 모양으로 박살 내다니……
길드 마스터는 헛웃음을 흘렸다.
더군다나 저 불타고 있는 항아리는 대체 뭐란 말인가…….
그때, 민성이 길드 마스터를 돌아보았다.
민성은 그를 보자마자 손에 들고 있던 불타는 항아리를 바닥에 툭 던졌다.
항아리는 바닥에 떨어지면서 힘없이 깨졌다.
시커멓게 탄 간장이 사방으로 훅 번졌다.
길드 마스터는 깨진 항아리와 그 내용물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저 말 같지도 않아 보이는 무기로 길드원들을 다 때려죽이며 여기까지 올라온 건가?
정말이지, 믿을 수 없는 놈이 나타났군.
대체 그동안 어디 있었길래 우리가 그를 알지 못했던 거지?
최대 정보 조직이라 일컬어지는 그림자 길드도 모르는 이의 등장이라.
하…… 정말이지,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은 남자다.
“내가 그림자 길드의 길드 마스터다. 원하는 게 뭐지? 그림자 길드를 없애려고? 아니면 날 죽이려고 기다린 건가?”
길드 마스터가 민성을 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민성은 피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경고하러 왔다.”
민성이 말했다.
“경고……?”
길드 마스터가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민성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날 건드리지 말 것. 침묵을 지킬 것.”
길드 마스터는 불이 번지고 있는 자신의 마스터 룸을 보며 웃음을 흘렸다.
“뒷수습은 귀찮으니 살려 주는 대신 알아서 수습하고 책임지라는 뜻이군.”
민성이 말없이 길드 마스터를 응시했다.
길드 마스터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원하는 건 그게 끝인가?”
민성은 걸음을 옮겨 길드 마스터의 옆에 섰다.
“약속이 지켜진다면.”
그 말을 끝으로 민성이 마스터 룸을 나갔다.
길드 마스터는 그가 나간 방향을 돌아보며 무력함에 눈을 질끈 감았다.
* * *
그림자 길드의 직원들이 정화의 액체를 이용해 화재를 진압했다.
화마를 잡은 이후, 시커먼 잿더미가 된 마스터 룸 안에서 길드 마스터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중앙 헌터 기관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였다.
중앙 헌터 기관은 해당 사안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길드 마스터는 그들에게 대답을 주지 않았다.
민성이 말한 대로 침묵을 지킨 것이다.
중앙 헌터 기관에서 강하게 나왔지만, 그림자 길드에서는 절대로 해당 문제에 대해 발설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자 중앙 헌터 기관도 더 이상 무리해서 사안을 파헤치려 들지 않았다.
그림자 길드는 언론사에 해당 사건에 대해 보도를 할 수 없도록 조치했으며, 해당 사건을 1급 기밀로 등재했다.
그림자 길드 내에서는 그 누구도 이번 사태에 대해 발설하지 못했다.
민성이 원했던 대로 철저히 침묵을 지켰다.
그림자 길드의 화재 및 폭파 사건은 그렇게 침묵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 * *
다이아몬드 클랜의 클랜장 이호성은 시커멓게 그을린 그림자 길드 본부를 황당한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대체 뭔 일이 있었던 거야?”
이호성은 충격에 빠진 얼굴로 길드 건물을 올려다보다가 주변을 훑어보았다.
수많은 헌터와 일반 시민들이 그림자 길드의 외관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림자 길드는 정보를 사고파는 일을 하는 회사다.
그림자 길드로의 출입은 일반 시민들에게도 언제나 열려 있다.
하지만 현재는 바리케이드가 쳐져 영업을 일시 중단한다는 공문이 붙어 있었다.
이호성은 그림자 길드 건물과 주변을 보며 마른 입술을 핥았다.
언론사에서도 그림자 길드의 속사정에 대해서는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그저 단순 화재로만 보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건 즉, 입막음을 했다는 것.
기밀 사항으로 해당 사안을 덮었다는 얘기다.
그림자 길드가 급습을 당했다면 떠올릴 만한 상대는 헌터 기관밖에 없지만, 헌터 기관이 그림자 길드를 이렇게 대놓고 치는 건 말이 안 된다.
헌터 기관이 그림자 길드를 상대로 깡패같이 움직였을 리가 없다.
헌터 기관과 그림자 길드는 악어와 악어새 같은 관계니까.
그렇다면 설마…… 강민성?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이호성은 자신의 온몸에 소름이 우수수 돋는 걸 느꼈다.
“하하, 무슨 망상이야. 그럴 리가 없잖아.”
이호성은 담배를 꺼내 초조하게 뻑뻑 피우며 발을 달달 떨었다.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